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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7 -- 상도(商道)는 없고 상도(商盜)만 있다.

단골로 가는 세탁소가 있다. 집에서 50m만 가면 다른 세탁소가 있지만
굳이 찻길건너 맞은 편 단골 세탁소로 간다.

단골 세탁소는 젊은 부부가 꾸려간다. 부인은 옷 수선도 하고 아기도
키우면서 가게도 본다. 큰 애는 5살 정도의 남자 아기다. 여느 애들과
같이 뛰어놀고 소리치며 가게 안을 휘젓고 다닌다. 동생으로 보이는
작은 애는 늘 엄마 등에 업혀 있다.

애들 아빠는 땅땅한 키에 둥글고 넓적한 얼굴로 웃는 모습이 좋다.
꼭 옛날 코메디언 이기동 같다. 가끔 반바지에 나시티를 입고 가게 앞에서
애들을 보다가도 내가 퇴근할 때 만나면 “퇴근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세탁소는 보기보다 작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의 수선대 앞에 의자가
하나 있고 등받이 없는 의자가 하나 더 있지만 권하지도 않고, 나도 수년
동안 다녀도 의자에 한 번 앉아 본 적이 없다. 가게 안쪽에는 세탁을 마친
옷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낮에도 어두컴컴하다.

오래 다니다 보니 천 원, 이천 원 깎아주기도 하고 가끔은 실밥이 터진
옷을 거져 꿰매 주기도 한다. 꼭 이래서 라기 보다는 새로운 곳을 찾는 게
불편한 나에겐 편한 세탁소이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옷을 맡기러 세탁소를 찾았는데 주인아저씨가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다. 옷감을 가져온 손님이 왔는데도 마지못해 인사를 한다.
별로 붙임성이 없는 나지만 조심스레 물러봤다.
“왜 그러세요? 아저씨” 다림대에서 옷을 추리던 아저씨가 손길을 멈추고
대답한다.
“옆의 세탁소 보셨죠?”
“아니요” 그러면서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니 한 20m 옆 전파사가 있던
자리에 가게 하나가 환한 빛을 내고 있다. 신장개업을 했나 보다.
그게 세탁소인줄은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아...글세. 저기다 세탁소를 새로 낸데요. 참~나원...얼마 전에 저쪽
세탁소 사장이 찾아와서 바로 옆에 세탁소를 낼 건데 서로 싸우지 말고
자기에게 이 가게를 넘기라는 거예요.”
제법 언성이 높아지는 게 아마도 그 사장과 벌써 한 판 붙은 모양새다.

“아~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째 이 자리에서 세탁하는데 돈 있다고
바로 옆에 세탁소를 내는 게 말이 되냐구요...어휴...정말...”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주인아저씨가 화 날만 하겠다.
특별히 할 말이 없어 단골이 많으니까 걱정 말라고 위로 하고 가게를 나섰다.

반경 50m 도 안되는 곳에 세탁소가 3개라니, 그것도 우리 동네는 아파트도
없고 죄다 주택이라서 큰 이득도 없을 텐데...정말 상도(商道)가 없다.

길을 나서면서 슬쩍 새로 생긴 세탁소 안을 들여다 봤다. 역시나 깨끗하다.
제법 넓은 가게 안에는 손님을 상대 할 수 있는 접수대도 있다.
들어가는 유리문에는 문자로 ‘와이셔츠 700원’이 붙어있다.
단골 세탁소의 절반보다도 싸다. 싼 가격에 사람들이 몰리겠다.
그리고 나면 주변의 세탁소는 자리를 옮기거나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참 비열한 장사꾼이다’

그리고 나서 몇 달이 흘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세 개의
세탁소가 영업 중이다. 나야 좀 비싸더라도 아저씨 얼굴 봐서 가던
세탁소에 계속가지만 동네 사람들도 그런지 어쩐지 모르지만 일단 다행이다.
아니면 겨우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대형 슈퍼마켓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유통업체가 옆에 구멍가게가 있는데도 버젓이 슈퍼를 새로 연다.
대형유통업체는 벌 만큼 번 대기업으로 동네 상권까지 판쓸이
하려고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이득이 오는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서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아는지...

정말 상도(商道)는 없고 상도(商盜)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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