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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 법학자가 본 한미FTA

행정법학자가 본 한미 FTA 협정의 의미
    강재규(lawkang) 기자   
 
불행하게도 저는 그 의미를 조금 깊이 알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래서 영 마음이 편치를 않습니다. 왜냐구요? 앞으로 우리의 삶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 때문입니다. 물론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개인적 불이익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덜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방관만 할 수 없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미 FTA 협정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쉽게 글을 써서 일반 독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킬 시간의 여유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 지금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쓰게 된 배경부터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법학을, 그 중에서도 행정법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행정법은 헌법을 구체화하는 법이기 때문에 헌법을 알지 않고서는 행정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기 때문에 시시콜콜 국민 생활 전반을 상세하게 규정할 수 없어, 아주 추상적이고 개괄적으로만 규정을 하고, 필요한 경우 국회가 법률로써 구체적으로 규율을 하게 됩니다. 그 많은 법률 중에 행정법이 연구대상으로 하는 것이 압도적 다수입니다.

그래서 헌법과 행정법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헌법학자가 행정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행정법학자가 헌법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따라서 행정법학자인 제가 헌법 이야기를 해도 누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또 행정법은 범위가 너무나도 넓고 그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서 행정법 공부를 열심히 하면 만물박사가 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고 행정법학계에서 공공연히 회자되는 얘기입니다. 행정법학자는 많은 부분 공과대학 교수들과 공동 연구가 가능할 정도로 다른 학문영역과도 관련성이 많습니다. 어떠한 사회적 이슈가 부각될 때 다수의 행정법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대학을 다닐 때 경제학 공부도 한 적이 있습니다. 깊은 공부는 아니었지만 미시ㆍ거시경제학 교과목도 수강한 경험이 있습니다.

헌법과 행정법을 연구하고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세계 역사를 공부한 경험이 있기에 인류 역사의 진행과정을 조금은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한미FTA협정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미 FTA 협정이란 잘 사는 미국과 선진국에 진입하려는 한국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쉽게 하고자(관세, 비관세 장벽을 낮춰) 체결하는 단순한 국가 간의 조약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전 영역에 걸쳐 근본적인 구조변화를 초래하는 엄청난 사건이란 것입니다.

근대국가의 경제학 이론인 고전경제학의 자유시장주의 체제 아래서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이 절대시 되었습니다. 국가는 적의 외침으로부터 방어해주고 도둑을 막아주는 역할만을 담당해주면 충분한 소극국가 또는 야경국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가능한 한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개입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계약은 당사자의 자유(의사자치ㆍ계약자유)에 맡겼으며, 개인의 재산권은 절대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계약 등은 사용자(고용자)와 노동자(피고용자) 사이의 자유의사에 맡겨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본가인 사용자의 입지가 강화되고, 노동자의 입지는 약화됨으로써, 공정한 계약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무산자 계급이 이래서는 살 수 없다며,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구소련, 중국, 동유럽 등)이 일어나게 되고 그런 국가들은 공산화되어갔던 것입니다. 모든 생산수단은 국유(공유)화 되어갔던 것이지요. 동남아와 동구유럽은 공산화의 도미노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당황한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시장주의(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공산화의 도미노를 막기 위해 공산주의 내지는 사회주의의 이념을 대폭 받아들여 수정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됩니다. 현대의 적극국가ㆍ복지국가ㆍ사회국가화가 그것입니다.

사회국가에서는 개인의 기본권으로서 이전에 중시되던 근대국가 체제 아래의 자유권에다, 사회적 기본권(인간다운 생활권, 노동권, 교육권, 보건권 등)이 추가되고, 실질적 평등권이 존중되었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배려(연금,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정책)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경제적 약자의 보호를 위해 중소기업을 국가가 지원하고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헌법에 규정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헌법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기본권과 사회국가원리를 지향하는 각종 경제조항이 헌법에 규범화되게 된 것입니다. 최근 경제단체들이 집요하게 그들 경제조항을 수정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주의원리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그 이유인 것입니다. 자유경쟁원리의 추구, 적자생존의 원리, 약육강식의 원리, 능력 없고 무능한 자는 자연도태가 되게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원리, 이러한 것들이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미 FTA 협정은 그러한 원리를 우리에게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한나라당, 조중동문 등 보수언론들, 재벌들이 한미 FTA를 집요하게 타결한 노무현 대통령을 쌍수를 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되면 피해를 보는 쪽은 농민, 어민, 자영업자, 중소기업, 소규모 서비스업, 경쟁력 없는 기업들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보호장치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농약을 먹고 쓰러지는 농민이 줄을 이을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그들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중 다수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입니다.

