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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상상력과 유쾌한 행동주의로 되찾는 거리

불온한 상상력과 유쾌한 행동주의로 되찾는 거리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카피레프트모임 윤병삼

1. 거리를 되찾자? 어떻게?

"거리축제(Street Party)를 준비하는 방법
1.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 아마도 당신 친구들일테다. 행동계획에 착수하라. 각기 다른 역할과 작업, 시간을 추려내라. 상상하라. 무엇이 가능한가?
2. 날짜를 결정한다. 충분한 시간을 가져라. 너무 많이는 필요없지만("데드라인"은 커다란 동기가 된다) 물품이나 시설 등 필요한 준비를 하기에 충분한 여유를 두어야 한다. 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
3. 위치를 정한다. 당신이 살고 있는 거리나 도심, 혼잡한 도로나 교차로, 혹은 고속화도로! 따로 떨어진 집결지가 좋다. 관료들은 그렇지 않지만 사람들은 신비로운 것을 좋아한다.
4. 선전한다.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 리플렛, 포스터, 전자우편, 전서구(傳書鳩). 언제 어디에서 모이는지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하라. 포스터와 풀은 벽, 게시판, 공중전화 박스와 잘 어울린다. 상점과 클럽, 주점 등에 전단을 뿌려라.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어머니에게도.
5. 공연시스템을 점검한다. 축제에는 음악이 필요하다. 레이브, 전자음악, 어쿠스틱, 요들송 등 다양하게 준비하라. 마술사와 광대, 시인, 예언자, 연주자 등 모든 종류의 예술가들을 초대하라. 도로 한가운데에 함께 무대를 설치하자고 운동 단체들에게 제안한다.
6. 당신은 어떻게 이 장소를 바꿔낼 것인가? 당신이 고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커다란 플래카드와 다채로운 벽화, 발랄한 성벽, 1톤에 가까운 모래,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야외풀과 양탄자, 의자 등을 준비하라. 이전에 모은 재료와 돈이 여기서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참가자들과 행인들에게 나눠줄 이 "집단적 백일몽"에 관한 설명서를 인쇄하라.
7. 거리를 열기 위해서는(아니 차량이 다시 거리를 막는 것을 저지한다고 말하자) 리본과 가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거대한 삼각대 꼭대기에 사람이 매달림으로써 쉽게 거리를 열 수 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실천하라. 한 대의 차로 거리를 막은 채 이 차를 부수는 것도 훌륭하다. 전통적인 "바리케이드"로 할 수도 있다.
8. 당신 지역의 "개발"로 도로에서 뿌리뽑히게 될 나무를 살려다가 다른 곳에 심을 준비를 하자. 기압드릴과 보호안경이 필요할 수도 있다.
9. 거리축제를 갖자! 맑은 공기와 색색의 풍경, 집단적 어울림을 즐기자. 공짜 음식과 춤, 웃음을 가져오고 소화전을 터뜨리자. 푸른 제복을 입은 소년들(경찰-옮긴이)은 노여워할 수도 있다. 명쾌한 가르침으로 이들을 진정시키자.
10. 적어도 몇몇 소년들은 말귀를 못알아듣고 사람들을 잡아챌 것이다. 보통 여섯 명이 그 모든 초과근무의 가치가 있다고 자신들의 상관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수이다. 물론 당신은 거리시위를 이해해주는 변호사를 만날 수 있고 경찰관의 수와 체포된 사람들의 전화번호, 기본적인 조언 등을 담은 체포일지를 배포할 것이다. 영국에서 체포일지는 좋은 제도이다. 누군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메시지와 이름을 기록, 한두 주 후에 피고인 집회를 열도록 준비하자.
