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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2호(통권10호)] <기고> 쌍용자동차투쟁, 우리의 힘을 바탕으로 해결할 것인가? 저들에게 ‘해결’되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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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쌍용자동차투쟁,

 

우리의 힘을 바탕으로 해결할 것인가?

 

저들에게 ‘해결’되어질 것인가?

                                                   


강종숙 (학습지노조 위원장)

 

 

 22명의 죽음…….

 

  이제 쌍용자동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22명의 죽음과 대한문 앞 분향소이다.
  2009년, 2646명의 정리해고 통보에 맞서 77일간 공장을 점거하며 옥쇄파업을 전개했던 투사들, 그 동료들과 가족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대중의 뇌리에 가장 깊이 각인되어버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고로 인해 한 사업장에서 (확인된 것만) 22명이 죽음에 이른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죽음이 알려진 이후 21명의 죽음까지는 지금처럼 대중적 추모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기사 한 줄 싣지도 않았다. 그 죽음에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는 이도 하나 없었다.
  그런데 22번째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나자 세상이 갑자기 달라졌다.

 

 

77일 투쟁, 희망텐트촌, 희망뚜벅이, 희망광장, 대한문 분향소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세상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에 맞서 2009년 77일 투쟁을 결사적으로 전개했고, ‘패배’이후에도 계속해서 공장 앞 출근투쟁, 릴레이 1인 시위, 전국순회투쟁 등을 진행하고 조직을 추스르며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끈질기게 기술유출 ․ 회계조작 진상규명과 살인진압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법적투쟁을 진행해 왔다.
  이러한 투쟁의 의지가 모이고 모여 마침내 희망텐트촌 투쟁이 일어났고 투쟁하는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과 희망뚜벅이, 희망광장 투쟁에 함께했다.

 

  77일 투쟁에 비하면 함께하는 인원도 훨씬 적었고, 대다수의 언론도 외면해 세상에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았고, 희망텐트촌 투쟁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국회의원 등 이른바 ‘힘 있는 분’들의 발걸음도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투쟁을 벌여 왔기에 계속해서 또 다른 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마침내 22번째의 억울한 죽음을 맞아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물론 대한문 분향소 설치가 명확한 조직적 방침과 계획을 갖고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역시 끈질긴 투쟁의 산물이었고 계속된 침탈과 연행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현장을 지켜내면서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야권 대선후보, 제1야당 원내대표, 국회의원들(심지어 새누리당 중진 국회의원들까지)이 나서고, 해외 유명학자, 서울지방변호사회, 각 종교단체 등 일일이 거명하기조차 숨이 찰 정도로 많은 인사와 단체들이 쌍용자동차 문제해결을 외치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최대의 ‘호황’이고 금방이라도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
  제대로 된 문제해결은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할 때에만 가능하다. 과연 정치인들은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해결을 모색하고 있을까?

 

 

민주통합당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쌍용자동차 투쟁은 정리해고 분쇄투쟁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고립된 상태에서 77일간이나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면서 근래에 찾아볼 수 없었던 전투성을 보여주며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했다. 해고라는 사회적 타살에 맞서 말 그대로 “목숨 걸고” 투쟁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정리해고는 그 도입부터 지금까지 자본이 합법적으로 써먹어 온 자본의 위기탈출 수단이자 노동조합 탄압의 무기였다. 이러한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했을 때 노동자들의 삶이 파탄 났고 노동조합은 몰락했고 살아남은 자들의 노동조건은 가혹해졌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정리해고에 맞서 전개했던 투쟁들이 모조리 패배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어려운 싸움이라는 말이다.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이토록 어려워진 것은 바로 이 조항이 법에 명시된 때가 지난 1997년 IMF구제금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직후였기 때문이다. 이미 그 당시 ‘명예’퇴직, ‘희망’퇴직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채 무더기 해고가 자행되고 있었지만 온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할 만큼 ‘고통분담’(실상은 노동자 고통전담), ‘나라 살리기’(실상은 자본가 살리기) 이데올로기 광풍은 거셌다. 거기에 일조한 것이 당시 민주노총 상층 관료들이었다. 그들은 자본가들과 똑같이 ‘고통분담’, ‘나라 살리기’ 이데올로기를 공유한 채 노동자들이 해고되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속수무책 지켜보았다.

 

  그런데 당시 여당이었던 현재의 민주통합당이 이제야 분향소에 찾아와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당 차원의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가? 그러하기에는 그들의 정권 10년 동안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고 비정규직으로 몰락하고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이에 맞서다 죽임을 당하고 감옥에 끌려가고 경찰에 짓밟혔고 노동자 가족들의 삶이 파탄 났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지난 2009년 77일 투쟁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줬던 모습은 정확하게 고통전담, 자본가 살리기에 입각한 행동이었지 결코 정리해고 철폐, 해고철회가 아니었다.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

- SKY ACT

 

