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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안녕하세요?

 

2009년 6월 8일 월요일


오후에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성호형이 보낸 것이었다.

상자를 뜯었더니 시큼한 냄새와 함께 홍어가 들어 있었고, 비닐봉투 속에 작은 메모가 있었다.


큰마음 먹고 홍어 한 마리 보낸다.

돼지고기 한 근 사오고, 김치 듬성듬성 썰어서 같이 먹어라.

막걸리 한 잔 할 사람은 있겠지?

잘 지내라.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들었다가 내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써서 보냈다.


홍어 잘 받았어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이 군침 돌게 합니다.

조용하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형이랑 같이 막걸리 한 잔 하면 좋을 텐데...

내 삶만 힘들다고 찡얼대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더없는 행복입니다.

고맙습니다.


작은 선물로 이렇게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을 새삼스레 느껴보는 날이다.

마음이 따뜻해지니까 사람이 더욱 그리워진다.



2009년 6월 9일 화요일


오전부터 짙은 구름이 끼고, 낮에는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저녁부터는 굵은 비가 내리고 있다.

오래간만에 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홍어를 혼자 먹기에는 양도 많고, 왠지 처량하기도 할 것 같아서 원용씨에게 전화를 했다.

이곳에 온지 석 달이 지났지만 딱히 알고 지내는 사람도 없어서 나를 편하게 대해줬던 원용씨와 편한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욕심내지 않고 조금 긴 호흡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긴 호흡 속에 삶을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편하고 좋기는 하지만 외로움이라는 것은 쉽게 적응이 안 되다.

그런 속에 원용씨와 두 번 정도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면서 마음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알아보게 된다.

그래서 뭔가를 바라고 기대기보다는 뭔가를 나눠주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이렇게 편하게 사람을 만나고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다.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아서 간단히 메시지를 남겼다.

약간은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면서 오래간만에 즐거운 술자리를 가져봐야겠다.

작은 홍어 한 마리가 가져다줄 수 있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2009년 6월 10일 수요일


밤새 비바람이 거세서 잠을 조금 설쳤다.

무거운 몸도 달래고, 비온 뒤의 경치를 즐기기 위해서 아침 산책을 나갔다.

비구름은 완전히 물러났지만 낮은 구름이 여기거기 남아 있었고, 바다는 잔잔했지만 맑고 푸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다.

무거운 몸도 처지는 것 같아서 산책을 일찍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편한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들어봤지만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수시로 휴대폰을 들여다봤지만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최종 통화기록은 6월 9일 오후 12시 16분에 원용씨에게 걸었던 것으로 계속 남아 있다.

보낸 메시지도 똑같이 최종기록으로 남아 있다.

다시 전화를 해볼까하다가 “메시지를 봤으면 연락오겠지...” 하는 생각에 그만뒀다.


점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원용씨였다.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예. 원용씨.”

“죄송합니다. 어제 급하게 다녀올 곳이 있어서 나가느라 전화를 집에 두고 갔었습니다. 이제야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랬어요? 홍어는 드시나요?”

“좋지요.”

“아는 형님이 보내왔는데 살이 통통하고, 냄새가 아주 시큼합니다. 언제 한 번 드시러 오세요.”

“홍어가 큰가요?”

“아주 큰 것은 아닌데 한 마리 분량이니까 여러 명이 먹어도 실컷 먹을 수 있을 겁니다. 돼지고기까지 곁들이면 한 마리 다 먹기도 어려울 거 같은데요.”

“그러면 제가 몇 사람 연락해서 자리를 마련해보죠. 돼지고기랑 김치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원용씨 전화를 받고나서 괜히 마음이 들떴다.

얘기만 잘 되면 오늘 저녁에라도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준비를 해두어야겠다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옆 마을에 있는 슈퍼에 가서 막걸리 한 박스. 음료수 네 병, 상추와 마늘, 쌈장 등을 사왔다.

냉장고에 그것들을 집어넣었더니 가득한 게 든든한 기분이다.

사람들이 오면 답답한 집안 보다는 마당에서 먹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창고에서 깔개와 가리개 등을 찾아서 걸레로 닦아 놓았다.

홍어를 미리 썰어놓을까 하다가 사람들이 모여앉아서 썰어먹는 맛이 좋겠다 싶어서 냉장고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되어 가는데, 곧 연락 주겠다던 원용씨에게서 아직 연락이 없다.

사람들 연락하고 일정 맞추다보면 늦어지는 것인데, 내가 마음만 너무 앞서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더 이상 준비할 것도 없고 해서 다시 산책을 나갔다.

오전과 달리 하늘도 많이 맑아졌고, 바다도 작은 파도가 일렁이면서 파란 기운이 시원하게 다가왔다.

