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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비주류님의 [Nature, Woman, Labor, Capital: living the deepest contradiction] 에 관련된 글입니다.

 

 


에 코   페     미        니        즘

 

 

 

 

말이 생명력을 갖는 순간

 

갑자기 시인들이 존경스럽네요

 

 

좀 눈이 덜 아플때..다시.

 

ㅠ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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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1 19:23 2005/01/11 19:23

루이스 부르조아

from 뭔지 2004/12/29 12:54

* 이 글은 달군님의 [Louise Bourgeois] 에 관련된 글입니다.

묘한 작가지요. 조금 무서움, 저도 관심있어서 여기 저기서 자료를 좀 찾아봤어요.

 

나이가 아주 많은 여성작가로 이 사람이 바느질을 하는 바람에? ㅎㅎㅎ 바느질 작업이 많이 생겼던 기억이 나요.. 많이 보인 건가...둘 다였을 거예요.

 

국제 미술제들에서 상을 많이 타면서 한국에도 알려졌지요..

나이가 많고, 여자인 사람이 이렇게 유명해 지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게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1우리나라에서 2이렇게 파격적인 작품으로 3이렇게 나이를 먹어서까지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부러움이랄까)

 

수학전공에서 미술로 옮겨간 궤적도 재미있어요.

 

또 삼십인가 사십살인가 연하의 애인을 사귄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도 있지요.

 

전시를 두번인가 본 적이 있는데 느낌이 굉장히 강렬했지만 -기괴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또 소박한 행위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그것이 또 충격이 되고.. 많이 공부가 되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군요.

부르조아가 이야기 속에서 아버지와 남성을 위협할 지언정 권위를 위협하지는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틀 안에 있을 때는 위협이지만 틀 밖에 나오면 위협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건 여성이나 사람 또한 위협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건 정말 아쉬워서 하는 소리지요. 정말 좋은데, 뭔가 아쉬운.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에서 아버지와 권위가 정말 같은 의미인지는 좀 더 정확히 공부해서 느껴봐야 겠지만-_-a 아니, 뭐 나름대로 느끼는 거니까..

많이, 다양하게 보면 볼 수록 좋달까.. 이런 주의라서...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은 좋지만 기냥 신성시해버리면 모든 재미는 끝나지요. 그래요. 정말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을 알면서 움직이지 않으면 그걸보고 '신성시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지금 '신성시 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깊은 감동은 기존의 정신체계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위 '예술'이라 불리우는 것은 같은 것일지언정 갱신해야 할 만큼의 위협이 느껴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또 우연히? 발견하게 되기도 하구요.

나름대로 느끼는 거긴 하지만 그게 또 아무때나 막 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잘 보이기만 하는 것도 아니지요. 사람이 무언가를 직면하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예요. 기적이 종종 일어나는 모습을 보곤 하지요. 하지만 아직 택도 없어. 좀 더 많아져야겠지요.

 

멀어........-_-;;;;;;;;;

나야말로 ...

 

 

요건 국민일보 콘텐츠 존에서 퍼옴.

 

"나의 조각은 나의 심리분석학이다" 라고 작가가 언급하였듯이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업 세계는 자전적인 심리의 탐구에 기초한다. 부르주아는 무의식과 내면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여 욕망, 쾌락, 사랑과 고통, 소외와 고립 등 과거 삶 속에서 그가 직면하였던 경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고 이는 신체, 성적인 이미지와 에로틱하거나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표출되었다. 남성과 젠더에 대한 작가의 분노, 갈등과 혐오를 상징하였던 그의 과거 작업이나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제작된 대형 거미 조각의 압도적인 규모와 위압적인 형상의 브론즈 작업으로부터 작가는 최근 손바느질한 천 조각을 제작하고 있다. 이는 재료와 기법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이다. 작가에 따르면 바느질은 곧 치유의 행위를 뜻하고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신작 인물상들은 이렇듯 화해, 통일과 회복을 상징한다. 청동의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성이 아닌 작가의 손이 어루만지듯 천으로 기운 부드럽고 따뜻한 섬유 조각은 인간관계의 여러 가지 모습을 더욱 애절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르주아의 최근 작품 중에서 수직적인 조각이 금번 국제갤러리 전시에서 여러 점 선보인다.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천 조각을 높이 쌓아 올린 토템폴 (totem pole)과 같은 이 작품들은 1950년대 작가의 작업에서 그 선례를 찾아 볼 수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면서 위태로운 듯 서 있는 이 기둥 조각들은 반복과 나열의 극히 단순한 구성 원리를 도입하고 있으며 부르주아 작품에서 보기 드물게 유희적이고 순수 추상적인 조형미가 돋보이는 작업이다.