훨씬 더 많은 친구들을 모아 다음 거리축제를 계획한다. 당신이 사는 지역, 작업장, 학교, 거리에서 조직하라."(거리를 되찾자 홈페이지(http://www.gn.apc.org/rts) 中)

장황한 인용이었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거리를 되찾자(Reclaim The Street)"를 알기에는 위의 거리축제 준비법이 가장 적절한 듯하다. '삶의 공간으로서의 거리'에 동의하는 누구나에게 스스로 거리축제를 만들라고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5월 광화문 앞 세종로에서 '차없는 거리' 행사가 열려 얼마 안되는 구간이나마 자동차 없는 차도에서 자전거와 롤러블레이드, 보행자들이 '거리를 되찾은' 적이 있다. 그러나 서유럽과 비교해보면 세종로 '차없는 거리'는 금방 무색해진다. 녹색당 인사인 프랑스의 환경장관 부아네는 올해 9월에도 '차없는 거리'를 연다고 발표하면서 인근 국가들에도 동참을 호소하였다. 스위스, 이탈리아 등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80년대 말 이래 서유럽에서는 시나 소도시 차원의 '차없는 거리' 행사가 연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작년과 올해 프랑스에서 열리는 행사는 전국적인 규모이다. 프랑스 전역에 이 날은 차가 다니지 않는 것이다. 물론 대중교통은 빼고. 올해 9월에는 서유럽 전역에서 자동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거리에서 여유로운 산책과 축제를 벌이는 풍경을 볼 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차없는 거리' 행사가 대중화되고 국가적, 전유럽적인 행사가 된 데는 "거리를 되찾자"를 비롯한 생태주의 사회운동 단체들의 힘이 큰 듯하다. 때로는 공권력과의 물리적인 충돌까지 불사한 채 거리를 되찾기 위해 직접행동을 벌이고 꾸준히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의제를 설득시킨 성과인 것이다. 이들은 91년부터 지금까지 '차없는 거리'를 일상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대규모 비정부기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조합처럼 확실한 조직대중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하나의 작은 소그룹이 어떻게 자신들의 메시지를 유럽 전역과 전세계에 전파하고 대중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직접행동 단체인 "거리를 되찾자"는 91년 결성된 이래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 거리 점거에서 거리축제까지, 석유기업 반대시위에서 파업노동자와의 연대시위에 이르기까지 "거리를 되찾자"의 행동과 아이디어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공감하고 함께 행동하게 만들고 있다. 어찌보면 자동차 매연과 교통혼잡이라는 상식적 문제에 대한 캠페인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반자본주의적 상상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도의 WTO 탈퇴를 요구하는 히드레바드에서의 5만명의 행진, 덴마크의 총파업, 32만명의 지역 여성들을 집에서 내몬 나르마다 댐 공사현장의 점령, 캐나다 우체부들의 자전거 행진과 연대파업, 니제르 삼각주에서의 환경파괴적 석유 장치의 점령과 파이프라인의 봉쇄, 카르나타카 농민연합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매장 방화, 리버풀 부두노동자 파업, 치아파스의 사빠띠스따 무장봉기의 지지자들이 멕시코 주식시장의 거래를 중지시킨 것, IMF에 맞서고 수하르토를 퇴진시킨 인도네시아 봉기, 프랑스 농민들이 유전자 조작 곡물을 파괴한 것, 브라질의 소작농민들이 수백의 유휴토지를 점령하여 혐동 자조 공동체를 건설한 것, 5대륙에 걸친 풀뿌리 기구와 NGO의 운동, 지난해 5월 G8 회담에서는 수만의 인파가 그들의 거리를 되찾아 공동체적 근본과 시민사회의 수호를 위해 춤췄다"(런던 "거리를 되찾자(RTS)" 선언문, '우리의 저항은 자본만큼이나 초국적이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시각은 전사회부문, 전지구적으로 열려 있으며 현존 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에 뿌리를 두고 있다.

2. 야밤의 낙서꾼에서 거리의 주인으로

"거리를 되찾자"는 1991년 가을 런던에서 결성되었다. 당시는 유럽에서 도로반대 운동이 이제 막 싹트던 시기였다. 트와이포드다운(Twyford Down) 도로를 둘러싼 투쟁 속에서 몇몇 소그룹들이 자동차에 대한 직접행동을 위해 함께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도보, 자전거타기, 저렴하거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교통을 위해, 그리고 자동차와 도로, 이들을 밀어붙이는 체제에 반대하는"("거리를 되찾자" 리플렛) 캠페인을 수행하였다.
