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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정부의 복지정책

농촌 토지개혁

베네수엘라의 농촌 토지개혁 프로그램은 차베스 집권기를 평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이는 2001년 11월, 49개 개혁법안 통과 당시 심한 저항을 받은 법안 중 하나였다. 이 법안은 기본적으로 베네수엘라의 모든 성인은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가구당 일정 토지를 분배받을 권리를 지닌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토지 분배는 국가 소유 토지에서부터 시작했는데, 당시 국가 소유 토지는 거대한 규모였고 베네수엘라의 경작 가능한 토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또한 법안은 사적 소유 토지라도 기름진 땅 100헥타르 또는 척박한 땅 5000헥타르를 넘어선다면 분배 대상이 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러나 토지는 시장가격으로 매입했기 때문에 이러한 베네수엘라 토지개혁은 세계 토지개혁사에서 볼 때 급진적인 편은 아니었다.
토지개혁 프로그램이 시행되려면 우선 적절한 기본시설이 갖추어져야 했기 때문에 시행 속도는 더뎠다. 2002년에는 토지 배분이 거의 되지 않았지만 다음 해에는 속도를 높여 150만 헥타르의 토지가 13만 가구에게 분배되었다. 이는 평균 한 가구당 11.5헥타르를 받은 셈이며 총 수혜 인구는 65만 명에 달한다. 이 시기까지는 개인소유의 토지는 몰수되지 않았다. 한편, 국가와 대토지 소유자 사이에는 많은 분쟁이 생겼다. 대토지 소유자가 명백한 증거도 없이 토지가 자신의 소유라고 우겨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토지개혁은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매우 넓다. 땅을 얻은 새로운 경작자들이 경작기술, 자금대출, 기계, 판매 루트 등을 갖추도록 하는 문제도 관련되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토지기구INTI라는 기관을 새로 세워서 자금 대출을 도와주고 기술 훈련을 시키며 토지 개혁의 수혜자들이 생산한 농산품 판매를 도와주도록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농촌 토지개혁 프로그램은 장·단기적 목표를 모두 가지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석유에 한정된 베네수엘라 경제의 다각화를 꾀하고 일종의 ‘식량 주권’을 달성하여 자체의 농산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 한다(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정권 이전에 60퍼센트의 식량을 수입했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농촌 빈곤을 감소시켜 시골에서 도시빈민 지역으로의 이주를 억제한다.

도시 토지개혁

차베스 정부의 중요한 복지 정책 중 하나는 도시 토지개혁이다. 그 골자는 빈민가의 토지를 재분배하여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데 있다. 이러한 도시 토지개혁은 중남미의 다른 나라에서 진행됐던 방식과 비슷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방식은 흥미로운 측면도 있다.
도시 토지 재분배 계획은 여러 가지 경우를 다루고 있다. 첫째, 사람들이 빈민가에 자신이 직접 집을 짓고 정부에 등록할 때 그들은 그 집이 자신의 것이며 원토지 소유자에게 회수되지 않을 것임을 보장받는다. 둘째, 그들은 집을 작은 담보물로 하여 자금을 빌려서 주거를 개선하고 더 나은 집을 구매하거나 소규모 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 셋째, 적절한 규제 아래 지역사회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조건에서, 부동산 시장을 열 수 있다. 넷째, 개인이 도시 토지 소유증서를 취득하는 과정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집단적 과정이며, 지역 거주민들이 함께 노력하여 도로, 편의시설, 치안, 안락함 등의 기반시설을 만들어 나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취득 과정의 집단적 성격을 강조한 마지막 내용은 정부의 도시 토지 재분배 프로그램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이다. 즉, 토지를 취득하기 위해 지역에 사는 100~200개의 가구들이 모여 토지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기관과 연계하여 위원회에 부여된 토지 소유권을 행사한다. 이렇게 토지위원회를 통해 집단적으로 논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단순히 토지 소유권을 협상하고 취득하는 일뿐 아니라 다양한 일들에 대해 지역공동체가 함께 대응하는 긍정적인 현실이 일어난다.
토지위원회는 또한 수도공사, 전기공사 등의 공공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기관들과 협상할 수 있도록 산하 위원회를 구성한다. 토지위원회를 통해서 지역주민들은 처음으로 이러한 기관들과 직접적으로 협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공공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기관들이 지역정부의 관료들과 협상해야 했는데, 관료들은 지역주민들의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초기의 도시 토지개혁 과정은 정부 관할 토지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는 단지 국가 소유의 토지만이 재분배 가능함을 의미했다. 관련 법안이 개정된 이후에 모든 빈민 지역 거주자들은 이러한 계획의 대상이 되었지만, 법을 제정하는 데 주력하다보니 새로 바뀐 법의 시행은 상대적으로 유보되었다. 빈민가 거주민 중 3분의 1 정도만이 토지를 얻었는데 이는 법안이 정부 소유 토지 거주민에만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3분의 1은 사유 토지에 살고 있으며 나머지는 소유권이 불명확한 곳에서 살고 있다.
이 과정에 소요되는 기술적·법적 절차가 많았기 때문에 토지취득은 다소 느리고 복잡하다. 2003년 11월 현재, 베네수엘라 전력에서 4만 5000가구(통산 22만 5000여 명)가 집을 등록했고 6만 5000가구(33만 명)가 허가를 받을 예정이다.

