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분류 전체보기'에 해당하는 글들

  1. 2010/04/05  못한다고 말했다.
  2. 2010/04/03  나는 하루 아침에 노인이 되었다.
  3. 2010/03/29  2010/03/29
  4. 2010/03/21  2010/03/21
  5. 2010/03/02  2010/03/02
  6. 2010/02/21  2010/02/21
  7. 2010/02/18  표류교실
  8. 2010/02/10  2010/02/10
  9. 2010/01/29  부러움
  10. 2010/01/28  많이 운다 (2)

못한다고 말했다.

2010/04/05 22:41 잡기장

Genthinerstrasse in Berlin after the War

1920 Lithograph

 

 

 

 

그것이 며칠동안을 울고 불고 고민한 뒤 뱉어낸 말이었다.

별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사실 너무나 마지막까지도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노력이 몸에 배어 있다. 사실 노력이라고 부르기 보다, 과잉에 익숙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대체 언제부터 못하겠다라던가, 중간에 무엇을 포기하거나 말을 번복하는 것을 이다지도 몹쓸것으로 자신에게 절대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고등학교때 따돌림을 당하고 복수하는 길은 공부와 다이어트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 처절하고도 지금 생각하면 그 진지함이 좀 우습기도 한 그 때부터 였을까. 어느 순간 바뀌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원래 나는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나는 일을 끝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속으로 혐오하곤 했었다. 책임감을 갖지 않는 것을 혐오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토록 혐오하던 일을 했다. 그래서 그게 그렇게 힘들었었나보다.

 

아니다, 잘 모르겠다. 그냥 이제 앞으로 어떡하지 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이 처음왔을 때, 그러니까 우울증을 앓은 지는 오래였지만 각종 가면을 벗고 그것과 처음 직면하기 시작했을 때는 그래도 이것저것 매뉴얼들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이렇게 두번째 태풍이 몰려오고 그것에 정면으로 강타당하다보니, 처음보다 더 큰 무기력이 몰려오는것 같다. 두번째가 주는 실망, 절망, 두려움, 지침에 대한 매뉴얼은 잘 보이지 않아서 너무 혼란 스럽다.

 

도서관에 가서 우울증이 주는 좋은 점들에 대한 책을 읽어보았다. 참 건방지게도 아는 내용들이었다. 인정하는 내용들이었다. 뭔가 억울한 듯도 하고, 한편으로 화가 나기도 한다. 1년이 전 생애를 놓고 보았을 때 긴 시간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내가 그 1년을 어떻게 보냈는데... 그 1년이 어떤 1년이었는 데... 물론 내가 완전히 그때로 뒷걸음질을 쳐서 돌아갔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절망스러운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삶은 풀어야할 일이 많은 걸까. 정말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것들을 마주칠까 인생에서.

 

 

나도 모르게, 두달 동안 이전의 태도로 돌아오려고 했을까. 그래서 내 정신이 나를 꽉잡고 앞으로 못 가게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하는 것일까. 아직 춤을 추는 것만큼 그림을 즐기지 못하니까, 좀 더 천천히 가라고 하는 것일까. 하루종일 각종 의문만이 머리를 채우고 답은 하나도 낼 수가 없었다.

 

 

그저께 노인의 몸으로 한강을 걸었을 때에도, 또 오늘도

새삼 너무 주변이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자동차가 너무나 빨라서 나는 실제로 걷고 있는 데도 뒤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무거운 지친 걸음이 그토록 느렸거나 주변이 그토록 빨랐다. 뭔가 속도에 대해서 감지했다. 나는 주변의 속도를 무시하기 위해서, 그런 훈련을 하기 위해서 다시 우울증으로 들어가는 걸까.

 

 

어렵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05 22:41 2010/04/05 22:41
─ tag 

나는 하루 아침에 노인이 되었다.

2010/04/03 22:28 잡기장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하다가, 나는 그냥 노인이 되었다.

 

얼마전에 14살때로 돌아가는 중년아저씨가 나오는 만화를 봐서 일까.

