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이는 잊어버리세요!

어머니, 나이는 잊어버리세요!

  

 카네이션 꽃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다가오는 어버이날을 맞는 거리의 모습이다. 특히 전철역이나 동네 초입에는 꽃을 파는 가판대가 분주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들이 형성해 놓은 5월의 기호들이 지금 철을 잊지 않고 목청껏 깜빡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잊고 지내던 기억이 솟아나고 가라앉았던 생각이 다시 일어난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인정의 끈은 이처럼 서로 화답하며 이어지는 것인가 보다.

 

덩달아서 해마다 이만 때쯤이면 나에게도 크고 작은 감회가 뒤따르고 나부낀다. 공교롭게도 바로 얼마 전에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을 찾아뵈었던 차다. 귀향의 잔상은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나를 뒤따르고 있었다. 이와 함께 1호선 대방역사 안에서 맞닥뜨린 꽃집은 특히나 강한 인상으로 다가 왔다.

  

그날은 김광수 경제연구소에서 주최하는 10주년 기념세미나가 있는 날이었다. 장소는 전문건설인회관이었다. 제 시간에 도착해야하는 것에 여부가 있겠는가. 공동대표로서 맡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지 않게 도착해야한다는 생각만을 앞세운 채 걷고 있었다. 그러니 목적지를 향한 다급한 발걸음만을 내디디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빨리 2번 출구를 찾아야지.”하며 움직였다. 그런데 역사 안에 있는 꽃집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꽃 잔치가 또 있을까?’ 꽃바구니와 꽃다발이 층을 이루며 놓여있고, 코사지로 만들어진 카네이션도 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안되겠다 싶었다. 잘 살자고 사는 세상인데, 이곳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지도 못하고 목적지만을 향해서 또닥거리며 가는 난 뭔가 싶었다.

  

걸음을 멈추고 “이 꽃 얼마에요?” 하고 물었다. 지나가던 젊은이들도 덩달아서 관심을 보였다. 한 사람의 멈춘 발길은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꽃집은 사람으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이 틈에 꽃 한 송이를 사들고 역사를 빠져나왔다. 역사 밖에도 꽃을 파는 좌판이 꽤나 여럿 눈에 띄었다.

  

아하! 5월이구나!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석가탄일이 들어있는, 5월이구나. 이 순간 5월의 꽃들은 귀향의 잔상에 힘겨워하는 내게 잠재의식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먼저 어머니의 모습이다. 오래 전에 군산을 떠나온 후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게 찾아가는 귀향이었다. 물론 어머니는 서울 나들이를 겸해서 아들, 딸네 집을 자주 오셨다. 그러니 1년 내내 어머니의 얼굴 한번 못 보고 지낼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 같은 패턴도 바뀌기 시작했다.

  

전에는 그렇게 어머니가 서울 나들이를 자주 하셨을망정 지금은 아니다. 어느덧 고향에 칩거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어머니 역시 세월과 나이는 속이지 못하고 그리도 처연하게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수순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푹 쉬고 월요일에 갈 거지?”

“어머니, 저 겸사겸사 왔어요. 오늘 밤밖에 못 자요. 낼은 전주에서 볼일 봐야 돼요.”

 

딸이 찾아 온 것은 금요일 오후다. 딸애가 주말은 이 어미랑 같이 보내주겠지. 오늘은 저녁 먹고 이야기나 하자. 그리고 내일은 같이 꽃구경 가고, 일요일에는 성당에 가는 거다. 나란히 앉아서 같이 미사를 보자. 그 다음부터는 딸네미가 일찍 떠나든 조금 늦게 떠나가든 상관 안 할란다. 이런 어머니의 희망사항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볼일 보러 온 김에 들렸다 하지 않은가?

  

“볼일 보러 왔다고?”

“네에~ 안 뵈면 서운하니까 들린 거예요.”

“그렇구나........”

“낼 은파로 가실래요? 공원부터 가실래요? 일찍 서둘러서 꽃구경 가요.”

 

         

 

며칠 전에는 눈까지 내렸단다. 해변 바람이 유명한 곳이다. 금강이 도도히 흐르는 항구 도시 군산, 쌀쌀한 바람기를 도시 가득 품고 있는 4월이었다. 변덕스런 날씨와 황사바람이 특징인 곳이다. 거기다가 전국적으로 유난히 긴 봄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올 봄 날씨 말이다. 이런 추위 속에서 우리 모녀는 꽃구경에 나섰다.

 

어머니는 40여 년 전부터 자가용, 어머니 문자로는 승용차를 타던 계층이었다. 같이 길을 나서는 것도 오랜만이려니와 길을 가면서 그놈의 승용차 타령을 또 하면 어쩌나 싶었다. 마음이 살짝 불안해졌다. 이것이다. 내 맘 속에 어머니가 불편한 이유는 늘 이런 것이었다.

 

“내 몸 상태로 봐서는 누가 승용차를 척~ 대기시켜 놓고 꽃구경이든 강구경이든 해야 맞어.”

‘어머니, 장수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사는 날까지 그저 내 발로 돌아다니시는 분들이래요. 걷는 것 좋은 일이에요! 천천히 감당이 되는 속도로 걷고 또 걸으셔야 해요.’

  

“남도 아니고, 딸인데 좀 어떠냐? 이야기 좀 하고 살자!”

