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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9
    소, 라듐 그리고 광우병과 방사능
    해민
  2. 2008/06/02
    중국, 쓰촨성 지진에서 두꺼비에 부끄럽지 않은 시스템
    해민

소, 라듐 그리고 광우병과 방사능

소, 라듐 그리고 광우병과 방사능

 

1922년, 은행에서 일하는 그레이스 프라이어(Grace Fryer)는 병원을 찾았다. 갑자기 이빨이 흔들리며 뽑혔고, 턱에는 염증이 생겨 부어올랐다. X-ray 결과는 참혹했다. 턱뼈가 마치 벌레먹은 이파리처럼 구멍이 숭숭 나있었다. 같은 증세를 호소한 사람은 마을에 여러 명 있었고, 모두 야광 칠을 하는 공장에서 일을 했었다.

 

그레이스가 병원을 찾기 20년 전(1902년), 발명가 윌리엄 해머(William J. Hammer)는 과학자 퀴리 부부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그가 받은 선물은 라듐염 결정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사능은 새로운 과학 분야이기에, 그 위험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피에르 퀴리는 라듐을 자신의 팔에 붙여 위험성을 실험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라듐이 스스로 푸르스름한 녹색의 빛과 열을 내기 때문에, 인간에게 무한 에너지를 주는 환상적인 물질로 생각했다. 해머는 이 라듐염으로 야광 페인터를 발명하였다.

 

야광 페인터는 US-라듐사(US Radium Corporation)에 의해 상품화되어 1차 대전 중에 계기판 표시기나 군인들의 손목시계에 사용되었고, 민간용으로도 확대 되었다. 당시에는 라듐의 위험은 상당히 알려져 있을 때이다. 그러나 US-라듐사는 아주 미량 사용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였다.

 

US-라듐사의 과학자는 라듐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사용한 라듐은 우라늄보다 100배 더 강한 것이기 때문에, 실험시 방사능 차단 장치를 확실히 사용하였다. 그러나 공장의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작업장 바닥과 벽은 이미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었고, 심지어 여성 노동자들은 남자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술이나 치아에 바르기도 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라듐은 일상화 되었고 구조화 되어 있었다. 관절염, 고혈압, 암 등의 치료약으로 쓰였는가 하면, 치약이나 화장품, 심지어 생수와 빵에 넣어 먹기도 했다. 자본은 이윤 때문에 스스로 이 위험한 거래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3년 후, 그레이스의 의사는 병의 원인으로 US-라듐사를 지목했다. US-라듐사는 콜롬비아 대학의 전문가 플린(Flynn)을 내세워 그레이스를 조사하였다. 플린은 그레이스가 건강이 아주 좋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의사도 아니었고, 그레이스의 “동료“를 조사한다면서 작업장에서 일하지 않았던 부사장의 감염여부를 조사하는 등 부정한 방법을 사용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US-라듐사는 그녀의 병이 방사능 중독이 아니라 매독 때문이라고 유언비어를 조성하기도 했다. 또 많은 의사들을 포섭해서 왜곡된 정보를 만들었다.

 

사실, US 라듐사는 이미 1920년대 초부터 하버드 생리학 교수 세실 드링커(Cecil Drinker)를 고용하여 작업장 환경에 대한 연구를 시킨바 있다. 드링커는 보고서를 통해 심각하게 오염된 작업장 실상과 노동자들의 이상 증세를 자세하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정작 US-라듐사는 노동부에 가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가짜 보고서의 시작은 모든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여공들은 완벽한 조건에서 근무 하고 있다”.

 

그레이스와 5명의 노동자들은 US-라듐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변호사를 선정하여 소송을 했다. 재판은 2년을 끌었고, 당사자들의 병세 악화와 절박한 사정으로 회사에 유리한 합의를 해야 했다. 당시 합의를 주선한 사람은 라듐 재판의 판사이자 US-라듐의 주주였다고 한다.

 

방사능에서 광우병으로

 

현대로 오면서 라듐의 방사능은 광우병 소로 대체된다. 기업은 정부로 바뀌고 대상은 특정 노동자 민중에서 전체, 전 세계 노동자 민중으로 확대된다. 영국은 1985년에 최초로 광우병이 발병했고, 1년 뒤 그 사실을 처음 확인하였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영국 보건부는 11달이나 대중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그 후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수의학 논문지에 싣는 것이 전부였다.