몸도 마음도 상쾌했다.

바지에 넣고 있는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봤다.


늦은 시간까지 저녁을 먹지 않고 연락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어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오늘 당장 오겠다고 하지도 않았고, 사람들 일정을 맞춰서 오려면 며칠 걸릴 수 있는데 혼자 너무 앞서갔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 일정도 맞추고 자기 일도 보고 하다보면 연락이야 좀 늦을 수 있는 것이어서 내일 연락이 오고 주말쯤 자리가 마련될 수 있으려니 했다.

주중 저녁보다는 오히려 주말 낮에 자리를 하는 것이 서로 편할 것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오늘 하루 내 모습을 생각해보니 우스웠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짧은 한 통의 전화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이라니...

그만큼 사람이 그리웠나보다.


막걸리가 시원하다.



2009년 6월 11일 목요일


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휴대폰을 열어봤다.

부재중 전화도 문자메시지도 없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세탁기를 돌리고 집 안 청소를 했다.

그리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쓸고 닦고 하다 보니 땀이 흘렀다.

다시 휴대폰을 열어봤다.

세탁기의 빨래를 들고 나와 화창한 하늘을 보며 널었다.

다시 휴대폰을 열어봤다.

샤워를 하면서 면도도 깨끗이 했다.

다시 휴대폰을 열어봤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다시 휴대폰을 열어봤다.


커피 한 잔을 타서 마루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바람이 살살 불어오니 더 없이 시원했다.

휴대폰을 다시 열어보려다가 그냥 놓았다.

다시 바람을 느끼면서 깊이 들이마셨다.

상쾌한 기분이 몸속에 퍼졌다.

천천히 숨을 내쉬고 있으려니 내 몸이 바람을 타고 살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집밖으로 나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람과 함께 바다가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내 몸이 바람과 바다와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갑자기 윤수 생각이 났다.

성호형에게서 윤수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내 처지가 처지라는 생각에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있었다.

컴퓨터를 켜고 앉았다가 직접 손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A4용지 몇 장을 들고 마루에 앉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더니 오늘은 다시 화창한 날씨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바다는 더 없이 푸르다.

하늘을 바라볼 여유도 없고, 바다를 볼 수도 없는 그곳이겠지만 그냥 마음속으로 생각해봐라.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 거다.


너의 소식은 가끔 전해 듣지만 그동안 연락 한 번 못하다가 이제야 몇 줄 적어본다.

항상 너와 있으면 내가 말이 많았는데 오늘도 혼자서 떠들어봐야겠다.

좀 시끄럽고 귀찮아도 참고 들어주겠지?


혼자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면서 세 명의 여자를 알게 됐다.

이숙의, 이소선, 조안 하라라는 분들이다.


이숙의씨는 해방 이후 선생을 하다가 좌익운동을 하던 남자를 만나 가족의 반대 속에 어렵게 결혼을 했다. 하지만 한 달의 신혼 생활을 끝으로 다시는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북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나선 남편은 돌아오지 못했고, 이후 빨치산 사령관으로 활동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한 달의 신혼생활 속에 딸을 하나 낳고, 빨갱이 가족으로 상상하기 힘든 세월을 견뎌야했다. 그런 가족사를 안고 교직생활을 하는 것 또한 얼마나 힘들었겠냐마는 담담하게 그 모진 고통을 감내할 뿐이었다.

북에 남편의 무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도 한 번 가지 못하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송환을 앞둔 장기수 어른을 통해 남편이 살아있을 적에 많이 보고 싶어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처음 자신을 안아주었을 때부터 시작된 책의 첫 부분이 더 싸하게 다가왔다.

어린 손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썼다는 그분의 글은 단아한 성품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격정적이지 않고 담백하게 자신의 얘기를 풀어갔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의 얘기는 몇 번이나 책을 덮고 눈물을 닦지 않고는 읽을 수 없었다.

시커멓게 타들어간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 이후 “자식 때문에 미쳐서” 살아와야했던 40년 가까운 세월 또한 감히 이해한다고 얘기할 수 없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어렵게 태일이 얘기를 꺼내놓으면 며칠을 앓아누워야 한다.

밤에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는 어머니 옆에서 녹음기를 켜놓고 들었던 얘기를 힘들게 정리한 글이어서 밤새 가슴 아프고 정감어린 얘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1960년대말 칠레에 들어섰던 아옌테 인민연합정부 시절 좌익 문화활동가였던 빅토르 하라와 함께 문화활동을 함께했던 조안 하라의 얘기는 비슷한 시대를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갔던 이의 얘기다.