사회경제

차베스 정부의 사회경제 프로젝트는 가난 퇴치 프로그램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볼리바리안 프로젝트의 중심요소에 속한다. 다시 말하면, 사회경제 프로젝트는 빈곤 퇴치라는 목적뿐 아니라 동시에 더욱 평등하고 민주적이며 연대의 정신에 기반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정부의 사회경제 개발부 홈페이지에는 다음의 일곱 가지 요소로 사회경제를 표현하고 있다.

• 사회경제는 대안적인 경제다.
• 민주적이며 자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된다.
• 단순히 돈벌이가 아닌 협력에 기초해서 사업을 진행한다.
• 생산수단은 공동의 소유로 한다.
• 잉여소득은 평등하게 분배한다.
• 개발은 환경친화적이어야 한다.
• 경제와 정치권력에 대해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일반적으로 차베스 정부의 사회경제 프로젝트는 협동조합과 소액금융으로 압축된다. 소액금융 사업은 다양한 방면에서 방글라데시의 그라맨Grameen은행의 모델에 기초하고 있으며, 몇 가지 다른 제도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방코 드 라 무헬Banco de la Mujer(여성은행), 반데스Bandes(경제사회 개발은행), 반포안데스Banfoandes(안데스 지역 개발은행), 방코 델 푸에블로Banco del Pueblo(민중은행)와 같은 다양한 은행들이 소액금율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소액금융 개발기금이나 사회경제 개발부 같은 기관들이 존재하며, 기존의 은행들이 그들의 대출금 중 일정한 비율을 소액금융에 지원하도록 하는 은행법을 마련해 놓았다. 2001년과 2003년 사이 거의 5000만 달러의 자금이 위의 은행들을 통해 소액금융 사업에 유입되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은행과 민중은행은 7만 건의 소액금융 대출을 했다. 여러 공공은행, 사립은행들은 2003년 9월 한 달 동안 7500만 달러의 소액금융 거래를 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수혜자는 사회경제를 광범위한 영역에서 실현하는 협동조합이다. 차베스 정부가 집권했을 당시 베네수엘라에는 조합수가 800개에 불과했지만 2003년 11월 현재, 4만여 개로 추산되는 등 50배의 양적 성장을 하였다. 협동조합의 비약적인 성장은 소규모 경제부문을 촉진했고, 더불어 이전의 사업방식과 달리 그들의 수익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방식을 통해 조합원 사이의 평등성을 더욱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

