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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

아래 글은 고재욱씨가 쓴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중에서 옮겨 왔습니다.

고재욱씨는 치매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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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죽음을 마주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숨이 꺼져가는 누군가의 삶의 끝자락에 자주 끼어 있다. 그럴 때 나는 고통에 일그러진 죽어가는 환자와 그걸 보며 절절한 울음을 토해내는 가족들 사이에 덤덤히 서 있다.

사람들이 “까짓것 죽기밖에 더하겠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이 말대로라면 죽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삶을 원하는 만큼 즐겁게 살다가 적당한 나이가 되면 ‘며칠 앓다가 죽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사람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그런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아픈 노인들은 삶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죽음의 몇몇 징후가 보인 후에도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죽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환자 자신은 물론이고 그 곁을 지키는 이에게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시간이 된다.

지긋지긋한 고통의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삶이 끝날 것 같은 날이 오지만 생(生)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노인은 들숨과 날숨의 간격이 갈수록 길어지는 며칠의 최종 관문을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호흡을 멈추고 삶을 마무리한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단숨에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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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늘 두렵다. 더러는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듣기도 한다. 직접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말하는 죽음에 대한 해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죽음의 외형적인 모습은 볼 수 있지만 죽어가는 이의 마음은 볼 수 없다. 환자 대부분은 죽음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사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어떤 느낌인지 직접 물어볼 수 없다. 그저 짧아진 들숨과 길어진 날숨의 거친 호흡 소리만 들릴 뿐이다.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잡았던 손을 떨어뜨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과연 죽음의 순간에 환자의 마음속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아직 환자의 의식이 온전할 때 그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반응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백여 명의 죽어가던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죽음을 두려워했다. 나 또한 죽음이 두렵다. 나는 그들과 죽음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이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죽음 자체가 두렵다기보다는 죽기까지의 과정을 두려워한다는 것. 나 역시도 그게 제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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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여 동안 백여 명의 삶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막연하게 기다렸다. 겉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심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꺼렸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실제 죽어가는 과정을 알고자 했다. 죽음에 대해 겉모습만 알고 있던 사람과 죽음의 과정을 깊이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사람의 마지막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 전자가 자기 죽음을 부정하고 외면하며 두려움에 떨었다면, 후자에 속하는 이들은 때가 되자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고 삶이 향하는 마지막 걸음을 신뢰하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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