영국에서 태어나 무용을 하던 조안 하라는 칠레 출신 무용가와 결혼해서 칠레로 가게 된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파국을 맞게 되어 이혼을 하게 되고, 얼마 후 혼자서 딸을 낳아 키우게 된다. 그때 만난 이가 빅토르 하라였고, 그 두 사람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함께 사랑을 만들어 가면서 칠레의 정치적 격동을 함께 한다.

아옌테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민중과 함께하는 예술적 실험들을 매우 정열적으로 하던 중 피노체트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고 빅토르 하라는 총살당한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칠레를 탈출한 조안 하라는 칠레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더욱 열정적으로 세계를 돌아다닌다.

20여 년이 지나서 조안 하라와 가족들은 칠레로 다시 돌아오지만 역사적 진실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피노체트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칠레에서 천수를 누리고 죽는다. 자신의 조국도 아닌 칠레의 진실을 밝히고 남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조안 하라는 칠레에서 빅토르 하라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

조안 하라의 사랑과 예술가적 열정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회주의, 민주주의, 민족주의 같은 어떤 사상적 신념으로 이 세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못한 여자로서의 일편단심이라고 하기에도, 여성주의에서 강조하는 여성적 힘과 긍정성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이 분들의 삶은 너무 크고 깊은 울림을 준다.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그 모진 힘겨움을 담담히 이겨내면서 살아왔던 그 힘은 무엇일까?

그 분들에게 삶은 무엇이었을까?


이 편지를 보내려면 옆 마을에 있는 우체국까지 가야 한다.

가는 길에 바다가 있는데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려고 한다.

이 편지 속에 바다 냄새와 바람 소리가 담길 수 있겠지?


잠시 눈을 감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봐라.

수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바다를 믿고 편한 마음으로 바다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가볍게 출렁이는 물결과 함께 호흡을 맞춰봐라.

발과 손이 바다와 하나가 되고 가슴이 바다의 맥박을 느끼게 될 거다.

그러면 어느 순간 바다와 몸이 하나가 된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러면 살며시 눈을 떠봐라.

무엇이 보이냐?


편지를 봉투에 넣고 집을 나섰다.

한낮의 햇살이 조금 뜨겁기는 했지만 천천히 바닷길을 걸었다.

10여 분을 그렇게 걸어서 우체국 앞에 이르러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다시 휴대폰을 열어봤다.


늦은 오후의 바닷길을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빨래는 다 말라 있었다.

빨래를 걷고 저녁을 먹었다.

더 이상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기 위해서 휴대폰을 마루에 놔두고 방에 들어왔다.

라디오를 켜고 클래식 방송에 주파수를 맞췄다.

감미로운 현악기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침대에 누워 음악에 빠져들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때는 잠을 설치기도 하고, 화창한 날씨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는 또 그렇게 그 바람에 몸과 마음을 맞길 수만 있다면...


한 시간 정도 그런 편안한 기분으로 방송을 즐기고 있었다.

조용한 피아노 소리가 배경으로 깔리면서 진행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시인 노천명의 본래 이름은 기선이었습니다.

여섯 살 무렵 생사를 오가며 홍역을 심하게 앓고 난 뒤에 부모님은 하늘이 준 목숨이라는 뜻의 천명으로 딸의 이름을 다시 지어주셨죠.

하지만 천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녀가 보낸 날들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름이 바뀐 뒤에 부모님은 금세 세상을 떠났고, 그녀가 원했던 사랑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죠.

고독이 마치 운명이었던 것처럼 이후 천명의 삶은 외로웠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노천명의 시에는 고독과 절절한 그리움이 배어나왔죠.


님이 오시던 날

버선발로 달려가 맡았으련만

굳이 문 닫고 죽죽 울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쳤음이오리까

늦으셨다 노여움이오리까

그도 저도 아니오이다.

그저 자꾸 눈물이 나

문 닫고 죽죽 울었습니다.


노천명의 시가 자꾸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가 싶더니만 조금씩 울렁이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어 홍어를 몇 점 썰고 막걸리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며칠 전에 깨끗이 닦아 두었던 깔개를 마당 한가운데 깔고 앉았다.

홍어 한 점을 먹었더니 입안이 싸했다.

막걸리를 들이켰더니 마음이 약간 진정될 듯하다가 다시 울렁거렸다.

막걸리 한 잔을 더 들이키고 자리에 누웠다.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았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질 않는다.



2009년 6월 12일 금요일


어제 마신 술로 몸이 약간 무거워서 평소보다 늦게까지 누워있는데 누군가 찾아왔다.

부스스한 몰골로 나가보니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있었다.

문을 열고 자세히 보니 집 옆에 있는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인사를 드렸다.