세계적인 원로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는 90세를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작품 제작과 전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1911년 프랑스 파리 태생으로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1982년 뉴욕 근대미술관 (MoMA)에서의 첫 여성 작가 회고전에 이어 8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 남미와 일본 등지에서 수 차례 회고전을 가졌으며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은 현재 세계 유수한 미술관들과 주요 콜렉션들에 널리 소장되어 있다. 학계(예일대학과 메사츄세츠 미술대학)로부터는 명예 학위를, 미국과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문화훈장과 일본문화협회로부터는 세계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부르주아는 여전히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

1905 조세핀 발레리 포리오와 루이 이사도르 부르주아는 파리에서 결혼한다. 루이와 조세핀은 조세핀의 어머니가 생 제르맹가에서 운영하는 태피스트리 갤러리 (중세, 르네상스 태피스트리를 수선, 판매)인 메종 포리오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1911 루이즈 죠세핀 부르주아가 파리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아 세 명의 남매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다.
1921- 1927 루이즈는 열두 살부터 부모 일을 돕기 위해 태피스트리 갤러리에서 수복할 부분의 밑그림을 그리곤 한다.
1922 루이즈 형제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세이디 고든 리치몬드가 가정 교사로 고용되어 루이즈의 집에서 1932년까지 함께 살게 되며 그러는 중에 세이디는 아버지의 정부가 된다.

1932 부르주아는 파스칼과 칸트를 연구한 철학 논술로 소르본 대학에 입학
하여 대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한다.
어머니 조세핀이 사망한다.

1933-38 부르주아는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고 미술공부를 시작한다. 그녀는 몽파
르나스와 몽마르트에 있는 여러 화가의 작업실에서 공부한다. 부르주아
는 모스크바 극장의 연극과 러시아 구축주의 작품을 보기 위해 두 번째 러시아 여행을 떠난다.
또한 그녀는 1938년 레제와 함께 공부하게 되는데 그는 부르주아에게 그녀의 감성이 입체적인 쪽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1936 부르주아는 독립하여 파리에 아파트를 구한다. 같은 건물 1층에 앙드레 브
르통이 그라디바화랑을 운영하면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1938 부르주아는 아버지의 태피스트리 갤러리의 일부 공간을 할애하여 자신의
미술 갤러리를 개관한다. 들라크루와, 마티스, 르동, 발라동, 보나르의 드
로잉과 판화를 취급한다. 그녀는 미국에서 박사논문 <근대회화에서의 원시
주의>의 자료조사를 위해 파리에 와 있던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를 만나 결혼한다.

1938-39 부르주아는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1939-1945 부르주아는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미술 수업을 받고 판화 작업을
시작한다. 1940-50년대 부르주아는 미술사학계의 인사들 뿐 아니라 유명 화랑주와 작가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1939 부르주아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브룩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판화전에 작품을
출품한다.

1940 부르주아의 첫째 아들 장 루이 부르주아가 태어난다.
1941 둘째 아들인 알랭 매튜 클레망이 태어난다.
1945 첫 개인전, "루이즈 부르주아의 회화"전이 뉴욕의 버싸 쉐퍼 갤러리에서 열린다.
1949 뉴욕의 페리돗 갤러리에서 "루이즈 부르주아의 최근작 1947-1949: 나무로 만든 17점의 입상"전으로 조각가로 데뷔한다.
1951 알프레드 바 관장이 <잠든 형상> (1950)을 구입하여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소장된다.
아버지 루이 부르주아가 사망한다.
부르주아는 미국시민권을 얻는다.

