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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2호(통권10호)] 세계대공황과 노동자의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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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공황과 노동자의 답

 

 

양효식

 

 

  지금 세계대공황이라고 하지만 한국만 보면 정말 대공황인지 긴가민가 한다. 한국은 공황에서 비껴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98년 IMF 사태 때와 같은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은행들이 줄파산을 하고 기업들도 도산 사태를 맞아서 대대적인 직장폐쇄 물결과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이 대거 거리로 내몰리는 그런 상황은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국도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2009년(상반기에 -3.4%) 당시와도 달리, 지금은 최소한 3-4%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대공황”이라고 보기 어려운 근거 아니냐고 한다. 

 

 

정말 대공황 맞아?

 

  그러나 1998년이나 2009년 같은 상황을 다시 맞아야, 또는 현재 그리스나 스페인 등 남유럽처럼 되어야 그 때서야 ‘아, 대공황 맞구나’ 라고 할 것인가? 공황 맞는 것을 좋아해서거나, 공황에 대한 예견이 들어맞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정세전망을 올바로 해서 노동자계급의 투쟁방침을 정확히 세우자는 뜻이다.

 

  사실, 대공황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미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가난과 실업과 빚더미와 생활고로 신음하고 있다. 이미 경제위기로 최근 2년 사이에 정리해고로 일터에서 내몰린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 비정규직 일자리조차 언제 잘릴지 몰라 해고와 실업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수백만 불안정 노동자들, 대학 졸업 후 등록금 빚더미를 걸머진 채 경제위기 속에서 점점 더 구직 포기로 내몰리고 있는 청년 실업자들, 가계부채 시한폭탄을 안고서 파산으로 내몰리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과 도시빈민 노령층들한테는 공황 여부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이미 생존의 벼랑 끝에 서 있거나 벼랑 아래로 떨어져 있다. 대공황의 한 가운데는 아니지만 한국도 언저리 어딘가에 들어와 있지, 결코 비껴서 있는 게 아니다. 언제 주변에서 중심으로 진입할 것인가가 문제일 따름이다.         
  상황은 이미 시작되었다. 현재 언론들에서 말하는 것처럼, 유럽 재정위기 격화와 맞물려서 미국의 경기둔화와 중국의 경착륙, 브라질, 인도 등 신흥국들의 성장 하락으로 수출경제 한국도 타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정부기관을 비롯해 각종 재벌 경제연구소들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단지 이런 ‘외부 환경’ 때문만이 아니다. 국내적으로 시한폭탄처럼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가계부채와 최근 그 증가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고 있는 공공부채를 보면 지금 유럽과 미국이 부닥쳐 있는 부채 위기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도 유럽이나 미국 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 위기를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나 재정위기의 그 근저에 있는 위기, 제도권 경제전문가들이 말하는 ‘펀더멘탈’의 위기, 즉 실물경제/생산부문의 위기가 그것이다. 자본의 과잉축적 및 그로 인한 이윤율 하락으로 인해 실물경제의 확대재생산이 구조적으로 차단되고 있는 상황이 갈 데까지 간 것이다. 단적으로 재벌 대기업이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도 이를 (투자 대비 ‘적정’ 이윤율을 보장받을 전망이 안 보이기 때문에) 생산에 재투자하지 않고 비실물경제에, 즉 금융투기에 쏟아 부음으로써 전체 경제에서 생산부문이 축소되고 따라서 ‘고용 없는 성장’ 같은 현상이 해소는커녕 누적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생산부문에서의 이윤율 하락 경향 때문이다.1)
 
  이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이다. 한국 경제도 이런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근본 위기를 안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처럼 금융위기나 재정위기로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세계경제 위기, 즉 세계대공황의 자장 안에 있으며 계기가 주어지면 내연하고 있던 모순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조건 때문에 최근에 강만수(전 경제부총리)나 김석동(금융위원장) 같은 지배계급의 경제수장들이 "현재 위기는 대공황 때보다 더 크고 오래갈 것"이라며 "자본주의는 끝났다"거나,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결코 세계대공황에서 지금까지처럼 계속 주변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실토인 것이다.2)
 

  

그렇다면 어떤 공황인가?

