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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희망버스 성과와 아쉬움, 그리고 4차 희망버스

 

 

3차 희망버스 성과와 아쉬움,

 

그리고 4차 희망버스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임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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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리해고 철회를 다시 무대에 올리다.

 

  6월 27일 한진중공업 지회의 직권조인으로 정리해고 문제가 일단락된 듯이 보였다. 자본가 언론들은 3년 투쟁이 마무리되었다며 환호했다. 극적 타결이라는 선전속에서 한진의 정리해고 분쇄 투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동자 투쟁의 역사에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직권조인 지도부를 탄핵하던 시대는 지나가버린 아주 먼 이야기에 불과했다. 실제로 한진에서도 그랬다. 사측에 타협적인 투쟁회피주의자들이 지회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다른 방법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희망버스는 누구도 꿈꾸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미 끝나버렸다고 이야기되는 투쟁을 희망버스가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2차 희망버스까지만 하더라도 자본가 언론들은 희망버스에 대해 융단폭격을 가하고 이내 사그라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3차 희망버스 참여자들의 숫자가 휴가철임에도 불구하고 희망버스 기획단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2차 희망버스에 참여한 1만 명의 50%만 되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2차의 50%를 초과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3차에는 내가 바로 소금꽃이라는 슬로건으로 운동의 주체로 서 나갔다. 뿐만 아니라 희망버스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지지한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전사회적으로 다수일 것이다. 

 

  3차 희망버스가 끝나고 나서 자본가 언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논조를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자본가 정치인들은 갑자기 조남호 나쁜 놈이라며 희생자 찾기에 바쁘다. 자본가들은 반재벌 정서를 촉진시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희망버스의 자발적인 대중투쟁은 다 끝난 것처럼 여겨진 한진 정리해고 철회 문제를 사회적 화두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희망버스는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자들 스스로가 사회의 주인이고 사회의 여론을 만들어가는 주체임을 나날이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패배에 패배를 거듭해오고, 노동조건의 지속적인 후퇴를 경험하고 있는, 그러한 결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다시 힘을 얻고 나설 수 있는 사회 심리적 배경을 만들고 있다. 당장 한진의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희망버스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었고 지원군이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8월 20일 “친재벌 반노동정책 폐기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는 것과 동시에 희망시국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희망버스의 상상력이 조직노동자들에게 전이된다면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는 전사회적인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고, 나날이 확대되어 지금은 9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철폐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2. 전술적 문제

 

a. 남포, 부산역, 청학동에서의 결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부, 경찰, 보수단체들의 방해 선언에도 불구하고, 3차 희망버스는 2차와 마찬가지로 평화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2차 때의 행사가 주택밀집지역이라는 문제, 그리고 85호 크레인이 보이지 않은 곳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서 3차 희망버스는 2차의 봉래교차로가 아닌 청학 성당쪽에서 행사를 치르기로 했다. 따라서 밤 10시까지 청학동으로의 집결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고 부산역 등지에서의 행사는 사전행사로 배치되었다. 양쪽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3천명이 넘는 동지들이 계획대로 먼저 들어와서 도로를 점거하고 광장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계획대로 진행되면서 영도의 청학동에서 행사를 치룰 수 있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부산역과 남포동 참가자들이 늦게 들어올 수밖에 없어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되는 상황, 그리고 앰프시설도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사전행사를 진행했지만 참가자들의 인내는 결코 바닥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부산역에서의 행사는 예상보다 길어지고 정치인들의 독무대가 되어버려서 일반 참가자들에게 소외감을 주었다. 3차 희망버스 기획단과 영남권과의 연계가 잘 되지 않은 점과 부산역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잘 안된 듯 보였다. 그리고 많은 참가자들이 2차와 마찬가지로 부산역으로 결집했지만, 이를 예상하지 못했기에 일정한 혼선을 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버스로 움직인 참가자들은 대략적인 동선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개별로 부산역에 도착한 사람들을 그렇지 못하고 무한정 기다리게 되었던 것이다.
  부산역에 참가자들이 예상외로 많았던 것은 개별적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2차 때와 마찬가지로 부산역에서 결집을 예상했던 듯하다. 사전 계획대로 진행되었던 것은 맞지만, 부산역 행사가 늦게 끝나고 경찰 측의 방해로 청학동 진입이 늦어지면서 청학동의 본행사가 늦어지고 일부는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남포동의 경우도 4차선 도로를 차단하고 진행했다. 부산역과 마찬가지로 청학동으로 진입은 역시 쉽지 않았다. 경찰 측이 버스를 차단하고 영도의 골목골목을 막아버림으로써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멀리 돌아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3차 희망버스는 평화 기조를 취했으며 이것은 옳았다. 그러나 평화 기조를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무한정 인내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경찰 측이 인식하도록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부산역과 남포동의 5천이 넘는 대오가 영도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초법적으로 나온다면 영도 밖의 참가자들은 밤새 가두투쟁을 전개할 자세가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가두에서 밤새 맞닥뜨리지 않으려면 청학동으로 가는 버스를 더 이상 통제하지 말라고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b. 최종결집 지점인 청학동으로 이동 
 

  대중투쟁에 있어서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목적을 모른다면 수동적인 참여자들에 머무르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청학동으로의 결집 목표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이러한 사실을 전달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주었다. 그리고 움직이기 한 시간 이내의 시간에 어디 어디로 움직여야 한다는 지침을 전달 받게 되는 상황은 참여자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데 있어서 한계를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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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비공개 전술은 그만큼 결집되고 조직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희망버스의 경우 개별적 참가자들이 다수라는 측면에서 전술지침이 모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면 주변의 사람들만 수동적으로 따라다니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도 있다.
 

