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하고도 무려 5일

2009/12/05 20:36 잡기장

행복한가? 라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으면 마치 불행하다 라는 의미인 것 같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정말 잘 모르겠다 라는 의미인 것 같다. 점점 세상 사는 일이 행복하다느니 불행하다느니의 언어로 갈릴 것도 아니고, 그냥 갈수록 감정을 설명해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어쨌든 오늘은 머리 속이 無였다. 감정도 無라고 느껴졌다.

아니 감정은 그 정도는 아닌가. 암튼 그쪽으로 수렴되는 중 정도의 레벨이랄까.

 

 

그저께 나는 엄마의 장례식을 그렸다. 그리고 덤덤한 마음으로 잠들었다고 생각했는 데, 꿈을 꾸었고 무거운 마음으로 어제를 보내다가 급기야 친구들 앞에서 울어버렸다. 뭔가 내 마음/상태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힘들었다. 말이라는 건 이토록 보잘 것이 없고 그런다.

 

 

어제 밤에는 복분자 한병을 혼자 조용히 비워냈다. 그런 비싼 술을 먹어서는 안됐지만, 그냥 돈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제 낮에는 엄마가 쓰던 지갑을 쓰레기통에 버렸고, 복분자와 함께 핸드폰을 처리했다. 

 

영화에서 깡패들이 망치로 물건들을 때려 부수듯이, 나도 망치를 들고 핸드폰을 내리쳤다.

근데 한번의 망치질을 통해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1)핸드폰은 생각보다 굉장히 튼튼하다는 것과

2)12시가 넘은시각에 핸드폰을 바닥에 놓고 망치질을 함은 아랫집에 매너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베개를 놓고 그 위에 종이 봉투 한장을 놓고 망치질을 시작했는 데 정말 더럽게 안 부숴지더라. 분명 액정이 한 큐에 나갈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는 데 슬라이드폰이라 그런지 액정에 기스만 나고 부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망치를 못 박는 쪽 말고 못뽑는 쪽으로 돌려서 내려 찍었더니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배터리를 떼어내고 전자판 같은 것을 섬세하게 뻰치로 뽑아 비틀면서 정성드려 부쉈다. 그리고 두부사고 버리는 통에 물을 붓고 핸드폰을 수장시켰다. 

 

 

저 과정 간간이 복분자를 마시며 울다가 그쳤다가 통곡했다가를 반복해서 나중에는 기진맥진 해졌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전기장판을 팍 틀어놓고 잤다. 

 

역시 술먹으면 오래 못자서 7시에 잠시 깨서 두통때문에 고민하다가, 얼마전 읽은 인터넷뉴스에서 해장을 하려면 전해질을 먹어야한다고 한게 기억이 나서 미니컵라면을 끓여먹고 다시 미친듯이 졸릴 때쯤 이빨을 닦고 다시 잠이 들어서 2시쯤 일어났다. 화방을 가야해서 나오는 김에 쓰레기통을 규격봉투속으로 싹싹 비워내고 그렇게 어제의 그 핸드폰도 집을 떠났다. 

 

 

분명히 어제는 꿈을 꿀 것이라고 생각했는 데, 나는 말끔히 잤다. 아주 깔끔하게 자고 일어났다.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북한에서 온 작가 작품을 구경하다가 소파에 앉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참, 꽃도 샀다. 저녁도 샀다. 그렇다. 돈 엄청 썼다. 그런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쯧쯧. 

 

 

요새는 매일 꿈을 기록한다. 그래서 어제 꿈을 꾸지 않은 것은 뭔가 묘했다. 

하루종일 내 기분이 어떤 걸까 설명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잘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래서 행복한가? 생각했는 데, 그런 식의 행복/불행 따위의 층위가 아니었다.

 

 

노란 백합이랑 비슷한 꽃을 한 대 사왔다. 조금 큰 꽃이라 한대만 꽂아도 왠지모를 세련미가 있다. 사길 잘했다. 꽃집 아줌마가 향도 좋고, 봉우리가 피면 안 쪽은 분홍색이라고 하셨다. 

 

 

기분이 無 맞는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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