1956 휘트니 미술관이 작품<한 사람과 다른 사람들>(1955)을 구입한다.
1966 뉴욕의 피쉬바흐 갤러리에서 루시 리파드가 기획한 그룹전 "기이한 추상"전에 참여한다. 부르주아의 작품은 에바 헤세, 브루스 노먼 등과 함께 젊은 세대부문에 전시된다.
1967- 68 대리석과 청동 작업을 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삐에뜨라산타를 처음 방문한다. 그녀는 72년까지 이곳을 정기적으로 찾는다.
1970 부르주아는 시위, 집회, 토론과 전시 활동 등을 통해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1974 부르주아는 그린 가 갤러리에서 개인전 "조각 1970-1974"을 갖는다. 그녀는 뉴욕 시각예술학교, 콜럼비아 대학교, 쿠퍼 유니언, 버몬트주에 있는 고다르 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시작한다.
1977 예일 대학교에서 미술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 받는다.
1980 루이즈는 국립여성미술간부협회로부터 시각예술부문 공로상을 받는다.
브루클린에 작업실을 확보하고 대형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뉴욕의 맥스 허친슨 갤러리에서 "루이즈 부르주아의 도상학" 전시에 그녀의초기 회화 30여점과 드로잉 35여점, 판화가 12점 전시된다.

1981 시카고 대학교의 르네상스 연구학회는 "루이즈 부르주아: 집 여자"전을 기획한다.
1982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루이즈의 회고전이 열린다. 데보라 와이와 알리시아 레그가 공동기획한 이 전시는 MOMA에서 열린 첫 여성 작가 회고전으로서 휴스턴 현대미술관, 시카고 현대미술관과 오하이오의 에이크론미술관을 순회한다.
로버트 밀러 갤러리는 조각과 드로잉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부르주아의 진실"전을 개최한다. 로버트 밀러 갤러리는 루이즈의 전속 갤러리로 80년대, 90년대 정기적으로 그의 작품을 전시한다.

1983 뉴욕의 예술문학학회와 미국학술원의 위원으로 선임되며 보스턴의 메사추세츠 미술대학교로부터 미술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다.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문학학회 위원으로 선임된다
1985 "루이즈 부르주아"전이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열린다.

1989 유럽에서의 첫 회고전인 "루이즈 부르주아 : 회고전"이 프랑크프루트 미술협회에서 개최되며 뮌헨의 레벤바흐 시립미술관, 리옹의 현대미술관, 바르셀로나의 타피에 재단, 베른미술관, 오테를로의 크뢸러-뮐러 미술관을 순회 전시한다.

1990 뉴햄프셔의 맥도웰 콜론지 재단에서 맥도웰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또한 뉴욕의 조각 센터로부터 올해의 조각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1991 피츠버그의 카네기 인터내셔널에 부르주아의 <밀실l> 연작 6점이 전시된다. 부르주아는 워싱턴의 국제 조각센터에서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의 첫 수상자가 된다. 또한 프랑스 문화부에서 수여하는 조각부분의 최고상을 수상한다.
1992 "도큐멘타 9 Documenta Ⅸ"전에 부르주아의 <값진 액체>가 전시되고 퐁피두센터가 이 작품을 구입한다.
뉴욕의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은 소호 분관의 개막전으로 "브랑쿠지에서 부르주아까지 :구겐하임 소장품"전을 기획한다.

1993 부르주아가 미국 대표로 참가한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밀실 (히스테리의 아치)>, <밀실 (유리 구와 손)>, <밀실 (눈과 거울)>등을 포함하여 80년대부터 90년대 부르주아의 최근작들이 전시된다. 대규모 기획전이 브룩클린 미술관을 거쳐 워싱턴의 코르코란 아트갤러리, 프라하의 루돌피눔 갤러리, 파리 국립근대 미술관, 함부르크의 다이히토할렌, 몬트리얼 현대미술관을 순회 전시한다.
1994 세인트 루이스미술관에서 "숭고함의 현주소: 바넷 뉴먼과 루이즈 부르주아의 초기 작품: 인물"전을 기획한다.
최근작을 중심으로 "루이즈 부르주아 조각"전이 하노버의 케스트너 협회에서 열린다.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판화 회고전"이 열린다. 이 전시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프랑스 그라블린의 판화와 드로잉 미술관, 옥스포드 근대미술관, 마스트리트의 본판텐 미술관을 순회한다.
"루이즈 부르주아 : 붉은 방"전이 뉴욕의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 열린다.

