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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6 -- 전북 무주지역 문화답사

"무진장" 춥다 라고 말 할 시기가 왔습니다.

하지만 "춥다"를 강조하는 부사로만 쓰기에는 무진장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진장(無盡藏)은 "더 할수 없이 많다"를 가진 불교용어이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저리로 서민들에게 융자해주는

금융기관이기도 했습니다.

이 금융기관은 조선에서도 무진장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흔히 무주(茂朱), 진안(鎭安), 장수(長水)를 아울러 무진장(無鎭長)

이라 하고 세지명을 아울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전북에는 세곳을 아우르는 "무진장소방서"도 있습니다.

 

 

그곳.

무진장의 무주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행사주체 : 전태일기념사업후원회 문화답사모임

 

#1

무주군청 뒷마당에 있는 천연기념물 249호 구상화강 편마암입니다.

바위속에(변성암) 아이 주먹만한 자갈이 있는데 신기하더군요.

세계에서 100여곳에만 나타나는 암석인데 우리나라에는 5곳이 있고

그중에 한곳이 무주입니다.

 

무식한 저는 돌멩이가 천연기념물인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2

 

#3

 

#4 한풍루(시도 유형문화제 19호) 예전에 돈깨나 있는 치나 벼슬아치들이 지들끼리 놀던 곳이라 합니다.

남원의 광한루와 함께 아름다운 누각이라 하는데 처음있던 곳에서

충북 영동군 강변으로 옮겼다가 1971년에 이곳으로 다시 옮겨졌다고 합니다.

 

#5

 

#6

 

#7 현대화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후대의 사람들이 보수하면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8 누각의 천정 이슬람사원의 천정문양과 비슷합니다.(사진으로만 보았지만)

이런 문양은 아라베스크문양이라고 합니다.

아라베스크문양은 문자, 식물, 기하학적인 모티브가 어울려 교차된 곡선이 융합되어가는

환상적인 무늬를 말합니다.

이슬람사원의 벽면과 장식품에서 흔히 볼수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청자상감 당초문유병, 분청사기 상감당초문병, 고려 동제범종,

청자상감국화당초문 대접등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당초(唐草)무늬를 사용한 공예품입니다.

이 소장품에 대한 영문설명서에는 당초무늬를 아라베스크 디자인(arabesque design)

이라 합니다.

아라베스크 디자인은 알게 모르게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참고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의 "중동과 이슬람 바로알기"강연)

 

 

#9 천정의 보에 그려진 용의 발톱.

재미있는 발견입니다.

왕이 시무볼때 입는 곤룡포에는 용의 발톱을 3개 까지 수놓을 수 있는데

그것은 왕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중국의 황제는 5개를 수놓는다고 합니다.

 

가끔 자주성이 강한 왕이 용의 발톱을 5개까지 사용했고 세자는 4개를 사용했다합니다.

그래서 이 한풍루는 세자가 이용했거나 세자를 위해 지은 누각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사원이나 향교에 가면 문이 3개인데 가운데 문은 신이 출입하는 곳이라

사람의 드나듦이 없고 사람은 (앞에서 봐서) 오른쪽문으로 들어가 왼쪽문으로

나온다는건만 알았지 문에 3개인 이유를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참고로 서울시청옆 덕수궁 대한문도 문이 3개이고 중국의 천안문은 문이 5개입니다.

 

 #10 나제통문

이 아니고 그냥 석굴문입니다.

 

높이 3m, 길이 10m 암벽을 뚫은 통문 1963년 무주구천동 33경을 만들면서 신라와 백제를

잇는 나제통문으로 둔갑해 교과서에도 실렸지만 한국 우리민족연구회 오재성씨가

일제시대때(1910년경) 채굴된 금을 운반하기 위해 뚫은 것을 밝혀내어 교과서에서는

사라졌습니다.

1970-80년대만 해도 일제시대때 강제 노역한 마을 노인들이 많이 생존해 계셨지만

지금은 대부분 작고하셨습니다.

 

주위에는 나제주유소, 나제분식, 나제휴게소라는 간판을 단 상점이 성업중에 있습니다.

아직도 무주 33경의 제1경을 차지하고 있게 내버려두는 관공서나 상업적 이윤에 앞서

역사까지 왜곡하는 모습이 내내 마음을 불편케 하였습니다.

 

#11

 

 

#12

 

 

#13

 

#14 서벽정 한말의 유학자 송병선이 1886년(고종 23)에 건립 송병선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종에게 상소를 올리다가 고향에 강제이송되어 자결한 사람입니다.

 

#15 반송(천연기념물 291호)

전북 무주군 설천면 보안마을. 나이 350살정도.

 

#16

 

 

#17 적상산성(사적146호) 1374년(공민왕23) 최영의 요청으로 적상산성축조 보기에는 특별해 보이지 않고

높이도 1m정도 입니다.

하지만 아래는 낭떨어지라 천연의 요새가 됩니다.

 

#18 적상산성위에서 바라보다.

 

#19 적상산성바로 위에는 안국사가 있습니다.

대웅전이 아니라 큰법당이라는 말이 맘에 듭니다.

 

 #20 안국사 극락전(시도 유형문화제 42호) 원래 이절터에는 호국사가 있었지만 양수발전소 건설로 안국사가 수몰지역으로 결정되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21

 

 

#22 극락전의 창살

 

#23 성보박물관

 

#24 세계 여러나라의 불상

 

#25

 

#26

 

 

#27

 

 

#28 안국사 근처에 적상산사고(史庫)가 있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습니다.

터만 남아 있던 사고터에 새로 짓고 건물모양만 있습니다.

책상이나 책꽂이라도 몇개 갖다 두지....

 

#29 적상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다.

 

#30 아래에 적상산 산정호수가 보입니다.

 

#31

 

#32

 

#3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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