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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힘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전기는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난다. 자서전은 그런 자연스러운 결말이 없다. 하지만 이 자서전은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와 미 국무부 공격의 여파로 세계사에 생겨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극적인 휴지부에 마무리되는 이점을 누린다. 세계사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건 중에서 이것만큼 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체험한 사건도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런던의 한 병원에서 텔레비전 화면으로 그 사건을 보았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난 노쇠하고 회의적인 역사가의 눈에도 그것은 대량 학살, 훌륭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기술, 할리우도 영화를 방불케 하는 현실 속에서 신의 세력과 사탄의 세력이 온 세계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선언 등 20세기의 가장 고약한 요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삼류문사들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불행하게도 잘도 찾아서 내뱉으면서 서양 세계는 언론을 타는 사람들의 게거품에 휩쓸렸다.

그 끔찍한 날에 벌어진 일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미국과 나머지 세계의 간극이 갑자기 생겼고 그것은 세계로 퍼져 나간 영상과 미국이 주도하는 언론과 정치의 포장술로 인해서 확대되었다. 세계는 다수의 희생자가 생기고 미국이 잠시나마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굉장히 극적인 테러 공격으로 그 사건을 이해했다. 그 점을 제외하면 상황은 냉전이 끝나고 지속되어온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세계의 유일무이한 초강개국이 호들갑을 떨 이유는 분명히 없었다. 그러나 워싱턴은 9·11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선언했고 그렇게 선언함으로써 실제로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이제 미국은 세계 질서의 하나밖에 없는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누가 세계를 위협하는지도 자기 혼자서 정의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은 누구든지 잠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적으로 여겨졌다. 이런 논리는 하루아침에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세계 군사 패권 전략은 1980년대 말부터 착착 준비되었고 그때 전략을 세운 사람들이 지금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렇지만 9·11은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나라가 단기적으로 자신의 힘은 무한하며 그 힘을 무제한 써먹기로 마음먹은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증명했다. 하지만 우위를 과시하는 것 말고 그 힘을 쓰는 목적은 대단히 불투명하다. 21세기는 어둑한 땅거미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런 때 지면과 화면으로 한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조지 오웰의 미래 전체주의를 방불케 하는 단어와 이미지를 곱씹어보기에는 침대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어야 하는 병원만큼 좋은 곳이 없다. 그런데 그 단어와 이미지는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까지 포함해서 하나같이 속이고 숨기고 덮어씌우기 위해 지어낸 것이었다. 단순한 거짓말에서부터 솔직하게 대답할 마음이 없거나 그러기가 두려워서 외교관, 정치인, 장군, 아니 이제는 우리 모두가 사람들 앞에서 공론화하기를 꺼리는 그 집요한 회피술에 이르기까지 기만의 범위도 다양했다. 이라크에는 세계를 위협하는 “대량 살상 무기”가 있으므로 사담 후세인(솔직히 말해서 좋은 먹잇감이었으니까.)을 몰아내야 한다는 너무도 속 들여다보이는 핑계에서부터 왕년에 스탈린주의를 눌렀다는 것 하나만 믿고 양식이 있을 만한 사람들이 미국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이르기까지 논리도 각양각색이었다. 오늘날 워싱턴의 정책수립가와 전략가가 순전히 권력의 논리로만 정치를 논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심지어 가끔은 공식적인 자리에서조차 하는 말을 들으면 금세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미국이 “국제 테러리즘”을 무찌르지 않으면 정체 불명의 야만주의가 일으키는 공포에 휩쓸릴지 모르는 문명 세계를 지키기 위한 수호자의 역할로 미국이라는 세계 제국을 포장하는 것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짓인지를 드러낸다. 하기야 엔론이라는 사기업과 미국 정부의 경계선이 흐려진 세상에서 적어도 말하는 순간만이라도 자기가 하는 거짓말을 믿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소리와 종이에 둘러싸여 침대에 누운 몸으로 나는 2002년의 세계에는 어느 때보다도 역사가가, 특히 의심 많은 역사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늙은 역사가의 평생에 걸친 편력을 읽으면 젊은 역사가가 21세기의 어두운 전망에 그에 합당한 비관주의만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더 투명한 눈, 과거를 기억하는 역사 감각, 현재의 열풍과 장사판에서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가지고 맞서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여기서는 유리하다. 통계상으로도 나는 드문 축에 들어간다. 1998년에 여든 살이 넘는 사람의 수는 6600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약 1퍼센트였다. 남들은 책으로만 아는 역사가 이 얼마 안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일부가 되고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1980년대 초반이나 중반에 태어난 세대한테는 20세기의 역사라는 것은 영화나 비디오로 접하는 시대극이라든가 영국에서처럼 온 국민의 신화로 자리 잡은 2차 세계대전의 일화와 관련된 이런저런 단편적 이미지 말고는 아득히 먼 과거일 뿐이지 머리로 떠오르는 내용이 거의 없다. 20세기의 역사는 살아 있는 현실이 아니라 그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배운다. 베를린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던 그 추운 겨울날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지만 이제 스무 살 된 젊은이들한테는 머나먼 옛날이다. 내가 결혼을 하던 1962년에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는 그 젊은이들의 인생에도, 아니 그 부모들의 인생에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나이가 마흔 살이 못 된 사람은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 세대의 경우와는 달리 공적 세계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규정짓는 사건들의 시간적 계열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잘해야 머리로 이해하는 주제가 될 뿐이고 잘못하면 “우리 시대 이전”에 벌어진 잡다한 사건들의 일부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내 또래의 역사가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다르게 보았던 과거의 중요한 지점, 그 또 다른 나라로 가는 여행의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 거기서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당시에는 구할 수 없었던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가 살아온 시대에 대해 글을 쓰는 소장 역사가들보다 한 시대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더 적을지도 모른다. 설령 나이 때문에 기억력이 감퇴하지 않았다 치더라도 기억에 기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글로 적힌 기록의 도움을 얻지 않으면 십중팔구는 사실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어떤 느낌인지를 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시대착오를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다.

