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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동수의 세월호 증언 8 – 수시로 감정은 폭발하고, 약은 점점 강해지고...

 


계속되는 자해로 인해 몸과 마음이 극심하게 파괴된 김동수는 좀 더 체계적인 치료를 위해 고대안산병원으로 옮기게 된다. 하지만 병원치료라는 것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약을 바꾸기만 하는 것이어서 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수준이었다. 주1회 담당의와 면담을 하지만 “컨디션은 어떤지, 몸상태는 어떤지, 약은 괜찮은지”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살피는 것이었다.


이런 병원생활이 이어지던 중 병원 주차장에서 주차권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외부 주차장에 비해 병원 주차비가 턱없이 비싼 이유를 따지는 과정에서 귀찮다는 듯이 주차비 고지문만을 내미는 담당자의 태도에 화가난 김동수는 주위 기물을 발로 차면서 격하게 항의한다. 이에 경찰이 출동해서 현행범으로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연락을 받고 온 담당 의사의 보증으로 벌금을 내고 훈방조치 되기는 했지만 그의 분노조절장애는 더욱 심해져갔다.


2016년 10월 안산에서의 병원 생활이 길어지는 가운데 잠시 서울로 발길을 옮겼던 김동수는 광화문에서 열린 세월호 관련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된다. 청와대로 행진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막아서는 경찰이 대치하며 실랑이가 이뤄지는데 한켠에서 김동수를 유심히 지켜보던 사복경찰이 비웃는듯한 태도를 보이자 화가난 김동수는 “당신 누구냐?”며 따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김동수가 점점 격하게 대응하며 사람들이 말리게 된다. 통제되기 힘들어지는 김동수를 말리다가 부인과 딸이 쓰러지고 인근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로 발전해버렸다.


이후 딸이 실려간 병원으로 가서 딸을 만나려는데 병원 입구에서 방명록에 이름을 쓰라고 하면서 또 실랑이가 벌이진다. 당시 조류독감이 유행하면서 병원측이 관리차원으로 출입자들의 이름을 기재하도록 한 것이었는데, 지시하는 듯한 어조로 얘기하는 것에 또다시 감정이 폭발한 김동수는 볼펜으로 자신의 손등을 찍어버린다.


입원 중에도 문제가 계속 발생하자 안산 온마음센터에서 김동수를 담당하던 담당자가 문책성으로 교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치료라는 건 상황이 발생하면 약을 바꾸고 그 약의 강도는 점점 강해져가는 것이 전부였다.


2016년 12월 휴대폰을 새로 개설하기 위해 매장을 찾았는데 이용료 약정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무료라는 애초 얘기와 달리 이런저런 명목으로 요금이 지불되는 방식에 항의하다가 감정이 격해진 그는 탁자 유리를 깨면서 매우 거칠게 항의한다. 이에 경찰과 119 구급대까지 출동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현장에서 서로간에 사과가 이뤄져 문제는 더 커지지 않았다.


2017년 6월에는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다가 주차하는 과정에서 가벼운 접촉사고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상대방이 기다리라며 어딘가로 전화를 하려하자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진 그는 상대의 멱살을 잡고 항의하다가 돌을 들어 자신의 팔을 찍어내리려했다. 이에 경찰이 출동해서 현행범으로 연행됐는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김동수의 상황에 대한 양해가 이뤄져 풀려났다.


2017년 10월에는 김동수가 일을 하고 있던 사려니숲길에서 한 종교단체가 전도지를 대량으로 배표하며 쓰레기가 주위에 많아졌다. 이를 보고 전도지를 배포하는 사람에게 쓰레기를 치워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런저런 변명으로 말을 돌리는 것에 화가나 그들의 전도지를 빼앗아 길에 뿌려버렸다. 이 모습을 촬영한 당사자들은 관계기관에 민원을 넣는 일까지 일어났다.


격한 행동들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김동수는 “이런저런 문제를 얘기하면 변명하기만 하고, 온통 기다리라고만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참을수가 없다”며 계속 억눌리기만 했던 자신의 감정을 얘기했다. 특히 국가보다는 세월호가족협의회에 의해 버림받고 밀려나서 입을 다물어야 했던 상처가 더 컸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그의 돌발적 행동이 계속될수록 약은 점점 강해져서 그는 약에 취해 멍한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그 약기운으로 돌발행동은 줄어들었지만 “내가 지금 뭐하며 살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며 몽롱하게 살아가는 삶의 연속이다.


이날 모임을 마치며 김동수씨의 얘기를 계속 들어왔던 참가자들은 이 모임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젊었을 때 세상에 분노하며 저항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초기부터 결합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유족들이 보여줬던 모습들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작년 촛불집회에 매주 나가면서 거대한 대중의 에너지를 받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가 생겼었다. 그렇게 세상으로 나와서 이 모임을 만나게 됐는데, 이제는 매주 이 모임에 나와 얘기를 듣고 정리하고 공유하면서 세상사람과 어울릴 수 있게 됐다.”


“기질적으로 김동수씨와 정반대의 성격이어서 문제가 생기면 뒤로 빠지는 스타일이다. 이 모임에 오면서 처음에는 이질감이 있었는데, 지금의 이 싸움이 의미있고 큰 영향을 주는 것이라는 걸 알게되서 나한테 자극이 되고 있다.”


“당신을 위해서 슬퍼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지금도 당신과 똑같이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이렇게 우리가 만나서 약한 자들의 연대가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세상은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한 사람의 얘기를 온전히 들으며 그 사람 안에서 얘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걸 느끼고 있다. 이 안에서 변화되는 걸 느낀다.”


참가자들의 얘기를 들은 김동수씨는 “그전에는 몇몇만 내 얘기를 들어줬는데 이제는 이렇게 여러분이 얘기를 들어주고 기록으로도 남겨줘서 고맙다. 조그만 촛불이 방을 가득 밝히는 불빛이 될거라 믿는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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