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07

2009/11/07 01:31 잡기장

두 사람이 침대 위에서 엉켜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그린 회색빛의 그 그림과 같은 현상이다. 그 격렬함. 그 에너지의 폭발. 하지만 그건 섹스가 아니다. 늙은 남자의 얼굴은 검붉다. 그냥 붉은 것이 아니라 곧 터져버릴 것 같은 혈관처럼, 자주색도 아닌 갈색도 아닌 그 검붉음. 눈은 크게 열려있고 눈은 얼굴만큼이나 터져버릴들 붉다. 눈동자에는 죽음과 에너지가 공존한다. 늙고 늙어서 주름자체가 피부결처럼 보이는 그 생기없는 축 쳐진 살로 덮힌 그 목을 손 두 개가 꾹 누르고 있다. 그냥 힘을 준채로 멈춰있음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적인 힘을 가하며, 어쩌면 정말 상대가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속으로는 약간 걱정하는 지도 모른다. 늙은 남자위에는 여자가 올라타 있다. 여자의 얼굴은 조금 풀린 파마머리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결코 남자의 얼굴을 피하지 않고, 아이러니 하게도 밑에 깔려있는 그 남자만큼이나 터질듯한 붉은 얼굴, 붉은 손, 붉은 몸을 하고 있다. 늙은 여자의 체중은 늙은 남자의 배를 누르고 있고. 아. 그 남자도 손을 뻗어서 여자의 목에 닿으려고 했었나. 혹은 이미 닿아서 함께 서로를 조르고 있었나. 늙은 남자의 정말 곧 터질 그 눈. 늙은 남자의 찢을 듯이 꾹 다문 입술. 그리고 그 소리. 씩씩거림? 흡! 하는 소리?

 

 

그것이 내가 목격한 것이라면, 기억이란 재밌게도 그 이전의 일도 마치 겪은 것 처럼 저장해놓고 있다. 내가보지 못했지만, 들었던 그 이야기는 내가 본 것의 반대버젼이다. 늙은 남자가 위에. 늙은 여자가 밑에. 결국 늙은 여자가 기절. 죽었을까 놀란 남자는 화장실로 뛰어가 물을 가져와 여자 얼굴에 뿌리고. 여자는 정신이 들지만 숨쉬기는 더 힘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본 것과  들은 것. 이 두 가지의 영상을 내 뇌는 둘 다 본것.겪은 것으로 저장해놓고 있다.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몇년 후면, 나는 두 가지를 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라 믿게 될 지도 모른다.

 

 

그냥 그림을 그리다가, 그냥 진짜 그냥 그냥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마치 내가 그 둘이 된양 피가 얼굴로 몰리고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영원히 그들을 용서하지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괜찮은 인간이겠구나. 아. 나는 그들을 영원히 모른척해도, 영원히 그들에게 돈을 받든 영원히 그들이 나에게 뭘 주려고하든 아 나는 정말 그걸로도 모자란. 그들이 나에게 준 것은 너무 끔찍해서. 끔찍하다는 말도 너무 약소해서 웃음이 날 만큼 끔찍해서. 목격자. 목격한 자. 그들이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할 목격자라는 그 위치. 그 장면. 그 시각적 강렬함에 대하여. 그 날의 죽음의 냄새에 대하여. 죽이면서도 상대방의 사망을 갖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두려워하는. 마치 초등학교 아이들의 기절놀이처럼, 죽음에 가까이는 있되 죽어서는 절대 아니되는. 그들은 그런 놀이를 하고 있었고, 나는 마치 내가 경찰관이라도 된양 그 갖가지 소리들에 이끌려 안방에 들어섯고.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 재수해서 들어간 대학교의 1학년생.정말 스스로의 똑똑함과 논리에 대해 자신이 넘치던 시절. 논쟁을 사랑하던 그 시절. 그것마저 내가 해결해낼 수 있을 줄 알고 나는 마치 경찰관처럼, 119처럼 안방으로 달려갔지만, 나는 모르겠다. 그 장면 이후는 어떻게 되었는 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둘은 그 행위를 멈추었는데, 대체 어떻게 어떤 순서로. 그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세상에 사는 몇 명이나 그런 행위를 목격할까.

 

소위 남녀가 격렬하게 포개져있는 데

 

그게 진짜 섹스가 아닌 거.

 

정말로 섹스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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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7 01:31 2009/11/07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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