 

1980년대 중반쯤에 영국정부는 소에게 먹인 동물사료가 광우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89년이 되어서야 뇌, 척수, 가슴샘, 비장 그리고 일부 내장을 소의 사료로 금지시켰다. 그러고 나서 다른 조직들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러한 조치는 노동자-민중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축산업자의 이윤을 위해, 사료비 증가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영국 정부는 사이비 과학 자료와 잘못된 가정을 바탕으로 소고기 안전에 대해 여러번 왜곡된 발표를 했다. 예를 들어 1989년에 영국정부가 발표한 사우스우드(Southwood) 보고서에 따르면 소를 광우병의 종말 숙주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에게는 위험성이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대범하게도 위원회는 “광우병과 사람의 건강과의 관련성은 결코 있는 것 같지 않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로 광우병 발생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문제를 노동자-민중의 건강의 위기로 보지 않고 어떻게 발표할 것인가의 문제로만 보았다. 영국 농무부장관 존검머(John Gummer)는 BBC 방송에서 자신의 딸 코델리아와 같이 햄버거를 먹으며"광우병 안전합니다."라고 선전하기도 했다. 아무도 믿지 않는 광고를 촬영하면서 자신의 딸을 광우병 볼모로 삼고 “맛이 기가 찹니다.” 라고 말하였다.

 

영국 정부의 거짓말은 곧 바로 드러났다. 1994년 16세 소녀 비키 리머(Vicky Rimmer)는 인간 광우병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가족들에게 경제를 위해 사망사실을 공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또한 비키가 죽은 후 메이저(John Major) 총리는 "인간은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두고자 합니다.“ 라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편지를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다. 아무튼 첫 번째 희생자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200여명이 광우병으로 죽었거나 앓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치매로 죽어간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인간광우병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핵심은 이윤에 반해 전복할 수 있는 권리이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라면, 즉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자본가 혹은 그를 대변하는 정부는 그것이 방사능 물질이든 광우병 소든 상관하지 않고 확실하게 주장한다. ‘아주 안전하다’, 자본에 매수된 과학(자)은(는) 이 주장을 뒷받침할 결과들을 쏟아 낸다. 그러다 실제 위험이 발견되면, 방사능 오염은 ‘매독’이 되고, 광우병은 ‘치매’로 둔갑해 버린다. 그리고 방사능물질과 광우병으로 노동자-민중이 죽어 나갈 때 까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구조(무의식 적인 것)가 된다.

 

2008년,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검역 ‘주권’을 놓고 ‘미국-한국 연합정부’와 투쟁하고 있다. 주권이라는 것은 ‘(필요에 따라) 생산할 수 있는 권리’와 ‘전복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생산할 수 있는 권리는 생산수단이 없다면 구성하기 힘들지만 전복할 수 있는 권리는 그런 기반이 없어도 된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이윤에 반해’ 전복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미국은 광우병이 발생했지만 도살된 소의 1% 미만에 대해서만 검사를 하고 한국에 수출한다. 이명박 정권은 이 소에 대해 전복할 수 있는 권리를 미국에서 넘겨주었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미국소는 우리의 구조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가 된다. 그러다 광우병이 발병하면 비극은 시작될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듯 촛불시위는 이 권리를 다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이미 구조화 되어 버린 것들을 돌아 봐야 한다.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는 먹을거리들. 예를 들어 국내 소는 항생제만 해도 미국의 3배 스웨덴의 24배나 사용한다. 광우병은 발병하지 않았지만 전수검사 역시 하지 않는다. 이것들에 대해 우리는 (이윤에 반해) 전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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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

 한국의 촛불 투쟁이 미국의 노동자-민중들의 투쟁뿐아니라 전세계의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해본다. 미국의 광우병 정책을 비판하는 미국의 시민단체들이 힘을 얻고 있고, 일반 신문  마져 비판적인 기사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美농무부 정신 차려라"…美언론들, 줄줄이 비난"), 대만, 일본 민중들 또한 한국의 촛불 투쟁을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진짜로, 우리의 촛불 투쟁은 바로 자본의 이윤에 맞서 전세계 민중들을 위한 것이지 아닌가! (머찐 투쟁이다.!!)


(잡담 2) 사람들이 햇깔려 하는 것.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올바른 주장"은 한국소도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관련된 글은 "인간광우병, 국산 쇠고기도 안전지대 아니다!" 를 참조하면 될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소의 불안정성을 미국소 수입근거로 삼는다는 점이다.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그 위험은 우리가 경험으로 명백히 확인한 바 있다.  한국 소의 위험은 "어렵겠지만" 우리 국회와 정부를 촛불집회와 같은 투쟁으로 압박한다면 집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소의 경우는 다르다. 죽어라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밤새고 ..  "좀비"라는 욕을 들어 가면서 까지 아들딸 댈고 나와 시위했는데 그 결과는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로 (재협상도 아니고) 추가 협상을 하러 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나마 얻은 결과는 말도 하기 싫을 정도의 결과를 가져 왔다. 그래 놓고 90점 받았다고 지랄발광을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일상 식탁의 안전을 지켜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소를 더 엄격하게 규정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중에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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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성 지진에서 두꺼비에 부끄럽지 않은 시스템