볼리바리안 학교와 보육 프로그램

베네수엘라에서는 각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정하고 있는 비싼 등록금 때문에 어린이가 학교를 다니는 게 어려워지고 있었다. 등록금은 종종 중앙정부가 부족한 세원을 보충하기 위한 용도로도 전용되어 왔다. 차베스 집권 이전인 1996년에 교육 분야에 사용되는 공공재원은 GNP의 2.1퍼센트 수준으로 감소했다. 차베스 정부는 집권 후 교육 정책 수립을 최우선 과제로 했다. 2001년 교육재정은 GNP 대비 4.3퍼센트에 달하여 1996년의 두 배로 인상되었고 이는 지난 20년 동안 최대치였다. 교육에 대한 새로운 투자는 새 학교 건립과 오래된 학교를 ‘볼리바리안 학교’로 만드는 데 쓰였다.
볼리바리안 학교는 다방면으로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을 낮추는데 기여하고 있다. 전일제로 운영되므로 부모가 낮 시간 동안 육가문제에서 벗어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전일제 프로그램은 더욱 풍부한 문화체육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아침, 점심과 늦은 우후 간식을 제공하여 이제가지 끼니를 거르던 많은 빈민층 자녀들이 식사를 할 수 있게 하고 일반 공공학교보다 더욱 지역공동체 사회와 밀착되어 있다.
2003년 2800개의 볼리바리안 학교가 개교했고 그 중 절반은 새로 개축한 것이다. 볼리바리안 학교에는 전체 취학 대상 어린이의 12퍼센트인 60만 명의 아이들이 다녔다. 정부는 2002년에 이르러서는 등록금을 없애고 공공학교 시스템을 확대하여 150만 명의 어린이들이 베네수엘라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베네수엘라 어린이들의 취학률은 1999년 83퍼센트에서 2002년 90퍼센트로 증가했다.

시몬시토 계획

볼리바리안 학교 프로그램을 보완하는 제도로 시몬시토 계획Plan Simoncito이 있다. 이는 취학 전인 0세에서 6세에 해당하는 아이들에게 주간 육아와 취학 전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여 부모들이 자신의 일에 주력할 수 있게 한다. 많은 빈민층 가정은 편부모 구조로, 부모들이 일과 부모 역할을 동시에 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가난한 편부모에게, 특히 어머니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사실 정부 지원 주간 육가 프로그램은 베네수엘라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980년대 후반에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꾸준히 확장되었다. 그러나 1989년 프로그램에 참여한 영아들은 단지 1만 9000명에 불과했지만 1998년에는 전체 15만 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그리고 차베스 정부가 집권한 이후 주간 육아 프로그램은 더욱 확장되어 2003년 현재 30만 명에 달한다.

볼리바리안 대학

1차 교육은 점차 빈민층 자녀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있고 이는 고등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볼리바리안 대학 계획이 구상된 이유 중 하나는 베네수엘라 인구 증가가 대학교의 성장 속도보다 더 빠르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과정bachiller을 밟은 사람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특히 공립대학은 입학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해 왔다. 그렇지만 빈민층은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특별 수업료를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일반적으로 빈민층과 노동계급의 속한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데 장벽이 되었다. 1984년에는 대학에 지원한 빈민층 출신 학생 중 70퍼센트가 입학할 수 있었으나 1998년에는 19퍼센트에 불과했다. 노동계급의 학생들도 67퍼센트에서 27퍼센트로 감소했다. 결국 형식적으로는 입학할 권리가 있고 입학을 희망하지만 대학 입학시험의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하여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40만 명 이상이다.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대학UBV은 대학의 수가 부족해서 대학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학생들의 수를 줄이려는 데 목적이 있다. 게다가 빈민층 출신 학생에게 입학 우선권을 부여한다. 지금까지 2400명의 학생들이 대학에 등록했고 2003년 10월 첫 학기를 시작했으며 2만 명이 등록대기 상태다. 전국에 대학을 개설하여 최종적으로 등록자 10만 명을 달성할 계획이다.

