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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부엉이, 박쥐, 방랑자, 도둑의 눈에 황혼은 아침식사 시간이다.

비는 관광객에게는 저주이나, 농부에게는 희소식이다.

현지인의 눈에 관광객은 그림처럼 보일 뿐이다.

카리브 해 섬의 인디언들 눈에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붉은 우단 망토를 입은 콜럼버스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앵무새였다.

 

 

목욕하기 싫어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엄마들은 “안 씻으니 꼭 인디언 같네.” 또는 “너한테 흑인 냄새가 나.”라고 말한다. 그것도 인디언이나 흑인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들에서 말이다. 그러나 신대륙 정복사가들은 인디언들이 자주 목욕하는 것을 보고 정복자들이 놀라 혼미한 상태에 빠졌다고 기록했다. 처음에는 인디언들이, 좀 더 후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캐나다에서 칠레에 이르는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도 위생 습관을 전해 주었다.

 

 

체사레 롬브로조(Cesare Lombroso)는 인종차별을 범죄학의 문제로 둔갑시켰다. 이탈리아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유대인인 그는 원시 미개인의 위험성을 증명하기 위해, 반세기 후에 히틀러가 유대인 배척운동을 정당화할 때 사용한 것과 대단히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범죄자는 범죄자로 태어나고, 그들의 생김새는 몽골 인종의 후손인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아프리카 흑인과 똑같다는 것이 롬브로소의 주장이다. 살인범은 광대뼈가 넓고 머리카락은 검은 곱슬머리이고 수염이 적으며 송곳니가 크다. 또 도둑놈은 코가 납작하고, 강간범은 입술과 눈꺼풀이 두툼하다. 범죄자는 미개인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여자들은 얼굴을 붉히곤 했지만, 롬브로조는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여자들까지도 범죄자의 용모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혁명가에 대해서도 “나는 균형 잡힌 얼굴을 지닌 무정부주의자를 본 적이 없다”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견해를 나타냈다.

 

 

1997년, 관용차 한 대가 상파울루 대로를 규정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출고한지 얼마 안 된 그 비싼 차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교차로에서 경찰 한 명이 차를 세웠다. 경찰은 그들을 차에서 내리게 한 뒤, 한 시간 가량 손을 위로 든 채 뒤돌아서 있게 하고, 어디에서 그 차를 훔쳤느냐고 연신 추궁했다.

세 명 모두 흑인이었다. 그중의 한 명인 에지발두 브리투(Edivaldo Brito)는 상파울루 주정부의 법무장관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법무부 직원들이었다. 브리투에게 이 사건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같은 일을 다섯 번이나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을 제지했던 경찰도 흑인이었다.

 

 

인디언은 바로 이래서 열등하다 (16~17세기 정복자들의 생각)

- 카리브 해 제도의 인디언들이 자살하는가?

나태라고, 일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 몸 전체가 얼굴인 것처럼 벗은 몸으로 활보하는가?

야만인은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 소유권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공유하며, 부에 대한 욕심이 없는가?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주 몸을 씻는가?

마호메트 종파의 이교도에 가깝기 때문인데, 종교재판소의 불구덩이에서 활활 타오를 것이다.

- 꿈을 믿고, 그 소리에 복종하는가?

사탄의 영향이거나 단순히 우둔하기 때문이다.

- 동성애가 자유로운가? 처녀는 순결을 전혀 중요하지 않는가?

난교(亂交)의 습성이 있고, 지옥문 바로 코앞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절대로 어린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두는가?

벌을 줄 능력도 가르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 먹어야 할 시간에 먹지 않고, 배고플 때 먹는가?

본능을 통제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을 어머니로 여기며, 자연은 신성하다고 믿는가?

종교를 가질 능력도 없거니와, 우상만을 숭배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일이 없는 사람들은 평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먹는 것을 두려워한다.

운전자는 걷는 것을 두려워하고, 보행자는 차에 치일까 봐 두려워한다.

민주주의는 기억을 두려워하고, 언어는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민간인은 군인을 두려워하고, 군인은 무기가 바닥날까 봐 두려워하며, 무기는 전쟁이 부족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이제는 공포의 시대다.