 

  그렇다면 “공황”이 맞긴 맞는 것 같은데, 그러나 ‘공황’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의 공황은 어떤 성격의 공황인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대공황이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 것인가?

 

  격화되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2008년과 같은 “제2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전망들이 최근 언론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제도권 언론들이나 경제전문가들이 말하는 ‘제2 글로벌 금융위기’는 2008년에 시작된 세계대공황의 제2라운드를 일컫는 그들 식의 표현법이다.
  각국 정부가 은행 및 금융사들과 대기업들한테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쏟아 부으면서 2009년 중반 이래 금융위기가 진정되고 실물경제가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이자 그때부터 제도권 경제전문가들은 “위기는 끝났다”며 “회복”을 말하다가 다시 2010년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되면서 ‘더블딥 우려’(짧은 회복세에 뒤이은 재불황 또는 경기재침체)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저들은 이런 식의 낙관과 비관 사이를 수십 번이나 오가면서 일희일비 해왔다.3) 

 

  1929년에 시작하여 사실상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시점까지 계속된 세계대공황 때도 10년 기간 동안에 짧은 회복기가 간간이 끼어 있었다. 그때마다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지금과 똑같이 낙관론을 펴다가 이내 비관적인 전망을 다시 쏟아내곤 했다. 경제전문가들이 이렇게 일희일비하는 것은, 7년 또는 10년 주기로 돌아오는 경기순환상의 공황(‘소공황’)에 대해서는 ‘경기침체’나 ‘불황’(영어로는 모두 recession으로 표현)이라는 용어를 써서 경험주의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 생산에 내재하는 구조적인 자본 과잉축적과 장기적인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체제 수준의 위기(대공황)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지적 한계 때문이다.4)

 

  순환적 소공황도 기본적으로는 자본의 과잉축적 모순 때문에 일어난다. 생산부문에서 수익성을 못 찾아 투자하지 못하고 놀고 있는 과잉 유휴자본(또는 그 때문에 금융투기로 돌려진 자본)의 존재를 맑스는 “자본의 과잉축적”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말하자면 공황이다. 이 잉여 자본을 파괴함으로써 다시 경제회복을 도모하는 것이다.

 

  경기순환 상의 활황 때 자본가들은 너도나도 설비투자를 늘리고 생산을 확대한다. 생산원료와 설비투자 비용에 해당하는 불변자본 몫이 높아진다. 이러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잉여가치를 낳는 가변자본[노동력 구매비용, 즉 임금] 대비 불변자본 비율의 상승)로 이윤율이 떨어지면서 자본가들은 생산 확대를 위한 재투자를 꺼리게 된다. 전반적으로 생산 감축이 잇달아 벌어지고 나아가 기업 도산 및 은행들의 부실 사태가 벌어진다. 이러한 은행 및 기업 파산(그리고 이에 따른 직장폐쇄 물결과 대대적인 정리해고, 대중의 궁핍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파괴)이 곧 과잉축적 해소/ 과잉자본 파괴 과정으로서의 공황이다.

 

  그런데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들어와 자본가 정부는 대규모 은행과 독점대기업들이 파산하도록 놓아두었다간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이 워낙 크다보니 구제금융을 투입하거나 (부르주아적) 국유화를 실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털어버려야 할 과잉자본을 털지 못한 채 그대로 안고 가는 상황이 일어났다. 7년 또는 10년 주기로 되풀이되는 매 경기순환에서 이러한 과잉자본을 깨끗이 털지 못하고 안고 가는 것이 3-4차례 계속되면(약 30년 계속되면) 과잉축적 모순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누적되어 내연해 온 모순이 한번 터져버리면 단지 3-4차례의 소공황을 합친 수준을 넘어 수십, 수백 배의 폭발력을 가지고서 터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대공황이다.5)