그들의 활동은 비록 소규모로 이루어졌지만 당시의 도발적이고 대담한 전술은 오늘날에까지 전수되고 있다. 파크레인(Park Lane)에는 카마겟돈(Car-mageddon; 자동차(car)와 아마겟돈(armageddon)의 합성어이다)의 도래를 상징하는 폐차가 전시되었고 런던의 거리에는 밤중에 손으로 자전거 도로가 그려지기도 했다. 1993년에는 얼스코트(Earls Court) 모터쇼장에 난입하였고 런던시 전역의 자동차 광고판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담은 낙서로 도배되었다. 이러한 기발한 전술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으나 대중들을 직접 행동으로 이끌기에는 너무 비밀결사적이었다.
동런던의 M11 도로반대 운동은 "거리를 되찾자"의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트와이포드다운에서의 투쟁 시기 동안 "거리를 되찾자"를 지배한 정서는 협소한 생태주의였다. 즉 '자연' 지역을 지키자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M11 도로 건설 반대 투쟁은 보다 넓은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제기하게 되었다. 도로 반대와 생태주의를 넘어서 지역 공동체 전체가 주거공간의 상실, 삶의 질 저하, 공동체의 해체 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투쟁을 통해 "거리를 되찾자"는 '자연을 사랑하는 철없는 젊은이들'에서 도로 건설이 포괄하는 모든 사회적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는 하나의 세력이 되었다.
한편 정치, 사회적 측면 외에도 다양하고 대중적인 직접행동이 전개되었다. 수많은 지역 시민들이 도로 건설 예정지 점거에 참여하였고 활동가들은 경찰에 대해 치고빠지는 전술적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선전이나 언론매체 활용, 기금 조성 등에서도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도로 반대 투쟁이 확대되는 기미를 보이자 1994년 말에 정부는 사법정의 및 공공질서 법안(Criminal Justice and Public Order Act)이라는 모험수를 던지게 된다. 야간 시위를 범죄행위로 규정한 이 법안은 그러나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결국 자신들이 억압하고자 하는 세력들을 단결시키고 그들에게 공동의 동기를 부여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으니 말이다. 도로 반대 운동은 이를 계기로 유휴건물 무단점거 운동(squatting), 사냥 방해 운동 등과 결합되게 되었다. 한편 정부의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로 인해 극소수의 치기적 행동에서 벗어나 국민들로부터 정당한 인식을 받게 되기도 하였다.
M11 도로 반대 운동은 클레어몬트(Claremont)로(路)에서의 충돌에서 정점에 달하게 된다. 프로디지(Prodigy; 영국의 사회비판적인 모던록 밴드)의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경찰과 보안대가 바리케이드와 삼각대(scaffold tripod; 삼각대 모양의 철골 구조물로 꼭지점 위에 사람이 매달리는 것이다.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의 진압로 맨 앞에 이를 설치함으로써 경찰이 무리하게 해산을 시도할 경우 위에 매달린 사람이 떨어져 다칠 수 있다. 무력진압이냐 점거허용이냐 하는 선택권을 경찰측이 주는 것이다.)를 무너뜨리며 진압했지만 이 싸움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클레어몬트 투쟁을 계기로 "거리를 되찾자"는 면모를 일신하게 된다.
1995년 이후는 "거리를 되찾자"의 행동과 사고가 번창하게 되는 시기이다. 95년 여름 1, 2차 거리축제가 열렸고 다국적 석유회사인 셸(Shell)과 환경운동가를 감금한 채 환경파괴적인 개발을 계속하는 나이지리아의 주영 대사관, 1995년 모터쇼 등에 반대하는 다양한 행동들이 전개되었다. 1996년 7월에는 서런던의 M41 도로 반대 운동이 대중적으로 전개되었는데 8천명의 시위자들이 9시간 동안 M41 도로를 점거한 채 축제를 즐겼다. 참가자들은 해머로 도로의 아스팔트를 부수고 그 자리에 M11 도로 건설지에서 살려낸 나무를 심기도 하였다. "보도 아래에 해변이 있다"는 68년의 상상력이 90년대에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거리를 되찾자"는 기본적으로 자동차에 반대하는 운동(anti-car movement)이지만 이는 점차 하나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미 초기부터 도로 반대 투쟁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 정치적 이슈를 제기하고 있었고 운동의 축적을 통해 이제 그것이 구체화되고 있다.