남성의 폭력에 대한 여성의 공포,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포, 도둑에 대한 공포, 경찰에 대한 공포

자물쇠 없는 문, 시계 없는 시간, 텔레비전 없는 아이, 수면제 없는 밤, 각성제 없는 낮에 대한 공포

군중에 대한 공포, 고독에 대한 공포, 지난 날에 대한 공포, 앞날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공포

 

 

라틴아메리카 군부는 1959년 쿠바 혁명을 기점으로 하여 방향을 전환했다. 전통 임무인 국경 수비에서 게릴라의 국가 전복 음모나 무수한 게릴라 양성소 같은 내부의 적을 소탕하는 것으로 담당 임무가 바뀌었다. 자유세계와 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명분에 힘입은 군인들은 거의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살해 버렸다. 1962년에서 1966년까지 불과 4년 사이에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아홉 차례의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고, 이후 군인들은 국가안보라는 교리를 맹신하며 시민정부를 무너뜨리고 양민을 학살했다. 세월은 흘렀고, 문민질서는 회복되었다. 적은 여전히 내부에 있지만, 더 이상 과거의 그 적은 아니다. 군부는 이제 일반 범죄자들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공공안녕을 외치는 히스테리가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밀어내고 있다. 군인들은 자신들을 단순한 경찰의 지위로 깎아내리는 것을 털끝만큼도 달가워하지 않지만 현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약 30년 전까지만 하더라고 기성 권력기구의 적(敵)은 밝은 분홍색에서 강렬한 빨강색까지 다채로웠다. 변두리 칼잡이와 좀도둑 사건은 사건․사고면을 읽는 독자들이나 잔인함을 탐독하는 사람들, 범죄 전문가들만의 관심을 끌 뿐이었다. 이젠 상황이 바뀌어 이른바 일반범죄가 보편적 강박관념이 되어 버렸다. 범죄도 민주화되어 누구라고 손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모든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는다. 범죄는 철권통치와 사형제도를 부르짖는 정치인과 언론인에게 강력한 자극의 원천이 되고, 영외(營外)에서 거두는 성공에 목을 매는 일부 군 장교들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일부 라틴아메리카 장군들은 정치 캠페인에서 민주주의를 혼란과 불안으로 동일시하는 이 집단적 공포를 대단히 그럴싸한 구실로 활용하여 한몫 단단히 챙겼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들은 피비린내 나는 독재 권력을 행사하거나 독재의 전면에서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이후엔 국민들의 놀랄 만한 반향을 등에 업고 슬그머니 민주주의 투쟁에 끼어들었다.

 

 

1997년 4월, 브라질리아를 방문 중이던 인디언 지도자 갈디노 헤수스 도스 산토스(Galdino Jesús Dos Santos)는 버스 정류장에서 자고 있다가 산 채로 타 죽었다. 좋은 집안 출신의 십대 다섯 명이 술을 마시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그에게 알코올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들은 이렇게 변명했다. “거지인 줄 알았어요.” 1년 후 브라질 법원은 살인 의도가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을 가벼운 금고형에 처했다. 연방직할지 법원의 기록관은 이렇게 말했다. 소년들은 가지고 있던 알코올의 반밖에 사용하지 않았고, 바로 그 점이 “살인이 아니라 즐기려는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걸인들을 불태워 죽이는 것은 브라질 상류층 자제들이 심심찮게 즐기는 스포츠지만, 그런 기사는 대체로 신문에 실리지 않는다.

 

 

1997년, 미국의 죄수는 총 180만 명이었는데 10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 수치는 가택에 연금된 사람, 가석방이나 보호감찰 대상인 사람들까지 합하면 세 배나 폭증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전개했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이 최악의 상황에 달했을 때의 수감자보다도 흑인은 다섯 배가 많고, 전체 수감자는 덴마크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 투자가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 것은 이렇게 엄청난 고객 리스트였는데, 바로 이는 감옥이 민영화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운영하는 감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식사는 형편없고 학대가 다반사로 이뤄진다지만, 그것은 사설 감옥이 국영 감옥에 비해 싸지도 않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주는 증거다. 비용을 절감해도 이익은 과도하게 늘어난다.