미션 로빈슨-1차 교육

2003년 10월 차베스는 빈곤을 추방하는 일곱 가지 다른 ‘미션’들을 선언했다. 첫 번째 미션은 시몬 볼리바르의 스승이었던 시몬 로드리게즈에서 이름을 딴 미션 로빈슨Mission Robinson이다. 미션 로빈슨은 문맹 문제를 다룬다. 베네수엘라의 문맹률이 낮았던 시기에는 문맹률이 단지 7퍼센트였지만(다른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해는 평균 11퍼센트다) 그 당시에도 문맹률은 분명 빈곤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이 프로그램의 실행을 위해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협력 조약을 맺었고 수백 명의 쿠바 인 전문가들이 베네수엘라에 들어가 교사로 투입되었다. 프로그램은 2003년 7월 1일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어도 숫자는 알고 있기 때문에 숫자를 사용하는 쿠바의 교육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나온 10만 명의 언어 선생님들과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 미션인 미션 로빈슨Ⅱ Mission RobinsonⅡ는 언어교육을 마친 참여자가 기초교육 과정과 동등한 수준의 지식을 쌓도록 한다. 프로그램은 매우 집약적이어서 베네수엘라의 1차 교육기관을 다니는 일반 학생들은 6년을 공부해야 하지만 미션 로빈슨Ⅱ프로그램은 그 과정을 2년 만에 끝낼 수 있다. 미션 로빈슨Ⅱ는 2003년 10월 28일에 시작했고 한 해 동안 62만 9000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그들은 거의 첫 번째 로빈슨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베네수엘라의 반대파들은 교육 프로그램이 쿠바의 사상주입 교육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용된 자료들(참여자들이 무료로 제공받은 이른바 ‘도서관’이라 불리는 많은 책들)을 대강 훑어보거나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들과 대화한다면 그러한 비난이 아무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션 리바스-2차 교육

베네수엘라 정부 통계를 보면 현재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미션 로빈슨의 문맹 퇴치 및 1차 교육 프로그램과 병행하여 독립전쟁의 영웅 호세 펠리프 리바스Jose Felipe Ribas의 이름을 따 미션 리바스Mission Ribas를 개발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고등교육 과정을 시행하도록 했다.
미션 리바스는 최대 2년에 걸쳐 고등교육 과정을 이수하도록 한다. 에너지광산 장관이 프로그램의 주요한 협력자인데 2003년 11월 초 미션 리바스에 약 70만 명의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11월 17일부터 20만 명의 사람들이 수업을 시작했다.
다른 미션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은 무료다. 또한 10만 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은 재정적 필요에 따라 장학금을 받는다. 이수 과정의 대부분은 감독자의 도움 아래 비디오 수업 또는 원격 수업을 받게 된다. 정해진 공부를 마치면 학생들은 국립석유회사인 PDVSA와 전기공사인 CADAFE의 광업, 석유, 에너지 부문에서 일할 저리를 마련한다. 전 과정은 이 프로그램의 재원 대부분을 지원하는 PDVSA와 CADAFE와의 협력 아래 진행된다.