자동차는 우리의 도시를 지배하면서 오염과 혼잡을 야기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다. 자동차는 사람들을 서로로부터 고립시키며 우리들의 거리는 자신들이 방해하는 이웃을 망각한 채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위한 통로에 불과하게 되었다. 자동차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집과 공동체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일상의 활동과 삶은 분산, 분절화되며 사회적 익명성이 증대된다. "거리를 되찾자"는 자동차를 사회에서 몰아냄으로써 보다 안전하고 쾌활한 생활 환경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고 거리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며 '사회적 연대의식'을 다시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동차는 퍼즐맞추기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거리를 되찾자"는 교통 문제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보다 넓은 문제를 제기한다. 정치, 경제적 지배세력은 '자동차 문화'를 조장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경제를 위해 도로가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선전한다. 보다 많은 상품을 보다 멀리 운송하고, 보다 많은 휘발유를 도로에 뿌리고,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교외의 수퍼마켓으로 가야 한다며. 이 모두는 '소비'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소비가 '경제성장'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적인 비용에 관계없이 점점 감소하는 자원이 탐욕스럽게 단기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따라서 자동차와 도로에 대한 "거리를 되찾자"의 비판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거리는 자동차만큼이나 자본주의로 가득차 있고, 자본주의의 오염이 훨씬 위협적인 것"이라는 선언은 이러한 인식의 필연적인 결론이다.
이들은 또한 이러한 비판을 수행하는 데 있어 '직접행동'이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린피스의 투쟁으로 사회화된 '직접행동'은 말 그대로 목표로 하는 대상에 대해 자발적으로 직접적인 행동을 벌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린피스의 그것과는 달리 "거리를 되찾자"는 훨씬 대중적이고 자발적인 직접행동을 하고 있다. 거리 점거에 있어서도 경찰의 봉쇄에 괘념치 않고 공개적으로 선전을 벌이며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가 하면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나 스스로 거리축제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특별한 프로그램을 정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탈중심, 탈조직의 직접행동이다. 직접행동은 단순한 전술이 아니다. 이들에게 이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다. 직접행동은 공통의 목표를 가진 개인들이 단결하게끔 하는 것이며 작으나마 자기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 그릇된 상황을 직접 바꿔내는 것이다.
역사를 회고해보면 위대한 혁명적 순간들은 항상 거대한 대중적 축제였다. 바스띠유 감옥 습격과 빠리꼬뮨, 1968년 봉기를 되돌아보라. 축제는 현존질서로부터의 일시적 해방을 경축한다. 축제 속에서는 모든 위계와 권위, 계급, 특권, 규범, 금지, 억압이 잠시나마 사라진다. 이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와 감춰져있던 자신의 권능을 느끼는 정서적 경험을 한다. 거리축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참가자들은 자신이 몸소 화가, 가수, 건축가, 배우, 시인이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경탄하면서 스펙타클을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펙타클이 되는 것이다. "거리를 되찾자"라는 조직은 이들의 작업을 조율하고 모든 이들의 경험을 소통시키는 촉매제에 불과하다. 스스로 '거리를 되찾는' 이들이 자신의 주인이 된다.
이렇게 획득된 경험과 자신의 권능에 대한 인식은 국가와 자본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연결된다. "거리를 되찾자"의 안팎에서 생겨난 반자본주의, 생태주의, 국제주의, 행동주의, 연대주의가 확산되는 것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이다. "거리를 되찾자"는 강령도, 국제사무국도, 조직 체계도, 회원제도도 없지만 틈새로 스며나오는 물처럼 런던에서 리버풀로, 영국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전세계로 퍼지고 있다.
