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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의 ‘소스 공개’ 꼼수

MS의 ‘소스 공개’ 꼼수 [한겨레]2003-02-05 03판 20면 1324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지난달 25일의 ‘인터넷 대란’은 마이크로소프트(엠에스)에 대한 불신을 더 키웠다. 대란을 책임질 당사자들은 증발했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는 엠에스 프로그램의 취약한 보안 능력이다. 외부의 공격에 전국의 인터넷이 파죽지세로 무너지는 수치스런 대란은 꼼꼼한 검증 없이 숱한 돈 들여 한가지 프로그램만을 생각 없이 도입해 얻은 대가다.그 난리법석을 피우기 며칠 전 이미 엠에스는 여러 나라에 입에 발린 소리를 해 빈축을 샀다. 최근 여러 정부들이 엠에스 물건을 꺼리고 소스가 공개된 프로그램을 쓰려 하자 마음이 급했다. 떡하니 ‘정부 보안프로그램’(GSP)이란 묘한 제안을 내놓고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에 특별히 자사 운영체제의 소스를 공개하겠다며 파격적으로 나섰다. 엠에스와 이 계약을 체결한 정부는 윈도 데스크톱·서버·CE 운영체제 소스 내용의 97%를 들여다볼 수 있는 혜택을 누린다. 민감한 기술 내용인 나머지 부분을 보려면 번거롭겠지만 계약 당사국의 정부 대표가 엠에스 본부로 행차하면 된다. 이를 통해 정부는 공개 소스를 가지고 윈도에서 작동되는 국가보안 시스템을 개발할 특권을 얻는다. 제안은 그럴듯한데 들여다보면 온통 빈말이다. 보기만 하고 만지지 말라. 엠에스 계약의 전제다. 소스 코드의 변경·편집·재구분이 불가하다. 물론 이는 엠에스 고유의 몫이다. 엠에스는 약 60개국이 이 어설픈 프로그램에 합류할 것이라 호언하는데 어느 정부가 이 혜택을 누리고 싶어 안달할지 자못 궁금하다. 전문가들 대다수가 이번 엠에스의 제안을 고도의 심리 마케팅 전술로 본다. 소스 코드를 개방해 성장한 리눅스가 엠에스의 시장을 삼키는 강적으로 등장하자 이에 투자국 정부들을 딴데 한눈 못팔게 굳히기 작업을 펴겠다는 의지로 읽는다. 전세계 시장 독점력으로 각국 정부를 앞세워 리눅스 확산을 막기 위한 정치적 차단막을 형성하려 한다는 혐의다. 일본·중국·대만·필리핀·영국·프랑스·독일·핀란드·아르헨티나 등 가면 갈수록 여러 정부들이 보안 능력, 안전성, 경제적 비용 면에서 월등한 소스 공개 프로그램을 독려하니 겁날 만도 하다. 리눅스는 누구나 쉽게 접근해 자유롭게 이용하고 수정이 가능한 경쟁과 비배제의 논리로 윈도를 위협하고 있다. 애초에 코드 접근의 기회를 박탈하고 프로그램 갱신을 업자의 몫으로 꽁꽁 묶어두던 엠에스의 독점 논리와는 전혀 다르다. 이제 와서 엠에스가 리눅스를 염두에 두고 일부 소스 공개로 정부들의 튼튼한 보안체제를 돕겠다며 금세 밑천이 다 털릴 ‘꼼수’를 두니 누가 믿을 것인가. 그리곤 얼마 뒤 엠에스의 제안이 나오기 무섭게 인터넷 대란이 터졌다. 그 보안 능력의 수준을 잘 보란 듯이 말이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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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연장 ‘보이지 않는 손’

저작권 연장 ‘보이지 않는 손’ [한겨레]2003-01-22 06판 20면 1376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기업들이 직접 법을 쓰는 세상이다. 자본주의 초창기 영국 농민들을 토지에서 폭력으로 내쫓아 무산자로 만들었던 대지주들의 소위 ‘엔클로저’(종획) 운동만큼이나 기업들이 새겨놓은 저작권의 내용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둘 다 가두고 막을수록 부를 키운다는 점에서 동색이다. 그래도 현대 기업들은 나서서 인간 혼과 지식을 빼앗아 독점하는 현실이니 강제로 농민들을 농토에서 내쫓던 자본의 시초 축적 시절보다 지금이 더 교활하고 독하다 싶다.95년까지 권리연장 판결 지난주 미국 연방대법원은 1998년 할리우드업계 등 저작권 지상론자들의 로비와 압력에 굴복해 수정된 저작권 연장 법안인 일명 ‘소니 보노 연장법’의 정당성을 재차 인정했다. 