1995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사상과 문체"전이 열리고, 핀란드의 헬싱키 시립미술관으로 순회 전시한다.
"루이즈 부르주아"전이 멕시코의 몬테레이에 있는 마르코에서 열리고 세빌의 현대미술센터와 멕시코시티...

 

 



60년에 걸친 부르주아 작업의 근원은 무엇보다도 자전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부르주아의 어린 시절 기억의 공간 속에는 권위적인 호색꾼 아버지, 조용하고 인내심이 강한 어머니, 그리고 부르주아 형제들의 영어 가정교사이자 아버지의 정부인 세이디(Sadie), 성적(性的)으로 문란한 언니 앙리에뜨(Henrietta), 그리고 사디스틱한 성격의 남동생 피에르(Pierre)가 있었다. 부르주아의 작업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한 신경증적인 집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자신의 체험적인 경험들을 생생하고 진솔한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1940년대, 50년대의 초기 작업은 <관찰자(Observer)>(1947∼49), <쿼란타니아(Quarantania)>(1947∼53) 등 고향에 대한 향수병으로 가족, 친지들을 의인화한 기하학적이며 수직적인 형태의 사람 크기의 나무 조각들이 제작되었는데, 1930년대 소르본느(Sorbonne)에서의 수학과 기하학 전공의 배경을 설명해주듯 이성적인 조형적 질서 감각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회화, 드로잉으로 제작하였던 <집=여자(Femme Maison)> 시리즈(1946∼47)에는 부르주아가 뉴욕으로 이주한 후 진정한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관심을 두었던 여성의 억압과 해방, 여성과 가정의 문제가 잘 나타나 있다.

 

● 1960년대, 70년대의 부르주아의 조각들은 신체의 성적(性的) 이미지들, 특히 남녀의 섹슈얼리티가 통합된 양성(兩性) 이미지들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표현된다. 형태면으로는 1940년대, 50년대의 기하학적, 추상적인 경향으로부터 사실적, 유기적인 경향으로의 이행을 보이면서 보다 상징적인 서술성을 띠게 된다. 남녀 생식기가 가장 적나라하게 병치된 <개화(開花)하는 야누스(Janus fleuri)>(1968)는 페니스와 질이 결합된 조각이다. 제목인 "야누스"에서 암시하듯이 양면성 혹은 이중성은 부르주아의 예술세계에서 발견되는 주요한 특성이다. 즉 남성과 여성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 폭력과 에로틱함, 가학대증과 피학대증, 그리고 내부와 외부라는 이원적 카테고리는 부르주아 조각에서 자주 결합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 1970년대 초부터 부르주아는 각종 데모, 토론회, 전시회를 통해 여성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젠더 문제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작업 속에 구체화된다. 부르주아의 남녀 양성 이미지의 공존에서 상이한 젠더들은 종종 서로 갈등·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Father)>(1974)에서 유방의 여성의 영역과 남근과 발기의 남성의 영역은 대치되며 젠더의 대립은 극에 달한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이 야기한 끔직한 근친 살육의 비극은 가부장적 권력에 대한 부르주아의 반란으로, 아버지, 어머니· 부르주아 자신의 관계라는 개인적 역사로부터 비롯된 부르주아의 성적 이미지에 대한 관심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라는 보다 근원적인 젠더(gender) 문제에까지 연결된다.

 

● 1980년대에 부르주아는 <나선형의 여인(Spiral Woman)>(1984), <앙리에뜨(Henriette)>(1985), <다리(Legs)>(1986)과 같은 작품들에서 눈, 귀, 팔, 다리 등 신체 일부 이미지로 된 조각들을 제작한다. 부르주아는 조각과 자신의 신체를 하나로 생각하였으므로, 인체 형상들은 그녀 내면의 심리적, 정신적 상태의 가장 직설적인 투영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 기억의 재현을 위해 신체와 집의 이미지를 계속 사용하였는데, <출구 없음(No Exit)>(1989)에서 계단 뒤의 공간은 어린 시절 부르주아의 은밀한 장소이며, 계단 위의 세계는 죽음이라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절박한 상황을 은유한다. 역시 이 설치작품에서도 성적 이미지의 상징이 두 개의 커다란 구와 계단으로 제시된다.