1998년은 "거리를 되찾자" 운동의 확산을 목도한 해였다. 이미 5개 대륙 각국에 "거리를 되찾자" 그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각자 상황에 맞게 거리축제를 비롯한 직접행동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전지구적 행동을 위한 조건은 충분했다. 연초부터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다자간투자협정(MAI)과 G8 정상회담에 맞서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거리를 되찾자"는 멕시코의 사빠띠스따와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MST) 등과 더불어 지구적 민중행동(People's Global Action)을 주도해나갔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선진8개국 정상회담이 열린 제네바와 버밍엄을 비롯하여 전세계 20여개국에서 5월 16일을 전후로 하여 거리축제가 벌어졌다.
올해는 6월 18일 쾰른 G8 정상회담을 계기로 작년보다 많은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새로운 천년을 자본의 천년왕국으로 만들려는 초국적자본의 꿈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자본을 실은 자동차가 질주하는 쾰른 거리를 점거한 참가자들은 "누구를 위한 밀레니엄인가?", "자본의 세계지배에 맞서 거리를 되찾자"고 외치며 행진하였다. 토론토, 뉴욕, 브리즈번, 멕시코시티 등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사회단체들이 모여 광화문에서 거리축제를 갖고 60여대의 자전거를 앞세워 여유로운 시위를 벌였다.

3. 도심 곳곳에서 우리의 거리를 되찾자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도로 살리기나 자전거타기 운동이 걸음마를 내딛고 있다. 몇몇 청년, 학생 생태주의 그룹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고 있는 "거리되찾기" 운동은 이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6월 22-30일 동안에는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며 생태이상향을 만드는 에코토피아 행사도 진행되었다. 자동차로 표상되는 소비주의와 소외의 한복판에서 이제 '삶의 공간으로서의 거리'를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자동차 눈치를 보고 "차조심해라"라는 말이 아직도 흔한 인사말인 이 땅에서 우리가 거리의 주인임을 이제서야 선언하게 된 것이다.
세종로 '차없는 거리' 행사는 정부가 한번 내준 시혜가 아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할 매일의 이상향이 되어야 한다. 자동차 없는 대로를 맘껏 거닐며 즐겼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다고 서로를 북돋워주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운전자들의 싸늘한 시선과 매연, 생명의 위협이 거리를 되찾은 뿌듯함보다 크다고 하지만, 불과 몇 년전 영국의 "거리를 되찾자"가 그러했듯이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70년대의 개발독재 이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고속)도로는 절대선'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만큼 거리를 되찾는 운동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벽을 박차고 거리로 나선 이들이 있다. 도심 곳곳에서 차도 한 구석이나마 막아서서 우리의 거리를 되찾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이들은 이미 보여주고 있다.
한편 자본과 국가에 대한 저항에서 항상 뒤켠에 제쳐져 있던 생태주의적 사고와 행동이 제자리를 잡은 지 얼마 안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영국의 "거리를 되찾자"와는 다른 출발점에 서 있는 듯하다. 그러나 거리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고가 자본이 노동의 축적이라는 생각만큼이나 불온한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다면 그 접점은 어쨌든 찾아질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이 유쾌한 행동주의와 만날 때 삶의 공간을 복원하는 싸움은 "거리를 되찾자"의 경우처럼 들불처럼 확산될 것이다. 우리 또한 이들처럼 거리를 점거하고 삼각대를 세울 수도 있고 현대나 대우의 자동차 광고판을 자동차 비판 문구로 채울 수도 있다. 아침 출근길이나 등교길에 차선 대신 자전거 레인이 그려진 차도를 보게 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 아닐까? 차도도 모자라 보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에 대한 시위로 한번 다같이 차도를 따라 달려보는 것은 어떨까? 모든 사람이 비좁은 보도 대신 중앙선을 따라 보행한다면? 교통부장관의 대형승용차 바퀴를 펑크내고 스프레이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통근하시오'라고 낙서를 한다면? 불온한 상상력과 유쾌한 행동주의 사이는 그다지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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