 

거기서와는 반대로 나의 영혼은 70-80세 노인의 몸으로 들어간 듯 했다. 발걸음이 말그대로 물리적으로 너무나 무거웠고 걷고 있는 것인지 끌려가는 것인지 알수 없이 느리게. 그렇게 걷지 않으면 몸이 버겨내질 못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몸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집에서 한강을 거쳐 돌아오는 그 익숙한 산책길을 그토록 오래 고통스럽게 걸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어느 순간 너무 힘들었지만 돌아가기에도 더 걸어가기에도 너무나 힘에 부친 그런 것. 그렇게 천천히 걷다보니 몸에서 열도 나지 않아서 꽁꽁 싸매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추웠다.

 

 

나는 다시 상담을 받아야할 것 같다. 몸의 모든 부위에서 느껴지는 근육통에 나는 그래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받으러 가게 될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상담을 받아야할 상태인것 같지만, 이번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정말로 삶이 죽음보다 나은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할말을 못찾고 있다. 정말로 진심으로 모르겠다. 정말로 삶은 죽음보다 나은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03 22:28 2010/04/03 22:28
─ tag 

2010/03/29

2010/03/29 22:08 잡기장

무슨말을 쓸까 하다가. 그래도 어쨌든 뭔가를 쓰고 싶어서 여기 왔다.

 

최진영이 자살했다. 최진실처럼 자살했다.

 

춤추러갔다가 이 얘기를 듣고 잠시 멍했다. 슬펐다.

 

 

 

죽음에 둘러싸인 기분.

그런 걸 느끼지 않았을까.

최진실의 아들 딸도 그런 기분을 느껴가겠지.

 

 

조카들을 봐서라도 살아야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차피 이런 문제는

조카 역시 남일 뿐이다. 얼마나 좋은 삶의 명분인가.

하지만 그 만큼 허망한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거다.

 

 

Primo Levi의 책을 보면 그런 얘기가 있다.

아우슈비츠에는 자살이 거의 없었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아이러니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라고 작가는 말했었다. 왜냐하면, 자살은 사유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제일 먼저 해야하는 것은 살기 위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작가는 글의 여기저기서 직간접적으로 말하곤 한다. 수용소 밖에서의 기억, 미래에 대한 희망, 그동안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들 등등에 대해서 사유하기 시작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빵 하나를 더 먹을 궁리를 해야지, 그런 사유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이러저러한 사연들을 가지고 가까스로 살아돌아온 사람들은 그때서야 자살을 한다. 자살은 사유의 산물이기 때문에.

 

웃기는 얘기다. 극심한 현재의 고통은 자살을 방지하고, 미래가 되면 현재는 과거의 기억이 되어 매일매일 찾아와 머리를 휘젓고, 결국 자살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내가 나의 부모처럼 미쳐서, 온몸 여기저기에 괴상한 병들이 퍼져 죽어갈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릴 때가 있다. 나의 부모가 그랬다 - 라는 것은 어떤 논리적 연결고리도 필요없이 그 자체로 나의 삶으로 연장되어 설득력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얘기가 된다. 혹시 최진영도 그랬을까. 막 살다가... 문득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자신의 누나와 같은 죽음을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어떤 숙명적인 운명적인 무엇이 사실 다 예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마음이 참 아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29 22:08 2010/03/29 22:08
─ tag 

2010/03/21

2010/03/21 23:31 잡기장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 대학교때이거나 대학교를 막 졸업했던 때이거나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어느 날 엄마는 나를 거실에 불러 세워 놓고 집에 있는 내 그림 하나하나를 들어보이면서 버릴거냐 말거냐라고 묻는 선별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버릴 것으로 정해진 그림들은 그자리에서 바로 쓰레기로써 잔인하게 구겨져 쓰레기 봉투안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나의 가슴은 정말로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바보같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왜 그 선별작업의 부당함과 그 잔인함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을 까. 그 때의 나는 그런 잔인무도한 엄마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절대적으로 느껴졌었다고 밖에는 말을 못하겠다. 내 그림들은 자리를 차지하는 쓰레기고 가치가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 전제가 기본적으로 깔린 상황에서 나에게 의사를 묻는 것은 얼마나 또 잔인한가. 그 거실 벽에는 여기저기 빼곡히 오빠가 미국에서 한 디자인 작업들이 어설픈 칼라프린터로 뽑아져서 붙여져 있었다.

 

 

오늘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가슴이 터질것 같이 너무나 아파졌다. 저절로 눈물도 나버렸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 까. 생각해보면 정말 그 때의 나는 아무도 없었다. 학교도 집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이라고 뭐 그렇게 다르겠냐 만은, 그때는 기대도 많고 상처도 많고 그런 때였으니까.

