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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은 어디인가, 미국의 민낯을 보고 내 모습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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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노숙인에 대한 얘기가 지겨운 얘기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 뻔한 얘기를 다시 반복하는 다큐멘터리였다.

화려한 미국의 대도시에서 텐트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선동적이거나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였지만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은 집세를 내기 힘들게 됐고

집세를 내지 못한 사람들은 가차 없이 거리로 쫓겨났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지만 수입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이 줄어들어서 다시 길거리로 나와야했고

몇 년을 노숙생활로 버텨보지만 좀처럼 그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수시로 가해지는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있으면서도 대책은 없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길거리를 전전하며 세수를 하기 위해 매일 화장실을 찾아야하고

성폭력으로 인해 만삭이 된 몸을 안고 거리를 헤매야 했다.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기 시작하자 정부에서 부랴부랴 대책을 세웠지만 그 대책이라는 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였고

노숙인지원센터를 건립하는 문제는 주민들이 “그러다가 노숙인들이 이 동네로 몰려든다”며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제동이 걸렸고

경찰들은 갈 곳 없는 그들을 무작정 쫓아내기만 했다.

 

화려한 지옥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덤덤하게 자신의 처지를 얘기하기도 하고

웃으면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벗어날 길 없는 현실에 눈물 흘리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매일 아침마다 깔끔하게 양치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눈으로 말한다.

길거리의 쓰레기처럼 내던져지고, 유기견처럼 혐오의 대상이 돼서 이리저리 쫓겨 다니지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찾으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다고...

집이 없다고 인간이 짐승이 되는 건 아니라고...

 

영화가 시작할 때 활기가 돋기 시작하는 도시의 새벽 모습을 보여줬다.

거리에는 차들이 다니기 시작하고

건물들에는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일어나 양치를 하고 식사준비를 하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거리의 텐트에서 나와 양치를 하던 노숙인이 그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노숙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난방이 잘 된 집에서

건강을 위해 명상과 요가를 하고

현미밥에 견과류와 과일을 챙겨먹으며

큰 걱정이 없이 살아가는 나는

참으로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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