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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판매대금 정산이 이제야 끝났습니다.
시세가 좋아서 올해 수입은 꽤 좋은 편이지만
지난해에 병충해 피해로 폐기처분하다시피 한 것을 감안하면
2년 동안의 수입은 살짝 아쉽습니다.
앞으로도 올해 정도의 수확량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품질을 조금 더 높여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제가 감귤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로 최고 수입을 올린 해입니다.
대금이 들어오니
그동안 빌렸던 돈도 갚고
하우스 공사를 위한 계약금도 지급하고
어머니 생활비도 드리고
이곳저곳 후원금도 보내고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도 보내고 하다 보니
천만 원 넘는 돈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앞으로 하우스 공사대금, 비료 값, 농약 값 등으로
또 천만 원 넘는 돈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최고 수입이라고 해도 남는 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계산을 하고 났더니
판매대금이 조금만 더 들어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고
후원금을 보낼 때는 ‘조금 줄일까’ 하는 고민도 했었고
내년 수확에 대한 기대는 더 커지더군요.
작년에 한해 농사를 망쳤을 때는 “열심히 해서 내년에는 좋은 결과를 얻자”며 훌훌 털어버렸는데
열심히 해서 막상 좋은 결과가 나오니 만족스럽기보다는 욕심만 더 생기는 겁니다.
지금 정도의 수입이면 혼자서 먹고 살기에 큰 걱정이 없는데다가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삶의 궤적에서는 가장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고
제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삶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주위에 널려있음에도
눈앞에 목돈이 들어오니 스멀스멀 욕심이 자라나고 있네요.
날씨가 더워지면서 무섭게 자라는 잡초들을 자주 뽑아내야하듯이
내 마음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욕심도 매일매일 뽑아내야겠습니다.
2
다른 지역은 폭염이 시작됐다지만 이곳은 낮 기온이 25도를 넘지 않는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기온이 올라서 덥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은 참을만해서 선풍기를 꺼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는 많이 더운지 누워있는 자리를 자꾸 문쪽으로 옮기면서 조금이라도 바람을 느껴보려고 노력하더군요.
그런 사랑이를 보며 선풍기를 꺼냈습니다.
텃밭에 왕성하게 자란 풀들을 정리하며 채소들을 살펴봤더니 의외로 많은 채소들이 달려있었습니다.
봄부터 원 없이 먹고 있는 상추는 기본이고, 왕성하게 열리고 있는 오이와 고추가 아삭한 입맛을 돋우는데, 의외로 가지와 토마토까지 익어서 먹을 수 있게 자랐습니다.
안쪽으로 넓게 자리를 차지한 수박과 참외는 7월이 되야 먹을 수 있겠지만 지금 달리기 시작하는 것들로도 반찬은 풍요로워지고 있습니다.
농사짓는 이들에게 여름은
가장 힘든 시기이고
가장 중요한 시기이고
가장 풍요로운 시기입니다.
그렇게 즐거운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네요.
3
옛날 노래 중에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삶을 돌아봤더니 덧없이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의 바보 같은 삶을 자책하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저는 이 노래를 ‘바보 같이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축복하는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노래를 정확히 듣지 않고 그냥 제 마음대로 해석해버린 것인데
지금 와서 이 노래를 듣다보면 제 마음대로 해석해버린 의미가 더 좋았습니다.
이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남들에게 기대거나 휘둘리지 않고
자기중심을 명확히 잡아나가며
굳건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남들을 위해 뭔가를 했을 때 좋아해주는 것에 취해서 바보처럼 이용당하고
자신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다가 늙고 병들었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바보처럼 후회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진리처럼 믿고 살아가다가 배신의 상처만 잔득 안은 채 바보처럼 질질 짜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현명한 모습과 바보 같은 모습’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살아왔는데
마음이 더 편안한 것은 단연코 ‘바보 같은 모습’입니다.
앞으로도 바보처럼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봤습니다.
먼저 욕심을 버려야겠지요.
어차피 욕심을 부린다고 뭔가 생길 수 있는 삶도 아니기에
매순간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잡초들만 열심히 뽑아내면 될 듯도 합니다.
다음으로 바보 같은 그 모습을 긍정해야 하겠죠.
그러려면 나를 배신했던 이들, 이용했던 이들, 외면했던 이들, 상처 줬던 이들 모두를 품어야 하는데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과거의 인물로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죠.
옛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욕심 없이 지금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바보 같은 현인이 될 것도 같은데
세상은 쉼 없이 요동치고 있고
그에 따라 내 마음도 출렁이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바보처럼 살아가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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