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1

2010/03/21 23:31 잡기장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 대학교때이거나 대학교를 막 졸업했던 때이거나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어느 날 엄마는 나를 거실에 불러 세워 놓고 집에 있는 내 그림 하나하나를 들어보이면서 버릴거냐 말거냐라고 묻는 선별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버릴 것으로 정해진 그림들은 그자리에서 바로 쓰레기로써 잔인하게 구겨져 쓰레기 봉투안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나의 가슴은 정말로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바보같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왜 그 선별작업의 부당함과 그 잔인함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을 까. 그 때의 나는 그런 잔인무도한 엄마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절대적으로 느껴졌었다고 밖에는 말을 못하겠다. 내 그림들은 자리를 차지하는 쓰레기고 가치가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 전제가 기본적으로 깔린 상황에서 나에게 의사를 묻는 것은 얼마나 또 잔인한가. 그 거실 벽에는 여기저기 빼곡히 오빠가 미국에서 한 디자인 작업들이 어설픈 칼라프린터로 뽑아져서 붙여져 있었다.

 

 

오늘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가슴이 터질것 같이 너무나 아파졌다. 저절로 눈물도 나버렸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 까. 생각해보면 정말 그 때의 나는 아무도 없었다. 학교도 집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이라고 뭐 그렇게 다르겠냐 만은, 그때는 기대도 많고 상처도 많고 그런 때였으니까.

 

그 때의 충격은 사실 그 당시보다 그 이후에 더 오래갔던 것 같다. 그 이후로 한동안 나는 내 작업들이 굉장히 무가치하다고 느꼈고 쉽게 없애버리곤 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것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누군가가 내 작업을 무시한다고 느껴지거나 막대한다고 느껴질 때면 불같이 화를 내게 되었다. 그 상황에 대한 것들의 대한 화와 과거로 인해 만들어진 내부의 깊은 화가 더해져서 나는 막 타오른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내 작업을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다는 것을 나는 그 사건으로 알았다.  

 

 

어쨌든 그 일은 정말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상처이다. 나는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 까 생각한다. 그와 비슷한 엄청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엄마는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만 한다. 나쁜 기억은 다 잊었다라고만 한다. 이런 생각을 찬찬히 하는 것은 사실 참 위험하다. 정말 죽이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상대방에게는 아무 해가 가해지지 않고, 나에게 다시 칼날같이 돌아와서 나를 괴롭히고 나를 우울하게 하고 결국 죽인 것은 내 자신임이 되게끔 한다.

 

 

너무나 잔인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 까.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잊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아름다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편리할까.

 

밤에 이런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정말 곤욕스럽다. 이런날은 잘못하면 밤새 엄청난 꿈을 꾸고 식은 땀에 쩔어서 아주아주 불쾌한 한기로 잠에서 깨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몇년 간 나 자신을 여러모로 위로하면서 잘 지탱하고 행복하게 살기위해 나름 노력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이 나의 불행과 나의 복의 무게를 달아보면서 최대한 내가 가진 것들에 눈을 돌리며 살기 위해서 노력했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나의 가족들은 나에게 그랬지만, 나에게는 친구들이 있고 그건 오롯이 나의 삶의 결과물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었다. 그리고 그게 나의 복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서 나를 지탱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상실감은 어쨌든 상실감이다. 부모에게 받았던 거절, 부모에게 받았던 감정적/신체적 학대는 사실 영원히 극복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안고 사는 거다. 모든 기억들이 그렇듯이 그냥 안고 사는 거다. 그 기억의 지독함의 정도에 따라 대강 살아지기도 하고 안 살아지기도 하고.

 

 

기억은 나를 습격한다. 가만히 있다가 아무 상관도 없는 맥락에서, 혹은 맥락을 눈치채기도 전에 확 뇌의 옆구리를 찌른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고. 그렇게 온전히 살아질 수 있을 것 같냐고. 나도 안다. 몇년 전보다 이런 습격에 나는 조금씩 나은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 해서 환영할 만한 습격이 되거나 그것에 아무렇지 않아 지지는 않는다.

 

 

오늘은 아마 호르몬 때문에 이러는 걸거다. 생리하기 전이라서 그러는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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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1 23:31 2010/03/2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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