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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1호]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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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

                         

                             - 이형로

 

 

 

  

 

 

들어가며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을 향하여 : 민주노동당은 외세를 물리치고 반민중적인 정치권력을 몰아내어 민중이 주인 되는 진보 정치를 실현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만들 세상 :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삶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는 공공의 목적에 따라 생산되도록 한다.
민주노동당은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인류의 오랜 지혜와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의 성과를 수용함으로써,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 창당대의원대회 제정 강령 중에서」

 

“자주 평등 인간해방의 새 세상을 향해 : 진보적 민주주의가 이 땅에 구현되지 않는 한 민중의 삶은 억압과 수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해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고 민중이 참 주인이 되는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중주권을 실현하며 자주와 평등, 인간해방, 자연과 인간이 생태적으로 공존하는 새 세상을 향해 전진할 것이다.” 「2011년 6월, 민주노동당 개정 강령 중에서」

   지난 6월 민주노동당은 정책 당 대회에서 창당 당시의 강령을 폐기하고 위와 같이 새로운 강령을 채택했는데, 한마디로 애매모호한 사회민주주의 강령에서 부르주아 좌파정당의 강령으로 당의 지향을 분명히 한 강령개정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혁명적 사회주의가 아닌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채택했고, 당을 주도하고 있는 노선은 이른바 민족주의 노선과 사회민주주의 노선이 절충적으로 혼합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은 계급적 기반으로는 노동자 대중정당을 표방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좌파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강령과 정치노선에서 사회주의의 가치를 주장하든 사회주의를 참칭하든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노동자혁명, 노동자 권력과는 거리가 멀어 결국 자본주의 체제 내의 좌파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위의 개정 강령에서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란 사회민주주의보다 후퇴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며,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당과 함께 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다.

 

  19세기 초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를 언젠가 얻어야만 할 이상으로 여겼고, 그 실현을 인간의 선한 의지나 지배계급의 선의의 결과로 보는 경향들이 있었다. 하지만 맑스주의는 역사를 계급투쟁의 전개를 통해 설명하고, 자본주의의 소멸과 공산주의의 실현을 위한 물질적 조건과 전제를 파악하여 과학으로 정립하였다. 맑스주의는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를 타파할 혁명의 주체이며, 그 자신의 해방이 보편적 인간해방의 밑바탕이 되는 것을 승인함으로써 유일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민주주의는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인 맑스주의로부터 가장 먼저 이탈했는데, 이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을 정치의 주체에서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대리주의’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리주의는 노동자계급이 계급투쟁과 공산주의 혁명의 주체로 서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시키는 반노동자적 사상의 한 조류이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평의회가 전 사회를 지배하면서 모든 착취를 폐절해나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정을 폐기하거나 왜곡시켰다.

 

  대리주의는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라는 양 극단으로 나타났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추구했지만 자본주의를 극복하기는커녕 자본주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면서 부르주아 진영의 한 축이 되었다. 한편 스탈린주의와 그것의 모든 변종들(김일성주의 포함)은 사회주의를 참칭하면서 당 독재와 국가자본주의를 탄생시켰고 서구 자본주의 체제와 경쟁하다가 결국 사적자본주의로 회귀하여 이들 또한 부르주아 진영에 완전하게 포함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대리주의의 두 조류 중 사회민주주의를 공식적으로 추구하면서도 스탈린주의 변종 또한 인정하고 있다.

 

  최근 북한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와 KFC를 받아들일 거라는 소식과, 민주노동당이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악의 가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단 한 번도 노동자혁명이 일어나거나 사회주의적이었던 적이 없었듯이, 가짜 노동자정당인 민주노동당이 단 한 번도 노동자혁명을 주장하거나 사회주의적 실천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은 같은 맥락이며, 이제야 자신들의 계급적 본성을 드러내 제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민주노동당 정치의 근원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한국의 민주노동당 또한 위와 같은 대리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들 정치의 중심에는 대리주의가 자리 잡은 지 오래이며 노동자계급을 정치와 투쟁의 주체로 세우기보다는 존중해야 할(?) 득표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렸다. 민주노동당은 창당선언문에서 부터 노동자계급을 주체로 세우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진보세력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개인의 총화”를 이루어낸다고 함으로써 노동자계급 정당의 성격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자기 당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탈계급적인 대중캠페인, 대중동원, 표 구걸, 계몽주의 같은 정치형태가 민주노동당 운동의 전형이 되었다.