미션 수크레-고급 교육

빈민들이 대학교육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기간 동안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통 한편으로는 일하면서 종종 가족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학업을 거의 지속할 수 없다. 미션 수크레Mission Sucre는 베네수엘라 독립운동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래 대학교육의 장학금 제도에서 출발했다. 2003년 11월에 시작하여 초기에는 10만 명의 빈민층 학생들이 대학 과정을 이수할 동안 매달 100달러를 지원받았다.
2006년 현재 미션 수크레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볼리바리안 대학의 현황을 알 수 있는 글을 옮겨본다. 베네수엘라를 다녀온 한국인 활동가(전소희)의 글을 빌려서 볼리바리안 대학의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대학 건물은 원래 초국적 석유회사 엑손모빌의 것이었다. 1974년 석유를 국유화하면서 엑손모빌 건물은 베네수엘라 석유회사인 PDVSA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PDVSA는 국영석유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경영진은 베네수엘라 정부보다 오히려 초국적 자본과 국제금융기구, 미국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현재 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은 경영진들이 이용하던 사무실과 사교클럽이었다. 건물 안에는 거물급 엘리트들을 위한 사우나와 식당, 연회장 등이 있었다고 한다.
차베스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음모였던 2002~2003년의 석유회사 경영진들의 ‘파업’이 무력화된 후, 정부는 회사 사교 클럽 건물을 빼앗아 또 하나의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대학교’를 세웠다. 볼리바리안 대학은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4년 과정이다. 그리고 노동자를 위한 야간 과정은 시간제약상 5년제로 운영한다고 한다. 공중보건, 환경, 사회학, 지정-정치학, 농업생태학, 법학, 정보통신학, 의학, 건축학 등 11개 학과로 운영되고 있다. 석유회사 사교 클럽을 대학으로 바꾸는 작업은 계속 진행 중이다. 주차장에는 버스 여러 대가 서있고, 버스를 한창 단장하고 있었다. 새로 단장된 버스 뒤편에는 ‘혁명은 교육이다’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석유회사 건물에 세워진 볼리바리안 대학은 현재 학생 5000명 규모다. 학비는 물론 없고, 하루 세 끼와 통학 교통편 모두 무료로 제공한다. 그리고 필요한 학생에게는 기숙사도 무료로 제공한다. 시험도 없고 무조건 선착순으로 학생을 선발한다고 해서, 그 치열한 경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답은 ‘지방화’municipalization였다. 즉, 이곳에 있는 볼리바리안 대학은 카라카스 시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며 중앙본부 역할을 하고, 전국적으로는 가능한 한 많은 지역, 바리오barrio(원래는 동네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사실상 빈민촌을 의미한다)에 분교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분교는 강의실 하나일 수도 있고, 교수 한 명을 파견하는 정도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학생이 대학에 오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바리오로 뻗어나가 학생에게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학 교육의 탈중심화를 꾀하고 아울러 무시험 무료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도 해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화는 물리적 공간을 확대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대학구조뿐 아니라 교육철학 전반을 관통하는 주요 원칙이다. 볼리바리안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11개 과목 모두 내용과 교육방식에서 지방화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지역공동체가 교육의 주체이자 대상이며, 교육의 목표 자체가 지역공동체를 구축하는데 있다.
예를 들어, 건축학과의 경우 학과의 구호가 ‘민중을 위한 친환경적 사회와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대학에서의 건축한은 전문 디자인을 넘어 건축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인간과 생태가 중심이 되는 지역공동체를 물리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학문인 것이다. 그래서 강의실은 대학뿐 아니라 바리오 그 자체이며, 정부-대학-바리오 자치조직들이 공동 주체가 되어 주거와 기간시설, 문화시설 등을 연구하고 건립한다.
농업생태학과도 있다. 농업생태학은 여기서 새로 만들어 낸 학문이며 남미에서 농업생태학을 가르치는 대학은 볼리바리안 대학이 유일하다. 주류 학문에는 자연자원 착취와 교역을 전제로 한 농업경제학이 있지만 대안 학문으로서 농업생태학은 생태보전과 식량 주권 확보,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유기농법 연구와 실천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 과 사무실의 설명이다. 학생들은 농촌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협동조합의 일원으로 공부한다고 한다. 신생 학문이다 보니 전공 교수가 없어 생물학, 화학, 수의학, 문화인류학 교수들이 팀을 이루어 학생, 협동조합과 함께 강의를 계속 개발 중이라고 한다.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무상의료 제도

