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께!

 

 

안녕하세요?

태초이래로 빛이 있는 낮 동안에는온 세상 만물이 자기 색깔을 지니고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범주에 속해서 살고 있는 세상 식구들 중 하나이고요.

 

박노해 시인님은 평화운동가로서 중동의 각 분쟁지역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이번 전시를 통하여, 흑과 백의 빛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사진을 보면서 '안개가 한겹 낀....

그 장막을 걷어내고 싶은' 답답한 기분을 느꼈어요.

 

왜 작가는 훅백으로만 보여주려할까? 현장은 제각기 고유의 색을 함유하고 있을 텐데....

'나는 다른 색도 보고 싶다. 

 

저 사진이 찍힌 현장은 그 때 어떤 색을 하고 있었을까하는

당연한 궁금증 앞에서 그런 것을 느낀 거지요....

 

삼라만상이 색인데, 칼라를 보여주려 애 쓰는 것은,

사물이 가진 고유의 색을 보여주려하는 본연의 노력일텐데 하는 생각요. 

 

기존의 여느 사진작가가 자기가 찍은 사진작품을 목적하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모든 색을 제껴버린 채 흑과 백 회색으로만 대상을 제한한 사진을 보여준 것이라면

이번에는 이렇구나.. 저러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박노해님이 보여주는 사진은, 폭격 맞은 까나마을, 쿠르디스탄,

레바논 남부의 헤즈블라 지역, 등 전쟁과 공포가 극명하게 존재하는 지역입니다.

 

비록 이런 곳이 아니라할지라도, 빛가운데 보여지는 삼라만상 그 어디가 제각기

자기 색깔 없는 곳이 대체 어디 있을까요?

 

총탄세례를 무수히 맞아 곰보가 되어버린 벽도 그 벽만의 역사와 삶을 담고 있는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겠지요.칼에 찢긴 헤즈볼라 깃발이라 할지라도 깃발만의 색깔이 있는 거구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흑과 백 나아가서는 회색으로만 재단되어 보여진다는 것에저는 

왠지 눈에 잔뜩 낀 안개처럼 무엇이 자꾸 가리고 있는 마음이 드는 것이었어요. 

 

이 것들을 색으로 표현했다해서 가볍거나, 고차원적인 미학이 부족하다고 생각진 않아요.

순간과 현장성과 그 찰나의 고유성이 있기에 작가도 현장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일 거구요.

저는 나눔문화에서 벌이고 있는 평화운동에서도 문외한이라 잘 모릅니다.하여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그

 

곳의 연구원이나 회원들에 비해서 이해가 부족했고요.잘 모르는 중동지방에 대한 상식을 넓혀야 되겠다 싶어서 사진 보다는 박노해님의 생각과 현장에 대한 설명이 문자로서 표출된 글자가 많은 책을 일부러 골라서 구입했고요.

 

웬지 힘들고 편치 않았던 사진을 볼 때 보다는 개인적으로 책이 더 편했고,

원하는 정보를 더 얻어서 다행이었답니다.

 

많은 분야에서, 인류는 1970년 대 쯤에서 거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말씀에는저도 동의합니다.

그같은 맥락에서 카메라에 대해서 한마디 의견을 더 말하려 합니다.

 

사진기가 어떤 상을 찍어낼 수 있는 만큼만 발전했을 때는 그 시대에서 일단은 어쩔 수

없었겠지요.다시 말해서 삼라만상에는 상 뿐만 아니라 수많은 색으로도 이루어졌는데....,

 

카메라 기술의 미 발달로 인해 상만 볼 수 있는 촬영기술 밖에 없었을 때는

어쩔도리가 없었겠지요. 그게 그 당시의 한계점인 거지요.

 

그러나 칼라 사진기의 발달로 사물을 칼라로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사물의 본 모습을 볼게 상을 찍을 수 있고, 나아가서는 사물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칼라까지도 푠현할 수 있는 칼라 사진기술의 발명은 표현과 재현의

발로로서의 좋은 발명이요. 자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원한 발명이라고 봅니다.

 

삶의 고뇌가 묻어있는 칼라로서 원초적인 색깔의 위대성을 제 대신

그 현장에서 보았던한 시인을 통해서 보고 싶었던 겁니다.

 

긴 설명 필요없이, 옷 입은 거, 갓구운 노릿한 빵의 색깔, 머리모습,

포탄 속에서 부서져야만 했던 허물어진 담장의 얼룩 등등 삶의 고뇌가

묻어있는 흔적을 즉 색깔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적으로 더 잘 전달되려면 칼라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이는,

사진이 사진으로서의 제 몫을 좀 더 잘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 생각했고요. 

 

그 순간, 그 찰나, 그 현장의 칼라는 무엇이었을까? 궁금증이 드는 것이었어요.

작가는 10여년간 평화운동가로서 분쟁지역을 누비면서 현장의 색깔을 수없이 봤을 텐데

우리에게는 왜 흑과 백, 회색으로만 보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상황을 잘 전달하려면 더더욱 칼라일 수 밖에 없고모든 상황과 그 현장만이 가지는

칼라가 무시된 흑과 백과 회색을 통해서 만 봐야한다는 것에 대한 도무지 불편하고

갑갑한 감정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사진기를 누를 수 밖에 없었던 그 순간,

그현장이 뿜어내고 있는 바로 그 색깔을인,다양한 빛을 가진 사진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혹시 다시 한번 사진전에 들리게 되면 박노해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 광야여 영원하라

샬롬,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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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10:41 2010/01/2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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