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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61회 – 내면의 평화보다는 세상과의 소통

 

 

 

1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비가 내렸다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내리기를 반복합니다.

그동안 다소 가물었던 날씨에 대한 보상심리인 듯 비는 엄청나게 쏟아집니다.

아직 기온은 그리 높지 않지만 습도가 매우 높아서 몸과 마음이 축축 쳐집니다.

 

한창 활개치고 있는 감귤나무 병충해들을 방제해야 하는데 비 때문에 약을 칠 수가 없습니다.

하우스 공사도 시작해야 하는데 역시 계속되는 비 날씨 때문에 무작정 지연되고 있습니다.

텃밭에 여름작물을 갈아야 하는데 밭이 마르질 않아 역시 미뤄두고 있습니다.

경사진 아래쪽 밭으로 물은 넘치지 않는지 신경도 쓰입니다.

 

일기예보는 일주일 이상 쉼 없이 비가 오고 기온은 점점 올라갈 것이라고 하니

이래저래 마음은 급해지고 몸은 쳐지지만

장마 속에 오히려 왕성하게 자라는 식물들을 보며

삶의 에너지와 평온한 기운을 함께 얻어가도록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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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던 엄청난 참사였지만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던 그들의 처절한 목소리였습니다.

 

잊을만하면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 이 나라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익숙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증언에 나선 10여 명의 이야기들도

비슷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그냥 들었습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그 끔찍했던 기억들을 덤덤하게 얘기하려고 노력했고

작가들은 그들의 힘겨운 노력을 조심스럽게 전달하려고 기를 모았고

저는 그 조심스러운 결과물 앞에서 그저 귀를 기울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참 편안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슷하면서도 너무도 다양한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들의 고통에 감정이입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도 않게 됐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을 때 읽는 라디오는 이렇게 얘기하곤 했었습니다.

“외면하지 않기, 참견하지 않기, 몸으로라도 바람을 막아서 온기를 지켜주기”

이제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니 그마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외면하지 않기’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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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큰일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해야 될 일들이 쌓이고

계획했던 일이 조금씩 틀어지고

오래된 문제가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생각지 못했던 일이 툭 튀어나와서 발길을 잡으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더군다나 이런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면 신경이 예민해지죠.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하나씩 처리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보지만

조급해지고 예민해진 마음은 ‘느긋해져야 한다’는 자기암시까지도 해야 될 일로 쌓아버리는 바람에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게 스트레스만 더 얻어버립니다.

 

그때 힘들게 버티고 있는 이들의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가만히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그들의 힘겨움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다보니 조급하고 예민하던 제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타인의 고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서 제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이기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 문제에 갇혀서 스스로를 옭아맬 때 눈과 귀를 밖으로 향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되었습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내면의 평화가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정태춘의 ‘서울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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