 

● 1990년대는 카셀 도큐멘타, 리용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등 국제전 참여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회고전 개최 등 왕성한 활동으로 부르주아의 국제적인 지명도가 확고해진 시기이다. 초기의 <집=여자> 시리즈부터 시작된 "집의 공간"이라는 테마는 1991년 <밀실(Cell) Ⅰ>으로 시작된 <밀실> 시리즈의 설치 작업들에서 종합적으로 완결된다. <붉은 방(Red Room)>(1994), <밀실(Cell) ?-초상(Portrait)>(2000) 등 30여 개가 제작된 <밀실> 시리즈에서 부르주아는 보호와 동시에 억압의 상징으로서의 "집"의 개념을 계속 전개시키면서 어린 시절의 공간을 재현한다. 작업을 통한 이러한 기억의 반복은 부르주아에게 과거의 상처(trauma)를 반복적으로 환기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그녀의 고갈되지 않는 예술 혼의 생명력을 지속시켜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미지속닥속닥에서 퍼 왔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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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9 12:54 2004/12/29 12:54

오늘 문득..

from 뭔지 2004/12/14 01:22

소식에 둔한 내가

 

자이툰에 다녀온 대통령에 대한 소식을 몇일 전에 듣고 엊그제 인터넷으로 글을 좀 보고

답글들 내용을 보면서..

 

오늘 든 생각은

 

환타지 소설은 현대에 대한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이다.

 

주인공이 없는 환타지 소설이라는 느낌이 더 맞으려나

 

환타지 소설을 즐기지는 않지만 만화는 많이 (3순위 정도지만) 보게 된다.

 

 

 

어느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거대한 힘을 가진 나라에게 복속된 여러 나라 중 하나였다.

 

거대한 힘을 가진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자 작은 나라의 왕은 파병을 하지 않으면 거대한 나라가 자기 나라부터 칠 것이라, 나라가 망할 것이라 생각하였고 

 

젊은이들을 파병을 하였으며 자신도 친히 전장을 돌아 보았으며 작고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지닌채 나라를 위해 싸우는 병사들을 위로하였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얼마나 훌륭하고 슬픈 왕이냐~~~~~~~~~~~~~~~~~~~~~~~~~~~~~~~~~~~~~

 

 

 

 

 

그런데

 

도데체 여기가 어디야? 

 

 

('어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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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4 01:22 2004/12/14 01:22

트랙백 할까말까 하다가..

성희롱이 애정표현인가?
조선일보 ‘성희롱 집에 가서 하세요’

조선일보가 9월 27일 ‘화제의 동영상 뉴스’에서 다룬 성희롱 예방 관련 기사 "성희롱 집에 가서 하세요"는 성희롱에 대한 시각 정립이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든다.

기사의 내용은 지난 23일 성희롱교육연구소 김미경 미래여성연구원 원장이 조선일보사 사원들을 대상으로 연 ‘밝고 건강한 직장을 만드는 성희롱 예방과 성예절’ 강연의 요약이다. 그리고 전체 강의 내용을 볼 수 있도록 동영상 파일을 함께 올렸다. 기사와 강연의 내용은 성희롱을 예방하자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이를 주욱 살펴보다 보면 불편한 심경이 된다.

성희롱은 언어표현 방식이 다르거나 기호가 다른 여성과 남성간 인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성희롱은 사회적 힘 혹은 물리적 힘을 가진 자가 상대에게 성적인 굴욕감을 주는 행위다. 그런데 강연과 조선일보 기사는, 여성과 남성의 TV 프로에 대한 기호의 차이, 쇼핑 방식과 언어의 사용 방식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성희롱이 마치 이런 차이에서 오는 것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 성희롱이 ‘뉴스를 좋아하는 사람의 악의 없는 행동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그런 종류의 문제인가?

남녀의 차이를 열거해나가는 것도 도를 넘어선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보지 못하는 감성적인 것을 봅니다. 남자들이 별 생각없이 툭 던진 말이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남자사원은 ‘괜찮습니다’하면 정말 괜찮은 것이지만, 여자가 ‘괜찮습니다’하면 안 괜찮은 것이거든요”라는 위험한 얘기도 서슴지 않는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이 기사의 제목에 있다. 강의 마지막에 강사는 "성희롱은 집에 가서 하세요"라는 발언을 했고, 심지어 조선일보는 이것을 기사의 제목으로 끌어왔다. 끔찍한 얘기다. 성희롱을 집에 가서 하라니, 성희롱이 애정표현인가? 너무 당연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민망하지만, 성희롱은 누구에게도 해선 안 된다.