  그런데 대한문 분향소 설치 이후 정리해고 철폐보다 희생자 추모에 초점이 맞추어 지면서 다른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물론 한 사업장에서 격렬한 싸움이 끝난 후에 22명의 생목숨을 잃는 기막힌 사태에 직면하여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22명의 억울한 죽음은 이 나라에서 “해고는 살인”이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지 그 자체가 독립적인 그 무엇은 아니다. 결국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정리해고이고 정리해고는 노동자에 대한 고통전담 강요이고 자본가만 살겠다는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다시 이러한 억울한 죽음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결과가 아니라 그 원인인 정리해고 - 이것이 현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불가피하게’ 계속하여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이다 - 에 철저히 맞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노동중심성과 노동자계급 정치다. 이른바 좁은 의미의 ‘국가폭력’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정리해고 문제가 같이 해결되지 않는다. 즉 살인진압 책임자가 처벌된다고 해서 상시해고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해고는 살인”이라는 공포의 절규를 외치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달라지지 않고 비정규직, 실업자, 최저임금의 굴레에 얽매여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극악한 국가폭력의 하나가 고문이지만 그래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처벌을 받았지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고문은 사라지지 않았고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내몰렸지만 그 당시에 누구도 국가폭력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현재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한다는 민주통합당이 여당이었던 노무현정권 시절에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업이 시작되었고 당시 국무총리 한명숙이 적극 추진하였으며,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그 전 정권 때처럼 용산참사 당시와 똑같이 대책 없는 강제철거가 횡행했던 것과 동시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열사가 되었고 그 열사들에 대해 노무현이 직접 “이제 죽음으로 노동운동 하던 시대는 지났다”라고 비아냥거렸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일 기미만 보여도 노동조합 이기주의 운운하며 철저히 짓밟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근본적인 원인은 차치하고 “일부 정당”까지 망라한 공동행동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얻을 수는 있는 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싸우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용산참사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하는 것과 원죄를 묻지 않고 그 원인 발생자들과 함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를 망각한다면, 설사 가장 잘 되었을 때 강정마을과 용산참사 문제는 ‘해결’되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제2, 제3, 제4의 강정마을과 용산참사가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쌍용차 희생자 추모와 해고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쌍용차 범대위) - SKY ACT의 확대버전

 

  전국적 쟁점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OOO 범대위가 무수히 결성되어 왔다. 당사자들만의 힘으로는 국가와 거대자본에 맞서 싸울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그와 같은 상황전개가 이루어지곤 한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범대위가 꾸려지는 순간 당사자는 1/n의 발언권과 표결권만을 인정받게 된다. 아니 실제로는 명망가와 일명 ‘선수들’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 하는 편이 정확히 맞을 것이다.

 

  당사자들이 투쟁경험이 없거나 문제를 해결하기에 힘이 부족할 경우 일시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범대위 구성단위가 많으면 많을수록 인원이 늘어나기에 힘이 된다기보다는 온갖 정치적 견해를 가진 - 심지어는 자본가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견해까지 - 단체와 개인이 결합하면서 당연하게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방안이 거론되고 결국에는 당사자에게 ‘현실적’ 해결책을 수용하라는 압박과 강요가 따르게 된다. 그래서 당사자들이 처음에 내건 요구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고 또 다른 문제를 안고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러한 상황전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방안은 명확한 노동자계급 정치에 입각해 조직된 노동자계급운동의 존재 말고는 없다. 지금 당장 이러한 조직이 없다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분자를 키워 5/n, 10/n……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최근 결성된 ‘정리해고 ․ 비정규직 ․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위한 공동투쟁단’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도 유력한 방안일 것이다. 이들과 함께 현재 범대위 주관으로 ‘더 넓게’에만 치중하고 있는 전술을 탈피해 ‘더 깊게’를 동시에 추구하는 투쟁을 전개해야만 범대위의 최대 약점으로부터 발생하는 재앙적인 결과를 방지할 수 있다.

 

5대 요구

▴해고노동자 전원복직
▴살인진압 책임자처벌
▴회계조작 진상규명 ․ 책임자처벌
▴희생자 명예회복 ․ 대책수립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쌍용자동차 동지들이 내건 5대 요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쌍용자동차 투쟁은 정리해고 분쇄투쟁이다. 정리해고 철폐투쟁이어야 한다. 그 시작은 쌍용자동차 동지들이 첫 번째 요구로 내건 ‘해고노동자 전원복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를 돌아가는 길은 없다. 그리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하는 것 자체가 회계조작 진상규명이고 희생자 대책수립이다. 이로부터 다시 살인진압과 회계조작 책임자처벌, 희생자 명예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리고 현재 싸우고 있는 다른 사업장 해고노동자들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정리해고 ․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힘을 받을 수 있다.

 

  또 하나, 노동자들이 한 번 내건 요구는 반드시 쟁취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요구조차 양보와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많은 투쟁사업장에 선례라는 이름의 족쇄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럴만한 충분한 힘도 있다. 최근 부쩍 늘어난 지지방문이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2009년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분향소도 똑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한 달 만에 허무하게 철거되었다. 그러나 지금 쌍용자동차 분향소는 석 달 넘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다. 노무현은 대통령이었고 그래서 결국 자발적인 시민상주단과 다른 세상을 살았기에 같은 처지일 수 없었지만, 22명은 우리 동료이고 그 가족이고 바로 나,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조문 오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도 22명과 똑같은 노동자이고 그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지금 강제철거하는 것은 밑바닥에서 부글거리는 절대다수 노동자계급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계급투쟁을 촉발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본가정권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은 노동자계급만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다시 한 번 쌍용자동차 투쟁은 정리해고 분쇄, 자본주의 분쇄 투쟁이다.

 

 

진짜 ‘희망’을 찾자.

 

  희망퇴직에도 ‘희망’이라는 낱말이 있었지만 그 희망은 자본가들의 것이었다. 자본가들만의 세상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작년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해,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희망버스 이후 희망텐트촌, 희망뚜벅이, 희망광장, 희망자전거, 희망밥차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망’들이 있었다. 이 희망은 노동자들의 것이었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 희망은 당장 손에 잡힐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좌절하기도 하고 원칙이 아닌 또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하는 동요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투쟁의 역사와 경험을 통해 똑똑히 알고 있다. 결국 다수의 희망이 이길 것이라는 것과 정말 너무나 고통스러울 정도로 늦게 올 수도 있지만 그 희망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판도라의 상자에서 모든 재앙과 불행의 씨앗들이 튀어 나간 후에도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것도 바로 ‘희망’이었는데, 그 희망은 한 줌 자본가들의 것이 아니라 절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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