 

  이곳에서 노동해방, 인간해방이 이라는 사회주의 가치는 당이 지향하는 운동의 목표가 아니라 노동자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계도용으로만 필요했다. 이들에게 사회주의가 계몽과 이상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타도하고자 하는 강력한 실천이 요구되는 운동의 당면 목표였다면 처음부터 강령에 넣기조차 불편한 가치였을 것이다. 이것은 설사 민주노동당의 개정 전 강령에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사회주의란 19세기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 같이 언젠가 얻어야만 할 이상일 뿐이라서, 사회주의를 실현시키고자 현실에서 투쟁하기보다는 점진적인 개량을 통하거나 지배계급에게 선의를 촉구하여 자본주의를 바꿔 나가고자하는 개량의 정치, 계급협조의 정치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반대’ 정도의 자본주의 개조를 목표로 하여 진보대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정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강령에서 사회주의 가치라는 내용을 삭제한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반전 반자본주의 노동자운동’을 표방하는 다함께는 이번 강령개정을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강령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으로 후퇴한 것’으로 판단하며, “정권교체와 집권을 명분으로 민주당과 동맹하고 당의 정체성을 후퇴시키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돈과 인력을 주되게 노동조합과 그 지도자들로부터 충당하고 있는 개혁주의적 노동자당이다. 그리고 급진좌파는 민주노동당의 기반인 이 개혁적 노동자 대중에 개입해야 한다. 이 노동자들이 개혁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옆에서 함께’ 싸우며 대안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 따라서 급진 좌파는 새로 만들어질 통합 진보 정당의 강령 제정 논의에도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라며 당의 강령 후퇴에도 불구하고 “그들 옆에서 긴밀히 개입하고 앞으로 건설 될 통합진보정당의 강령 투쟁에도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설사 “개혁주의적 노동자당”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의회주의를 기본으로 한 대리주의 정치노선과 노동조합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참여자체를 반대한다. 의회주의 정당이 조합주의를 극복할 수 없듯이 조합주의에 기반한 노동자정당이 결코 의회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 이들은 타락한 조합운동과 개량화된 정치운동이 자본주의 체제 내로 편입된 결과물이며, 노동자조직, 노동자당을 참칭하고 있지만 현실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 노동자계급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쇠퇴해가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공생관계 속에 있다. 이들이 노동조합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진보정당의 지분을 행사하며 자본과 권력에 타협하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비롯하여 수많은 계급투쟁에 중재자, 사회적 합의자로 나서 투쟁을 무너뜨린 행보를 보라.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강령 개정 의미

  이번 민주노동당의 강령개정의 의미는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권력 재편기를 맞아 계급의식과 대중운동을 더욱 급진화 시켜 부르주아 정치와의 적대적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탈계급적인 대중성을 좇아 자신들이 이미 공문구로 만들어놓은 사회주의라는 가치마저 삭제해버린 행위에 대한 판단이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명백한 배신행위이자 나아가 적극적 공격행위로서 결국 위기에 처한 자본가계급에 도움을 주는 행위이다. 야권연대, 민주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가 정당과 손잡기 위해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민주당이 꺼리는 ‘사회주의’를 일찌감치 삭제해서 민주대연합에 대한 걸림돌을 미리부터 제거해 버린 것인가? 자본의 위기전가로 생존권 위협과 생활수준의 급격한 하락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고통마저 외면한 채, 오로지 선거와 득표를 위해 민주당 등 부르주아 정당과의 야합에 열중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언제 자본가 정당과 손잡고 노동자계급을 공공연하게 공격할 것인가는 그 야합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둘째,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 동아시아를 막론하고 세계 도처에서 계급투쟁의 부활이 확연해지면서 혁명의 현실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민족주의,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명백히 단절한 혁명운동 세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아직 전면화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당 건설의 주체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라는 가치가 이제는 단지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현실로서 직접 다가오는 것이 너무도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혁명적 실천을 강제하는 사회주의 운동 자체가 진보정당/조합주의 운동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들을 사회주의라는 외피로 포장할 수없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쇠락해가는 운동들의 위기의식의 표현이자, 자기방어 행위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끝 모를 위기상황 속에서 위기의 결과가 혁명으로 진전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본가계급에게, 피할 수없는 일대격돌의 계급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쟁을 기피하고 혁명의 당위성마저 제거하여 체제 내로 편입하려는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 삭제는 자본가계급에겐 산소 호흡기를 달아준 행위이고, 노동자계급에겐 총부리를 겨눈 행위이다. 결국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민주주의운동은 사상적으로 전혀 다른 운동이고, 계급투쟁이 격화되는 시기에는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와 같이 이번 강령 개정은 민주노동당이 아무리 노동자정당을 표방하고 노동자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오로지 득표와 의석수, 집권을 위해서라면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도 불사하는 의회주의 정당의 본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들과의 강령논쟁은 부분적인 논쟁으로 개선될 성격의 것이 아니라 강령 전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만이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혁명을 방어하는 길이다.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자립성과 정치적 독립을 훼손하고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반노동자적인 사회민주주의 조류에 대해 타협 없이 투쟁해야 할 과제를 떠안아야 한다.