17세기경, 영국의 간수들은 죄수를 보내달라고 판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곤 했다. 석방시간이 다가오면 죄수들은 빚에 몰려 생을 마칠 때까지 간수들을 위해 노동을 하거나 구걸을 하곤 했다. 20세기 말 현재 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라는 미국의 한 사설 교도소 회사는 뉴욕 증시 상위 5위 내에 랭크돼 있다. 이 회사는 캔터키프라이드치킨(KFC)에서 나온 자금으로 1982년 설립되었는데, 치킨 팔듯이 감옥을 팔아댈 것이라고 광고했다. 1997년말, 이 회사의 주가는 무려 70배나 뛰어올랐고,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푸에르토리코에도 감옥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내수시장이 사업의 기반이었다. 미국의 죄수는 나날이 늘어만 가고 감옥은 언제나 빈 방이 없는 호텔이다. 1992년에는 100여 개가 넘는 회사가 감옥을 디자인하고 건설하고 경영했다.

1996년, 이렇듯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월드리서치그룹(World Research Group)의 후원으로 전문가 회의가 열렸다. 회의 개최 알림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체포하고 구형하는 일이 늘어나면 수익도 늘어난다. 그 수익은 범죄 수익이다.” 사실 미국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범죄는 줄어들었지만, 시장은 더욱 많은 죄수를 공급하고 있다. 수감자 수는 범죄 건수가 늘어날 때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로 감옥에 가기 때문이다. 범죄 통계 때문에 한창 잘나가는 사업을 망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게다가 이 방면의 경영 간부인 다이안 매클루어(Diane McClure)는 1997년 10월, “우리의 시장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범죄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라는 희소식을 전하며 주주들을 안심시켰다.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의 백정 가운데 하나인 알프레도 아스티스(Alfredo Astiz) 대위는 진실을 발설한 죄로 파면되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은 모두 해군에서 배웠다면서, 직업적 박식함을 자랑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정치인이나 기자들을 없애는 데는 기술적으로 가장 제대로 준비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와 또 몇 명의 아르헨티나 군 간부들은 에스파냐,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사람들을 암살한 혐의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재판에 회부되었거나 기소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이 수천 명의 자국민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지난 일은 잊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취지의 법에 따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여러 형태의 불처벌법 역시 같은 기계에서 찍어 낸 듯 닮은꼴이다.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는 외채 상환과 범죄 망각이라는 선고를 받고 소생했다. 마치 민선 정부가 군부의 노력에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군부의 공포정치는 유리한 해외투자 환경을 조성했고, 이어 뻔뻔스럽게도 나라를 헐값에 팔아먹을 수 있는 길을 잘 닦아 놓았다. 국가 주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노동권을 유린하고, 공익사업이 와해된 것은 바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였다. 모든 것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행되거나 파괴되었다. 1980년대에 민권을 회복한 사회는 최상의 기력을 이미 상실한 상태였고, 거짓과 공포에서 살아남는 데 익숙해져 있었으며, 너무도 낙담하고 쇠약해져서 창조적 활력을 필요로 했다. 창조적 활력은 민주주의가 약속한 것이긴 하지만, 줄 수도 없었고 줄 방법도 몰랐다.

국민의 투표로 당선된 정부는 정의를 보복과 동일시하고, 기억을 무질서와 혼동했으며, 국가 테러리즘을 자행한 자들의 이마 위해 성수를 부었다. 민주주의의 안정과 국민화합이라는 이름 아래에 정의를 추방하고 과거를 묻어 버리며 기억상실을 찬양하는 불처벌 법안들을 공포했다. 그중 어떤 법은 세계 역사상 가장 잔인무도했던 여러 선례를 훨씬 더 능가하기도 했다. 1987년에 공포된 아르헨티나의 지당한 복종법은 10년이 지나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자 폐기되었다. 지당한 복종법은 어떻게든 사면해 주려는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에 명령을 따랐을 뿐인 군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명령을 내린 사람이 상사든 대위든 장군이든 신이든 명령에 따르지 않을 군인은 없으므로 형벌의 책임은 신(神)들의 나라에나 부려지곤 했다. 히틀러가 자신의 정신착란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1940년에 완성시킨 독일 군법은 당연히도 훨씬 신중했다. 예를 들면, 제47항에서는 “상관의 명령이 일반 범죄나 군범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행동의 책임 소재가 부하 군인에게 있다고 규정한다.

