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지 못했음

2009/11/30 01:11 잡기장

 

 

 

 

 

머피에 대한, 머피의 죽음에 대한 슬픔, 분노, 죄책감. 그것은 엄마에 대한 분노, 환멸, 그리고 내 스스로 그것을 복제하게 될까봐 갖게 되는 두려움과 맞닿아있음을 알고 있다. 애착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 대해 그렇게 돌아섬. 아마 엄마도 자신의 이혼과 그 모든 것을 애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애정을 갖고 있던 대상을 방치하고, 무려 죽음까지 스스로 언도할 수 있는 그 자신감에 대한 역겨움. 그 무책임함. 편리함.

 

나는 그렇게 죽음에 이르는 머피도 되었다가, 그렇게 편리한 엄마도 되었다가

두 가지 상황 모두에 진저리를 친다.

 

하지만 동시에, 엄밀히 엄마를 무려 떠난 자는 "나"였고, 머피와 다르게 나는 그런 죽음에 이르지 않을 것임을, 나는 사실 의지가 강하고, 내 인생을 내 의지에 맞게 잘 쥐어왔고, 키를 쥔자는 내 자신임을, 앞으로도 그럴것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머피를 애도할 기회가 없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 죽음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그 죽음으로부터 한달이상의 시간이 지났음도 같이 알았고,

그렇게 죽음을 언도한 자가 죽기 전까지 머피가 정상이 아니었다며, 변명인지 진실인지 둘다 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얘기도 함께 들어야했고,

내 자신의 경제력을 증명하기 위해 혹은 그냥 말 그대로 살아 좀 가보기위해 5분이던가 10분이던가 그 후면 사람들 앞에서 어줍잖은 세상에서 제일 밝은 목소리 톤으로 굿모닝을 외쳐야했고,

그 얘기를 나눈 유일한 동료는 내게, 울지마라. 학생들 앞에서 울지마라. 학생들 앞에서 그런 얘기는 하지 마라. 뭐 그따위 얘기나 해주고 있었고,

나는 마비되어 미친듯이 10시간 강의를 하고,

집에 왔을 때는 그냥 피곤했다.

 

 

머피의 생일 때마다 켜는 촛불 같은 것으로는 애도가 끝나지 않는것일까. 혹은 이 모든 과정이 애도인가.

그리고 이 분노. 나를 충분히 끝까지 사랑해주지 않은 엄마에 대한 분노, 공감하거나 배려하는 능력이 지독히 결여되었던 엄마에 대한 분노, 그런 엄마를 복제하게 될 것만 같은 나 자신. 그런 것들이 막 뒤엉켜서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애도해내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1/30 01:11 2009/11/30 01:11
─ tag 
Trackback URL : https://blog.jinbo.net/09/trackback/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