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2009/10/29 00:39 잡기장

두려움이 정말 갑자기 훅 밀려왔다. 친구들 앞에서 결심을 말할 때, 지난 몇달 간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는 오히려 두려움 같은 것은 잘 못 느꼈는 데, 오늘 갑자기 댄스학원에 가기 한시간 정도 전 부터 진짜 바로 건드리면 눈물이 날 것 같을 만큼 큰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래도 그림에 소질 있다는 얘길 들었었다. 그래서 장래희망같은 걸 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나는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중간중간 꿈이 변형되었거나 조금 바뀐 적이 있긴 했어도, 나름 일관된 꿈이 그것이었다. 남들이 좀 한다고 하니까 좋아하게 된 것인지 정말 원래 좋았는 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항상 크든 작든 재능이 있다고, 평균보다는 잘한다고 생각했던 분야, 혹은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던 분야가 그림이었고 미술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그 시간에 두려움 같은 거 느끼지 않았을까. 뭐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을 한다.

 

 

오늘에서야 발레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또 압박을 느껴서.

 

발레를 하러 가는 길에, 수업 중간에, 또 그것을 마쳤을 때 정말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걸 참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단 발레를 못하게 되서만은 아니었다 당연히. 그냥 막 뭔가 너무 슬퍼서 복받쳐 올랐다. 왜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기가 힘든 지, 대체 왜 그게 그렇게 힘든지 정말 이해할수가 없었고,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정말 다들 행복하게 살고 싶을 텐데, 왜 이렇게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게 어처구니 없이 힘들어야 하는 지 납득할 수가 없다. 대체 언제부터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고 싶다-가 꿈같은 얘기와 동급이 되었는 지 모르겠다. 그런 것들이 다 토할것 같다 진심.

 

 

더이상 사교육 관련해서 돈을 벌기가 싫다. 좋은 대학 안 가면 얼마나 인생이 비참한지 그것을 가장 위협적인 언어로 설명하기가 싫다. 하지만 한 달에 나에게 들어가는 돈들을 셈해보면 대체 내가 그것말고 뭘 해서 먹고살 수 있을 지, 몇년전과 그닥 차이가 없는 각종 알바의 시급들을 보면서 힘이 쭉 빠진다. 집세는 몇년 전만 해도 허걱거렸을 가격들이 일반적인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이 되어서 있고 하루에 만원이상 안 쓰기는 생각보다 참 쉽지 않았다.

 

 

나는 막 방긋방긋 웃었다. 돈 생기면 또 들을거라고 웃으면서 발레 선생님한테 말을 했고, 막 미소지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몇년 전처럼 기절하지 않을까 계속 정신을 꼭 붙들어 메는 과정이었고 자동적으로 집으로 옮겨지는 발걸음만큼이나 너무 당장 내일내일이 막막하고 먹먹해서.

 

오늘은 꼭 상징 같아서 그게 너무 슬펐다.

살수 있을까 없을까. 잘 따져보면 가능할 것 같고, 또 따져보면 말도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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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9 00:39 2009/10/29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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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11/04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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