그 외의 라틴아메리카 여러 법은 지당한 복종법만큼 격하지는 않았지만, 군부의 오만함에 국민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또한 그 법들은 국민의 공포를 이용하여 대학살은 정의가 닿지 않는 곳에 모셔두고, 최근세사가 남긴 모든 쓰레기는 양탄자 밑에 숨기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폭력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융단폭력 식 홍보를 접한 뒤에 대부분의 우루과이 국민들은 1989년의 선거에서 불처벌을 지지했다. 공포가 승리했고, 무엇보다도 공포가 법의 원천이 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전 지역에서 공포는 때로 물밑에 가라앉아 있고, 때로는 눈앞에 보이기도 하는데, 권력을 살지게 하고 정당화한다. 그리고 권력을 민주주주의 선거의 리듬에 맞춰 들어서고 나가는 정부보다 더 깊은 뿌리와 더 끈질긴 구조를 지니고 있다.

 

 

세기말의 높은 하늘, 미국은 지구상에서 자동차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일 뿐 아니라, 무기도 가장 많이 몰려 있다. 6, 6, 6. 보통 시민이 지출하는 6달러당 1달러는 자동차에 들어간다. 살아가는 여섯 시간마다 한 시간을 차 안에 있거나 차 값을 지출하기 위해 일한다. 알자리 여섯 개당 한 자리는 직간접적으로 자동차와 관련되어 있고, 또 다른 한 자리를 폭력이나 폭력 연계 산업과 관련되어 있다. 자동차와 무기가 더 많은 사람을 살해하면 할수록, 자연이 더 많이 황폐해지면 질수록 국민총생산(GNP)은 늘어난다.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위한 부적인가 아니면 범죄를 부추기는 것인가? 자동차 판매량은 무기 판매량에 비례하는데, 무기 판매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동차사고는 화기, 총포에 의한 사망률을 누르고 젊은층의 사망 원인 1위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 중에 전사하거나 부상한 미국인보다 더 많은 미국인이 교통사고로 매년 목숨을 읽거나 다친다. 그리고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누구든지 자동소총을 구입해서 동네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 요리해 버릴 수도 있다. 운전면허증이 그 용도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수표로 지불을 하거나 수표를 현금으로 찾을 때, 어떤 수속을 하거나 계약서에 서명을 할 때도 쓰인다. 운전면허증이 주민등록증을 대신한다. 다시 말해,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해 준다.

 

 

현대화, 자동차화. 당신의 자유를 훔친 후 나중에 당신에게 되팔고, 당신의 다리를 자른 후 나중에 자동차나 운동기구를 사라고 강요하는 문명의 저의를 고발하는 소리는 엔진의 굉음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자동차가 지배하는 도시의 악몽이 세상에서 유일하고도 가능한 삶의 모델로 강요된다. 라틴아메리카 도시들은 800만 대의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로스앤젤레스와 비슷해지기를 꿈꾼다. 창조 대신에 똑같이 찍어 내는 훈련에 돌입한 지 500년이 된 우리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그 현기증 나는 상황의 기괴한 복사본이 되길 갈망한다. 운명이 모방자로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최소한 무엇을 모방할 것인가를 선택할 때 조금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낭비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조용하게 살 수도 없고, 조용함을 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나는 법을 잊어버린 암탉의 날개처럼 걷는 법을 잊어버린 다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쓰레기를 먹으며 마치 음식이라도 되는 양 돈을 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마치 공기라도 되는 양 10원 한 장 내지 않고 똥을 먹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텔레비전 채널 두 개를 놓고 하나를 택할 자유 외에는 아무런 자유도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기계와 함께 열정적이고 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항상 다수지만 항상 외로운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1983년, 독일 작가 권터 발라프(Günter Wallraff)가 주유소들 중 한 군데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함부르크에 있는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는 회사가 맥도날드라는 이름으로 어떤 일을 자행하는지는 순진할 만큼 알지 못했다. 그는 끓는 기름방울을 맞아 가면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일했다. 해동된 햄버거는 10분 동안만 먹을 만하다. 10분이 지나면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그전에 지체 없이 철판에 던져야 한다. 감자튀김, 채소, 고기, 생선, 닭고기 등의 모든 음식 맛이 똑같다. 그것은 화학 산업이 지시하는 대로 만들어 낸 인공의 맛이다. 게다가 고기에 포함된 지방 함량이 25%나 된다는 사실, 그것도 색소를 첨가했다는 사실을 숨기는 데 온힘을 다한다. 이 불량식품은 세기말에 가장 성공을 거둔 음식이다.