 

  다함께처럼 개혁적 노동자 대중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대리주의 정치에 개입하기보다 오히려 노동자계급을 그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계급의식의 발전과 계급의 자립화를 앞당긴다. 이미 노쇠한 민주노동당-민주노총 운동에 발목 잡히지 말고, 새롭게 올라오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질곡에 착목하라! 여전히 노동자들의 99% 이상은 민주노동당의 밖에, 90%이상은 민주노총의 밖에 있지 않은가? 의회주의와 조합주의에 물들지 않은 이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미래임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민주노동당 안에 아직까지 사회주의자들이 남아 있다면, 적어도 노동자계급의 미래가 되어줄 이들에게 이미 오염되고 깨져버린 그릇을 내밀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대리주의의 기원과 본질

제2 인터내셔널(1889~1914)시기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점진적으로 노동조합 조직 기반을 확대해나가고 당의 의회 의석수를 늘려나가는 데 전념할 필요를 강조했다. 영국의 사민주의자 에드워드 데이비드가 “혁명주의의 짧은 개화는 매우 다행히도 과거의 일이 되었다. 당은 의회에서 그의 권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확장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이래, 베른슈타인(1850~1932)의 수정주의와 카우츠키(1854~1938)의 중도주의가 득세했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시면서 조합주의와 의회주의가 더욱 노골화되어 갔다. 카우츠키는 이미 1902년에 ‘점진적인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적이며 거의 알아차릴 수 없는 수단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를 주창했다. 프롤레타리아 당의 임무는, 이러한 점진적인 운동을 체제 내적에 강제할 목적으로 의회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부르주아 국가를 평화적으로 정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우츠키에게 프롤레타리아 당은 노동자계급의 일부로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토록 하는 진정한 계급의 조직이면서도 동시에 혁명에 가장 앞장서는 전위이자 혁명기관이 더 이상 아니었다. 당은 통치기구가 되었고 노동자들은 당에 모든 것을 위임하고 그 당에 투표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활동과 권력을 당에 위임해야 했다. 이것이 사회민주주의의 탄생 배경이며, 사회민주주의가 노동자계급에게 비극을 가져다 준 맑스주의 왜곡의 역사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1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들의 공공연한 목표로 부르주아 국가의 정복 또는 노동자정부의 창출을 말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실질 권력인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계급의 대중정치 조직과 직접정치는 언급하지 않거나, 과거 스탈린주의의 산물로 왜곡시켜 놓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와 구분되기 위해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권력의 쟁취는 오직 당에 의해서만 획득되고, 그 당의 지도력과 물리적 힘은 대중들의 지지에 달려있기 때문에 대중들은 당에 투표하고 모든 정치활동과 권력을 그 당에 위임하기를 원한다. 혁명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은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에 맞서 싸워온 역사이기도 하다.

한편 스탈린주의 공산당들 또한 의회주의에 편입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와의 결정적인 차이점마저 사라지게 되자, 이 두 조류는 대리주의 정치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이제는 대중성을 얻기 위해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는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을 지지하는 스탈린주의 변종노선과 사회민주주의 노선인 진보신당, 사회당 류가 대립하고 경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면서도 동일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대리주의 정치가 자발적 계급투쟁을 가로막고 계급의식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조직적 측면에서, 이들이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이들의 모든 조직체계를 선거를 치르기 위한 조직으로 바꾸어 놓았고, 대중투쟁의 참여조차 자신들에 대한 지지획득과 정파적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부르주아 선거조직과 선거활동은 모든 것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진보정당들의 부르주아 정치 참여는 오히려 계급의 단결을 저해하고 계급투쟁의 확산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해왔다.