 

그 때의 충격은 사실 그 당시보다 그 이후에 더 오래갔던 것 같다. 그 이후로 한동안 나는 내 작업들이 굉장히 무가치하다고 느꼈고 쉽게 없애버리곤 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것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누군가가 내 작업을 무시한다고 느껴지거나 막대한다고 느껴질 때면 불같이 화를 내게 되었다. 그 상황에 대한 것들의 대한 화와 과거로 인해 만들어진 내부의 깊은 화가 더해져서 나는 막 타오른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내 작업을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다는 것을 나는 그 사건으로 알았다.  

 

 

어쨌든 그 일은 정말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상처이다. 나는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 까 생각한다. 그와 비슷한 엄청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엄마는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만 한다. 나쁜 기억은 다 잊었다라고만 한다. 이런 생각을 찬찬히 하는 것은 사실 참 위험하다. 정말 죽이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상대방에게는 아무 해가 가해지지 않고, 나에게 다시 칼날같이 돌아와서 나를 괴롭히고 나를 우울하게 하고 결국 죽인 것은 내 자신임이 되게끔 한다.

 

 

너무나 잔인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 까.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잊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아름다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편리할까.

 

밤에 이런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정말 곤욕스럽다. 이런날은 잘못하면 밤새 엄청난 꿈을 꾸고 식은 땀에 쩔어서 아주아주 불쾌한 한기로 잠에서 깨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몇년 간 나 자신을 여러모로 위로하면서 잘 지탱하고 행복하게 살기위해 나름 노력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이 나의 불행과 나의 복의 무게를 달아보면서 최대한 내가 가진 것들에 눈을 돌리며 살기 위해서 노력했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나의 가족들은 나에게 그랬지만, 나에게는 친구들이 있고 그건 오롯이 나의 삶의 결과물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었다. 그리고 그게 나의 복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서 나를 지탱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상실감은 어쨌든 상실감이다. 부모에게 받았던 거절, 부모에게 받았던 감정적/신체적 학대는 사실 영원히 극복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안고 사는 거다. 모든 기억들이 그렇듯이 그냥 안고 사는 거다. 그 기억의 지독함의 정도에 따라 대강 살아지기도 하고 안 살아지기도 하고.

 

 

기억은 나를 습격한다. 가만히 있다가 아무 상관도 없는 맥락에서, 혹은 맥락을 눈치채기도 전에 확 뇌의 옆구리를 찌른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고. 그렇게 온전히 살아질 수 있을 것 같냐고. 나도 안다. 몇년 전보다 이런 습격에 나는 조금씩 나은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 해서 환영할 만한 습격이 되거나 그것에 아무렇지 않아 지지는 않는다.

 

 

오늘은 아마 호르몬 때문에 이러는 걸거다. 생리하기 전이라서 그러는 것일 거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21 23:31 2010/03/21 23:31
─ tag 

2010/03/02

2010/03/02 00:40 잡기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02 00:40 2010/03/02 00:40
─ tag 

2010/02/21

2010/02/21 00:34 잡기장

우리집 골목길에 들어서면, 나는 뒤를 보다가 앞을 보고 비치는 재질로 된 건물에 내 그림자 이외에 다른 그림자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면서 그렇게 집까지 길지도 않은 그 길을 걸어들어온다.

 

그 길에는 실체가 없는 공포들이 있다. 기우일지도 모르고 현실적일지도 모르는 그런 갖가지 두려움들이 쭉 깔려있다. 하지만 그 중에 딱 하나 소름끼치도록 딱 떨어지는 실체가 있다. 그것은 작년 12월 11일부터 그 곳에 살고 있다.

 

기억의 습격이 거세질 때마다, 그 여자가 거기에 서 있다. 날씨는 엄청나게 바람이 부는 추운날이고, 그 여자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와 '대화'라고 하기에는 헛웃음이 나는 그런것을 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여자가 서 있다. 언제든지 기억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여기 니 자리는 항상 비워져 있다고.