기업과 의회는 저작권 수명을 고무줄처럼 20년 늘려 95년으로 만들어 “제한된 시기”만 저자의 권리를 지켜주자는 저작권 게임의 원칙마저 사그리 깼다. 지난 40년간 열한번이나 집요하게 늘리면서 미국 저작권은 어느새 만세를 누리는 반영구권이 됐다. 그야말로 사악한 엔클로저의 현대판 부활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지난해 가을 디지털운동 시민단체 쪽에서 낸 저작권 연장법 위헌 소송의 실망스런 결과물이다. 이는 지식과 정보의 확대 재생산을 막는 악법에 맞서 싸우던 정보운동 진영에 큰 패배감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기업은 그저 앉아서 수백억 달러를 더 벌어들일 기회를 얻었지만 무엇보다 걱정거리는 장차 이번 판결이 지식과 정보 시장 전반에 끼칠 부정적 파장이다. 엔클로저식으로 그어놓은 자본의 금을 밟을까 가뜩이나 움치고 뛰는 데 주춤거렸던 이들에게 한결 더 부자유스런 제동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이번 판결은 현대 저작권 틀에서 시민들이 함께 누릴 어떤 공공의 철학이란 찾아볼 수 없음을 확증하는 계기가 됐다. 형식상 저작권은 일정 기간 저자의 창작 의욕을 돕고 바로 저작물을 시민들의 공적 영역에 두어 좀 더 제3자의 창작을 독려해 인간 과학의 진보를 이루자는 취지로 제안됐다. 하지만 저작권은 저자의 권리를 대신해 등장한 자본의 부를 축적하는 재산권으로 돌변한 지 오래다. 이것이 저자의 권리 보호가 거짓 선전되면서 공유해야할 무형의 자산에 철통 같은 자물쇠가 채워진 까닭이다. 공유자산 자본이 봉쇄 아무리 그래도 저작권은 사유 재산권의 보루가 아니다. 이는 정부, 시민, 기업이 함께 만나는 공공의 국가 정책이다. 정책이란 언제나 힘없는 시민의 공적 영역을 기본으로 삼고 출발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 근본을 허투루 하지 않았어도 미 의회와 대법원이 함부로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는 한심한 일은 막았을 터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탄다면 혹시 아는가, 앞으로 저작물 보호기간도 아예 귀찮아 떼어버린 ‘영구 저작권’이 나올런지. 진짜 저작권 만만세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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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권력의 시녀’ 안되려면

정보가 ‘권력의 시녀’ 안되려면 [한겨레]2003-01-08 02판 20면 1299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인터넷 시대의 개방성과 투명성에 비춰보면 전혀 짝패가 맞지 않는 고루하고 폐쇄적인 현실이 계속해 연출되고 있다. 여기저기 흘러야 할 정보를 혼자 움켜쥐고 뒤흔들고, 개인 정보를 샅샅이 훑어 모아 기록·분류하고, 입맛에 따라 각종 정보를 은폐·왜곡하는 등 정보를 잘 주물러야 권력 집단이 불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정보 독점이 권력의 사활로 직결된다.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 통치집단은 확실히 정보를 통해 국제적 패권과 자국내 권력을 유지하는 단계로 넘어섰다. 미국 정부 22개 부처의 가공할 정보 능력을 함께 동원할 국토안보부 신설, 정보 권력을 세우는 데 눈엣가시인 해커 소탕용 ‘사이버안보 강화 법안’, 전자공간에서 개인의 모든 정보를 추적하는 국방부의 ‘종합정보인지’ 체계, 전세계 여론 조작을 꿈꿨던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전략영향국’ 구상과 무산 등 신종 거대 정보기구의 출현에서 정보 권력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다. 정보를 가공해 힘을 행사하는 능력이 남다르면 그 권력은 공공의 정보 접근을 막는 데도 탁월하다. 국익·보안·비밀·업무지장 등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유를 들어 알 권리를 묵살하고 정보의 접근을 막는 정보 비공개가 그것이다. 