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살자 38회

 

1


읽는 라디오 ‘살자’ 서른 여덟 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성민입니다.


오래간만이지요?
서른 일곱 번째 방송이 3월 12일에 나갔으니 거의 넉달만이네요.
그동안 근신한다며 세상에서 한 발 뒤로 빠져서 지냈는데
농사일로 바쁘게 보내다보니
오히려 몸과 마음은 편안해지는 나날이었습니다.


세상과 떨어져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게 근신이 될 수 없는 일인데다가
혼자서 지내는 삶은 세상에 대한 반감만 키우는 것이 되어서
이 방송을 다시 시작하는 걸 몇 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근신기간이 너무 짧은 것 같다는 생각에 물러서기도 했었고
내 안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별로 들리지 않아서 포기하기도 했었고
내 안에서 들리는 얘기가 거칠어서 주저하고도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세상으로부터 몇 가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전쟁을 피해 날아온 예맨 난민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고
세월호 생존자인 김동수씨는 또 한번의 자해로 입원을 했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는 서른번째 자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머나먼 나라의 남의 일인줄만 알았고
이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겠거니 생각했고
일이 잘 풀리고 있겠거니 생각했었는데...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보수세력이 몰락하며 변화의 파도가 더욱 거세지리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월드컵 열기에 함성소리가 높아지는 그 순간에도
지옥의 끝을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읽는 라디오 ‘살자’는
‘자살하지 말고 살자’라는 모토로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그 얘기는 저에게 하는 얘기였는데
이제부터는 이 방송을 듣는 분들과도 함께 공유해야겠습니다.


지금 당장 세상으로 나갈 용기는 없지만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수는 있으니
그 소리와 교감을 하는 방송으로 다시 해보려고 합니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녀석은 사랑이 친구 우정이입니다.
저만 보면 꼬리를 격하게 흔들며 달려와서는 만져달라고 애교를 부립니다.
그래서 쓰담쓰담해주면 이렇게 살며시 눈을 감고 제 손길을 즐깁니다.
이 모습이 정겨워서 더 자주 만져주게 되더라고요.


우정이를 처음 알게된 것은 작년 이맘때입니다.
개 한 마리가 이 근처를 어슬렁거리는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첫눈에 유기견인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경계가 심했습니다.
유기견이 돌아다니는 게 조금 꺼림찍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배가 고프면 사랑이 밥을 얻어먹으러 온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런 우정이를 내치지 않는 사랑이 때문에 저도 내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히기 시작해서
이제는 사랑이뿐만 아니라 저랑도 아주 친한 사이가 됐습니다.


우정이는 덩치도 크고 짖는 소리도 우렁차서 처음보는 사람은 무서워할 수도 있는데
이 녀석이 겉모습과 달리 엄청 엄살쟁이입니다.
같이 놀다가 실수로 발을 살짝 밟으면 엄청난 소리로 깨갱깨갱거리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우정이를 마냥 싫어합니다.
제가 사랑이 친구니까 괜찮다고 얘기를 해도
“떠돌이 개새끼가 와서 사랑이 밥을 먹어버린다”며 욕을 퍼붓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큰 사고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기는 좋은데
비오는 날에는 많이 안쓰럽습니다.
마땅히 비를 피할 곳이 없는지 이런 몰골로 나타날 때면 제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부러 우정이를 비닐하우스 안으로 데려다놓지만 금새 나가버리더라고요.
요즘처럼 비가 자주 오는 장마철이면 더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며칠 전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오이를 따러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는데
우정이가 비를 피해서 그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다행이다 싶었는데
우정이가 인기척을 느끼고 저를 바라본 순간
황급히 도망가버리더라고요.
“우정아, 괜찮으니까 이리와”라고 얘기했지만
흘끔흘끔 제 눈치를 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밖에 있을 때는 저만 보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던 녀석이
그런 모습을 보여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개들도 남의 집에 허락없이 몰래 들어와있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나봅니다.
저랑은 허물없이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우정이는 그렇게 눈치보며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우정이를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와
나를 대하는 우정이의 태도를 보며
예맨 난민들이 떠오르더군요.
그들도 모진 편견을 견뎌야할테고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하겠지요.


우정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쓰다듬어달라고 할때는 자주 쓰다듬어줘야겠습니다.

 

3


예전에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어릴 때에는 이웃들과 소소한 것을 많이 나누며 살았는데...”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고 세상살이가 각박해지다보니
‘나누면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게 없어져버렸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저만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에서도 그런 문화는 희귀해져버렸습니다.


제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슴 속에 간직하려고 했던 것은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연민’이었습니다.
분노에 기반한 운동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연민에 기반한 운동은 당사자가 돌아서지 않는한 계속된다는 것이
저의 운동철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중적인 진보운동의 민낯을 너무 오래동안 경험해버려서
연민보다는 증오의 감정이 훨씬 강해져버렸습니다.


세상에서 한 발 떨어져나와
제 자신을 다시 보듬었더니
잃어버렸던 것들이 다시 보입니다.
그래서 ‘나눔’과 ‘연민’을 다시 채워보려고 하는데
세상은 여전히 차갑고
진보는 여전히 성찰할 줄 모르고
제 자신은 여전히 이기적입니다.


예맨난민과 김동수씨와 쌍용자동차 해고자에 대한 증오과 연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요즘
제 안에서도 세상에 대한 증오와 연민이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 방송은 격렬한 내부투쟁이 적당히 타협한 결과물입니다.
다음 방송도 그런 투쟁과 타협의 연속이겠지요.
한영애의 ‘여울목’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