 

 

 

얼마 전에 집에오는 길에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나도 모르게 집 근처 승용차 안에서 나를 살피는 눈길이 있지는 않은 지, 길가에 주차된 차의 운전자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집 골목에 들어서면 누가 날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신경 안 쓰는 척 하면서, 그냥 보통 여자들이 걱정하는 그런저런 이유로 낯선이들을 경계하는 척 하면서 나는 꼼꼼히 그러나 대충 외면하듯 주위를 확인한다. 낯익은 이를 발견하게 될 것에 마음을 대비시키면서.

 

 

작년 12월 11일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여자가 설령 매일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매일을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그 여자가 온 그 하루 때문에 나머지 삶을 망쳐서는 안된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2/21 00:34 2010/02/21 00:34
─ tag 

표류교실

2010/02/18 01:27 잡기장

 

 

한창 일본 드라마를 많이 보던 시절, 구보즈카 요스케 때문에 봤던 드라마가 있었다. 그게 표류교실 이라는 드라마이다. 내용이 정확히 생각나진 않는다. 지루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냥 어떻게 될지가 궁금해서 계속 참고 봤다. 결론이 뭘까가 궁금해서.

 

무슨 이유에선지 학교전체가 미래로 가게 되는 데, 그냥 굉장히 끔찍하고 황량한 미래여서 내내 우울한 드라마였다. 구보즈카 요스케는 거기서 뭐 좀 쿨하게 나오는 선생이었고, 꽃집 아가씨인가? 를 좋아했는 데 그 여자도 어쩌다 같이 미래에 놓이게 되었다. 학생들 몇명하고. 미래의 환경은 그냥 사막이었다. 자세한 것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괴물이 있어서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갔었다. 반지의 제왕처럼 정말 무기도 없고 대항수단도 없는 대책없는 애들이 괴물과 사막에 놓여있는 것이었어서, 그냥 마주치면 죽는 그런 식이었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이었나, 혹은 마지막 회였나에서 드디어 그 꽃집 여자가 구보즈카 요스케의 품에서 죽는다. 구보즈카 요스케는 죽은 여자를 안고 철철 울면서, 눈 앞에 있는 괴물한테 말을 한다. 긍까, 자기도 100% 곧 죽는 거다. 그 순간 그만하라고 했던가 부탁을 했던가 그런 류의 말을 한 후에, 구보즈카 요스케가 울면서 외쳤던 말은 "우리들은 약하단 말이야!!" 였다.

 

 

그 드라마는 쉬이 잊혀졌다. 그런데 그냥 그 말이 자꾸 생각이 나곤 했다. 그 때 그 대사에서 뭔가 많은 생각을 했었고, 또 지금도 하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얼마나 무력하고 기가 막힌가. 죽기전에 한 말이 앙탈 부리듯이 우린 약하단 말이야! 라니. 하지만 그 순간에 그것만큼 인간적인 외침이, 가장 설득력있는 외침이 뭐가 있을까. 그 당시의 내가 그 대사를 기억하는 건, 그것이 아마 계속 내가 외치고 싶던 말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약하단 말이다!

 

이렇게, 그들에게, 또 내 자신에게도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강한 척과 모든 이성을 거칠게 마구 내려놓고, 그냥 나는 한없이 약하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한 말을 그 드라마에서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하니까, 제발 살려달라고. 약하니까,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어제밤에 재정상태를 확인해보니, 이번달말까지 써야할 돈을 벌써 다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놀라서 왜 그랬지 하고 보니까, 뭐 그럴만했다. 머리도 망쳐서 다시 했고, 입원하면 돈 더든다길래 A형간염주사도 비싼데 맞았고.. 등등 또 이번달은 내 기억에 뭔가 스트레스가 증폭되어서 계속 맛있는 걸 먹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식재료비도 많이 쓴 것 같고.. 아무튼 그랬다.

 

걱정 좀 하다가 하루종일 집에서 Criminal Minds를 보면서, 요새 한창 하고 있는 목판화를 파냈다.  온 집안이 나무가루로 난리가 난 상태고, 덕분에 기침도 좀 나고. 그래도 이거 뭐 다 끝나야 치우니까 우선은 방치해 놓고 작업을 하고 있다. 근데 막 그러고 있다가 생각해보니 뭔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있는 드라마도 그렇고, 그걸 보면서 하루종일 조용히 칼을 들고 부모가 목을 조르고 있는 그림을 파내고 있다는 건 정말 변태적인 일이었다. 누가 보면 소름끼치겠다 싶었다.

