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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시장 폭등의 정치경제학

참세상 칼럼으로 실린 글입니다.  참세상 블로그이지만 글을 모아놓는다는 차원에서 다시 옮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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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폭등하고 있다. 올들어 무려 37%가 올랐고, 멀게는 아이엠에프 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종합주가지수가 279선까지 떨어졌다가 이제 2000선을 넘보고 있으니 그 때에 비하면 거의 7배로 올랐고, 보다 가깝게는 2003년 500선을 기준으로 하면 거의 4배가 올랐다. 물론 그 사이 99년 2000년의 코스닥 시장에서 엄청난 거품이 만들어졌다가 꺼지기도 하였다.

사실 주식시장의 폭등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중국, 태국, 터어키,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시장’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고, 미국 증시도 상승률은 덜하지만 대형우량주 30개 종목 지수인 다우지수가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가히 세계적인 현상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이런 증시폭등은 한국에선 대선을 앞 둔 시점에서 정치쟁점의 하나가 되고 있기까지 하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에 대해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왜 실패했느냐, 증시가 이렇게 좋은데 실패는 무슨 실패냐는 등의 항변을 하고 있다. 증시폭등을 ‘참여정부’ 비판에 대한 반비판 재료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증시폭등이 ‘좋은 경제상황’의 지표나 되는 것처럼.

이 같은 주가상승이 이후에도 지속될까? 이에 대해서는 ‘주가는 신도 모른다’, ‘주가의 향방을 점치는 것은 술 취한 사람의 다음 발자욱이 어디로 내디딜 것인가를 맞추는 것과 같다’는 속설을 소개하고 싶다. 이후 주가가 얼마만큼 오를 것인가, 언제 내릴 것인가에 대해서도 유사한 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관심사는 아닐 것이다.

주가가 너무 높게 오르고 있다고 때때로 경고를 하는 대가들의 ‘주가거품론’도 그 정확한 시점을 짚어내지 못하기는 매 한가지다. 미국에서 90년대 후반 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었는데 로버트 쉴러라는 교수는 97년에 다우지수가 7000선이었을 때 미국증시를 “비이성적인 과열”이라 경고를 해 유명해졌는데 다우지수는 그 뒤에도 한참 오르다가 2000년 1,1700 선에 가서야 하강하기 시작하였고, ‘경제대통령’이라는 별칭이 붙었던 미 연방준비제도위원회 의장(한국은행 총재 격)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경우는 주식시장의 거품을 이야기하다 주가가 계속 오르니까 ‘신경제론’에 지지를 보내 주가상승을 정당화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가가 진짜 폭락을 하기도 하였다. 즉 주가가 거품인지 아닌지는 거품이 꺼진 뒤에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민중들의 삶은 고용도 불안하고 임금도 잘 오르지 않아 이렇게 팍팍한데(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보라) 주가는 왜 오르고 있을까? 거칠게나마 몇 가지를 얘기해 보자.

우선, 주식가격이 장래 배당가능성과 무관하지 않다면 그리고 이 배당가능성이 현재의 이윤 및 이후 이윤증가율과 무관하지 않다면 주가상승은 기업이윤이 증대하고 있거나 혹은 증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증대했거나 증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 신자유주의의 심화로 인해 노동조건이 열악해졌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다. 특별히 2004년 이후 한국 노동자들의 생산성 증가에 비해 임금인상률은 매우 낮아졌다. 그리고 한미자유무역협정 등으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가 증대할 것이라는 것 또한 우리 모두가 아는 바다. 주가가 안 오르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즉 주가상승은 노동자 민중들의 삶이 팍팍한 이유 그 자체에 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한국기업들의 이익은 한국노동자들의 착취에만 있지 않다. 이주노동자, 베트남, 동남아시아, 결정적으로 중국노동자들의 착취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동일한 이야기이지만 미국계 세계적 기업의 주가상승에는 한국 노동자들의 착취증대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노무현정권 옹호자들이 주식시장 활황을 ‘참여정부’ 경제정책 성공의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정확히 그들의 계급적 본질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하겠다. 물론 미국의 5-60년대처럼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기업이익 둘 다 개선되던 시기가 예외적으로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노동조건의 악화 위에 기업이윤이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문제인 것이다.