  정권의 모든 방해에도 불구하고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청학동으로 결집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희망버스 대오가 영도로 결집하겠다는 공개적 목표를 설정하고 행진이든 아니면 버스를 타고 진격했어야 했다. 2차 때 영도로 왔던 것보다 후퇴적인 것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경찰이 되었건 누가 되었건 영도로 희망버스 참여자들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것을 비공개로 한다는 것은 실수였던 것 같다. 한진 정문은 철옹성이고, 양쪽 차벽 바깥 두 곳 중에서 한 곳에서 행사를 치를 수밖에 상황이 존재했다. 경찰들도 부산시내에서 가두투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차벽이 있는 곳에서 행사를 하도록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했다. 만약 영도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면, 영도진입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고 만 명이 넘는 대오가 영도 밖 부산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도 경찰 측은 영도진입 자체를 막겠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경찰 측의 의사를 전적으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별도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경찰 측은 내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대화를 요청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도로 가는 버스를 9시경에 완전히 통제하고 주민들을 경찰 차량으로 실어 날랐다. 결과적으로 경찰 측과의 일정한 대화의 유무가 참가자들의 혼선을 예방하는데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3차 희망버스는 보여주었다.   
 

  그런데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청학성당 쪽으로의 진입은 여전이 비공개였다. 경찰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마당에 오히려 참가자들만 혼선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청학동으로의 결집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입하도록 독려했다면,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부산역에 있던 남포동에 있던 상관없이, 그리고 버스로 가던 아니면 산으로 돌아서 가던, 참가자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청학동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3. 정치적 문제        

 

  3차 희망버스는 정치인들이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 한계로 남는다. 1,2차는 유명인이든 아니든, 정치인이든 아니든 모두가 개개인이었다. 이것이 김진숙 동지를 만나고자 한 희망버스의 시작이고 출발점이었다. 3차 희망버스는 진화되어 내가 바로 소금꽃이라고 선언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선언은 뒷전으로 내밀리고 곧바로 정치인들이 앞에 서게 되었다. 부산역에서 정치인들의 독무대였고, 청학동에서도 그렇고, 마지막 기자회견 때도 그러했다. 희망버스는 어느새 대표주자들이 생겨났고 자리를 선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김진숙 동지를 살아서 내려오게 하겠다며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는 참여자들 앞에 정리해고제를 만들고 자본가들과 한통속이 되어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죽음에 이르게 만든 자본가 정당까지 세워놓았다. 가짜 소금꽃을 희망버스 참여자들 앞에다 세워놓은 것이다. 정동영이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의 주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당의 인물과 함께 내년에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자는 정치인들을 올리는 것은 정말로 희망버스를 정신을 왜곡하고 절망의 버스로 만드는 것이다. 희망버스는 보수단체나 보수언론의 악선동으로는 결코 절망버스가 될 수 없다. 희망버스의 명예는 희망버스에 참여하는 참가자들로부터 지켜지거나 실추될 수 있는 것이다.

 

  희망버스는 다시 1,2차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권의 표계산 속에서는 정리해고 철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 3차까지의 희망버스 투쟁은 정리해고 철회가 대중적인 투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론이 변하는 것도 바로 희망버스 참여자들의 대중적 참여와 투쟁이었던 것이다.
 

 

 4. 4차 희망버스의 과제 

 

  3차례의 희망버스는 나날이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성과들을 내오고 있다.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속에서 정리해고 문제를 전사회적인 의제로 형성해냈다. 이러한 결과 한나라당은 청문회를 보이코트했다가 8월 17일에 다시 열기로 민주당과 합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문회조차도 희망버스 투쟁의 성과물인 것이다. 손학규가 만든 것처럼 보이는 한진과 금속노조의 대화조차도 그렇다. 그러나 정리해고 철회는 대중적 투쟁에 있는 것이지 청문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버스는 정치권의 흐름과 별개로 자신의 일정을 새겨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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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하는 한진 노동자들과 김진숙 동지의 요구인 정리해고 철회는 한진 자본에 대항한 투쟁을 이미 넘어서 있다. 전경련에서 진작부터 조직적 대응을 해왔다는 것이 폭로되었다. 청문회에 대기업회장들은 절대참가하지 않겠다는 것과 반재벌 정서를 방어하도록 의원들에게 로비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디 이뿐이었을까. 노동부와 청와대에서 배후조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 한진에 대한 투쟁은 한진 자본을 비호하고, 재벌들을 비호하는 이명박 정권에게 향해져야 한다. 그리고 회계조작을 시발점으로 한 쌍차 정리해고 등의 문제도 함께 제기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 노조파괴를 위해 진행한 수많은 탄압에 맞선 투쟁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한진 자본에 그동안 요구할 만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들을 비호하는 정권의 폭력이었다면, 이제 이명박 정권과 제대로 붙어보겠다는 선포가 필요한 때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을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자본의 충실한 대변인이 되어 노동자들에 의해 끌려 내려갈 것인지를 이명박 정권이 선택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2008년의 촛불 투쟁은 파릇파릇한 정권에 대항한 예행연습이었다면, 이번에는 레임덕에 빠져있는 노쇠한 정권에 대해 일대타격을 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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