 

  기업과 은행들의 줄도산을 막으려고 국가 개입을 통해 엄청난 구제금융을 쏟아 붓지만, 이것이 안 그래도 심각한 재정 적자와 국가부채 위기를 더욱 격화시킨다. 민간 자본 파산만이 아니라 국가 자본(공기업만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재정)의 파산, 즉 국가부도 사태를 가져온다. 물론 이 단계까지 가기 전에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자국의 위기를 서로 상대방에게 전가시키고, 약소국들에 대한 수탈을 강화하기 위해 세계 재분할을 둘러싼 투쟁을 전면화하고 전쟁으로까지 치닫는다. 이러한 전쟁 경제는 결과적으로 과잉축적의 가장 확실한 방출구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바로 이렇게 해서 일어났다.

 

  자본은 1980년대 이후 과잉자본을 체계적인 금융투기로 전화시키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금융화 국면을 개척했다. 생산부문에서 수익성을 보장 받을 수 없어 쌓아놓고 있던 사내유보금을 방출할 수 있는 새로운, 보다 수익성 있는 투자출구를 금융부문에서 고안해냈다. 파생금융상품 같은 각종 금융도구들의 ‘발명’이 그것이다. 이러한 각종 파생상품이 애초 자본에 비해 수백 배로  뻥튀기 되는 가공자본(현재 600조 달러 정도가 떠돌아다닌다)을 창출해낸 것이다. 어떠한 물리적 뒷받침도 없는 거대한 투기거품에 불과한 이 가공자본이 은행들과 각종 투자회사와 펀드사 등을 통해 원자재(석유, 식량, 각종 광석 등)와 각국 정부의 국채, 외환에 투기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되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6)는 다름 아닌 은행이 가지고 있던 부실 채권을 다른 여러 채권과 뒤섞어 복합파생상품이라는 투기거품을 만들어 유통했다가 결국은 터져버린 것이다. 이 모기지 채권을 포함하고 있는 파생상품에 미국 은행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수많은 대형은행들이 투기하고 있다 보니 금융위기가 글로벌 규모의 위기로 터진 것이다. 과정은 복잡하지만 밑에 깔린 근본 원인은 자본의 과잉축적과 그로 인한 낮은 이윤율이다. 이윤율 저하가 글로벌 투기거품을 낳았다.

 

  이와 같이 현 위기는 7년 내지 10년 주기 경기순환 상의 통상적인 “불황”이나 “경기침체”가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이다. 1980년대 이후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자본의 과잉축적 모순이 구조화된 위기, 특히 1990년대 이후 세계화를 통해 자본축적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던 부르주아지의 시도가 오히려 과잉축적 모순을 누적적으로 가중시켜오다가 마침내 2008년에 터져 나온 역사적 수준의 체제 위기이다.
  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는 최초 미국의 경기하강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6)가 촉발된 2007년부터 따져서 5년째에 들어선 지금 그 2라운드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역사적 위기가 언제까지 지속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위기의 초입부를 통과하여 이제 그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그러나 위기가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자본주의가 저절로 붕괴, 소멸하는 일은 없다. 자본주의의 ‘최종’ 위기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혁명을 통해서만 이 사멸해가는 자본주의의 숨통을 끊을 수 있고, 되풀이되는 위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이 체제가 노동자 민중들의 널부러진 잔해를 밟고 서서 다시금 일시 생명을 연장할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경제위기

 

  다시 ‘제2 글로벌 금융위기’, 즉 세계대공황 제2라운드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 현황을 살펴보자. 2008년에 시작한 세계대공황이 잠시 미약한 회복 기미를 보이더니 작년 2011년 하반기 들어 다시 명백히 새로운 추락 국면으로 돌입했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에 이어 ‘더블딥’ 공포, 그리고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의 재정위기/국가부도 위기,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심장부로 위기의 ‘전염’, 중국, 브라질 등 모든 신흥국들에서의 급격한 인플레 등, 세계경제의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는 현상들이 터져 나왔었다. 이 가운데 특히 유럽 재정위기는 2008년 같은 또 한 차례의 ‘신용경색’ 발발을 예고하고 있어서 국제 금융자본가들한테 최대의 공포였다. 그리스가 채무 변제를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음에 따라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 예상되어서다.
 