성희롱을 예방하고자 하는 강사의 노력은 인정하고 싶지만, 성희롱은 결코 재미있게만 풀어서는 안 될 주제다. 아내에 대한 애정표현을 성희롱으로 표현하는 것은 성희롱이란 범죄의 폭력성을 덮어버리는 일이다. 기사의 엑기스라 할 수 있는 제목을 "성희롱은 집에 가서 하세요"라고 끌어낸 조선일보의 의도도 참으로 의심스럽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정안나 기자

 



 


 

성희롱은 사회적 힘 혹은 물리적 힘을 가진 자가 상대에게 성적인 굴욕감을 주는 행위다. 그런데 강연과 조선일보 기사는, 여성과 남성의 TV 프로에 대한 기호의 차이, 쇼핑 방식과 언어의 사용 방식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성희롱이 마치 이런 차이에서 오는 것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이 좀 밟혀서..

 

어렵다. 나는 둘 다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둘 다 한 사람안에 존재하는 것 같다. 남자든 여자든.. 대략비율은 무척 다양하겠지만.

 

조선일보의 기사에 대해서 일다의 정안나기자는 자신이 필요한 이야기만 고른 듯 하지만..

(수정하였습니당..)

 

그래도

 

'성희롱은 집에 가서 하세요'라는 말은 많이 이상하다.

그 전에 듣고 화가 났던 '너의 부인이나 딸이 당하면 좋겠는가'라는 말과 왠지 비슷한 느낌이다.

 

이상한 느낌은 정작 '당하는' 사람을 소외시키기 때문인 듯..

 

강연하는 걸 전반밖에는 못봤지만 그 이상한 말을 한 강사의 의도는 사무실 안에서의 상황만을 염두에 두고 말한 듯하다...

 

그럼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지금은 일단 밥먹고..

 

밥먹고 왔는데 저녁을 늦게 먹으니 지친다...허기진 상태로 먹었더니 졸리다

 

음, 다시, 이상한 걸 발견했다.

 

'성희롱은 집에 가서 하세요'라는 제목을 찾을 수가 없다...-_-;;;;;;

'혐오감과 수치심 느꼈다면 성희롱'이라는 제목은 있다.. 2003년 9월 27일자로.

 

제목을 바꾼건가? 그런건가?

제목이 넘 노골적으로 '딴데선 뭘하든 직장에선 문제일으키지마'라서 바꾼건가?

 

크하하하

 

확인은 안되지만 일다의 정안나기자라는 분이 헛소리를 하는건 아닐 것 같은데..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309/200309270051.html

 

조선일보의 일년하고도 3개월정도 지난 기사는 요기서 볼 수 있다..

 

여기에 달린 덧글 중 한 두어개를 보면 제목이 원래는 '성희롱 집에 가서 하세요'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금은 확실치 않지만...

 

조선일보도 첨 들어가보는 듯..-_-;;

아예 신문을 잘 안 보니..

요즘엔 가~아끔 한겨레..경인, 인천일보...-_-;;;;;;;;

 

 

확실히 강의를 듣다보니 불쾌해진다.. 

 

집중력은 좀 떨어지는데 강의에서 불쾌한 이야기와 안 불쾌한 이야기가 섞여서 나오고 있다..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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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3 20:28 2004/12/13 20:28

그 모든 외로움 이겨낸.

from 뭔지 2004/11/19 00:35

참.. ...

 

예전에 안치환이 부르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꽃다지가 부르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는 좋다.

글고 이젠 안치환이 불러도 싫지 않다.

 

특히 '그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바람소리가 휭휭 난다.

 



 

오늘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의 아벨서점에 들렀다.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30년동안 몇일만 빼고는 명절도 없이 헌책방문을 여셨단다. (!!!!!!)

갈 곳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혼자서라도 매일매일 문을 열고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고.

 

...

 

일주일에 한번은 쉬어야 되는거 아닙니까 했더니

손님들이 날 잡아서 오산, 수원 등 멀~리서 찾아오니 미안해서 문을 여신단다.