 

어제는 재정상태를 확인도 안하고, 아직 정신이 불안정하니까 다시 춤을 매일 추자! 라고 생각했는 데, 뭐 안되게 됐다. 근데 그러면서도 카드로 그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오늘 같은 하루를 보내는 나는 분명히 굉장히 정신적으로 큰 위협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하루종일 그 때에 관련된 그림들에 둘러쌓여서 그런 그림들을 계속 생산하고 있으니,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 그 일을 자극 받고 부모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마비상태에 익숙한 내가 정말 괜찮은지도 계속 혼자 체크해가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요새 정신적 안정을 취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거쳐야할 과정이니까, 그렇게 하나하나 파내 가는 것이다.

 

 

아까 그냥 나무판 막 파다가 정말 뜬금없이 표류교실과, 구보즈카 요스케와, 그 대사가 떠올랐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2/18 01:27 2010/02/18 01:27
─ tag 

2010/02/10

2010/02/10 03:39 잡기장

언제부턴가 매일 루시드폴 노래를 듣는다. 몇 개 좋아하는 노래가 있지만, 보통은 그냥 전곡이 들어있는 폴더를 랜덤으로 돌린다. 걸어다니면서도 듣고, 까페에서도 듣고, 책을 읽을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멍하니 있을 때도 듣는다.

 

그렇게 듣다가 순간순간 그 목소리가 그 톤이 그 멜로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오늘은 문득,

벽에 붙여놓은 내그림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가슴을 이 정도로 후벼팔 수 있는, 그렇게 소용에 닿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까.

 

Edvard Munch 

 

서경식씨의 책을 읽다가, 거기서 잠깐 나왔던 아우슈비츠 출신의 어떤 지식인이 많은 희망의 메세지를 전했지만 마지막은 자살이었다는 얘기를 보았다. 거기서 작가의 죽음의 느낌에 대한 얘기가 정확하진 않지만, 뭔가 내려놓았구나 라는 것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 부분 전체가 참 가슴에 절절히 남았다.

 

그토록 기억은 무서운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아무리 오늘 하루가 희망차고 즐거웠더라도 기억은 그냥 습격하는 것이다. 예고 없이 문득 그냥 습격 당하는 것이다. 아무리 에너지가 차고 넘쳐도 항상 그 습격에 맞설 에너지를 비축해두지 않으면, 곁에 있던 죽음이 훅 하고 덮치는 것이다. 오랜만에 케테 콜비츠의 판화를 보면서, 이 사람에게 죽음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하면서, 그 죽음의 기운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Edvard Munch

 

 

 

한때 미국 드라마나 영화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뉴욕 얘기가 나오면 진저리가 났던 적이 있었다. 특히나 거의 동경이거나 화려함의 상징으로 등장하기에 그 모든 은유까지도 견디기가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모두가 좋은 추억을 만들고 꿈을 꾸어대는 그런 곳에서는 절대로 나쁜 기억 같은 것을 만들면 안되는 것이구나.

 

 

오늘 발레를 마치고, 간만에 산책에 나쁘지 않은 날씨와 공기 속에서 나는 또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것이 진실이든 나의 과민반응이든, 세상에는 너무 엄마와 아빠에 대한 얘기가, 가족에 대한 얘기가 너무나 많아서 나쁜 기억 같은 것을 만들어서는 안되었던 거구나. 그러면 무조건 지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새는 전부터도 요즘도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에 대해서 자주 떠올려보곤 한다. 그들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보다 훨씬 더 자주 강도높은 기억의 습격을 받았을 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살 생각을 했을까.  그냥 갑자기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억을 재빨리 머리를 흔들어 쫓는 시늉도 많이 해봤겠지. 그냥 그 기억이 덮치도록 내버려두기도 하고.. 사실 기억에게 덮쳐지는 기분이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착각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덮쳐짐은 뼛속까지 괴롭기도 하지만, '엄마의 품속' 처럼 편안하고 부드럽기도 하다. 거기가 더 익숙한 공간이기에, 그 동안의 저항과 발버둥은 얼마나 부질없었는 가를 촉각적으로 확인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냥 그 침잠이 반가울 때도 있는거다. 이제 내 자리 찾은 것 처럼 막 반갑기도 한거다.  희망의 메세지 만큼 낯선 것이 또 있으랴.