  그리스 부도 사태는 직접 연루된 은행들한테만 문제가 아니다. 2008년 때처럼 파생금융상품의 형태로 이 그리스 국채의 일부가 포함된 채권을 매입한 은행들이 많다. 은행들의 영업비밀 때문에 그 매입한 채권 가운데 어느 것이 아직 지급능력이 있는 것이고, 어느 것이 부도 또는 부도 위험에 있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 때문에 대출이 보류되고, 금리를 포함한 대출 비용이 급등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이탈리아 같은 부도 위기 최 일선에 서 있는 나라들의 채무 변제 능력이 더욱 더 위협받고, 이들 나라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의 지급능력도 큰 타격을 받게 될 상황이었다. 이런 식으로 ‘전염병’이 유로존 전체로 확산되는 양상을 취하고 있는데, 2008년 국가가 은행을 살렸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은행만이 아닌 국가들의 지급능력까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었다.7)

 

  이러한 작년 말 유로존 "신용경색"으로 은행권 줄파산이 예상되는 등 이른바 '제2차 글로벌 금융위기'로 떠들석했던 상황이 올해 2012년 2월에 와서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유럽중앙은행이 1조 유로를 은행권에 초저금리로 쏟아 붓고, 그리스에 2차 구제금융을 실시하기로 결정하면서 유로존 전체로 위기 확산이 멈춰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유럽연합 25개국이 3월 2일 재정협약(재정동맹)에 서명함으로써 유럽연합이 가맹국의 예산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로 인해 유럽과 미국의 증시가 솟구쳤고, 많은 주가지수들이 작년 6월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속으로 곪아터지고 있는 유로존 경제에 가짜 봄날에 불과한 것으로 곧 판명되었다. 3월 말이 되자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경제지표들이 줄지어 발표되었고, 4월에 가서는 더 악화되었다. 제조업 경기지수와 일자리 수치가 2011년 하반기부터 급락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5월 기준 유로존 내 실업률이 11.1%로 총 실업자 수가 1,780만 명으로 나타났다. 실업과 긴축으로 인해 소비자 구매력이 하락함으로써 생산에 다시 타격을 주고 있다. 5월 초에 발표된 기업 구매관리자지수(PMI)8)가 46.7%로 제조업 부문과 서비스 부문 모두에서 경기지수보다도 훨씬 더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7월 초에 발표된 구매관리자지수는 46.4%로 더 떨어졌는데 이것은 5개월 연속 경기수축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유로존이 재정위기와는 별도로 사실상 실물공황에 들어가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또한 공황이 유로존에서 이제 중국, 브라질, 인도 등 세계의 제조업 발전소 역할을 하고 있는 신흥국들로 번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마침내 제조업에서의 글로벌 성장률의 둔화가 뚜렷하게 가시화된 것이다. 
 
