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9

2010/03/29 22:08 잡기장

무슨말을 쓸까 하다가. 그래도 어쨌든 뭔가를 쓰고 싶어서 여기 왔다.

 

최진영이 자살했다. 최진실처럼 자살했다.

 

춤추러갔다가 이 얘기를 듣고 잠시 멍했다. 슬펐다.

 

 

 

죽음에 둘러싸인 기분.

그런 걸 느끼지 않았을까.

최진실의 아들 딸도 그런 기분을 느껴가겠지.

 

 

조카들을 봐서라도 살아야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차피 이런 문제는

조카 역시 남일 뿐이다. 얼마나 좋은 삶의 명분인가.

하지만 그 만큼 허망한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거다.

 

 

Primo Levi의 책을 보면 그런 얘기가 있다.

아우슈비츠에는 자살이 거의 없었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아이러니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라고 작가는 말했었다. 왜냐하면, 자살은 사유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제일 먼저 해야하는 것은 살기 위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작가는 글의 여기저기서 직간접적으로 말하곤 한다. 수용소 밖에서의 기억, 미래에 대한 희망, 그동안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들 등등에 대해서 사유하기 시작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빵 하나를 더 먹을 궁리를 해야지, 그런 사유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이러저러한 사연들을 가지고 가까스로 살아돌아온 사람들은 그때서야 자살을 한다. 자살은 사유의 산물이기 때문에.

 

웃기는 얘기다. 극심한 현재의 고통은 자살을 방지하고, 미래가 되면 현재는 과거의 기억이 되어 매일매일 찾아와 머리를 휘젓고, 결국 자살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내가 나의 부모처럼 미쳐서, 온몸 여기저기에 괴상한 병들이 퍼져 죽어갈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릴 때가 있다. 나의 부모가 그랬다 - 라는 것은 어떤 논리적 연결고리도 필요없이 그 자체로 나의 삶으로 연장되어 설득력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얘기가 된다. 혹시 최진영도 그랬을까. 막 살다가... 문득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자신의 누나와 같은 죽음을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어떤 숙명적인 운명적인 무엇이 사실 다 예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마음이 참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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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22:08 2010/03/2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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