재임 뒤 열두해가 지나면 대통령 통치 관련 기록물을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는 1978년 ‘대통령통치사료법안’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이르러 무용지물이 됐다. 그는 이미 텍사스 주지사 퇴임 시절에도 사설 경호원을 삼엄하게 세워 자신의 공문서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을 막았던 전력이 있다. 사태가 이쯤 되니 문서관리사·역사가·법률인·시민단체를 비롯해 일반인 모두가 좀 민감한 국가 정보의 공개 청구를 하려면 법정에 설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구린 데가 많은 권력일수록 정보의 폐쇄와 은폐를 자신의 목숨처럼 여긴다. 실제 정보량이 폭발하는데도 권력 집단의 정보 비공개는 점점 늘어난다. 미국처럼 우리의 현실도 그 쪽이다. 98년에 비해 지난해 정부 부처들의 정보청구 비공개율이 두배 증가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참여연대의 논평 자료를 보면, 정부기록보존소에 확인한 4년 간의 청와대 통치관련 기록물 목록이 고작 1300여건에 불과하고 목록조차 접근이 불가능했다고 적고 있다. 인터넷으로 정부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하는 전자정부 시대가 열렸다고 시끄럽다. 정보 목록이나 내용은 갈수록 철통인데, 청구 서식을 온라인으로 내려받고 수수료까지 납부할 수 있는 전자 시대가 왔다고 호들갑이다. 체계화한 정부기록의 보존과 개방이 전제돼야 인터넷도 제값을 한다. 그걸 모르면 값싼 정보 이용으로 국민을 농락하는 권력이기 쉽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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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해방 '구글 경제' 검색독점 '독'될수도

정보해방 '구글 경제' 검색독점 '독'될수도 [한겨레]2002-12-18 07판 24면 1301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요즘 ‘구글경제’란 말이 ‘신경제’를 밟고 올라섰다. 일개 검색엔진 구글이 신경제의 추한 몰골을 가릴 정도로 정보 시장에 활력이 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두 학생이 만든 검색 사이트가 불과 4년 만에 시장을 석권했다. 게다가 여느 검색 사이트에서도 보기 어려운 배너 광고 무게재 등 비상업적 노력이 이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자 광고들로 진을 쳐야 장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천박한’ 신경제의 상식을 뒤집은 셈이다.구글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구글레오폴리’(Google-opoly)란 신조어도 같이 등장했다. 구글에 의해 짜여질 수 있는 시장독점 논리를 경계하는 용어다. 구글경제는 사용자들의 의식을 먹고 산다. 인터넷의 가야 할 곳을 정하는 데 구글이 인터넷 접속 인구의 80%를 책임진다. 그러니 구글경제에선 구글 검색 순위의 꼭대기에 올라야 생존할 수 있다. 세뇌라도 해서 항상 기억에 남길 원하는 수많은 인터넷 벤처들에겐 구글의 검색 로봇은 사활을 책임진 신의 존재다. 구글의 인기 비결은 기본적으로 검색 기능의 정확성과 신뢰성 때문이다. 자주 찾는 사이트들은 검색 순위의 상위에 올라간다. 이제까지 이것이 구글 검색 기술의 장점처럼 보였다. 그러나 검색 조회수나 인기도가 순위 결정의 중심 척도가 되면 남들보다 입이 크거나 성공한 상업 정보들의 검색 순위를 부양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반대로 신생 정보는 파묻혀 쉽게 눈에 띄기 어렵다. 불순한 동기와 무관하던 구글이 검색의 근본에서 화폐와 힘의 논리에 쉽게 휘둘릴 수 있음을 뜻한다. 검색 순위를 돈으로 사고파는 불법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렇듯 구글 검색 순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대한 어떤 웹운영자의 주장(google-watch.org)이 한때는 섣부른 소리로 취급되다 요즘은 조금씩 이해를 얻고 있다. 