둘째로, 주가상승은 이자율과도 관계가 있다. 이자율이 높으면 주가가 낮아지고 이자율이 낮아지면 주가가 높아진다는 게 일반적인 이야기다. 이자율 하락에는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지속적인 상품무역 수지 흑자에서 비롯된 경상수지(상품수지, 서비스수지, 소득수지를 모두 더한 것) 흑자의 누적으로 인한 통화증발(달러가 많아지면 그것이 원화로 바뀌어 시중에 풀린다) 효과, 미국의 경상수지의 적자의 확대(세계 각국이 달러를 많이 보유하게 되고 이것이 세계적으로 각국 화폐를 증가시킨다), 일본의 초저금리 지속, 신도시 건설 및 행정수도 이전 등으로 인한 토지보상비의 격증 등 여러 원인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투자부진도 이자율 하락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90년대 중반 과잉축적이 발생한 상황에서 신규투자가 쉽게 증대하지 않고 있기도 하고, ‘주주가치극대화’가 경영의 주요원리가 되면서 자사주 매입, 배당률 증대 등으로 투자가 부진하기도 해 저 이자율이 지속되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투자부진은 노동자의 고용성장을 더디게 하고 임금을 억제하게 한다. 현재의 주가상승이 노동자 민중에게 달갑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가상승이 노동자 민중들의 희생에 기초한 것이라는 위와 같은 사정과는 무관하게,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로 비아냥을 받아온 노무현은 이 주가상승을 자신의 정책의 성공으로 등치시키려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주가가 단기적으로 너무 급등하고 있어 걱정일 뿐. 얼마 전 노무현은 ‘돈을 빌려 주식을 사고 있는 행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주식시장에 보내기도 하였다. 최근 증권사 사장들은 모임을 갖고 증시급등을 우려하긴 하였지만 특별한 대책을 내놓진 않았다. 사실 이들로서도 주식시장이 급등해서 폭락하기 보다는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장기에 걸쳐 천천히 오르는 것이 훨씬 유익할 것이다.

그러면 주식시장이 노무현과 증권사 사장들의 소망대로 움직여 줄 것인가?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나 이들의 소망이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우선, 한국의 자본의 이윤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다. 한국자본주의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은 2003년을 기점으로 상당히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2007년은 전년보다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뚜렷한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아차는 올 봄 유동성 위기설까지 돌았다. 이들 기업을 대체한다는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의 이익상황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이윤감소를 커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포스코와 현대중공업, 아니 현재 한국경제의 활로인 중국경제는 과열 그 자체로 보인다. 중국 증시는 연초에 폭락을 하면서 그 징후를 보여주었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농촌출신 도시이주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중국사회의 불안 또한 중국경제를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라는 경고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자율 또한 서서히 오르고 있다. 국제적으로 이자율이 조금씩 오르고 있고 한국경제의 지속된 경상수지 흑자는 올해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사실 현재 한국경제는 외채, 그것도 단기외채가 꾸준히 늘고 있다. 원화가치가 상승기조에서 하락기조로 바뀐다면(경상수지 흑자 소멸 및 엔화가치 상승 등 그 가능성은 다분하다) 이자율은 더욱 오를 것이다. 현재 주식시장에서 초민족적 금융투기 자본들은 지속적으로 주식을 매각하고 있다. 주가상승 이외에 원화가치 상승이라는 추가적인 매력을 이젠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편 현재의 세계적인 주가 폭등은 90년대 말의 정보기술산업(IT) 거품, 2000년대 중반의 주택시장 거품에 뒤이은 것이다. 크게 보면 현재의 주가상승도 미국 주도 세계자본주의의 조락(凋落)을 상징하는 한 지표라 하겠다. IT로 인한 신경제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지금은 거의 없다. 주택시장의 거품은 이제 꺼지기 시작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벌써 이로 인해 성장률이 현저히 하락하고 있고 베어스턴스의 두 개의 헤지펀드가 파산을 하였다. 미국보다 더 심한 거품이 낀 나라들도 많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주식시장이 커다란 상승을 할 때면 언제나 ‘신경제’니, 혹은 이번 장은 이전에 거품으로 꺼진 장과 어떤 점에서 다르다느니 온갖 변호론이 판을 쳐 왔다. 그러나 어김없이 거품은 붕괴하였다. 그 시기를 꼭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주식시장도 거대한 거품을 쌓아가고 있어 그것이 터질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거품이 크면 클수록 그 붕괴의 잔해는 처절하다. 뒤 늦게 뛰어들어 무수한 시체로 쌓일 ‘개미’들, 이후 불어 닥칠 구조조정의 광풍에 스러질 노동자들, 세계적으로는 외환위기 금융위기로 실질적인 파산에 직면할 나라들(앞에서 열거한 브라질이나 터어키 등 신흥시장이 그 주요 후보가 될 것이다) 등등.

그러나 이런 사정을 감지하지 못한 채 노무현 정권은 이 기회를 틈 타 좋은 주식을 시장에 공급하겠다는 명분으로 발전사 등 몇 개의 공기업의 주식을 상장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고, 상수도산업을 공사화 민영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발전회사의 장부가격 이하 매각과 물 값 인상이라는 금기마저 깨뜨리면서. 그런 점에서 거품붕괴의 시기가 대선 전일까 후일까 는 여러모로 중요해 보인다.

한편 더욱 중요한 문제는 세계적인 거품 붕괴 이후 미국주도 세계자본주의가 다시 자신을 추스르고 재기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통한 대안세계화의 싹이 돋아날 것인가의 갈림길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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