 

  주체의 측면에서, 이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선거 시기조차 현장의 노동자들과 평당원들은 투표하고 돈 대는 일 말고는 직접 발로 뛸만한 일이 거의 없다. 실제 정치활동을 하고 싶어도 대부분 작업장에 갇혀 있거나 합법적인 틀 내로의 정치활동 제한으로 인해 노동자의 직접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을 대신 할 상층지도부나 명망가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 이들 중 일부가 대리정치를 이용하여 이러저러한 권력과 기득권을 행사하는 일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한 부르주아 선거 정치와 타락한 노동조합주의가 만난 결과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운동 내의 최악의 계급배신 행위들이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일상의 정치에서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대중투쟁을 일으키기보다는 민주노총 등의 배타적 지지에 기댄 채 관료적인 상층부 운동으로만 일관해 왔다. 여기서 현장노동자들은 투쟁의 주체에서 늘 대상화되거나 상부의 지침에 그저 열심히 따르는 수동적 당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규모가 작은 진보정당들도 의회주의 정당이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는 한 동일하게 적용된다. 결국 이러한 수동화된 운동의 축적은 대중의 자발적 행동을 억누르는 역할과 노동자정치의 혁명성과 창조성을 유실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리주의 정치의 본질은 혁명적으로 발전하려는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부르주아 체제의 수호자 역할임이 밝혀졌다. 이제 모든 대리주의 정치와의 단절, 그리고 전면적 투쟁을 통해 이들에게 넘어간 노동자계급이 다시 계급성과 자립성을 회복해 전투적, 혁명적 계급운동 진영으로 넘어와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자립화를 위하여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은 사회 내부의 모든 다른 계급들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의미한다. 사회의 모든 계급들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은 혁명으로 향한 계급투쟁의 전개에 있어서 제1의 전제조건이다. 인민전선과 같은 타 계급 ⁃ 계층들과의 모든 동맹들은, 특히 부르주아 정파들과 동맹은 그 어떤 종류의 것이든 오직 적들 앞에서 노동자계급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을 초래할 뿐이다.

 

  이번 민주노동당 강령의 개정은 부르주아 정파들과의 동맹을 완전하게 열어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을 완전히 훼손시켜서 노동자정당이라는 성격조차 잃게 하였으며, 결국 부르주아 진영으로 투항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제 노동자정당이 아닌 민주노동당에 남게 된 노동자들은 즉각 민주노동당과 단절하고 진정한 계급정당을 고민해야할 때이다. 계급정당에 걸맞게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계급의식이 실천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혁명 강령을 중심에 두고 정치적 선택과 정치세력화를 고민해야 한다.

 

  노동계급에겐 스스로의 힘으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두 가지 조직이 있다. 전체 노동자계급을 투쟁을 통해 단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급의 대중조직과, 계급의 가장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부분들을 모아서 그들이 전체 계급투쟁에서 조직적인 역할들을 하게 만드는 계급의 정치조직이 그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은 위와 같은 노동자계급의 두 가지 조직인 노동자평의회와 혁명당의 조직수준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은 혁명당의 강령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힘이 없고 기세가 약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혁명적 원칙은 노동계급의 자립성과 자기조직화 전망이다. 모든 대리주의 정치를 넘어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첫째, 반노동자적인 사회민주주의를 넘어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 성과물인 혁명 강령이라는 무기를 들고 혁명당을 건설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단련되고 혁명적인 부위들은 혁명당으로 집결하여, 자본과 국가를 효과적으로 압박하고 투쟁의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가장 활성화된 부분을 전취하여 투쟁에 활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투쟁과 계급의식의 꽁무니를 좇는 의회주의 정당들이 아닌 혁명당만이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혁명적 무장을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둘째, 갈수록 제도화, 관료화, 기구화 되어가고 있는 노동조합운동과 조합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과 노동자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실현되는 투쟁조직, 총회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공장의 담벼락과 업종의 울타리를 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 전체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킬 수 있는 계급의 대중조직을 창출해야 한다. 이러한 수평적 노동자조직들의 출현만이 계급투쟁이 전면화 되는 시기에 노동자평의회를 현실화 시켜줄 것이다. 이미 민주노동당과 노동조합운동의 상층부는 노동자계급의 분리와 분열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 세력이 되어 버렸다. 이제 이들을 넘어서서 직접행동을 더 넓게 조직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동력을 회복하는 새로운 길이다. 이런 기운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자발적으로 생성되고 있으며, 이것들이 커지면 커질수록 타락한 운동들은 더욱 반노동자적 본색을 강하게 드러낼 것이다. 낡은 형식과 분열을 넘어 직접행동하고 계급의 단결을 만들어나가는 노동자들이 바로 노동자투쟁의 새로운 주체이다. 세계적으로 새로운 계급운동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으며, 혁명당은 이것을 토대로 건설되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계급 자립화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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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몸은 해로운 병균의 공격을 받으면 항상 반응을 한다. 사람의 몸은 나쁜 것을 점검하여 그것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병균을 파괴하는 항체를 만들어 낸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조직들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사람과 똑같은 반응을 한다. 비록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거센 공격이 있을지라도 혁명적 조직은 살아남을 수 있다. 노동자계급 안에서 자라난 혁명적 방어기제가 건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든 조직이 노동자계급을 떠나는 순간 그 조직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 부르주아의 대열에 합류하는 길 밖에 없다. 이 때 노동자계급은 단호하게 그 썩어가는 시체를 포기하고 새로운 투쟁의 무기를 재구축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의식으로부터 떠나간 진보정당은 부르주아 진영으로 넘어가는 길만이 남아있다. 사회민주주의, 민족주의, 조합주의의 온갖 합병증에 걸린 진보정당들에 남아서는 마지막으로 간직하고 있는 건강한 노동자성 마저 병들어 썩어 갈 것이다. 언제까지 썩은 시체를 부여잡고 있을 것인가? 