우선은 전세계 네티즌이 하루에도 수억번씩 구글의 검색창을 찾을 정도로 위세가 커져버린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정보의 소유 독점으로 일반의 접근을 막는 것에 비해 검색 능력의 독점은 처음부터 정보의 존재를 선별해 부정하려는 점에서 더 큰 현실 왜곡을 불러온다는 위기감도 거들었다. 얼마전 중국 당국이 무모하게 구글을 탄압해 오히려 구글이 정보 자유의 보루로까지 격상된 적이 있다. 구글 사랑이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되고 민주주의의 수호로까지 칭송받는다. 반면 구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수록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점점 위축되기 마련이다. 구글경제를 잘 꾸리려면 검색 결과를 함부로 주물럭거리는 괴물이 안되도록 항상 지켜보는 네티즌의 부릅뜬 두 눈이 필요하다.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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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위세에 맞서는 이동식 디지털도서관

저작권 위세에 맞서는 이동식 디지털도서관 [한겨레]2002-12-04 01판 24면 1282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요즘 미국에서는 ‘북 모바일’이라 불리는 이동도서관의 모습이 크게 변하고 있다. 철 지난 책을 가득 싣고 산간벽지를 순회하는 ‘그때 그 시절’의 용달차를 떠올린다면 큰 착각이다. 두세 평 남짓한 공간에 먼지 뒤집어쓴 책들 대신 지금은 위성 안테나와 컴퓨터 서버, 프린터, 제본기 등 첨단 시설을 싣고 폼나게 전국을 누빈다.용도도 바뀌고 있다. 국공립 도서관의 손발 노릇을 넘어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차에 싣고 다니며 알리는 발 달린 유목형 매체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뛰어난 기동성에다 마을 사람과의 직접 대면이 쉽게 이뤄지는 터라 적잖이 관심을 유도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디지털 도서관의 공공성 신장을 위해 일해온 ‘인터넷 아카이브’(archive.org)는 이런 첨단 인터넷 이동도서관의 원조격이다. 아카이브는 저작권으로부터 면제된 100만권의 전자책을 모아 대중에게 보급하는 사업을 벌였고 이제 이를 초고속 인터넷으로 무장한 이동도서관에 고스란히 옮겨 담고 있다. 공공의 지식을 모아 저장하고 보관하는 사업에 더해 인터넷 이동도서관이라는 광대역의 날쌘 발을 단 셈이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은 이동도서관을 방문해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저작권이 소멸된 공공의 자산을 그 자리에서 클릭해 내려받고 인쇄해 바로 제본을 거쳐 저렴한 가격에 복사본을 손에 쥘 수 있다. 이는 공공의 지식에 대한 보편적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순간 학습으로 체험하는 효과를 거둔다. 또한 지식을 잘 축적하면 얼마나 큰 나눔의 자산이 되는지도 깨우쳐준다. 그러다보니 이동도서관은 지식의 공적 영역을 사방에서 갉아먹으려는 저작권의 횡포와 자주 부닥친다. 이동도서관은 지난 10월 저작권법을 20년이나 연장하려는 월트디즈니에 맞서 순회 저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비영리 단체가 흔히 직면하는 열악한 재정 상황도 아카이브를 가로막는 악재다. 그래서 이동도서관의 절제된 예산 운영은 여러 교육 단체나 기관에 중요한 교훈이 될 듯하다. 