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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40회


1


눈이 침침해서 안과를 찾았습니다.
시력검사를 했더니 시력이 많이 나빠졌더군요.
안과에서 적어준 시력측정지를 들고 안경점을 찾았더니 놀라더군요.
지금까지 안경점을 하면서 이런 도수는 처음 본다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시력이 많이 좋지는 않은 편이었지만
중년 이후 이렇게 급격히 나빠지는 일은 아주 드물다고 하더군요.
2~3년 간격으로 안경을 새로 맞추고는 있지만
떨어지는 시력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대처방안도 딱히 없습니다.
주문제작한 고가의 렌즈로 버틸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합니다.
2~3년 지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이런 결과를 받아들면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이러다가 시력을 완전히 잃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방법이 없으니 그냥 마음을 다독이는 수 밖에요.
그때마다 보왕삼매론의 한 구절을 주문처럼 되새깁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들이 말씀하시길
병구로서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지레 겁먹어서 지금의 삶을 갉아먹지 말자고 다독여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기점진을 꾸준히 하고 안경으로 최대한 버텨본다’
‘눈에 좋지 않은 습관을 최대한 버린다’
‘마음이 평정해지도록 노력한다’
이런 정도입니다.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명상을 자주하자고 다짐해봅니다.
병구로서 양약을 삼아야지요.

 

2


얼마전까지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렀던 사람이 삶을 그만뒀다는 글을 페이스북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폭탄 터져 누가 죽는 모습을 봐야 비로소 여기가 전쟁터라는 걸 실감한다”고 글을 남겼습니다.


작년에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분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을 올립니다.
짧은 글 속에 짙은 외로움과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신경과 의사에게 분노조절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글을 남겼더군요.


세월호 사고 이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김동수씨는 최근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찾아가 그의 답답한 얘기를 들어주는 걸로 위로를 해주고 왔었는데, 갑자기 병원을 나와 비행기를 타고 청와대 앞으로 가서는 자해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세상에서 들려온 소식들이었습니다.
이런 소식들을 들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음에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곰곰이 이 사연들을 곱씹어봅니다.
“타인의 죽음에 세상의 비정함만을 얘기하는 건 이기적인 자기변명이지 않은가?”
“머리 속에 혁명에 대한 관념만을 가득 쌓아놓고 현실을 회피하는 모습은 타인을 피곤하게 만드는데...”
“자신의 고통만을 부여잡은 채 주변사람을 둘러보지 못하는 이를 어디까지 수용해야하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연민보다는 짜증이 더 일어납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음이 다행스러워지지요.
그러다보면 그들의 모습에서 제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얼마전까지 그렇게 발버둥치며 살아왔었는데, 이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짜증을 내고 있는 제 자신이 보입니다.


그제야 한 발 물러서서 다시 저와 그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냥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이게 헬조선의 한 장면이라는 걸 실감하지요.

 

3


권정생의 동화를 가끔 읽습니다.
그의 동화를 읽고 있으면
비정한 세상에서 착하고 순박하기만한 사람들의 얘기에 마음이 젖어듭니다.
그러면서 잠시나마 살벌하고 차가운 세상을 잊어보지요.


권정생은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지긋지긋한 가난과 질병을 십자가처럼 지고 살았습니다.
거기다가 세상에서 버림받은 그는 외로움이라는 벗과 평생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원망이 없었을 리가 없겠지요.
글을 쓰면서도 그의 가슴속에는 그 분노와 원망이 훨훨 타오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의 동화가 더 따뜻했는지 모릅니다.
분노와 원망을 장작불 삼아서 세상을 따뜻하게 비췄으니까요.
세상이 냉혹하게 그를 몰아치면 칠수록
‘착하게 살자’라고 수없이 되뇌이는 수련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헬조선을 살아가는 저에게 이런 수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번 주에는 권정생의 동화를 읽어봐야겠습니다.

 


(이상은의 ‘외롭고 웃긴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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