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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6/08
    그래서
    pug
  2. 2006/06/05
    윤리학
    pug
  3. 2006/06/03
    공부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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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3/26
    지하철 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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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3/15
    무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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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3/08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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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2/08
    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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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1/31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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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도 글감이 필요하다. 여성에 대한 차별, 장애인에 대한 억압, 노동자의 자살 기도…. 소수자를 억압하는 세력이 날뛸수록, 지식인들의 붓끝에도 필력이 든다. 일부러 바란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그들은 빚지고 있다. 그들의 존재를."

 

...그래서 어쩔 것이냐, 이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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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정치학이 아니라 윤리학.

정치적 예속이 아니라 인간학적 예속.

맑스 이전에도 '좌파'는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무어라고 부를 것인가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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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계획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꼭 이런 것들을 적어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쩌랴, 한 번 짜내보자!

 

1. 불어 공부

'에꼴프랑스'에서 받은 자료 일독, 수업 교재 일독 후 곧바로,

<<어린 왕자>> ⇒ <<이방인>> ⇒ <<시론>>의 순으로 읽자.

방학 중에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두고 봐야 겠다.

+ 불어 입문 1을 다시 청강해야겠다!

 

2. 베르그손 독해

황수영의 <<베르그손>> 찬찬히 읽기. 어떻게 하면 정리하며 읽을 수 있을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읽어야 하는 것일까.

 

3. 집에 있는데 못 읽은 책 읽기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꼼꼼히 읽기. 이것도 정리하면서.

<<욕망의 전복>>은 라캉 세미나를 하는 짬짬이 읽어 두자.

<<니체의 위험한 책...>>도 다시 읽어 보자.

 

4. 새로운 책 읽기

루틀리지의 critical thinker 시리즈인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두려워하랴>>와

<<스피박 넘기>>를 보자.

<<헤겔 또는 스피노자>>도 사 보자.

 

어차피 이 정도도 다 못할 듯 싶으므로 여기까지만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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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막차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숙제를 뒤로 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막차를 탈 정도로 늦게까지 있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주말인 걸 깜박해서 계산을 잘못한 결과로 결국 안산행 막차에 겨우 올랐다.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갔다. 방송에서는 자꾸만 이게 막차라는 걸, 이거 놓치면 집에 못 간다는 걸 강조했고, 그게 고맙기도 했지만 짜증도 났다. 평일 막차와는 달리 앉을 자리도 있어서 불평은 미뤄두고 남은 숙제를 펴 들었다. 그 때, 문이 열리면서 중년의 남자가 바퀴 달린 바구니를 끌며 열차 칸의 중앙으로 왔다. 수도 없이 본 장면이다. 그래도 뭘 파나 싶어서 슬쩍 봤는데, 흔한 건 아니었고 이리저리 돌려서 맞추는 큐빅 모양의 퍼즐이었다. 피곤하거나 술취해서 자는 사람도 많았기에 열차 안은 꽤나 조용했고, 그 침묵을 비집어 열며 행상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순간, 시간이 꽤나 늦었다는 생각, 행상인이 돌아다니기는 좀 힘들 만큼 늦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남자는 오프닝 멘트를 끝내고 제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큐빅이다. 바구니 안에도 같은 게 잔뜩 들었다. 12시 근처였다. 평범하디 평범한 중년 남자였다. 그 무표정한 얼굴 뒤에, 그리고 그 바구니 안에 과연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함부로 추측할 수 없었다. 몇 년 전의 대구 지하철 사고의 악몽이 구름처럼 피어오르며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온 몸을 휘감았다. 12시인데. 퍼즐을 팔며 돌아다닐 리가 없다. 게다가 이건 막차고, 여기 탄 사람들은 다들 필사적으로 탄 거다. 그 아저씨가 퍼즐을 소개하려고 팔을 번쩍 들 때마다 소름이 확 끼쳤다. 갑자기 아저씨가, "야이 새끼들아, 지금껏 니네 사람 우습게 봤지!"하며 퍼즐을 바닥에 냅다 던지고, 그 외피 속에 들어있던 폭탄이 터지며 불길이 치솟는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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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졌을까

무뎌진건지 그 반대인지도 잘 모르겠을 만큼, 무뎌졌거나, 혹은 그 반대가 되었다. 굳이 '그 반대'라고 하고는 그걸 '예민해졌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민망하기 때문이다. 재수없는 표현이지만,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은 알았달까. 재수없는 표현일 수도, 그냥 내가 재수없어진 것일 수도. '생각하기'의 기준을 높게 잡다 보니, 그게 두려워졌고, 그래서 잘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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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길을 걸어가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는데, 요전에는 그나마 그 기억들을 다시금 떠올리느라 머리를 쥐어 짜면서 보내던 황금같은 밤시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잠깐 컴퓨터가 집에 없어서, 아예 생각들이 줄줄 밖으로 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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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론

결정론적 요소들이 무한히 복잡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면 그 체계는 결정론적인가?

 

어떤 운동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이 부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존재하는 예측 불가능한 대부분의 운동들은, 일정한 법칙으로 환원은 가능하지만 무한히 많고 다양한 하위 구성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 요소들이 운동 안에서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내부 구조를 이루고 있다. 서로에 작용하는 중력이 서로의 운동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만약 세 개의 별들이 모인다면, 그 별들간 중력의 상호작용을 모두 계산해 정확한 운동을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복잡계의 운동들을 예측할 때 우리는 오직 근사치로만 만족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 오차범위 내에서이겠지만) 예측에서 벗어나는 것도 생긴다. 단순히 기술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한히' 많을 경우에는 기술의 진보도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법칙이 부재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이것을 과연 결정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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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여기저기 블로그 옮겨다니는 것도 이제 끝!

 

여기 잘 정착해서,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뒤적여볼 수 있는 일기장같은 공간으로 만들까 한다. 돌아보면 어떻게든 기록해 두지 못해서 너무나 아쉬운 그런 순간들 때문에 이렇게라도 끄적끄적 남기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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