 

 

전문가들은 물건을 외로움을 달래는 마술사의 주문으로 바꿀 줄 안다. 물건은 인간의 속성을 지녔다. 쓰다듬고, 같이 있어 주고, 이해해 주고, 도와준다. 향수는 당신에게 키스해 주고, 자동차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 친구다. 소비문화는 고독을 시장에서 가장 수지맞는 품목으로 만들었다. 가슴에 뚫린 구멍은 그 구멍을 물건으로 가득 채우거나 가득 채우는 꿈을 꾸는 것으로 메워진다. 그리고 물건은 껴안을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물건은 신분상승의 상징이 될 수도 있고, 계급사회의 세관을 통과하기 위한 허가증이 될 수도 있으며, 출입 금지된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흔하지 않을수록 더 좋다. 물건이 당신을 택하고, 군중의 익명성에서 당신을 구한다. 광고는 판매하는 물건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아주 드물게는 예외도 있지만 말이다. 정보 제공이야말로 제일 하찮은 일이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절망을 보상하고 환상을 심는 일이다. 당신은 이 면도용 로션을 사면서 어떤 사람으로 바뀌고 싶습니까?

 

 

세계가 커다란 TV 화면으로 변하려 한다. TV 속 물건은 바라보는 것이지 만질 수는 없다. 판매되기를 기다리는 상품은 공공의 공간을 침략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남의 장소였던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은 이제 상업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모든 쇼윈도의 쇼윈도라 할 수 있는 쇼핑센터나 쇼핑몰은 자신의 위압적 존재를 억지로 주입한다. 군중은 소비의 미사가 열리는 이 대사원에 순례자가 되어 참석한다.

 

 

지구의 주인들은 지구가 마치 일회용인 것처럼 사용한다. 태어나자마자 바닥나는, 잠깐 사용하고 버리는 물건, 텔레비전에서 기관총처럼 쏟아내는 영상들, 잠시도 쉴 틈 없이 광고가 토해 내는 유행과 우상들. 그러나 우리가 어느 다른 별로 이사해 살 것인가? 신께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지구를 사유화하기로 결심하시고, 몇몇 기업에게 지구를 팔아넘기셨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믿어야만 하는가? 소비사회는 바보 사냥을 위한 함정이다. 칼자루를 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척하지만,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자연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적게, 아주 조금 소비하거나 혹은 전혀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회의 불의는 시정해야 하는 잘못이나 극복해야 할 단점이 아니라 절대 불가결한 필수품이다. 지구 크기의 쇼핑센터를 먹여 살릴 만한 자연은 없다.

 

 

도시의 담벼락에 적혀 있는 것

- 나는 밤이 너무도 좋아. 그래서 낮에는 밤 위에 차양을 칠거야.

- 그래, 매미는 일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개미는 노래할 수 없어.

- 우리 할머니가 마약은 안 된다고 하셨어. 그리곤 돌아가셨지.

- 인생은 저절로 치유되는 병이야.

- 이 공장은 새들을 연기로 내뿜네.

- 우리 아버지는 정치가라도 된 것처럼 거짓말을 하셔.

- 행동은 이제 그만! 우린 소망을 원해!

- 희망은 가장 마지막으로 읽어버린 것.

- 세상에 오기 위해 아무도 우리에게 길을 물어 본 적 없지만, 이 세상에 살기 위해 우리에게 길을 물어봐 주었으면 해.

- 다른 나라가 있을 거야. 어딘가에.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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