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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대중과 대화하기

 
노동운동에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민주노조운동이 활성화되기 이전부터 노동야학이나 소모임 등의 형태로 다양한 교육활동이 이루어져왔고, 민주노총 출범 이후에는 수공업적 교육사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체계적이고 규모 있는 교육사업들이 시도돼 왔다.
그러나 다양한 교육사업들은 관료화된 조합주의 활동 틀 속으로 갇히게 되면서 형식적 교육으로 전락하거나, 전문 역량중심의 교육전문가 양성으로 한정돼 버렸다. 그 결과 교육하는 사람과 교육받는 사람이 나뉘어 지면서 대중과의 호흡이 없어지고, 교육을 전후로 한 현장토론과 활동력 강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교육전문가 중심의 교육이 대중과 틈을 만들고 있다

작년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조합원의 교육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자본에 대한 비판적, 공격적 논이 중심의 교육, 어려운 내용의 일방적 주입, 이데올로기적 입장과 노선차이에 따른 혼란 등의 거부감이 나타나고 있어 노조에서 실시해온 의식화 교육과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의식화 교육의 의미가 같은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에 30여 명이나 되는 대규모 교육위원회를 구성해서 매년 조합원 교육을 실시해왔던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시장한 점을 보여준다.

현대자동차 교육위원들은 대규모 사업장의 특성상 전체 조합원들을 상대로 한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조합원들과의 소통보다는 전문 교육역량 강화, 다양한 매체활용능력 확보 등에 맞춰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교육위원들은 대중들에게 뭔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만 급급하게 되고, 수동화 된 대중들은 교육에 대한 몰입도가 점점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교육위원활동을 해왔던 한 활동가는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가서 조합원들의 얘기를 들으면 무슨 교육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교육위원회에서도 나름대로 현장 모니터를 해보려고 했지만, 모니터 된 결과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 포기한 경우도 있다”고 현실을 얘기하기도 한다.

엘리트교육으로 변질되어 버린 활동가 양성 교육

노동조합은 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교육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정세교육이나 노동조합 방침을 설명하는 교육이 주로 이루어지는 대·소위원교육은 대의원대회나 수련회에서 하나의 프로그램 정도로 긴장감 없이 진행되면서 현장활동의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또 대·소위원들의 현장활동이라는 것이 해결사나 지침전달자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교육에 대한 욕구가 높지 못하다.

대공장노조나 연맹 등에서 진행되고 있는 활동가양성교육 역시 전문지식을 주입하는 식의 엘리트교육으로 변질되면서 핵심활동가를 키워낸다는 애초 의도를 상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대학원의 경우를 보면, 대학교수나 노동운동전문가들이 제작한 강의안을 놓고 강의와 토론이 진행되지만 다양한 영역에 대한 지식축적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또 교육사업을 전후로 하여 현장활동의 상과 구체적 현장활동으로 이어지기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더욱 지식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교육으로 전락하게 된다.

법률교육, 선전교육, 산안교육 등 특성화된 교육에서는 다소 구체적 교육들과 현장현안문제들에 대한 토론 등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전문적 역량강화에 치우치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중과의 소통과 대화의 자세가 필요하다

브라질의 급진적 민중교육가인 ‘파울로 프레이리’의 말은 전문가적 엘리트교육에 찌들어 있는 우리에게 강한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다.

만일 내가 자신의 무지는 깨닫지 못하면서 언제나 다른 사람의 무지를 탓하려고만 든다면 어떻게 대화가 이루어지겠는가?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는 별개의 인간으로 간주한다면 어떻게 대화가 이루어지겠는가? 만일 내가 내 자신을 '순수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 내(內) 일원으로, 진리와 지식을 가진 자로 여기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사람들' 혹은 '하층민들'로 간주한다면 어떻게 대화가 이루어지겠는가? 만일 내가 세계에 '이름 붙이는' 작업은 엘리트가 할 일이며, 역사 속에 민중이란 존재는 마땅히 피해야 할 저질의 표시라고 전제하고 있다면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만일 내가 다른 사람들의 공로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그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기라도 한다면, 만일 내가 쫓겨날 가능성이 있다 해서 괴로워하고 나약해진다면, 어떻게 대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오만과 대화는 병존할 수 없다. 겸손이 결여된 사람들은 민중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그들의 동료가 되어 세계에 '이름 붙이는'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자기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만남의 장소에 가기에는 아직도 요원한 사람이다. 만남의 자리에는 철저하게 무지한 사람도 완벽하게 현명한 현인도 있을 수 없다. 다만 그들이 현재 알고 있는 것보다 좀 더 배우려고 함께 노력하는 인간들이 존재할 뿐이다.