  이와 같이 독일의 주요 수출대상국들인 브라질, 인도, 중국이 저성장 국면에 들어갔고, 이에 더해 미국 경제도 다시 실업률 증가 등 경기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이들 나라들로부터의 수요 하락으로 인해 유로존에서 독일마저도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3월말에 다시 경기지표가 급락하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실물공황에 휩싸여 있다. 뒤이어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남유럽 나라들만이 아니라 벨기에, 네덜란드도 경기지표 상 실물공황으로 드러났고, 4월 말에는 스페인도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졌다. 프랑스 경제도 거의 확실하게 마이너스 성장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8년에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신호탄으로 터진 최악의 은행권 위기로부터 세계경제가 (2009년 중반에) ‘구제’된 지 3년이 지났다. 글로벌화 한 세계경제가 동시적으로 파국적 붕괴 상태에 이르자 당시 각국 정부들이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퍼부었다. 그렇게 해서 가까스로 완전한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자본가 정부들이 전례 없는 규모로 ‘손실의 사회화’에 착수했다. 파산한 은행과 기업들에 대한 구제금융과 국유화, ‘독성’ 민간부채의 매입, 사악한 긴축 프로그램의 도입을 통해서 그렇게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 민중들에게 전가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분담’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성장”의 귀환은 실현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2008년에 첫 붕괴를 야기한 기저의 문제들(과잉축적과 이윤율 하락)이 이제 다시 두 번째의 훨씬 더 깊은 위기를 몰고 오고 있다.

 

 

케인스주의 성장정책이 해결책인가?

 

  이와 같이 제2차 공황이 유럽을 휘감고 나아가 전 세계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1930년대 대공황 때 성장을 촉진하는 해법으로 공황을 극복해냈다고 하는 케인스의 경제이론이 긴축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 올랑드 후보가 독일 주도의 EU 긴축정책을 견제하며 ‘성장’을 내걸어 승리하자 이를 계기로 ‘지금은 긴축 대신 성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거센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가 다시 공황으로 치닫고 은행 부실 · 파산의 위험이 증대하자 성장 정책이 갑자기 긴축의 사막에서 오아시스 신기루로 나선 듯한 분위기다. 경제전문가들이 하루아침에 신자유주의 긴축의 전도사에서 돌연 케인스주의 성장론자들로 개종한 것처럼 보인다. (당장 한국에서도 과거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허구적인 대립구도에서 ‘분배’를 주장했던 민주당이 최근에 와선 그 대선주자들의 입을 통해 “성장과 분배의 동행”, “진보적 성장”, “사람이 성장동력”이라며 ‘성장’을 내걸기 시작했다.)

 

  그 동안 긴축 프로그램으로 허리띠가 졸라매진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인프라, 공공사업에 대한 투자를 통한 성장 추구라는 케인스주의 메시지가 호소력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이해할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성장정책을 위해 정부들이 ‘금융시장’(금융자본가들)으로부터 돈을 더 많이 빌려서 경기부양을 하면 다시 부채가 증가한다. 그러면 국채에 투자한 금융자본가들이 경끼를 일으켜 국채금리 폭등을 유발시키고, 국가 신용등급을 떨어뜨린다. 그 결과, 국가부채가 급격히 증가하고, 그러면 다시 “재정균형”과 “건전재정”을 빌미로 한 긴축 요구가 재개될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이다. 금융자본 · 독점자본 몰수 국유화와 노동자 생산통제 도입을 거부하는 등 결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조금도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 케인스주의 정책의 필연적인 귀결점이다. 한국에서도 현재 새누리당부터 민주당 · 통진당 야권연대 블록에 이어 일부 좌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세력들이 내걸고 있는 “경제민주화”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케인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시달렸던 조건에서 케인스주의라도 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도 이미 공공부채가 폭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를 들어 야권연대 연립정부가 금융자본과 경제관료들의 복지재정에 대한 브레이크와 “균형재정”(즉 긴축) 요구를 거슬러서 일자리 창출과 공공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케인스주의 정책을 실시할 수 있을까? 유럽 재정위기를 들먹이며 “복지 포퓰리즘” 운운하는 보수우익의 공세를 뚫고 설사 케인스주의 정책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곧바로 내외 금융자본에 의한 공공부채 금리 폭등 및 원화 공격을 통한 인플레 유발에 굴복하고 결국 긴축 요구에 순응할 것이다. 은행 등 금융자본과 재벌을 몰수·국유화하고 노동자통제 하에 통합된 단일 국영은행을 통해 이윤이 아니라 민중들의 필요에 복무하는 경제 재편에 즉각 착수할 혁명적 노동자정부만이 공공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정리해고 · 비정규직 철폐도 즉각 실시할 수 있다.

