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교수의

뜨끔한 우리역사 강의, ‘시련과 발 돋음의 남북현대사’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월간지 ‘작은책’에서 주최하는 특집강좌가 있었다. ‘시련과 발돋움의 남북역사’라는 주제로 열리는 동국대학교 강정규교수의 강좌였다.

  

말로만 듣던 노교수의 강좌가 내 평생 이제야 눈에 띄었다. 전철만 타고 가면, 들을 수 있는 강좌인데, 그런 일도 못하면 되겠냐 싶었다. ‘행동하는 양심’을 위해 넌 이제까지 뭘 했지? 어서 집을 나서자. 재촉 아닌 재촉을 불쏘시개 지피듯이 스스로 지피면서 나선 길이었다.

 

아자, 힘을 내자. 용기를 내어라, 발걸음을 떼어라. 이렇게 나를 북돋우면서 합정동에 있는 ‘작은책’으로 달려갔다. 강좌가 열리는 회의실은 건물 2층이었다. 마침 계단에서 강정규 교수님을 만났다. 두 손을 모아서 깊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강정구 교수는, 남북문제에 깊이 천착하면서 막강한 권력들을 향해서 올곧게 바른말을 해대는 우리 시대 최고의 진보학자다. 나의 인사는 이런, 강정구 교수님께 내 나름대로 드리는 최소한의 예에 지나지 않았다.

 

 검정 바지에, 맥고모자와 허리까지 오는 패딩 잠바차림이었다. 잠바를 벗으니 곱게 누빈 개량 한복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보였다. 흰머리, 웃음 띤 얼굴이 트레이드마크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요즘 이런 강좌에 사람 잘 안 모이는데요, 여긴 많이 왔군요.” 강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운을 뗐다. 지금 새해가 시작됐잖아요. 경인년, 호랑이해죠. 그중에서도 60년 만에 한 번 씩 돌아오는 백호란 말이지요. 이래서 각 매스컴에서는 꺽어지는 해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기사를 많이 쓰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입니다. 분단 65년째가 되는 해이고요. 6.25전쟁은 60년 환갑의 해고요. 그럼 우리도 2010년 경인년, 백호의 해를 맞아 역사적인 의미를 한번 짚어나갑시다.

 

자료로 묶여진 종이는 5장이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확인해보니,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된 채 65년이 흘러간 지금까지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난마 속 같이 복잡하고, 어구 망창하고 서러워서,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정리하여 머리속에 담아둬야 한단 말이냐 싶어, 피하고 자조하며 돌아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게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의 역사였다.

 

 그런데 너무도 간단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내 나라 역사에 대해서, 그것도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역사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잘된 자료였다. 참고로 부연하자면, 단 한글자의 오, 탈자도 없었다. 터무니없이 길거나 늘어지는 어투로 노가리 풀듯이 해 논 부분도 없었다. 지루한, 철지난 역사를 단순 나열한 그러한 내용이 전혀 아니었다. 진보학자에 대한 신뢰와 ‘자기 분야에 대한 정성이 이렇듯 대단하구나!’하는 경의와 신뢰가 보태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역사는 시련의 역사냐? 아니지요. 환희와 발 돋음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현대사는 시련의 역사, 맞지요. 그런데 시련으로만 끝난 것은 아닙니다.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시련과 환희, 발돋움이 보태지고 있는 역사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가 겪은 시련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다시 우리를 가다듬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흔히들 올해가 경술국치 100년이라고 하지요? 일제 침탈이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형식적인 절차를 갖춰서 사실 상 완성된 것은 1910년이에요. 사실, ‘청일전쟁’이니 ‘러일전쟁’이니가 어디서 이루어졌습니까? 기가 막힌 일이지요. 바로 남의 나라끼리 하는 전쟁이 우리나라 땅에서 이루어졌답니다.

 

 저 어릴 적 초등학교, 아니 중학교 때도 그랬지만,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것은 대원군의 쇄국정치라고 했습니다. 이야말로 서구역사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된다는 이야기죠. 조선시대 말기는 세도정치가 극에 달하던 시대가 아니었던가요. 대원군은 세도정치를 물리치면서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대원군처럼 왕권을 강화하면서 서구의 침략에 좀 더 현명하게 대비했더라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그렇게 흘렀겠는가.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 많습니다.

 

 우리 역사상 자주적인 시도가 크게 두 번 있었습니다. 그것은 갑신정변과 갑오 동학 농민 혁명인데 갑신정변은 위로부터 시작한 혁명이었고, 동학혁명은 아래로부터 시작된 혁명이었습니다. 이를 진압하려고 불러들인 것이 외세입니다.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지요. 왕이 제 나라 백성을 제압하려고 외세를 불러들인 것이지요. 이로 인해서 조선 땅은 황폐화되었고, 외세의 각축전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그친 후부터는 일본의 독무대가 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왜 그런지 아십니까? 미국과 일본은 ‘테프트 가즈라’라는 밀약을 맺어 조선의 일본 식민지화와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화에 합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남한에는 외국군이 주둔해오고 있습니다. 그게 무려 115년째입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는 11번의 전쟁위기와 한번의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외세가 강제한 냉전분단체재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 번의 큰 전쟁인 6.25는 해방 5년 만에 미국과 소련과 중국이 각축을 벌였던 전쟁이었습니다. 꺽어진 해에 의미를 둬서 좀더 역사적인 것을 더 말하자면, 경인년은 북미 핵공방 20년이 되는 해이고, 6.15남북공동선언 10주년이 되는 해가 됩니다. 잘 아다시피 6.15남북공동선언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 55년 만에 김대중-김정일이 주도한 민족의 자주적인 쾌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뒤를 이어 노무현의 10.4평화번영선언으로 구체적인 통일 터 닦기에 진입하였고 이 결과는 10.12 ‘북미공동성명’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체제와 비핵화 수립과 북미수교에 합의로의 초석을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럼 여기서 북미 핵공방 20년에 대해서도 좀 더 자초지종을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한반도에는 4차례의 핵 위기와 5번의 전쟁위기가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일방적인 협정파기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이유가 작용했던 것이지요. 약속 불이행은 미국이고, 북한이 20년 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는 것은 체재보장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언제든지 비핵화를 수용한다는 공약이었어요.

 

그럼 이명박 2년의 민족문제는 어떤가 하면, 지금 남북관계는 완전히 파탄상태라 할 만합니다. 6.15선언과 10.4공동선언은 사문화 되고 있거든요. 통일은 외세와의 야합으로 흡수통일을 천명하고 있는 걸 뉴우스를 통해서 접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너나 없이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 현 국제 정세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남북문제 이대로 좋은 건지요?

 

나머지는 제 2편에서....이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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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5 22:36 2010/01/2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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