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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4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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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12/23
    눈내리는 밤 백석 시 하나(2)
    모험가
  3. 2008/10/11
    월가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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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7/07
    G8 회담 반대투쟁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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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9/25
    교통정체를 뚫는 방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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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5/26
    '밀양'을 보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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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5/14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김병선 선생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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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04/14
    허세욱동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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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02/13
    건설연맹 유기수 처장을 면회하고 나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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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11/28
    우리 아들 주원이 이야기(6)
    모험가

재개?

재개해서 트윗하고 연결해 볼까?

 

다시 들어왔다가 행인님의 해적당 관련 포스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니 재미있는 게 많네!

잠깐 좀 찾아본 것이지만...

해적당이 가장 먼저(2006년) 생긴 스웨덴에서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7%를 넘게 득표했고,

당원수로는 3위정당이 되었군...

강령이 매우 심플한데, 관련해서 공부가 좀 필요할 듯. 특히나 이 분야 관련해서는 무식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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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밤 백석 시 하나

함박눈이 속절없이 내린다.

낼 아침이면 지저분해 질 지 모르지만 밖으로 보이는 눈이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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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출이: 뱁새

*마가리: 오막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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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이

없는 것은
창문이 안열리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암튼 이래 저래 고생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을텐데
부디 몸이나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고통을 계기로 보다 나은 제도와 세상을 만들어 내는 데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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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 회담 반대투쟁하러

일본 갔다가 강제출국 당한 사정을 A4 3쪽은 족히 넘게 써 막 포스팅을 하려던 순간 전부 날렸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는데 의무감에서 기록을 하자고 하고 쓴 것인데!

 

일부만 보이고 나머지는 'more'에 넣을려고 긁어내리는 순간... 이 컴이 좀 후져서 그렇다.

 

거짓말 안하고 일본에서 강제출국 당한 것 보다

더 아찔하다. 으으으으아아아악!!

 

다시 쓰지는 못하겠고, 이 블로그에 방문하신 분들 중 혹 궁금한 사람은 이야기하세요.

제가 만나서 이야기해 드릴 테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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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정체를 뚫는 방법

강원도 횡성(형이 새롭게 정착한 곳)에서 추석을 쇠고 올라오는 길이 최근 몇년 들어 가장 막혔다.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평소보다 시간이 3배나  걸렸다.

당연히 아이들이 짜증을 낼 수밖에.

 

초등학교 1학년짜리 둘째 아이 주효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엄마, 여기가 어디야? 왜 이렇게 안가?"

엄마가 대답한다. "응, 아직 양평이야! 차가 막혀서"

주효 왈, "맨 앞에 있는 차가 빨리 달리면 되잖아!"

우리 모두 "???"

 

우리나라 물리학자들이 교통정체의 원인을 연구하기로 했다는데,

이 물리학자들 우리 주효에게 좀 자문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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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보았다.

 큰아이하고 산책을 하다 예정없이 보게 되었다. 큰아이는 ‘캐러비언 해적’을, 난 ‘밀양’을. 작은아이가 어디 가고 없고 처는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저녁에 집에 돌아올 작은 아이 돌 볼 생각도 안하고 영화표를 끊어버려 처한테서 한 소리 들었다. ‘치사하다’고.

칸에서 호평이 있다잖은가! 외국 영화제에서 무슨 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영화를 우리 같은 속물이 안 봐줄 수 없지. 그리고 세속적이고 평범한 노총각 역을 한 송강호가 남편을 잃은 전도연에게 밀양, 즉 ‘비밀스런 햇볕’을 상징한다고 언론에서 들은 바 있어 이게 무슨 사랑인가(요새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 사랑이 이루어지는가에 관심이 좀 있다) 호기심이 가던 터였다.

영화를 보는 중간 중간 그리고 영화를 보고 든 생각 하나! ‘칸’이 영화에 나오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여러 현상, 즉 어린이 웅변학원, 독특한 한국의 개신교, 커피배달(지방에 아직도 이런 게 있나? 자신 못하겠다)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호평을 했을까 아니면 주제만을 따라갔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가 송강호의 전도연에 대한 어떤 독특한 사랑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 사랑은 일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세속의 삶의 한 구성요소로서 끌어들여진 것이었다. 

영화 내용을 이야기하긴 그렇고...

영화의 메시지? 구원은 ‘하늘’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세속’에 있다! 물론 내가 읽어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청준 원작(주인공이 아들을 유괴 살해한 유괴범을 신앙을 가지고서도 용서를 하지 못해 자살한단다)보다 영화로 각색된 이야기가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영화의 결론, 즉 신앙속에서 용서를 하겠다고 찾아간 아들의 살해범이 자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용서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린(?!) 후 신앙을 멀리하고 정신병원까지 갔다 온 신애(전도연 분)가 남편과 아들의 상실을 딛고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즉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암시를 주는 것들은?