 

  현재 유럽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케인스주의에 대한 환상이 운동진영에까지 강하게 퍼져 있다. 일부 좌파들은 케인스주의를 개량주의라고 옳게 비판하면서도 현 시기 몰수 · 국유화 및 노동자통제 강령 같은 이행강령을 거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케인스주의를 실천적 대안으로 인정하게 되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자본가 정치세력과 손잡는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노동자계급의 독자 정치를 염원하는 노동자들은 이러한 케인스주의에 대해서도 결코 노동자계급의 대안이 아님을 명확히 해야 한다. 

 

  위기관리 이론이자 공황타개책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는 케인스주의는 과소소비설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 과소소비설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 부족 때문에 경제위기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이 속설에 의하면, 수요 부족이 경기하강을 촉발하고 불황을 도래시킨다. 불황이 진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고용불안에 휩싸여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시작한다. 이로 인해 수요가 더 준다. 이것이 경제를 더 깊은 불황으로 빠뜨리는 악순환을 촉발한다. 공황이 시작되고 이에 따라 은행은 대출을 중단하고 화폐 축장 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것이 공황을 더 심화시키고 은행 파산에 불을 당긴다.

 

  이와 같이 공황을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유효수요 부족의 결과라고 보는 케인스주의자들은 공황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이 악순환을 깨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정부가 나서서 대규모 공공사업, 복지 도입, 그리고 여타 직접적인 경기부양 조치 등을 통해 수요를 진작시켜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꿔내야 한다는 것이다.

 

  케인스에게 공황의 원인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 영역에 있다. 그 때문에 수요를 회복하기만 하면 충분히 공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1930년대의 미국 뉴딜 정책도 이렇게 수요를 대폭 진작시켜서 공황을 극복했다며 케인스 정책의 대성공 사례로 추켜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이거나 거짓선전이다. 케인스주의 정책의 성공은 실제보다 뻥튀기 되었고 그 효과는 훨씬 더 제한적이다. 뉴딜정책이 건설 원자재 수요를 극적으로 늘려서 경제성장을 가져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1937년에 직접적인 경제 부양 조치가 중단되자 다시 불황으로 되돌아갔다. 이후 GDP 성장세가 회복된 것은 1939년부터 전쟁경제로 돌입하면서 이로 인해 발생한 경기 자극 효과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케인스주의는 공황을 종식시키는 데 실패했다. 국가 개입을 통해 공황을 일시적으로 억눌렀을 뿐이다.

 

  현재의 공황 전개를 분석해 봐도 케인스주의 도식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 케인스주의는 공황의 진행이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하는데, 먼저 수요 하락에서 시작하여 경제하강이 화폐축장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거쳐 완전한 공황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공황이 터지기 직전까지 수요는 높은 수준에 있었고 은행의 신용대출이 소비를 강력히 추동하던 상황이었다. 불황을 불러온 것은 은행 위기였다. 수요 하락은 그 뒤에 왔다. 케인스주의는 전후 호황에 대해서도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려고 하는데, 실제로 전후 호황은 긴축과 낮은 소비자 수요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대대적으로 확대되면서 도래했다.

 

  끝으로, 케인스주의자들은 채권시장의 공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긴축을 빨리 시행하지 않는 나라들의 경제에 대해 금융자본이 퍼부을 맹렬한 폭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올랑드 같은 사민주의자들을 선거로 뽑아서? 루즈벨트의 뉴딜 같은 제한된 프로그램조차도 1930년대 미국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파업투쟁과 노동조합 결성 물결에 의해 비로소 강행할 수 있었다. 당시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 자본으로서는 달리 반발할 여지가 없었다.