  진보정당운동 10여 년, 이제는 진보정당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딛고 노동자가 직접 스스로의 힘으로 정치의 주인이 되고 권력의 주인이 되고 역사의 주인이 되자! 그것은 대리주의를 걷어내고 지금 당장의 직접행동과 노동자 혁명당 건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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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1호] 주간연속2교대 요구를 명확히 하고, 전선을 확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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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연속2교대 요구를 명확히 하고,

 

전선을 확대하자!

 

                                    - 구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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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괄복귀로 쪼그라든 주간연속2교대 투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성지회 동지들의 투쟁을 계기로 ‘밤엔 잠좀 자자! 야간노동 철폐, 주간연속2교대 쟁취’ 투쟁이 전국적으로 쟁점화 되었다. 유성지회는 주간연속2교대를 요구했고 작년 유성자본한테서 2011년부터 실시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현대기아자본은 일개 부품사에 불과한 유성에서의 주간연속2교대 실시를 눈뜨고 바라볼 수 없었다. 결국 현대기아자본은 유성자본에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주간연속2교대를 저지할 것과 더 나아가서는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을 초토화시킬 것을 지시했다. 5월18일 공격적 직장폐쇄에 이어 용역깡패와 공권력 투입, 이명박정부와 언론의 연봉 7천만 원 귀족노동자 이데올로기 공세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이명박정부와 현대기아자본의 합작품이 유성지회를 상대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파업투쟁 60여 일이 지난 지금 주간연속2교대 요구는 온데간데 없고 일괄복귀라는 요구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현재 유성지회는 2명의 동지가 구속되었고, 3명의 동지가 조계사에서 수배,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으며 공장 앞 농성장에서는 ‘늙은노동자’가 한달 여 가까이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일괄복귀를 요구하면서 공장 출근투쟁을 진행하고 있지만 지난 6월22일 투쟁 이후 공장 앞은 경찰에 의해 집회조차 봉쇄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성자본은 복귀자를 중심으로 복수노조 설립신고를 했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계급적 의미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2256시간으로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이유는 바로 주야맞교대 근무형태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의 생체주기 파괴 및 심각한 수면장애를 불러일으키고, 결국 지속적인 피로, 행동의 변화, 소화기 증상, 수면제 사용을 가져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게 된다. 독일 의학계에서는 심야노동이 평균수명을 13년이나 단축시킨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야간노동 철폐하고 밤엔 잠좀 자자!’라는 외침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나온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노동자들의 주간연속2교대 요구를 정권과 자본이 순순히 들어줄 리 없다. 주야맞교대는 생산의 유연성을 최대화 할 수 있는, 변동하는 시장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아주 효율적인 근무형태이기 때문이다. 시장수요가 없으면, 다시 말해 물량이 없으면 잔업 2시간을 줄이거나 특근-철야를 없애면 된다. 반대로 물량이 많으면 잔업과 특근․철야를 포함해서 1년 365일 24시간 공장을 돌릴 수 있다. 기계를 1분 1초라도 놀리지 않으려는 자본의 탐욕 속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간연속2교대 쟁취는 생존을 위한 노동자의 절박한 요구임과 동시에 계급적 요구이다. 가장 핵심적으로는 야간노동 철폐에 따른 신규공장 건설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규공장 건설 → 정규직으로의 일자리 창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그리고 ‘완성차뿐만 아니라 모든 사내하청과 부품사 노동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 바로 이것이 모든 형태의 노동시간 단축투쟁이 가지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계급적인 측면이다. 이것이 빠진 노동시간 단축이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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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무(無) 원칙