첫째, 영화초반에 전도연과 사소한 불화를 겪는, 말실수가 잦은 동네가게 여주인과의 화해,

둘째, 전도연이 미장원에서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유괴범의 딸을 다시 만나 불편을 느끼는 것(이것은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신의 장난 또는 운명, 즉 교통사고로 인한 남편과의 사별, 아무 죄 없는 아들의 유괴 및 피살 등의 피해자인 전도연을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아들 유괴자의 딸이다. 전도연은 이 딸이 사내아이들한테 맞고 있는 것을 유괴범의 딸이라는 이유로 외면했는데 영화끝에 예기치 않게 이 딸은 재등장한다. 정신병원을 나온 후 전도연이 머리를 자르러(정상적인 삶의 상징 혹은 개가의 상징?) 들어간 미장원에서 전도연의 머리를 자르는 이가 이 딸인데, 이 딸은 전도연의 머리를 자르면서 아버지의 죄를 대신해 눈물을 흘리면서 전도연을 불편하게 한다 - 전도연으로서는 아들의 살해자의 딸이어서 불편하고 그리고 종교를 통해 용서를 했다면서도 이 딸의 불행을 외면한 것 때문에 불편하다. 그래서 이 미장원으로 자신을 안내한 송강호와, 하늘에 대고 불만을 퍼붇는다).

셋째, 전도연이 머리를 자르면서 송강호에게 거울을 들게 한 것 등이다.

셋째 장면은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다 중간에 뛰쳐나온 전도연이 자신의 집 안마당에서 손수 거울을 앞에 두고 불편하게 머리를 자르고 있는데 송강호가 들어와서 거울을 들어주고, 신애는 그 거울을 보면 머리를 자르고 있는데 그 거울을 통해 작은 햇볕이 지저분한 마당 한 귀퉁이를 비춰준다.

원작 자체의 한계(이청준에겐 계급문제나 민족문제 등은 아예 안 보이는가? 구원이나 해방은 이런 것과 무관한 것인가?)를 딛고 세속의 삶을 주목하게 한 장점은 있지만 이창동의 이 영화 자체의 한계 또한 뚜렷하다. 영화적 주제의 선택이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 못하다.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두 주연 다 잘 한 것 같다. 전도연이 쉽지 않은 신애의 역할을 잘 했다는 얘기는 많고 나도 뭐 대체로 동의가 된다. 그러나 송강호의 역할도 쉽지 않아 보인다. 속물스러워 보이는 송강호의 평소의 모습(전도연이 정신이상 징후를 보일 때 딱 한 번 다른 모습을 보였다)을 누가 송강호만큼 연기해 낼 수 있을까?

영상? 오늘날 한국사회의 자질구레한 측면을 잘 옮겨놓은 것 같고 영화의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햇볕에 신경을 많이 써 촬영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영화 누가 많이 볼까 싶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어떤 아저씨 왈, "에이, 시간만 배렸네" 하고 나가버리는 것을 보면.

 

* 영화를 찬찬히 본다고 봤는데 워낙 예술작품 독해력이 떨어지는지라 잘못보고 잘못해석한 데가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난생 처음 영화감상평을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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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담임 김병선 선생님

최근년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을 한 번 뵙고 싶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니 아직 살아계신단다.

올해 시골 가는 길에 선생님과 가끔 연락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서 전화번호도 알아두었다.

전화번호를 구했을 때 전화를 한 번 해볼까 생각도 했으나 날 몰라볼 게 뻔한데 약간 뻘쭘할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찾아가면서 전화를 하자며 참았다.

사실 꼭 40년 전 일이고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버려 그 이후 단 한 번도 선생님과의 접촉기회가 없던 터였다. 당연히 선생님을 찾아가도 날 잘 몰라보실 게 뻔했다.

그런데 고향에서 오래 산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반 반장 아이와 최근 연결이 되어, 난 그 녀석과 언제 한 번 선생님을 찾아가면 크게 어색하지 않겠지 하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케이비에스 일요스페셜에 탄광촌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하신 임길택 선생님이라는 분 이야기를 보고 이번 스승의 날에 찾아가 뵈야 하는데 생각이 미쳤지만 나도 바쁘고 해서 확실히 결정을 못하고 앞서의 그 반장 녀석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녀석도 바빠서 어려운 눈치였다.

그래 포기를 하고 나니 전화라도 먼저 해볼까 생각이 미쳤다.

