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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의 마지막 강의 '자본주의 경제산책'을 읽다가

재미있거나 울림이 있는 부분을 발췌한다. 앞 장들을 읽을 때는 생각을 못해서 못했고.

정운영선생의 글은 학술적인 글일지라도 다른 학술논문과는 달리 논문투가 아니다. 유려한 수필같은 느낌을 준다. 기자출신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대중적 글쓰기의 노력의 소산인지 아니면 또다른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선생의 글이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예스럽고 함축적인 문장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책은 5장을 제외하곤 비교적 쉬웠다. 5장은 시간있으면 나중에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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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다른 무엇보다 문화에는 국경이 있어야 한다. 국경 철폐를 외치는 세계화 문화는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문화도 아니고, 각국 문화가 유기적으로 배치된 다원적 문화도 아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는 문화조차 온전하지 못하다. 세계화 문화는 세계화만큼 불결하다. 소비 만능의 저속한 양키즘이 세계 문화를 지배하고 세계화 문화의 표준으로 등장하면서, 각 민족의 고유문화는 저항 능력을 상실한 채 거기 유린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야말로 지식인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지점이다.


에서


"저는 신파조든 연속극이든 감동이 자꾸 사라지는 이 시대의 삭막한 풍경을 아자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가을에 집착하는 이유요? 폐기 처분 선고가 얼마 남지 않은 제 연배에게 가장 상징적인 계절이 가을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1990년대는 제게 모멸과 배반의 시대였습니다. 저는 세칭 명문이라는 S대학교와 K대학교에서 각기 10여 년 이상 강사 생활을 했습니다. 한때는 40~50개의 학과에서 200~300명의 학생들이 제 강의에 몰려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93년께 이른바 엑스 세대(X-generation)가 나타나면서 강의실에서 학생이 쑥쑥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강의 선택의 기준도 무엇을 배워보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과목을 고르면 쉽게 학점을 따느냐로 바뀌는 듯했습니다. 정말 순식간의 변화였습니다.

다시 10년을 거슬러 1983년 그때쯤 저는 막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첫 경험이 어색한 것처럼 저의 첫 강의도 어색했지만, 다행히도 제가 공부한 분야와 시대 상황이 잘 맞았습니다. 저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했고, 제가 알기로 한국 학생으로는 최초로 외국에서 마르크스주의 연구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귀국 후의 현실은 아주 처절했습니다. 캠퍼스는 최루탄 가스로 항상 매캐했고, 어느 해 5월에는 학생들과 젊은 근로자들의 분신과 의문사가 무려 10여 건에 이르렀습니다. 확실히 1980년대는 분노의 시대였습니다. 그 치열했던 시대가 1990년대 들어 저렇게 변절한(?) 데에 우리는 그저 당황하고 허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60년대 통틀어 수출 상품의 3위에 오를 정도로 가발은 경제 성장에 ‘효자 노릇’을 했습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을 보면 당시의 애처로운 사연들이 나옵니다. 엿장수는 고무신 떨어진 것이나 양은 냄비 뚫어진 것 대신 머리카락을 받았고, 전국을 돌며 시골 처녀들의 머리칼을 사들이는 전문 수집상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정조를 중히 여겼던 이 땅의 아낙네들이 돈 몇 푼 떨어진다고 쉽게 머리카락을 내줄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 여성의 파마화’ 운동이었습니다. 수집상들은 흔히 파마 미용사를 동반하고 전국을 돌았는데, 그것은 파마로 이렇게 멋을 내줄 테니 어서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꼬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파마 유행에는 이렇게 조국 근대화의 애환이 스며 있습니다."


"전망은 점괘로 끝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망 대신 희망을 얘기하고 싶은데, 2000년대 시작이 무엇보다 성찰의 시대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희망 사항입니다. 점괘 수준의 전망에서 보자면 서구학자들이 말하는 새로운 ‘유목 사회’의 도래가 그럴듯합니다. 유목민은 새로운 초지를 찾아 계속 움직이며,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는 자만이 살아남습니다. 정착과 안정이 없는 이런 현실이 우리의 장래가 될 공산이 아주 큽니다. 학자들은 현대 유목민의 특징을 정보․통신 기술과 문명에서 찾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평생 직장이나 종신 고용이 사라진 현대인의 직업 불안에서 찾고 싶습니다. 이 직장에서 내보내면 저 직장을 찾아 기웃거리는 것이 유목민 생활과 다를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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