중국, 쓰촨성 지진에서 두꺼비에 부끄럽지 않은 시스템

 

지진을 예측한 중국 쓰촨 (Sichuan)성의 두꺼비

 

지난(2008년 5월) 12일, 중국의 쓰촨성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현재(5월 25일)까지 중국정부 공식발표로만으로도 사망자 6만2천664명, 실종자 2만3천775명에 이른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진 사망자만 8만 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과 인접한 쓰촨성은 지진대 바깥에 있지만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의 경계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불안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1800년 이래로 16년 마다 한 번씩 큰 지진이 발생하였고 1900년부터는 평균 11년 마다 발생하였다. 1976년 지진 이후에는 26년 동안 진도 7 이상의 지진은 발생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서 첸 쥬에종(Chen Xeuzhong) 국가 지진국 책임연구원은 2002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2003년 이후 지진 발생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진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는 이상 징후가 발견되기도 했다. 진앙지 인근에서는 ‘똑똑한’ 두꺼비 떼가 지진 발생을 미리 알고(?) 이동하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무식한’ 현지 전문가는 "두꺼비 번식기로 정상적인 현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중국이 지진 발생 시점을 정확하게 예측한 때도 있었다. 1975년에 발생한 해성 지진 때의 일이었다. 당시 10만 명의 사람들을 구성해서 이상 자연 현상에 면밀히 수집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진도 7.3의 대지진이 발생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해 해성에서 20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비슷한 규모의 탕산(唐山)지진은 예측하지 못했고, 2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실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국내 기상청도 2대의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있지만 불과 내일 날씨도 평균 4번 중 1번은 오보를 내고 있다.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는 미국도 2005년에 슈퍼태풍 카트리나의 경로를 예측하지 못했다. 아무튼 중국 정부가 2002년의 과학자의 경고와 2008년 ‘똑똑한’ 두꺼비의 경고를 믿었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지역주민 이주를 결정할 시점을 정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칫 재난 경보를 난발하여, 늑대소년이 될 수도 있고 이주비용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자연 재해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해결할 수 있는 쉽고 뻔한 해결방법이 있다. 자연 재해 발생 지대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건물과 보호시설을 갖추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재해가 발생할 때는 인간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재활과 복구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뻔한 해결 방법들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시스템이 있다.

 

중국의 ‘시장’ 사회주의에서의 복구와 재건

 

1976년 24만 명이 숨진 중국 탕산(Tangshan) 지진의 복구는 중국정부의 철저한 계획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모든 자금과 정책에서 탕산 지진 복구에 우선권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장기간 지속적인 의료 해택과 사회 복귀 프로그램은 탕산 지역을 예전보다 더 좋은 곳으로 복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2008년 또 한 번의 지진이 있었고 복구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은 1976년의 중국과 많이 다르다. 1980년 초부터 도입된 시장경제 시스템은 탕산 지진에서 힘을 발휘했던 공공의료 시스템을 파괴했다. 사설 의료 기관들이 많아짐에 따라 협동의료 시스템(CMS, Cooperative Medical system)은 점점 해체되어 갔다. 이 제도는 모택동 시절에 농촌인구 70%의 보건의료 재정을 담당하였다. 농촌에서 CMS의 해체는 바로, 의료 시설의 사유화와 의료 수가 상승을 의미했다. 2004년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쓰촨지역을 포함한 3개의 농촌지역에서 높은 의료 수가로 충족되지 못한 의료 수요가 13%에 이르고, 71%(농촌에는 90%, 도시에는 51%)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Health Affairs, 23, no. 6 (2004): 222-234 Meng-Kin Lim).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공공의료에 불만(높은 가격과 불친절)으로 인해 더 값싸고 질 낮은 사설의료시설을 찾고 있다.

 

이번 쓰촨 지진에서도 재건계획이 나올 것이다. 탕산(唐山)대지진 재건은 엄격한 계획경제 상황에서 이뤄졌지만 쓰촨 지진 복구는 시장 경제체제에서 처음 실시하는 대규모 재건사업이다. 사유화된 의료 시설, 그리고 시장 시스템 속에서 재난 복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우리는 이미 2005년 미국에서 생생하게 확인하였다.