20세기를 80년이 넘게 살다 보면 정치 권력과 제국, 제도가 얼마나 가변적인가를 저절로 배운다. 나는 식민지를 거느린 유럽의 제국들이,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고 내가 어렸을 때 영토가 가장 넓었던 영국, 쿠르디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공중 폭격으로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 막강한 대영제국이 졸지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세계의 강대국들이 마이너 리그로 강등당하는 것을, 천년은 갈 것처럼 보였던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혁명정권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는 그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히 빗나간 예상은 아니리라.

게다가 나이 든 사람은 이런 유행 저런 유행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소련이 망한 이후로 개인주의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 말고 다른 대안은 없으며 자본주의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표준적 통치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하나의 정설 내지는 통념으로 굳어졌다. 1914년 이전에도 비록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굳게 믿었다. 그렇지만 20세기의 대부분 기간 동안은 이것은 굉장히 신빙성이 약해 보이는 가정이었다. 자본주의 자체가 지옥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1930년부터 1960년까지는 양식이 있는 관찰자는 소련처럼 5개년 계획을 가진 국가 지휘 경제 체제가, 비록 이것이 유치하고 비효율적으로 굴러간다는 것을 아무리 심정적으로 이런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도 뻔히 알고는 있었지만, 서방의 “자유 기업”을 대신할 전 세계적 모델이라고 믿었다. 당시만 하더라고 “자본주의”라는 말은 지금의 “공산주의”라는 말처럼 별로 점수를 못 얻었다. 양식있는 관찰자는 생산력에서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를 앞지를 것이라고 보았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된다고 믿지는 않으면서도 자본주의를 불신하는 세대와 함께 내가 또다시 살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는다.

나만큼 오래 산 사람은 20세기를 겪으면서 역사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0년 동안 세계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느낌은 똑같은 기간으로 따졌을 때 인류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급격하게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북반구의 몇 나라에서 나만큼 오래 산 사람은 세상이 지금 겪는, 지금가지 전례가 없는 사회적·문화적 격변이 궤도로 온 인류가 탄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전에 어른으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첫 세대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을 가정, 공동체, 사회 안에 묶어두었던 규칙과 관습이 제 구실을 못하는 역사적 시기를 살아본 첫 세대다. 그 기분이 어떤가 하는 것은 오직 우리만이 말해줄 수 있다. 되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우리는 말해줄 수 있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라고.

 

-[미완의 시대 - 에릭홉스봄 자서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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