국공립 도서관은 자체 운영되는 이동도서관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혁신을 꾀하고, 각급 학교는 공공의 지식을 활용해 도서 예산 압박의 짐을 덜고, 정부는 이동도서관의 정보화 사업 지원까지 돌볼 수 있는 길을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 저작권의 위세에 눌려 공유 감각을 잊어버린 미국내 국공립 교육 기관의 관성을 영세한 이동도서관이 조금씩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도서관의 외부 접근권까지 가차없이 막는 우리 현실에 견주어보면 낡은 중고 승합차에 담아 나르는 정보 공유의 작은 꿈이 부럽기만 하다.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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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재단? 자선주식회사? 미덥지 않은 빌 게이츠

자선재단? 자선주식회사? 미덥지 않은 빌 게이츠 [한겨레]2002-11-20 01판 20면 1285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암만 좋게 보려 해도 기업의 자선에는 구린내가 난다. 특히 기업이 어마어마한 돈을 선뜻 풀면 추측은 단순해진다. 누굴 험하게 욕보인 대가로 선심을 썼거나 시커먼 꿍꿍이속이 자리틀고 있겠다 싶다.세상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번다는 소프트웨어제국의 주인 빌 게이츠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사회에 기부하는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을 운영한다. 그는 빈국들의 에이즈 퇴치와 컴퓨터 교육 사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다. 얼마 전 그는 인도를 방문했다. 때 맞춰 〈뉴욕타임스〉에 빈국 구호의 인류애를 부르짖는 그의 칼럼도 실었다. 직함은 마이크로소프트(엠에스) 회장과 자선 재단 설립자로 함께 표기됐다. 칼럼 내용은 인류애로 뭉클한데 여전히 그는 제국의 총수다. 에이즈 퇴치에 거금을 내놓은 자선 재단의 명패 뒤에 윈도 총부리를 겨눈 게이츠가 불현듯 떠오른다는 얘기다. 그의 인도 방문 전만 해도 그 곳에는 엠에스의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졌던 ‘열린소스’ 계열의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려는 정부 정책 차원의 독자적 의지가 있었다. 대대적인 엠에스의 지원과 함께 그 계획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시장의 위협 요인을 확실히 제거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심는 데 기부와 투자의 협공이 잘 먹혔다. 이미 게이츠 재단은 얼마 전 한 케이블방송 회사와 에이즈 치료약·진료기·백신 등을 공급하는 9개 초국적 제약회사에 주식 투자를 해 구설에 올랐다. 초고속 쌍방향 서비스 진출의 발판으로 케이블방송에 투자하는 동시에, 빈국들의 의약품 공급에 절대적인 입김을 행사하는 기부자로서 직접 제약회사에 손을 댔으니 그럴 만했다. 형식상 재단의 기부금이 보건단체에 전해지지만 게이츠의 투자사인 제약업체로부터 사들인 약품들에 비용이 지급되고 주가를 올리는 묘한 부수 효과 또한 누렸다. 게다가 개인의 투자를 위해 자신이 세운 비영리 자선 단체를 이용해 감세 혜택까지 본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샀다. 최근에는 게이츠 재단이 의욕적으로 벌였던 지역 정보화 사업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허허벌판 농촌에 사회문화적 인프라 없이 사용자만 늘리려 엠에스 컴퓨터들만 설치해놨더니 오히려 사람들이 인터넷을 쓰면서 대도시를 동경해 이농 현상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쯤만 봐도 재단의 최대 과제인 건강과 교육 사업 둘 다 성한 구석이 없다. 제약회사들과 자사의 저작권 보호를 위한 전도사 노릇을 자임해 온 소프트웨어 황제가 어찌 빈국민들의 건강과 교육을 두루 걱정하는지 수수께끼다. 이번 인도의 에이즈 퇴치나 교육 정보화 사업이 더욱 미덥지 않은 까닭이 여기 있다.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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