 

Edvard Munch

 

오늘도 이렇게 흘려보내버려도 되는 걸까 아무것도 안해도 될까 하는 죄책감.

나는 그냥 기억과 싸우는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자기 정당화, 어쩌면 진실, 어쩌면 과도한 자기연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2/10 03:39 2010/02/10 03:39
─ tag 

부러움

2010/01/29 03:04 잡기장

작년 가을이었던 것도 같고 재작년 가을 같기도 하고... 아마 재작년이었을 것이다.

 

한 부잣집 아줌마의 영어과외를 맡을 뻔했다가, 그 아줌마의 진상만 보고 교통비만 날리고 끝난 적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자기가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며 병실로 오라고 해서 좀 황당했는 데, 가서 보니 그냥 어떻게 가만히 고생 없이 영어를 늘게 만들어내라 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과외 장소로 자신이 헬스를 하는 서울 시내 호텔의 1층 커피숍,  혹은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일마레 라는 파스타집이 어떻겠냐는 둥의 이야기를 했었다. 나보고 교재를 복사해놓으면 기사가 찾으러 갈 거라는 얘기도 하고.

 

 

이 밤 중에 캔버스 천을 자르다가 문득 그 아줌마가 생각났고, 엄청나게 부러워졌다. 그 아줌마는 디스크때문에 도우미 아줌마도 2명이나 쓴다고 했었다. 그 아줌마가 가진 돈은 얼마나 될까. 부럽다.

 

 

한 때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었다. 그게 다 빚인데, 왜 그런걸 쓸까했다. 학원 일 할때도 카드 값때문에 일을 관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진짜 이해가 안갔다. 그 사람들은 다 사치, 낭비 하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도 생각했었다. 참나.

 

 

오늘의 커피도, 오늘의 저녁도 카드를 그어대면서

다음달 걱정보다 당장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걸 하고야마는 나를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그 아줌마가 격하게 부러워졌다. 잘 살고 있겠지.

 

<휘트니비엔날레 2008 작품... 작가 모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29 03:04 2010/01/29 03:04
─ tag 

많이 운다

2010/01/28 23:21 잡기장

나는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작년에도 정말 많이 울었었다.

 

근데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건 그렇게 어떤 감정으로 우는 게 아니라, 그냥 우는 걸 말하는 거다.

 

 

나는 조금만 춥거나 바람이 불면 펑펑 운다. 진짜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이 그러듯이 거짓말처럼 눈물이 눈에서 한방울 두방울 마구 흘러내린다. 장갑 낀 손이나 코트 소매로 훔쳐도 그렇게 잘 흡수되진 않는다. 가끔 길에서 이럴 때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나중에 그 때 혹시 울고 있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오늘도 그래서 펑펑 울었다. 나중에는 눈물 닦기도 귀찮아서 그냥 울면서 마구 걸어버렸다. 중고등학교때 다니던 화실 선생이 내 얼굴을 그려주면서 항상 눈이 젖어있다고 했던말도 기억했다. 누가 나한테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했었는 데 그게 눈물 때문이었겠구나 생각도 했다.

 

 

어쩔 때는 마비 상태에 익숙한 내 자신이 날씨를 핑계삼아 이렇게 속에 있던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울고 울고 또 울고.

 

 

 

시멘트 가든을 고민하다 결국 구입했고, 이틀동안 다 읽었다. 힘들었다. 읽는 내내.

왜 힘들었는 지는 막 논리적으로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읽다가 까페에서 눈물이 올라오거나 나도 모르게 강아지들이 내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서 혼자 깜짝 놀라곤했다. 그래서 그랬는 지 오늘은 하루종일 근육통에 시달렸다.

 

 

나는 아마 다시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저번주에 추후상담을 포함한 모든 상담을 종결한 이후로, 나는 너무나 혼자라는 생각을 한다. 외롭고 슬퍼서. 더 사랑받고싶어서, 사랑이 부족해서 이렇게 외롭고 슬퍼하는 중이다.

 

 

요즘들어 하루종일 하품을 한다. 계속 잠이 온다. 충분히 자고 있음에도 더 더 더 자고 싶다. 나는 아마 무척 우울한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28 23:21 2010/01/28 23:21
─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