그래도 쉬어야 되는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좀 쉬고 싶은 생각도 있으시다고.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난 오늘 더욱 뭔가 웃기지도 않는 사람이다)

 

 

일년에 15일 쯤 휴가기간을 두고..

다른 나라 헌책방 골목을 가서 보고 싶으시다고. 헉.

그냥 책방이 아니라 이 공간, 배다리 헌책방 골목으로 들어서면 시커먼 세상일 잊고

잠시라도 우중충한 헌 책을 통해 환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소름이 돋는다.

이제까지는 머리에 든 것도 없고 해서 아무일도 안하고 가게만 지켰지만

 

나이가 드니 이 책들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드신다고.

작년 봄 즈음, 책방골목 근처의 창고를 작은 전시관으로 꾸미셨다.

'아벨 전시관'이라는 이름의 그 전시장은 오래된 책이 전시된 전시관과 작은 전시장으로 나뉘어 있다.

작은 전시장은 마음이 담긴 사연이 있다면 그냥 무료로 대관해 주신다.

평소에는 인천의 옛날 사진들을 판넬해서 상설전시를 한다.

 

 

책들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건 이제 나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도 되겠지요.라고.

헛소리라고는 눈꼽만치도 안하실 사장님은 참,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 어처구니는 30년동안 문을 연 사장님이 갖고 계신다.

사장님은 30년 이상 계속 맷돌을 돌리고 계신 것이다.

 

 

아벨서점 기사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page=&menu=s10600&no=67349&rel_no=23&character_article_code=01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0&article_id=0000128934§ion_id=102&menu_id=102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소박하게, 끈질기게 몇 십년이고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까.

...

나는 커서 뭐가 될까.

지금 잘 하고 있는건가.

잘난척하는 마음이 날 한 군데에 정착시키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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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9 00:35 2004/11/19 00:35

...

from 뭔지 2004/11/05 17:13

* 이 글은 붉은사랑님의 [복잡한 고민, 이런저런 질문들..그리고..]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주절주절~ 나도 이래저래 생각은 해보지만.......-_-;;;

 

 



 

밥 벌어먹게 해줬음 한다. 성매매 말고.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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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5 17:13 2004/11/05 17:13

잠깐잠깐

from 뭔지 2004/09/08 19:36

http://blog.jinbo.net/alt6mm/?pid=13

 

 

으윽 읽을 시간..

 

좀 있다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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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8 19:36 2004/09/08 19:36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를 덧붙입니다...

 

어떤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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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toleran2004/60005617246

 

"똘레랑스는 칼이다!"

 

블로그가 탄압당하고 있습니다.

 

"똘레랑스는 칼이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dominic74.do ) 가 탄압당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운영팀은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은채, 어제 오후부터 외부인들의 "똘레랑스는 칼이다" 블로그 접속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단지 아래와 같이 "반사회적인 게시물"이 있다는 이유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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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네이버가 말하고 있는 "반사회 게시물"이 무엇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어떤 포스트의 어떤 부분이 "반사회 게시물"인지 밝히지도 않은채, 이러한 식으로 블로그 접속을 차단하는 네이버 운영진의 행동을 강력히 규탄합니다.

 

오늘 11시경 네이버 고객센터에 전화하여 항의했으나, (통화자 : 고객센터 정희섭) 별다른 답변을 들을 수 없었고, 오늘 12시 이전까지 답변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답변 또한 아직 없으며.. 블로그는 계속 차단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네이버 운영팀의 이러한 비상식적인 행동에 대해 강력히 규탄합니다.

 

1. 네이버는 즉각 블로그 접속 제한을 해제하라!

2. 네이버는 블로그 접속 제한 책임자의 실명을 밝혀라!

3. 네이버는 블로그 접속 제한의 구체적인 사유를 밝혀라!

4. 네이버는 똘레랑(dominic74) 이 구매한 블로그 관련 아이템 비용을 즉각 모두 환불하라!

5. 네이버는 이 사건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문을 네이버 메인에 1주일 이상 표시하라!


네이버에 항의전화합시다.  이 포스트를 스크랩해주십시오.

 

아래 게시판에 항의 메일을 남겨주십시오.

 

http://help.naver.com/exMailQuestion.asp?init_select1=TBOX20030930000002&init_select2=TBOX200309300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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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7 19:36 2004/09/07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