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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46회 – 내 마음에 박힌 가시

 

 

 

1

 

읽는 라디오 마흔 여섯 번째 문을 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오래간만에 단편소설을 한 편 읽었습니다.

박수린 작가의 ‘시간의 궤적’이라는 소설이었는데요

가슴에 날카롭게 파고드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우연하게 가까워져서 친하게 지냈던 언니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서로가 비슷한 꿈과 고민을 갖고 있으면 그것 때문에 말이 잘 통했고

서로의 삶이 이질적이면 다르기 때문에 대화가 풍부할 수 있었던

너무 편하고 좋았던 언니였습니다.

그 관계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져서

서로의 장점을 보듬어 안고

단점은 슬며시 감춰주기도 하면서

삶의 굴곡을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런 언니에 대해서 누군가 싫은 소리를 하거나 험담을 하면

날카롭게 한마디 쏘아붙일 수 있는 당당함도 생겼습니다.

굵은 직선이던 관계는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점선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언니를 만나면 편안하고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먼 곳으로 발령을 받게 돼서 마지막 추억여행을 같이 가게 됩니다.

그때는 이미 결혼해서 남편이 있었던 그는 남편과 함께 언니와의 마지막 여행을 즐기게 되죠.

하지만 그때 그는 결혼생활에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의 삶에는 크고 작은 파도가 계속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삶의 부침과 고민이 있으면서도 꿋꿋하려 노력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그는 여러 가지로 복잡한 감정을 만들고 지우고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여행이 끝나가던 저녁 술자리에서 둘은 자신들의 고민을 편안하게 얘기하는데

자신의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살며시 드러내는 언니를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배배꼬여버린 그는 언니의 가장 아픈 곳을 향해 날카로운 가시를 박아버립니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과 어색한 미소가 이어졌고, 시덥잖은 얘기가 좀 더 이어지다 그날 술자리는 마무리 됩니다.

그리고 그와 언니의 관계는 끝이 납니다.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얘기를 편안하게 들으면서

오래간만에 감정의 선율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그만 유리조각에 손가락이 베여

찌릿한 통증과 함께 붉은 핏방울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의 힘겨움과 들썩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가장 편하고 믿을 수 있는 상대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던 경험이 저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한다면

그가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상대였기에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내 힘겨움과 들썩이는 감정을 몰라주는 것이 서운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나만큼이나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의연하려는 상대의 모습에 샘이 나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한 마디의 말은

상대의 가슴에 너무도 정확하게 박혀버렸고

그 상처는

내 가슴에도 지워지지 않는 혈흔을 남겨버렸습니다.

 

애써 지워버리려고 묻어두었던 그 기억이 되살아나니

좀처럼 사라지지 않더군요.

외면하려고 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그 기억을

정면으로 다시 마주할 자신도 없고

멀리 도망갈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찌릿한 통증만을 느끼며 뒤척이다가

성민씨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방면으로는 성민씨가 경험이 풍부하니까요.

 

 

2

 

들풀님의 메일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상당히 부담스러운 메일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설교를 늘어놓을 자신은 없으니

그냥 제 경험만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제가 한참 삶의 구렁텅이에서 발버둥치고 있던 어느 연말

오래간만에 예전 동지들을 만나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지들과의 자리여서

신이 난 저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마구 쏟아냈고

그 와중에 중간 중간 발언의 수위가 넘실거렸지만

저의 힘겨움을 투정으로 받아주리가 믿고 브레이크 없이 내달렸죠.

그러다 갑자기 한 동지가 제가 저질렀던 성폭력에 대해 한마디 툭 던졌고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 저는 쉼 없이 나불대던 입을 다물어야했습니다.

그러자 그 동지가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왜 아무 말도 못해?”라고 묻더군요.

 

그 이후 다시 더 깊은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진 저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상처를 부여잡으며 살아야했습니다.

무기력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잠시 정신을 차려보려 하면

악몽처럼 그날의 기억이 찾아와 괴롭히곤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고향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조금씩 조금씩 몸과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제 악몽도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렵게 악몽에서 벗어나면서 제 자신을 위로해주기 시작하는 순간

그 악몽 뒤에 가리워져 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악행을 저질렀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 겁니다.

무덤덤하게 저를 바라보는 그 얼굴들은

“니가 준 상처 때문에 나는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할 말을 잃었고

아물기 시작한 마음의 상처를 다시 헤집어야 했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뿐이었습니다.

제가 준 상처 때문에 이보다 몇 배는 더 심한 고통에 몸부림쳤거나 어쩌면 아직도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갈지 모르는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방법은 최소한 그들만큼이라도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행복함을 느낄 때마다

일부러라도 그 상처를 헤집어서 고통을 불어넣기도 하며 살아갔는데

시간이 흘러가니까 그마저도 아물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미안함만 남아버렸습니다.

 

그 지난한 과정들을 겪으며 제 삶은 점점 더 편안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행복함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받은 상처든 내가 준 상처든 웬만한 것은 아물어버려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데

드문드문 예전에 저질렀던 추한 행동들이 떠올라서 저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가능하면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런 기억들은 한없이 저를 초라하게 만듭니다.

아름다고 행복했던 기억들은 잘 떠오르지도 않고 하필 이런 기억들만 떠오르는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이렇게 부끄러움만 간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짐을 합니다.

앞으로는 부끄러운 기억을 만들지 않고 살아보자고요.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유명한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입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 가끔 멍하니 바라보곤 합니다.

 

그림자 속에서 반짝이는 진주 귀걸이는 거울처럼 내 주변을 비추고

그렇게 그림이 나를 바라보게 놔둔 채 가만히 있으면

진주보다 더 맑은 눈동자에 내가 비춰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걸 느끼는 순간 내 속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 눈을 돌리려하면

살짝 벌어진 입술로 뭐하고 말을 걸어올 것 같아집니다.

 

성민씨의 답장을 받고

부끄러움은 더 커졌지만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봤더니

제 마음 속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얘기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잘 간직하고 살아가겠습니다.

 

 

 

(캐스커의 ‘나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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