차베스 대통령 임기 초기에 250명의 쿠바 의사 그리고 간호사들이 베네수엘라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그 당시 베네수엘라 보건부는 베네수엘라 의사들에게 월급 600달러를 지급할 테니 빈민 거주 지역에서 무로로 의료 혜택을 줄 것을 호소했으나 극소수의 베네수엘라 의사들만이 참가했다. 반면 여러 나라에서 국제 자원봉사를 경험한 쿠바 의사들은 2003년 3월부터 베네수엘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쿠바 의사들은 정부로부터 한 달 생활비로 250달러를 받고 빈민가에 살면서 병원이나 그 밖의 의료 시설을 운영한다. 그들은 또한 쿠바가 기부한 약품을 무료로 제공한다.
쿠바 의사들은 아침에 환자를 치료하고 오후에 가까운 지역을 방문하여 그 지역 주민들에게 예방의학에 대한 지식을 알려준다. 병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의료 활동은 당연히 무상으로 빈민들에게 제공된다.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쿠바 의사는 현재 2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빈민가 주민들은 한결같이, 베네수엘라 의사들과 달리 쿠바 의사들은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한밤중에도 필요하면 찾아온다고 말한다. 차베스가 집권하기 이전에는 빈민가에 병원이 없어서 치료를 받으려면 멀리까지 가야 했고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했다.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Mission Barrio Adentro가 엄청난 인기를 끌자 차베스 반대파들이 이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우익 반대파 소속의 베네수엘라 의료연합VMF은 세계적 의료 수준을 자랑하는 쿠바 의사들을 돌팔이 의사라고 거짓 선전하기 시작했고 쿠바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의 활동 금지를 위하여 법원에 소송을 걸기도 했다. 한 지방법원이 베네수엘라 의료연합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으나 차베스 정부는 이런 판결에 항소했다.
그뿐 아니라 쿠바 의사들에 대한 물리적 공격도 늘어나서 2003년 아라구아 주州에서는 한 명의 쿠바 의사가 살해당했고 수도 카라카스의 페타레 지역에서는 쿠바 의사의 베네수엘라 인 보조원이 살해당했다. 차베스 반대 세력들은 가두집회 때마다 “쿠바 의사를 죽이고, 애국주의자가 되자”는 구호까지 외쳤다. 2003년 12월경에는 많은 베네수엘라 의사들이 바리오 아덴트로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빈민가에 살면서 그들을 돌봐주는 데 있어서 쿠바 의사들처럼은 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쿠바 의사들이 운영하는 병원에는 첨단 시설이 갖춰져 있고 이러한 병원은 월수입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쿠바는 또한 베네수엘라 학생들에게 의사가 되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많은 베네수엘라 학생들이 쿠바 수도 아바나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이들이 앞으로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쿠바 의사들을 대체할 것이다. 간호사들의 경우 베네수엘라 간호사들이 이미 쿠바 간호사들을 대체했다.
초기에 바리오 아덴트로는 그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으나 이제 모든 사람의 희망이 되었다. 바리오 아덴트로 때문에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반공의식 그리고 쿠바혁명에 대한 반감과 모든 편견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차베스 정부는 쿠바 정부의 이러한 도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쿠바에 석유를 제공하고 있다.

미션 미란다

베네수엘라 군대는 빈민층 출신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상당수가 군대를 떠난 후에는 취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베스 정부는 또 다른 독립영웅인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Francisco de Miranda 장군의 이름을 따 미션 미란다Mission Miranda를 계획했다.
이 미션은 군대에 종사했던 사람이 군대를 떠난 후에도 정부의 보조를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협동조합을 세우는 것에 관한 교육을 받고 소액금융 제도의 지원을 받는다. 프로그램은 2003년 10월 19일에 선언되었는데 당시 5만 명의 전직 군인이 등록했고 연말에는 다시 5만 명이 등록했다.
반대파들은 미션 미란다에 의혹을 제기하며 차베스가 그의 개인적인 지휘를 받는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차베스가 전국을 군대화하고 개인적인 충심에 가득 찬 군대를 양성하며 지지 기반을 다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반대파의 그동안의 행태를 보았을 때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미션 메르칼

미션 메르칼Mission Mercal은 정부 지원을 받는 수퍼마켓들을 세워 시장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전국에 생활필수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02년 12월, 차베스 반대 진영의 총파업으로 대형 상점들이 문을 닫았을 때 등장한 자생적 시장에서 비롯되었다. 차베스 정부는 국가 지원을 받는 생필품 지급 네트워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프로그램은 천천히 시작되었고 2003년 11월에 전국 100개 이하의 지역으로 보급되었다. 그 후 정부는 시장을 세우는 데 박차를 가하여 12월에는 해당 지역이 200개로 늘어났고 2004년 2월에는 20배인 2000여 개로 늘어났다. 반대파들은 프로그램을 비판하면서 메르칼 슈퍼마켓은 사유재산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말한다.

- <차베스, 미국과 맞장뜨다 /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엮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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