  주간연속2교대 쟁취 투쟁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올곧게 쟁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할 원칙들이 있다. 특히 주간연속2교대 투쟁 과정 속에서 노동자들은 이른바 3무(無) 원칙을 져버려서는 안 된다.

 

  첫째, 노동강도가 강화되지 않아야 한다. 현대자본은 UPH 업, 편성률 상승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이것이 가능할 경우 주간연속2교대를 실시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생산량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산현장을 자본의 입맛대로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임금삭감이 없어야 한다. 정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노동자들은 주간연속2교대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임금이 삭감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임금이 보장되는 완전월급제를 쟁취해야 한다.

 

  셋째, 고용불안이 없어야 한다. 현대자본이 주장하는 대로 물량이동, 전환배치, 혼류생산 조정을 자유롭게 할 경우 노동자들은 항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외주화 금지, 정리해고 금지 등 고용불안을 제기하는 요소들을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현대차지부의 꼼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간연속2교대제 요구는 1997년 대우자동차노조와 케피코노조가 단체협약 요구안을 만들면서부터 제기되었다. 이 시기 현대자동차노조 역시도 제도개선위원회 차원에서 제시되긴 했지만 곧바로 터진 IMF 구제금융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2004년 완성차 노조를 중심으로 다시 제기되었다. 완성차 공장에서 시작한 주간연속2교대와 월급제 쟁취 투쟁은 2005년, 2006년 실행시기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냈을 뿐, 더 이상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중 작년 두원정공지회에서 주간연속2교대가 처음으로 실시되고 올해 유성지회의 투쟁이 전개되면서 노동계의 핵심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완성차 역시 올해 임단협 투쟁의 핵심적 사안으로 주간연속2교대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현대차 지부는 얼마 전 근무형태변경추진위원회에서 인원충원 없는 30 UPH 업, 중복휴일 반납, 2조 근무 10분 연장 등에 대해서 사측과 가합의했다. 이것은 주간연속2교대 요구의 근본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차 자본의 배후조종, 용역깡패와 정권과 자본의 가공할 노동자 죽이기에 맞서 두 달이 넘게 목숨 걸고 투쟁하고 있는 유성지회 동지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대차지부의 반노동자적인

  주간연속2교대 흐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유성지회 투쟁에 대한 현대차 자본의 배후조종은 유성기업에서 주간연속2교대가 실시될 경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현대차 노사의 주간연속2교대 논의뿐만 아니라 기아차를 비롯한 완성차와 수많은 부품사 등 한국 자동차산업의 구조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여기에 정권과 자본이 상신브레이크, 발레오만도, KEC 등 차근차근 수순을 밟아가며 초토화시키고 있는 노조 죽이기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주간연속2교대 쟁취 투쟁은 작년 금속노조의 타임오프 투쟁과 같이 개별사업장 노사가 다양한 꼼수를 부려가면서 풀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유성지회의 주간연속2교대 쟁취 투쟁에 정권과 자본이 총공격을 가하고 있는 이유로부터, 그리고 현대차 자본이 맨아워 표준화 등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로부터 승리의 전망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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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문에 유성지회의 투쟁은 단순히 민주노조 사수, 일괄복귀 쟁취에 초점을 맞춰서는 승리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완전한 주간연속2교대 쟁취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전선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현대차지부의 반노동자적인 주간연속2교대 흐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유성지회와 현대차, 기아차와 부품사의 활동가들이 함께 주간연속2교대 쟁취를 걸고 현대차의 공동투쟁단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자. 이를 통해 유성지회의 주간연속2교대 쟁취 투쟁을 다시 한 번 쟁점화 • 전국화 시켜내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현대차 노사 간의 기만적인 주간연속2교대 합의의 반노동자성을 폭로해내서 현장노동자들을 결집시키자.