 

자본주의에서의 복구와 재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해서 1천800여명의 사망자와 80여만 명의 이재민을 내었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지진 당일 쓰촨에 도착했지만, 세계 최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미국 군대는 뉴올리언스에 도착하는데 만 4일이 걸렸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진직후 정치국 중앙위원 회의를 소집하여 대책을 강구했지만, 부시는 당일 골프를 치고 있었다. 중국정부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과거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일본과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대만의 구조 활동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쿠바 정부가 1600 여명의 의사, 야전 병원 그리고 83톤의 의료품을 보내 준다는 인도적 제안을 무시했다.

 

미국의 모든 구조 노력은 근본적으로 자유 시장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보험에 가입된 사람들은 복구가 가능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노숙자로 전락했다. 심지어 당시 뉴올리언스에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려는 주민들을 법 집행기관에서 총기로 위협해 다시 돌려보내는 사례도 있었다. 주민들은 굶주림에 약탈을 했고, 경찰은 약탈자를 사살하도록 명령했다.

 

지주, 개발자, 정치인들은 재해 지역을 이윤을 뽑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서민 주택 보다는 고급 주택위주로 재건하기를 원했고, 이로 인해 가난한 지역주민들은 돌아갈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태풍에 흩어졌던 뉴올리언스 시민들 중 아직도 20만 명 이상은 외지를 떠돌거나 영영 이곳을 떠났다. 돌아온 사람들의 삶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트레일러에서 피난민처럼 생활하는 가족이 4만2천250가구에 달하고, 일자리가 없어 노는 사람이 태반이다. 버스운행 정상화 율은 19%에 불과하고 병원의 3분의 1은 아예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2007년 8월 상황)

 

관료주의와 시장시스템의 결합

 

중국에서도 시장 시스템의 폐해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번 지진에서 가장 큰 피해는 학교 학생들이었다. 시장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던 시기에 지워진 이들 건물들은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 노후한 건축자재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기준에 미달하는 재료를 사용하였다. 물론 쓰촨성에 들어선 다국적 기업들, 노키아, 마이크로소프트, 모터롤라 그리고 IBM의 건물들은 멀쩡했다. 무너진 것은 학교와 가난한 노동자-농민들의 집이었다. 유사한 현상이 지난 겨울 1억 명의 이재민을 낸 폭설에서도 나타났다. 폭설에 무너진 송전탑과 전봇대들은 거의 모두 1990년대 불량으로 지어진 것이었고 1950년대 계획경제하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복구가 용이하였다.

 

이번 지진 대책에서 중국은 미국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이 다른 점이 속에는 중앙 통제적 관료 시스템을 포함하고 있다. 중앙 통제적 관료시스템은 언론을 통제하였고, 복구 작업에서 자발적으로 그리고 민주적으로 조직되는 모임까지 억눌렀다. 그 결과 인민들에 의한 민주적 통제는 약화되었고, 불신은 커져갔다. 일부 구호품을 빼돌리는 관료들이 발견되자 무력 충돌로까지 이어졌다.

 

 

두꺼비만큼 똑똑한 시스템

 

남미의 카리브 해역에는 잦은 허리케인에도 꿈쩍 않는 나라가 있다. 지난 1998년에는 허리케인 조지로 인해 인근 국가에서 6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으나, 이 나리에는 단 4명에 그쳤다. 또 2004년에도 이제까지 최대 규모의 허리케인 “아이반”이 불었으나, 단 1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다. 반면 미국에서는상륙시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5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바로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의 일이다. 쿠바에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나은 기상학자가가 있는 것도 아니며, 기후에 대처하기 위한 특별한 힘을 부여받은 것도 아니다. 물론 중국에서 보이는 똑똑한 두꺼비도 없다. 모든 것은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사회 인프라와 관련이 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전체 인민과 국가가 철저한 계획에 따라 국내의 공동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동원된다. 마을마다 미리 준비된 대피소가 있고 또 가정의사가 있다. 이 의사들은 평소 환자를 직접 방문하면서 사회·경제적 환경을 함께 고려하여 치료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 시스템과 원활하게 연동되는 시민방위 시스템이 있다.

 

시민 방위 시스템에서는 피난 시에 지역주민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최신자료를 확실히 배포하고 교육한다. 그리고 자연 재난 발생시 지역 의료진들은 피난민과 함께 움직이는데, 애완동물과 수의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TV와 냉장고도 대피소로 옮겨진다. 지역 스스로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이 시스템 속에서는 누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갈까 싶어 대피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은 없다. 만약 피해가 발생한다면 정부에 당당하게 재발되지 않은 시스템으로 복구할 수 있다. 결국 중앙의 계획, 그리고 민주적 통제가 자발적인 개인의 노력과 함께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이만 하면 중국의 두꺼비에 부끄럽지 않은 시스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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