 

  긴축 반대/ 복지 도입 같은 제한된 개량조차도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을 전면화하고자 하면 현재 그리스에서 보듯 자본가계급은 투자 파업과 자본 해외도피로 대응하여 공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따라서 수탈자인 자본가계급을 수탈하는 사회주의적 조치를 통해 공황을 해결하려는 혁명적 전망을 품지 않고서는 제한된 개량조차도 관철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정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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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공황 앞에서 마치 우리의 선택 조건이 오직 신자유주의적 긴축과 케인스주의적 지연 전술 사이에 놓여 있는 것처럼 제기되고 있지만, 어느 쪽도 이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로부터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 민중들을 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윤 동기라는 원자화된 이기심에 기반한 시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그 동안의 허다하게 실패한 실험을 또 다시 되풀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내에서 단지 어느 버전의 자본주의를 택할 것이냐 라는 그 허구적인 선택 구도를 깨고,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해야 한다. 공황의 참화는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이 반복되는 자본주의 공황을 역사책 속으로 영원히 추방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이다.

 


 

<후주>

 

1) 이명박정권이 집권 초기부터 내세웠던 ‘낙수효과’론(먼저 대기업을 살려야 나중에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서민경제도 산다는 논리)이 집권당 내부로부터 “이미 실패로 판명된 이론”이라며 부정당하고 있는 데서도 볼 수 있듯이, 정권이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법인세를 감면해 주고 아무리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도” 이윤 전망이 보이지 않는데 자본이 무작정 생산을 늘리는 투자를 하겠는가.

 

2) 현 위기의 근본 원인을 이윤율 하락과 과잉축적 위기로 설명하는 글로서 <혁명> 창간준비1호 (2011년 7월)에 실린 ‘현 국가부채 위기와 자본주의 체제 위기’를 보시오.

 

3) 이 시기에 자본가들이 더블딥을 우려하다가, 곧 경기부양책을 거두어들일 ‘출구전략’ 시점을 놓고 자기들끼리 행복한 논란을 벌인 과정에 대해서는 <혁명> 창간준비 2호(2011년 8월)에 실린 ‘더블딥 우려? 이미 자본주의 체제위기!’를 보시오.

 

4) 2008년 이래의 공황을 통칭 ‘글로벌 금융위기’라고 부르던 제도권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최근에는 이 공황을 뭔가 ‘통상적인’ 주기적 공황과는 다르다고 느꼈는지 ‘Great Recession’, 즉 대불황이라고 부르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5) 순환적 소공황과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위기를 표현하는 대공황 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설명으로는 <혁명> 3호에 실린 ‘현 위기와 쇠퇴하는 자본주의’를 보시오.

 

6) 2003년경부터 부시 정부는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주택 건설을 하여 은행 대출을 통해 서민들에게 신용상태와 관계없이 집을 사도록 유도했다. 이렇게 산 집값이 나중에 대출액보다 하락하여 은행들의 담보 채권이 무가치하게 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당시 은행이 750만 명의 서민들에게 주택담보 대출을 해서 확보한 모기지 채권 액이 6000억 달러였다. 즉 6000억 달러 규모의 과잉자본이 은행 대출이라는 형식을 매개로 해서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 채권에 대한 투기로 돌려진 것이다.  

 

7) 2011년 하반기에 세계대공황 제2라운드 전망에 대해 분석한 글로는 <혁명> 창간준비 3호(2011년 10월)에 실린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자본주의’와 창간준비 4호(11월)에 실린 ‘유로존 위기와 세계대공황 제2라운드’를 보시오. 

 

8) 기업의 신규주문·생산·출하정도·재고·고용 상태를 조사, 각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해 수치화한 것으로 지수가 50이상이면 제조업의 확장을, 50이하는 수축을 의미한다.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 경기동향을 잘 보여주는 지표로 최근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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