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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50회 – 겨울은 성찰하기 좋은 때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쉰 번째 방송 시작합니다.

반갑습니다, 성민입니다.

 

지난 방송에서 들풀님이 변화와 기득권이 된 진보세력에 대해 얘기하셨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며 공감과 반발이 교차하더군요.

지금의 집권세력인 민주당만이 아니라 정의당마저도 이미 기득권 세력이 돼서 변화보다는 그들의 자리확보에 혈안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586용퇴론까지 나오는 형국이지요.

 

그런데 이들이 진보세력을 대표하면서 젊은 세대들의 눈에는 소위 586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진보꼰대들로 낙인찍혀버렸다는 겁니다.

586세대의 끄트머리에서 그 저항의 시대를 함께 헤쳐 왔던 저는, 별다른 기득권도 없는데. 그들과 도매급으로 같이 취급되는 게 너무 분하고 억울합니다.

노동운동을 할 때도

권력을 쫓아 제도권으로 향했던 이들을 강하게 비판해왔고

그들과 노선도 달리했으며

심지어는 그들에 맞서 격렬한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과 나 사이에는 태평양보다 더 넓은 간극이 있는데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진보꼰대로 비춰지는 건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라는 눈으로 바라본다면

내가 아무리 그들과 다르다고 강변을 해봐도

그들과 큰 흐름을 함께 해왔던 기성세대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밖에 변화시켜내지 못한 것도 책임이라면 책임이고

이런 세상에서 발붙일 조금의 틈조차 없는 젊은 세대들을 헤아릴 여유가 없는 것도 인정해야하고

팍팍한 현실에서 남은 건 알량한 자존심밖에 없어서 꼰대소리를 듣더라도 그걸 버릴 수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급진적 진보가 자유주의적 진보와 어떻게 다르며, 사회주의적 가치가 어떻다느니 하며 떠들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여러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죠.

그러면서 제 발밑을 자주 살펴봐야겠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2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많이도 싸웠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심각한 문제로 다툰 적은 거의 없고

대부분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로 싸우곤 했습니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서로의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서 져주기 시작하더군요.

싸워봐야 변하는 건 없는데 그럴수록 나이든 자신만 손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상 속에서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태도가 불쑥 드러나면

저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쏘아붙였고

아버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려고 노력하면서 말을 돌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런 모습이 제게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저의 태도가 가족들 속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면

가부장적인 태도가 있는 매제는 은근히 저를 몰아붙이고

가족들과 싸워서 손해 볼 것이 많은 저는 불편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뒤돌아서서 불쾌한 마음을 애써 달래고 있는데

아버지의 모습이 제 모습과 오버랩 되더군요.

제가 했던 말과 행동이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소심하고 잔걱정이 많은 어머니는

자식들을 보면 이런저런 소소한 걱정들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애정의 표현이라는 걸 알기에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가끔 그럴 말들이 제 감정선을 건드리게 되면 불쑥 짜증을 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그런 어머니의 침묵 앞에서

‘이것도 나중에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올텐데...’ 하는 걱정이 듭니다.

 

 

3

 

안녕~

반말을 해야 할지, 존댓말을 해야 할지...

나보단 열 살이나 많기는 하지만 나한테 보내는 글이니까 그냥 반말로 해도 되겠지?

기분 나빠도 이해해주겠지?

원래 내가 싸가지가 없잖아. -.-;;

 

뭐하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하는 걸 묻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그런 질문을 하기가 어렵네...

이런 저런 걱정이 들어서...

잘 살고 있겠지?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으니까

뭐, 할 말이 별로 없네.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을 테고...

 

아이~씨~

좀 멋있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그렇게 안 되네.

역시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이렇다니까.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뜨거운 기운을 전해줬는데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뭔가 전해줄게 없어서...

미안해.

 

아이~씨~

괜히 울컥해진다.

 

그냥 잘 지내.

나도 잘 지낼게.

너무 짧은 편지지만

이거 성의 없이 쓴 건 아니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말아라.

 

편지를 마치면서 하나만 물어볼게.

10년 후의 너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냐?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냐?

아니면 살며시 웃으면서 ‘고생했다’고 얘기해주고 싶은 기억이냐?

솔직히 그게 가장 궁금하네.

 

 

10년 전 성민이가 보냈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너무 조심스럽게 쓴 편지여서 미소를 짓지도 못했습니다.

이 편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는 답장을 썼습니다.

 

 

안녕~

편지 잘 받았어.

내게 편지 보내줘서 정말 고마워.

 

니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나는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어.

오히려 그게 너한테 미안할 정도야.

나의 편안함은 너의 고통스러움의 결과이기 때문이거든.

힘든 시기를 견뎌내면 행복한 때가 찾아온다는 단순한 연기론이 아니라

뼈에 사무친 너의 그 고통들이 내 뼈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편안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는 얘기야.

 

너는 과거에서 뜨거운 열정을 물려받았다고 했지?

나는 너에게서 그보다 더 뜨거운 인내를 물려받았어.

지금은 그 뜨거움들이 조금씩 식어가고 있어서 미안하기만 할 뿐이야.

내가 물려받은 것들을 갈고 닦아서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갉아먹어버리는 그런 느낌이어서...

 

이제 나는 너에게 뭘 보여줘야 할까?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그때 니가 최선을 다해서 살아갔던 것처럼

지금의 나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려고 노력할게.

너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성민아, 잘 버텨줘서 정말 고맙다.

 

 

 

(꽃다지의 ‘창살 아래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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