 

  십수년간 단결과 연대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투쟁해왔던 유성지회의 투쟁이 패배할 경우 그 여파는 전국 노동자들을 뒤흔들 것이다. ‘가장 강력했던 조직력과 투쟁력을 자랑했던 유성지회도 깨졌는데 우리가 할 수 있겠어’라는 패배감과 자포자기가 만연해질 것이고, 단결과 연대투쟁 대신 협조와 양보가 판을 치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유성지회 동지들이 열어놓은 작지만 소중한 주간연속2교대 요구를 홀로 걸어가게 하지 말자. 그것이 우리들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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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1호] 자발적 연대의 힘을 보여준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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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연대의 힘을 보여준 희망버스

 

- 2차 희망버스의 아쉬움을 딛고 전선을 확장하자! -

 

                                     

 

  정치적 상상력과 창조성으로 대중 직접행동의 새로운 장을 열어 보인 희망버스 운동은 해고와 분열로 죽어가는 한진중공업 노동현장의 외로운 투쟁에 연대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185일째 고공에서 목숨을 걸고 처절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연대의 손길을 내민 곳은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아니라 ”정리해고 철폐“를 전면에 걸고 모여든 자발적 다수대중의 결집체인 희망버스였다. 소금꽃나무 김진숙과 85호 고공크레인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계급투쟁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자발적 대중의 창조적 투쟁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희망버스”라는 이름의 대중투쟁은 기존의 관성화 되고 굳어져버린 조합주적인 낡은 투쟁방식을 깨뜨리며 자발적 대중의 창조적 힘을 모아내는 투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힘차게 가두투쟁을 벌이고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으로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해도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모습은 자발적 투쟁의 진정성을 보여주었고 연행자 전원석방을 요구하며 다음날까지 이어진 집회에선 활기찬 정치발언들과 신명나는 문화제, 자발적 음식나눔 등 특유의 활력과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희망버스에서 주목하게 되는 지점은 운동의 자기이해에 충실하게 복무하려는 그 진정성이며 넘치는 기운과 지치지 않는 활력의 그 역동성이다.

 

  이제 희망버스 투쟁은 한진중공업 어용세력에 맞서 정투위 내부의 새로운 투쟁주체와 지도력을 세우는 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6월27일 어용 채길용 집행부는 모든 조합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측과 합의서에 직권조인 했다.
채길용의 배신행위는 2009년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 때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채길용 집행부는 “잘못하면 쌍용차 꼴 난다‘면서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 두려움과 패배의식을 조장해 왔다. 쌍용차 투쟁은 쌍용차 동지들의 전투적 투쟁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조직 노동자들의 연대파업으로 맞서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쌍용차 투쟁을 멀리서 지켜만 보다 겁먹은 한진 어용 집행부는 마지막 건조 중인 선박을 점거할 계획보다 기껏 여론을 잡아야 한다며 개량주의 정당과 한 통속이 되어 시민선전전에 투쟁을 제한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용 집행부에 대항하는 조합원들은 분열주의자로 몰아붙이고 비판과 토론을 통제했다. 이러한 관료적 작태는 조합원들을 수동화, 객체화 시켰다. 심지어 김진숙 동지를 소영웅주의자, 분열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투쟁하려는 조합원들과 이간질시켜 결국 조합원들을 하나둘씩 희망퇴직으로, 농성장 밖으로 밀어냈다. 그 이후에도 만행은 이어져 85호 크레인농성장에 대한 노골적인 냉대와 모욕으로 연대단위의 연대를 막았다

 

  어용 집행부에 맞서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지도력을 세워내야 

  어용 채길용의 반노동자적 배신행위는 민주노조운동의 이름으로 탄핵되어야 마땅하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를 떠나 이미 조합원들이 모두 반대하는 정리해고 문제를 밀실야합으로 직권조인 한 짓 자체만으로도 탄핵의 큰 사유가 된다. 더군다나 전국적으로 대규모 2차 희망버스가 조직되고 있었고 그러한 대중들의 기세에 눌려 국회청문회 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때 맞춰 보수집단들은 노사합의로 원만한 해결을 환영하다며 이를 기정사실화 시키고 희망버스가 외부 불순세력의 책동이라며 악선동 하고 있다. 연대전선을 분열시키려는 더러운 이념 공세를 불러들인 것이 바로 채길용 어용세력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동안 수많은 만행을 지켜보면서도 적전분열과 노노갈등을 염려하며 껍데기뿐인 민주노조 허울을 쓴 어용세력들의 통제에 잠시 머뭇거렸어도 이제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다. 투쟁을 통해 정투위 내부를 다시 정비하고 노동조합을 민주적, 계급적으로 바로 세워 나가는 투쟁을 해야 한다. 여러 가지 현실적 이유를 대며(“지금 동력으로 채길용 탄핵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지금 이대론 9월 선거에서 채길용이 당선될 텐데, 회사와 결탁해 성과금으로 조합원과 해고자들을 분열시켜 고립시킬 것이다” 등등.) 미리 체념과 패배의식에 젖어 어용세력에 맞선 투쟁에서 뒷걸음질 친다면 정리해고 뿐 아니라 민주노조의 미래도 없다.