그래 과괌하게 전화를 하니 선생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선생님, 전 40년 전 제자 박하순이라고 합니다. 기억하시기 어려우시겠지만"

"하순이! 봉양리 살았던. 내가 자네 1학년 때 담임이었잖아. 코 찍찍 흐르고 쬐그만하고... 내나 봉양리 창주가 반장이었잖아. 창주랑 자네가 공부를 참 잘했지!(^^;;)

난 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박하순이라... 아 생각이 나는 것 같네'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일텐데, 1학년 때 담임이었다는 것까지 기억하시고 내 인상(너무 특징적이었나?)까지 기억을 하시다니...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선생님, 5-6월에 송하빈하고 한 번 꼭 찾아뵙겠습니다."

"뭐하러 와!, 전화 준 것만도 고맙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

1학년 때 선생님은 앞장서서 '하낫 둘' 하면 우리는 '셋넷' 하고 운동장을 돌았다. 선생님께서 뒤로 내민 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키가 가장 작은 차경남과 둘째로 작은 나는 선생님 바로 뒤에서 선생님 손짓을 보면서 병아리가 어미닭을 졸졸 따르듯 그렇게 선생님들 졸졸 따라다녔다.

선하게 생기셨고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셨던 선생님이셨다.

5-6월에 꼭 한 번 찾아뵈 그 좋았던 옛날로 한 번 돌아가봐야겠다.

 

 

추기: "그래 자네는 지금 뭐 하는가?"는 선생님의 물음에 "예. 전 사회운동 하고 있습니다"했더니 선생님  목소리가 약간 낮아지면서 "그래...?!" 하신다. 제자들의 성공(세속적인!)을 바랐을 선생님에게 사회운동은 성공축에는 끼지 못한 '직업'이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였을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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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동지,

당신은 어찌 그리도 운동에 진지하셨나요.

부끄럽습니다.

반드시 일어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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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연맹 유기수 처장을 면회하고 나서...

 

건설연맹 유기수 처장을 면회하고 왔다.  오며가며 하루를 전부 썼는데 단 5분 정도 면회를 했다. 내가 쓸 수 있는 용돈에 비하면 차비, 영치금, 책값 등으로 돈도 꽤 썼다. 그래도 마음은 좀 편해졌다. 최소한의 할 바를 했다랄까...

 

유기수처장은 포항건설노조 싸움으로 구속이 되었다.

구속이 처음이니 실형을 안살고 집행유예로 나오지 않을까도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통상 2개월정도면 끝나는 1심 재판이 6개월을 끌었다. 실형은 기정사실로 굳어지더니 실형이 2년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굼뜬 나도 도저히 빠져나갈 도리가 없어 며칠 전에 연맹에 예약을 하고 대구교도소에 면회를 하고 온 것이다.

 

전날 사회진보연대에서 몇권의 책을 준비하고, 면회당일 교보문고에서 꼭 읽었으면 하는 책 한권을 사 대구로 향했다. 연맹에 예약을 해 놓은 상태지만 혹 '몰지각한'(?!) 사람이 연맹에 알리지도 않고 면회를 해버리면 대구까지 가서 허탕을 칠 수도 있어 가능하면 빨리 가자는 차원에서 케이티엑스를 탔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케이티엑스 해고조합원들이 이철사장을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었고, 유인물도 나눠주고 서명도 받고 있었다. 안쓰럽고, 미안하고, 대견한 생각에 수고하신다는 말을 하고 서명을 했다. 노조의 '노'자도 몰랐을 나어린 사람들이 저런 투사가 되어 있다니... 이 사회가 투사를 만들어낸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대구에 도착해서 박문진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에게 면회제의를 했더니 막 근무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란다. 대구에 내려올려면 하루 전에 좀 연락을 하지 그랬냐, 나중에 대구에 올려면 허락을 받고 오라는 핀잔아닌 핀잔을 들었다. 나중에 따로 하시라 하고 혼자 갔다.

 

교도소에 가서 영치금을 약소하게 하고(내 재정적 처지가 날 째째하게 만들었다. 어디 이번뿐인가! 결혼축의금, 부의금을 할 때 언제나 나는 째째해진다), 책을 넣고 차례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해야할까 잠깐 생각을 했다.

우선 당국에 대한 분노를 좀 쏟아내야겠지... 그리고 교도소 생활에 대해서도, 그리고 가족이야기(사실 같은 지역에 살아 가족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바깥 투쟁 이야기 등을 하면 되겠지...

