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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재활병원 집회가 보여주는 새로운 힘

효정재활병원 집회는 참가자들에게 신선한 활력을 주면서 집회문화와 투쟁방식에서 대안적 모습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집회에는 참가단위 인사, 결의발언, 연대발언, 풍물공연, 율동공연, 투쟁가 부르기, 구호외치기 등 기존 집회에서 볼 수 있는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있다. 단지, 정형화된 형식만이 없을 뿐이다.

효정재활병원 집회는 정해진 프로그램이 없다. 집회를 시작하면서 묵념을 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일은 절대 없다. 또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지도급 인사들이나 대표자들이 나와서 연대발언을 하는 것도 없다.
참가자들 중에 노래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즉석에서 노래를 배우는 시간도 갖는다. 준비된 풍물은 전문패의 도움 없이 참가자들 중에 아무나 잡고 싶은 풍물악기를 잡고 서로가 장단을 맞춰가면서 함께 어울린다. 율동에 재주가 있는 참가자가 있으면 즉석에서 공연 요청이 나온다. 이제 막 카메라 촬영에 대해 배우는 사람이 간단한 디지털카메라로 이들의 모습을 촬영한다. 참가자들은 그렇게 정해진 프로그램이 없어도 자신들의 재주를 발휘하면서 함께 호흡한다.
추운 겨울 휑한 벌판으로 둘러싼 산속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두 시간이 넘는 집회를 스스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동안 무수히 비판됐지만 쉽게 대안을 찾지 못하던 관성화된 집회문화의 대안은 늙은 여성 초보 해고자들의 집회 속에 살아 넘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집회를 조직하기 어렵다는 토요일 오후에 울산에서 차로 한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곳에서 집회는 열린다. 집회 일정은 알려지지만 공식 단위의 의결이나 지침이 없이 집회는 조직된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오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는 집회이지만, 사람들이 주위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찾아온다. 혼자 타를 타고 오는 경우는 전혀 없다. 반드시 사람들이 어울려서 함께 차를 타고 온다. 길을 모르면 물어서 찾아온다. 간부들 중심으로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조직단위가 다수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평소 집회에서 쉽게 얼굴을 볼 수 없는 이들의 얼굴도 보인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진행되는 집회 간부와 평조합원의 차이는 찾아볼 수 없다. 간부가 조합원들과 함께 어우러져 시위용품을 함께 나누고, 조합원들이 간부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발언은 순서 없이 모두가 함께 한다.
자발적 연대는 자연스럽게 수평적 인간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자발성과 흥겨움은 대적관계에서 놀라운 전투성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수적으로 열세이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상황에서 여성조합원들은 관리자와 당당하게 대치한다. 물리적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부상을 당하면서 맞서 싸운다.
50~60년을 참아야만 하는 여성으로 살아와야 했고, 인생 후반기에 극심한 중노동과 인격적 멸시 속에서 간병사 일을 해야 했고, 비정규직으로의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고, 배우지 못한 무지랭이 인생으로 살아왔던 이들에게 어느 순간 해고와 함께 3중4중의 억압의 틀이 벗겨져 버린 것이다.
이 여성해고자들은 그 순간 삶의 활력을 찾았고,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 힘은 주위를 끌어들였고,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속에서 더욱 즐거움과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이 여성해고자들은 어떤 두려움도 없어진 것이다. 이들의 전투성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노사관계로드맵이 통과 돼는 속에서 다시 무기력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간부들 속에서는 패배주의가 스며들고 있다. 이런 저런 비판들이 많이 제기되지만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운동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효정재활병원이라는 아주 작은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에서 넘쳐나고 있는 이 대안이 작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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