“딸이니까 더 문제예요. 남 얘기라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릴 수도 있어요. 근데 어머니가 당한 일이다보니까 이 딸의 가슴이 쓰리고 아린 거예요.”

 

같이 살고 있는 아들 내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며,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차편이 마당하지 않다는 얘기, 이런 거, 안 들으면 몰라도 들으면 신경 쓰이고 속상한 거 투성이다. 어머니의 걱정과 푸념이 내게 전염될까봐 경계심부터 앞선다. 어머니와 부딪치는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은파유원지에서 내렸다. 벚꽃이 만개하다 못해서 앞섶을 풀어 헤친 풍장 꾼처럼 절정의 신명을 풀어내놓고 있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꽃비라고 했던가. 비교적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얘 저거 봐라! 꽃은 이쪽이 더 좋아!”

라이온스 클럽의 회원이던 아버지랑 같이 승용차를 타고 철철이 꽃구경하시던 어머니였다. 그 때 봐뒀던 눈썰미로 꽃이 탐스러운 쪽을 가리키며 어머니가 말했다.

 

여기서 잠깐 군산 이야기를 하자. 군산은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벚꽃 이야기를 하자면 아주 길다. 군산의 벚꽃 이야기는 일제시대 까지 거슬러 가야 하니 말이다. 그 당시에 군산은 드물게 계획된 신도시로서 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시내 곳곳에 벚꽃이 심어졌다. 여기다가 70년대에는 백리나 되는 전군도로(전주~군산)의 가로수를 온통 벚꽃 길로 조성하게 되었다. 덕분에 해마다 봄이 되면 전군도로 백리 길마저 온통 꽃 천지였다. 황홀하게 핀 벚꽃사태로 흥겨운 도시 그것이 군산이었다.

  

군산공원이며 은파유원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특히나 공원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툭하면 달음박질 쳐서 올라가 놀던 곳이 벚꽃동산이었다.

 

호수와 어우러진 은파유원지도 물안개 속에서 갖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호수 가에 벚꽃이라? 자연히 내 걸음은 빨라지고 있었다. 걷고 싶었고 호수가로 다가가고 싶었다. 어머니를 돌아보니 벤치를 찾아서 덥석 앉으시는 것이었다.

 

“어머니? 왜 안 걸으세요?”

“여기서도 잘 보인다. 나, 앉아서 그냥........ 사람 구경이랑 이것저것 할게.......”

“그럼, 저어~기까지......., 전 좀 걷다가 올게요.”

 

          

 

 보폭을 정리하며 발을 뻗었다. 순간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바람에 나부끼며 떨어지는 꽃잎을 머리위에서 맞게 되었으니 맵맴거리며 돌고 싶어졌다.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한 장면 찰칵, 어머니에게 사진 한 장 찍어드려야지 싶었다. ‘어어?’ 그런데 도시 반기는 것 같지가 않다. 얼굴도 들지 않으신다. 사진 찍기 좋아하고, 나들이 좋아하시는 어머닌데...... 셔터를 누르는 걸 알면서도 왜 저러실까? 한참 동안 기다려도 여전히 그냥 계신다.

 

봄볕에 몸단속을 잘도 하셨다. 모자 쓰고, 장갑 끼고, 추울까봐 가볍게 숄까지 두르셨다. 나를 보시더니 어서 걸으라고 손짓을 하신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다시 숙이고 생각에 잠기는 모양새다. 그러고 보니 예전과 달라 보인다. 힘이 없어 보였다. 어깨를 축 쳐지게 늘이고 그저 앉아계신다. 뒷걸음질 치면서 어머니를 다시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호수 한 바퀴를 날을 듯이 금방이라도 다 걸을 것 같았는데, 왠지 걸음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자꾸만 어머니 쪽으로 고개가 간다. 햇볕을 즐기며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이다. 온 몸을 이완시키고 있는 벤치위의 어머니, 편안해 보여서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냥 그렇게 계시라고 비켜줘야 할 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왔다. 헌데도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고 밟혔다. 시시 때때로 내 곁에서 맴돈다. 그때 마다 애써 무시하며 지냈다. 그러나 보자. 다시 생각해보자. 군산을 찾아가서 어머니를 만난 그 잔상이 왜 나를 놓아주지 않고 내 곁에서 서성거리는 거야.

 

그때 나는 어머니 곁에 다가가 앉지 않았다. 어머니 혼자서 따스한 햇볕을 마음껏 즐기시라는 이유였지만 알고 보면 은근슬쩍 어머니와 거리를 두는 행동이었다. 그래,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어머니 그러네요. 이제와 생각하니 꽃구경이니 산보니 보다 어머니 곁에 다가가 나란히 앉았어야 했어요. 그 봄볕을 같이 맞고 어머니가 하시는 몇 마디 말에 다소곳이 귀를 기울여 줬어야 하는 것이었어요. 전 어머니의 소박한 바람을 외면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거예요.’

 

그러나 어머니, 마음을 다해 말할 게요. 봄날이 어머니의 어깨위에 걸쳐 있네요. 그것은 오랜 세월의 겹인가요. 그러니 어머니, 저랑 같이 은파 유원지를 찾은 그날로 돌아가서 말하겠습니다. 나이는 잊으시고 아름다운 꽃그늘 밑에서 봄볕을 만끽하셨기를 바랍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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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13:21 2010/05/1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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