교육이란 대중들에게 뭔가를 전달하고 가르치는 행동이어서는 안된다. 교육은 철저하게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 교육자 또한 교육받는 대상이다.
지난 부안항쟁에서 인권활동가들은 대안학교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인권교육을 시도했지만 학생들과 쉽게 소통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학생들을 의식화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면서 신나게 놀고 토론하는 주체로 대하는 순간 학생들과 대화가 가능했다. 그런 경험이 인권활동가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교육은 바로 이렇게, 대중과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토론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 교육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교육활동가들이 끝임 없이 현장의 구체적 문제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대중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 만이 대중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야만이 생산적인 대중교육이 가능하다.

현장 속으로 파고드는 현장교육이 필요하다

조합원들은 항상 접촉하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자신들이 구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내용이 얘기될 때 교육에 집중하게 되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기에 대중교육은 가능한 현장의 밀착해서 진행되어야 하고, 공식적인 교육시간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현장토론과 간담회 등을 진행하면서 조합원의 눈과 귀와 입이 열려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교육시간의 확보 문제와 현장교육역량의 한계로 인해 세부단위로까지 교육을 진행하기 어렵다면, 교육을 진행하기 이전에 부서나 반 단위로 교육에 대한 조합원들의 요구와 의견들을 모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교안보다 조합원들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한 투박한 교안이 더 현실성 있다.

대공장의 경우는 조합원 수가 많아서, 중소사업장의 경우는 간부역량이 부족해서 현장교육과 토론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러기에 현장활동가 역량 강화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장활동가 역량 강화교육은 전문적 지식과 기능적 교육능력을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토론을 진행하고, 조합원과 함께 현장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교육이 돼야 한다. 전문적 지식이나 교육능력은 떨어지더라도 현장에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아내는 능력이 갖추어진다면 아주 뛰어난 현장교육활동가로서 자리 잡게 된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의식화 교육이 필요하다

진정한 대화는 비판적인 사고 즉, 세계와 인간을 이분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양자가 분리될 수 없는 어떤 결합을 이루고 있음을 식별하는 사고, 현실을 정지된 실제로서보다는 과정이자 변형으로 인식하는 사고, 사고 그 자체를 행동에서 분리시키지 않고,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현세에 깊숙이 파고들기를 마지않는 사고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비판적인 사고는, '역사의 시간을 하나의 무게로, 누적된 습득물로, 과거의 체험들로' 보고 거기서부터 표준에 맞추어지고 '행실이 방정한' 현재가 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루한 사고와는 대조적이다. 고루한 사상가에게는 표준에 맞추어진 '오늘'에 적응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비판적인 사상가에게 중요한 일은 지속적인 인간들의 인간화를 위해서 현실을 끊임없이 변혁시키는 것이다.
- 파울로 프레이리


현장활동이라는 것이 단사에서 활동만 열심히 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끝임 없이 전국적 사안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판단이 동시에 요구된다.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이 그런 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한 두 번의 교육이나 투쟁으로는 불가능하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의식화 교육을 통해서 그런 능력을 끝임 없이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사업은 단사 노동조합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조합주의 운동의 폐해가 극심하고, 축적된 교육역량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연맹이나 총연맹 차원에서 이런 교육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이 문제는 지역에서 목적의식적으로 교육역량을 집중해서 풀어가야 한다.
울산노동자배움터가 진행하고 있는 교육사업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개별사업장의 현안문제와 정세적으로 요구되는 투쟁에 집중해야 하는 현장활동가들은 조합주의적 활동 쉽게 벋어나기 어렵다. 이런 현장활동가들과 함께 노동자의 철학과 가치관에서부터 혁명의 문제까지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교육은 비판적 사고능력의 향상과 함께 조합주의적 활동을 극복하기 위한 의식적 활동가의 양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런 교육사업들이 좀 더 집중되고 다양하게 활성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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