사실 교도소 면회시간이 단 몇분간인데도 의외로 할 말이 없어 시간이 애처로이 흐르는 경우도 꽤 있다. 왜나하면 교도소 면회라는 상황, 아주 제한된 시간 등으로 인해 면회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종류는 어느정도 정해져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잘 못풀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그 시간에 자잘하고 사사로운 이야기를 농담따먹기식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다보니 말이 막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기수처장과는 서로 잘 아는 사이고 해서 할 말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 걸... 유기수처장 처음 반응이 왜 이렇게 멀리 혼자 왔냐는 반응이었다. 마치 나무라는 듯이. 다른 일 없이 혼자 자신의 면회만을 위해 대구를 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다른 신 모동지와 같이 오려다 일이 있어 못오게 되었다, 대구 박문진 동지와 같이 오려 했는데 앞서 말한 사정이 있었다는 등의 얘길 했는데도 유기수 처장은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야기가 썩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사실 단 5분간의 면회는 면회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수형자가 답답한 좁은 공간에서 풀려난다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운동시간이 중요하고 면회시간이 중요했다. 특히 내가 구치소에 있을 때엔 일요일엔 운동시간과 면회가 없기 때문에 토요일 오전 면회 이후 월요일 면회시간까지 약 48시간을 갇혀지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월요일 면회는 특히 필요했다( 주 5일제가 도입되고 토요일까지 면회가 없어져서 이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현재는 개선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치 걸러 두치' 으으 미안할 따름.) 그렇게 본다면 수형자의 감방으로부터의 탈출(단 몇분간이긴 하지만)은 면회를 온 사람의 비용을 훨씬 웃도는 효용(물론 비용과 효용의 주체가 다르긴 하지만)이 있었던 것이다(사실 비용-효용을 따지기 이전에 동지애라는 더 중요한 요소가 있지만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요일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월요일 면회의 의미를 상기하고 나선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유기수 처장은 내가 치러야 하는 비용만을 부담스러워 한 것으로 보였다.

첫 매듭이 시원하게 풀리지는 않았지만 신모의 근황, 대구교도소 수형조건, 항소문제, 체중문제, 빵 동료들, 유기수 처장 아이들 문제, 우리 가족 안부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되는대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빨리 나와야죠 했더니, 접견실 문을 나가면서 "이 철옹성을 어떻게 나가? 이렇게 떡 버티고 서 있으니" 하면서 문틀을 살짝 발로 찼다.

맨날 씩씩만 하던 유기수 처장도 약간 힘겨워해 했다. '이런 망할놈의 **&&^&()!!!'

 

사실 내가 보기에 유기수처장은 운동과 생활이 일치하는 몇안되는 사심없는 노조간부다.

건설연맹 내 사무직노조 출신이면서 지역노조 사람들과 더 잘 어울였다. 투쟁엔 언제나 앞장을 섰고, 노동자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썩은 세상을 노동자정치로 갈아엎어야 한다는 생각이 철저했다.

집안에서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도 운동의 원칙에 충실했던 것같다. 큰 아이(?)는 대학가서 학생운동을 하고 있고, 둘째 아이는 축구선수인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매체에 선수노조 어쩌구저쩌구 발언을 해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이런 유기수처장이 구속된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그 수많은 투쟁에 참가하면서 50줄에 들어서 이제야 처음 구속이 되다니... (으으, 이 놈의 방정!)

 

유기수 처장은 포항건설노동자 투쟁 때 계속 선동마이크를 잡았다. 유기수처장의 마이크는 여느 마이크들처럼 청원하는 투도, 적당히 중재하는 투도 아니고 말그대로 투쟁을 선동하는 마이크였다.

대 자본 포스코(와 포스코의 하수인인 지역 검 경)에 대들었으니 구속이 될 수밖에...

 

유기수 처장을 감옥에 두고 돌아오는 마음 한 켠이 아릿해 졌다. 그리고 느슨하고 나태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제 하루 면회는 내게도 비용을 넘는 커다란 '효용'이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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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주원이 이야기

초등학교 5학년 주원이가 어제 옆 학교 장성초등학교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

자기네 학교에서 모금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모아둔 용돈 7,000원(2주 용돈)을 내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오늘 지네 엄마가 돈 냈냐고 했더니,

1,000원이 더 있어서 8,000원 냈다고 했다.

 

'장난감 살려고 100원을 다투는 놈이 남 돕는 데는 손도 크네!'

 

다른 애들은 얼마씩 냈니 하니,

1,000원 2,000원씩 냈고 자기 말고 가장 많이 낸 애가 5,000원을 냈다고 했다. 자기가 1등이란다.

 

그리고선 요번 주말에 주는 용돈 3,500원을 미리 좀 주면 그것도 내겠단다.

이틀간 모금을 하니 내일도 할 수 있단다.

 

그런데 엄마와 이얘기 저얘기 하던 끝에,

"그런데 가슴 한 쪽이 허전하긴 해" 한다.

 

'나 원 참. 니 아빠 용돈이 마이너스라는 거 아냐?'

 

그래도 난 속을 숨기며 "장하다! 우리 주원이" 했다.

그것도 1등이니 잘했다고 안아주었다.

 

 

모처럼 블로그명과 관련있는 글을 올리네. 팔푼이가 아들자랑하면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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