  탄핵투쟁과 맞물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어용 채길용 집행부에 의해 무너져 내린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지도력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누구보다 이를 가장 바라는 사람은 어용세력들의 갖은 반동적 행태를 185일 동안 고공에서 낱낱이 보아온 김진숙 동지일 것이다. 직권조인 후 던진 “조합원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날선 한마디는 그 자체로 투쟁지침인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크레인에 올라가기 전부터 젊은 조합원들과 학습모임을 함께하며 그들을 계급적 투쟁주체로 세워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도부는 끝내

  어용의 배신행위를 묵인할 것인가

  계급적 투쟁주체는 변혁적 계급의식과 정리해고 분쇄라는 명확한 투쟁의 목표를 가지고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가운데 만들어진다. 공장 밖에서 연대 투쟁하는 쌍용노동자, 철거민, 학생, 농민들은 흔들림 없이 정리해고 철폐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희망버스의 진정성과 역동성을 배워야 한다. 정작 이 배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은 민주노총 지도부와 금속노조 지도부다. 어용 채길용에 대한 어떠한 규탄도 없고 희망버스 대중들이 정리해고 반대를 외치며 연대의 깃발을 드높일 때 자신들의 싸움으로 앞장서 깃발을 올리고 나서야 함에도 뒷짐만 지고 있고 중앙교섭에 매달리며 이런저런 핑계로 대의원대회에서 결의된 파업조차도 실행하지 않고 있는 지도부의 관료적 행태는 비판 받아야 한다. 집회 자유발언대에서 격정적인 어조로 발언한 여성발언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 노동자 민중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자발적으로 투쟁에 나서고 있는데 정작 앞장서야 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지도부 몇 사람만(민주노총 서울본부 일부, 금속 부양지부 일부)개별적으로 참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당신들의 투쟁이니까 당신들이 조직적으로 앞장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비단 한진투쟁만이 아니다. 현자비지회, 유성기업을 비롯해서 그간 크고 작은 투쟁에서 보여준 관성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에 실망한 대중들의 원망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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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을 넘지 못한 2차 희망버스의 아쉬움,

  3차에선 투쟁전선을 확장하자!

  운동전망에 대한 지도부의 관점, 전술운용에 대한 문제, 기술적 운영의 문제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한 평가와 반성, 비판이 나올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 평가와 반성은 7월 말에 다시 출발할 3차 희망버스의 더욱 활기찬 연대와 투쟁의지를 북돋는 방향으로 모아져야 할 것이다.
3차 희망버스는 어용세력과 공권력에 포위되어있는 한진중공업 투쟁의 주체들을 어떻게 세워내야 하는가에 고민을 집중하여 기획해야 한다. 어용 채길용 집행부의 만행과 내부투쟁주체들의 힘겨운 싸움을 트위터와 진보매체 등에 지속적으로 알려내야 한다. 보수집단들의 노사합의, 노사자율. 외부세력 운운 등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 대중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전선을 조직하여 투쟁주체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지지, 지원해야한다. 또한 어용 채길용 집행부에 대한 대중적인 탄핵투쟁이 조직되어야 한다. 이미 탄핵성명서가 인터넷 진보매체에 노동자. 시민 일동으로 배포되면서 투쟁이 시작됐다, 금속노조에서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금속노조에 채길용 징계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아가 계급투쟁전선을 확장하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 소금꽃나무 김진숙을 아이콘으로 한 한진투쟁을 넘어 “밤엔 잠좀 자자”로 대변되는 유성 희망버스로 확장하는 방식을 기획단위에서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3차 희망버스는 곧 희망차게 출발할 것이다. 한진투쟁 주체들의 희망을, 그리고 이 투쟁에 연대하는 동지들의 희망을 가득 안고 출발할 3차 희망버스 투쟁, 이번엔 한 번 제대로 끝까지 투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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