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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18
    철학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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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자세

철학(혹은 학문)은 (그 체계 구축에 있어서) 정교해야 하고, (현상과 텍스트 분석에 있어서) 엄밀해야 한다. 혹은 최소한 이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이 엄밀성은 하늘이 두 쪽 나고 바다가 갈라져도 꼿꼿하고 흔들림 없이 버틸 수 있는 엄밀성이다.

 

그러나 그런 엄밀성은 과연 있기는 할까? 다르게 표현하면, 어떤 하나의 철학이 절대적일 수 있나, 혹은 영원할 수 있나? 내 생각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이것만은 절대적인 듯하다) 그럼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종류의 엄밀성을 추구해야만 하는 철학, 혹은 그러한 철학함의 방법은 모순이 아닐까? 아마도 모순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또한 나름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지는 않을까? 모순은 곧 경계이고, 항상 경계에서만 무엇인가가 발생하므로. 요컨대, 그 목표가 모순적이기 때문에 곧바로 폐기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이 모순이 '무의미'한 것으로 남겨져서는 안 되겠다. 의미있는 모순만이 폐기의 위협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엄밀성을 추구한다는 것(+A)'과 '절대적인 엄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B)'은, 양자 각각의 부정(즉 -A와 -B)에 해당하는 입장과 결정적으로 갈라짐으로써 이를테면 다소 유동적이고 불안한 연대를 맺는 바, 이 연대의 그러한 유동성으로 인해 철학(학문) 자체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 있다. 즉, 이 연대는 부정적으로는 '-A도 -B도 아닌 것'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이처럼 느슨한 규정이 철학함의 다양성을(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다양한 철학들의 적합성을) 보장한다.

 

'-A'의 문제는 사유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데 있다. 여기서 방점은 '엄밀성과 정교함을 추구하느냐 추구하지 않느냐'에 찍히는 것이지, 그 존재 여부에 찍히는 것이 아니다. 즉, 마치 절대적인 엄밀성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양,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이럴 때에만 학문의 '발전'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동어반복적이지만, 발전이라는 것이 곧 더욱 정교하고 엄밀한 사유로 이행하는 것이므로). 이런 의미에서 '학문(철학)의 민주주의'란 없다. 혹은 불가능하다. 혹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리학에서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만큼,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대중화와 민주주의는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 역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틀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철학자(학자) 자신에 대한, 혹은 특정 철학에 대한, 더 나아가서 이론 일반, 그리고 인간 일반에 대한 일종의 자신감인데, 이 자신감이 학문과 인간을 병들게 한다. 절대적 학문이 있다손 치더라도, 의심을 불허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이미 철학이 아니다. 학문이란 곧 생각하는 것인데, 생각을 지양하는 학문이란 더 이상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의미있는 모순'도 아니다!)

 

정리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학문하는 자세는 다음과 같다. 절대적인 엄밀성과 정교함을 추구하는 것. 따라서 온갖 반론과 예외적인 경우에 정당하게 대응할 수 있으며 삶과 세상의 가장 복잡한 측면들을 왜곡 없이 보여주는 것. 그러면서도 절대적인 엄밀성이나 정교함 따위가 존재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 따라서 애써 획득한 복잡성과 섬세함을 특정한 이름으로 환원함으로써, 이론의 가치를 날려 버리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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