각종 사회보장제도는 뒷걸음질 칠 것입니다. 공기업들은 사영화가 가속화될 것입니다. 저렴하던 공공요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값이 뛸 것입니다. 돈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병원의 서비스도 제대로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질 높은 교육도 수많은 다른 서비스도 돈 많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마음껏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돈 없고 능력 없는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미국처럼 슬럼가를 형성하거나 노숙자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근거 없는 주장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말이 아닙니다. 한미 FTA의 정신이 정확히 그런 것입니다. 강남 사는 사람들이 세금 내는 일에 '세금폭탄이다' 하면서 거부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개인주의, 자유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미국의 신자유주의, 시장주의 사회인 것이지요. 우리 헌법의 사회국가원리는 서서히 사문화되어 갈 것입니다. 그것이 한미 FTA 협정이 갖는 무시무시한 효력인 것입니다.

판단컨대 한미FTA 협정은 대한민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구조의 변동을 초래하여 국민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국제 조약입니다. 여기에 포함된 투자자 국가소송제도는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상 우리 헌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조약에 의해서 사실상 우리 헌법 규정(특히 경제조항)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되면 우리 헌법에 따라 국내법으로 편입될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될 터인데, 그러면 '신법우선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이 협정과 충돌하는 모든 국내 법률과 그 이하 규범들은 폐지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법원칙에 따라 무효가 됩니다. 이러한 하나의 협정으로 일대 법체계의 대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한미 FTA 규정이 우리 헌법을 위반하면 헌법재판소가 그 위헌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효력이 외국 기업이나 외국에까지 효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의 효력은 국내에만 한정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헌법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는(개헌과 같은) 한미 FTA 협정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공무원을 통해 협상을 하고 국회나 주권자인 국민에게 정보도 공개하지 않은 채 협상을 해나가고 나중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서명하여 공포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조약체결권을 벗어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중대한 사안은 적어도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헌법 제73조는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 비준하고..."라며 조약 체결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회의 의결을 거쳐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조약체결권도 국민주권주의나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엄연한 한계가 있는 것이고, 헌법제정권력이나 개정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의 권한이기에, 사실상 헌법의 개정에 이를 수도 있는 조약 등의 체결이라면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조약체결권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미 FTA 협정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체결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약과는 성질을 달리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국민생활 전반에 이렇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고, 국가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물어 결정하는 것이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의 원리에 합치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미FTA 협정이 타결되자 조중동문 등 보수언론들과 야당인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극찬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국민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개혁정책에 대해서는 일일이 발목을 잡다가 한미 FTA 협정체결에 대해서만은 쌍수를 들어 약속이나 한 듯이 반기는 모습을 여러분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 않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 원리, 국민주권주의의 원리, 대의제의 원리에 철저히 반하는 정책을 선택한 것입니다. 지지자들의 요구와는 정 반대로 선거에서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고 철저히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 지향하는 정책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는 선거제도라는 민주주주의 제도가 갖는 정신을 배반한 행위입니다. 조중동문, 한나라당, 노무현의 삼각동맹, 즉 대통령이 그토록 희망하던 대연정을 성공시킨 것입니다.

또한 협상 주체나 찬성론자들이 숨기지 않고 내뱉듯이 한미 FTA 협정은 단순한 경제논리에 따른 것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미국 아래의 쿠바로 만든 것입니다. 이제는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까지 철저히 미국의 경제체제로 편입될 것입니다. 미국이 바라는 목적 또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미 FTA 협정, 그냥 쉽게 찬반양론으로 논쟁을 하다 지나쳐도 될 그런 단순한 사안이 결코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 불가역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결정적인 사안인 것입니다. 우리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신중하게 고민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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