아저씨는 경운기가 약간 말썽이라서 공구를 빌릴 수 있겠냐고 물었고, 나는 창고로 가서 공구함을 찾아들고 나왔다.

아저씨에게 공구함을 건네고 세수를 하고 나서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나 해서 밭으로 갔다.

평소에 간단한 인사 정도만 하고 지내는 분들이라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 얼굴을 보기 때문에 어색하지는 않았다.

아주머니도 같이 계셔서 인사를 드리고,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물었더니 아저씨가 간단한 것이라서 괜찮다고 한다.

아침부터 경운기로 뭘 나르려고 하냐고 물으니까 아주머니가 밭에 거름으로 쓸 소똥을 나르러 간다는 것이라고 했다.

예순은 훨씬 넘어 보이시는 두 분이 그 일을 하려는 모양이라서 내가 도와드리겠다고 했더니 괜찮다고는 하지만 싫은 내색은 아니었다.

오래간만에 땀도 흘려보고, 어제 먹은 술로 무거워진 몸도 풀어보고도 싶어서 얼른 집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 사이 경운기를 손보고 난 아저씨는 역시 괜찮다고 하면서도 경운기 시동을 걸고 있었다.


두 분 내외와 함께 경운기를 타고 10여 분을 갔더니 조그만 우사가 나왔다.

소는 다섯 마리가 있었고, 한쪽 구석에 소똥이 쌓여있었다.

두 분은 경운기에서 내려서 소똥을 싣기 시작했고, 나도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

냄새는 심하지 않았지만, 갈고리로 끌고 박스에 넣어서 경운기에 싣는 작업이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두 분 보다 나이는 한 참 어렸지만,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다가 움직이는 것이어서 속도는 느렸다.

10여 분을 하고 나서 잠시 숨을 돌리려니까 아주머니는 쉬면서 하시라고 말을 하고는 열심히 움직였다.

미안한 마음에 다시 달려들었지만, 또 10여 분만에 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세 번을 쉬었을 때에야 아저씨도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휴식을 취했고, 그동안에도 아주머니는 계속 소똥을 들어 날랐다.

50분 정도 지나서야 아주머니는 물을 마시기 위해 일손을 잠시 놓았다.


두 분은 무척이나 말이 없으신 분들이어서 한 시간 동안 거의 얘기를 주고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끔 하는 얘기는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타박을 하는 소리였다.

별로 큰일도 아닌데 아저씨는 짜증 섞인 잔소리를 아주머니에게 했고, 아주머니는 잠시 겸연쩍은 표정은 짖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일을 했다.

그런 모습을 몇 번 지켜보게 되니까 내가 당황스럽고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일을 하는 양을 보더라도 여자인 아주머니가 더 많았고, 아저씨가 얘기하는 내용은 일을 하면서 나타나는 단순한 요령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그런 식으로 타박을 했고,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만 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 반 정도 했더니 경운기가 가득해서 마무리를 하고 다시 밭으로 돌아왔다.

경운기에 실린 소똥에 비닐을 덮고 나는 그 위에 앉아서 다시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앉아 아무 말 하지 않고 앞만 보고 있는 두 분의 뒷모습이 묘하게 느껴졌다.

가끔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나이 드신 두 분이 서로 다정하게 일을 한다고 생각해왔었는데 막상 같이 일을 해보니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몸에 깊숙이 베인 가부장성은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됐다.

아저씨의 그런 모습에 짜증을 내는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그 순간 이런 저런 내 모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곧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내 삶에서 부끄러운 모습들은 왜 그렇게 많은 것이지...

그런 것들이 지난날의 실수였다고 조용히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버리면 되는 것인지...

앞으로 살아가면서는 부끄러운 일들이 또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늘을 올려다봤다.

갑자기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났다.

윤동주는 어떤 마음으로 그 시를 썼을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다시 밭으로 돌아와서 소똥을 내리기 위해서 경운기를 한쪽 구석자리에 대놓았다.

아주머니는 밭에 쌓여있던 거름더미를 덮은 비닐을 걷어내고, 경운기에 덮어놓았던 비닐도 걷어내고는 다시 소똥을 퍼내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머니 옆에서 그 일을 거들고 있었다.

경운기를 세우고 잠시 어디로 가시는가 했던 아저씨가 쟁반에 세 잔의 컵을 받쳐 들고 나무그늘 쪽으로 오셨다.

아주머니와 나를 부르셔서 가봤더니 손수 커피를 타 오신 것이었다.

조금 전에 타박을 주시는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역시나 과묵한 두 분은 조용히 커피만 마셨다.

이것이 두 분이 살아가는 방식인가보다.


그렇게 경운기에 쌓인 소똥을 다 내리고 쌓인 거름더미에 다시 비닐을 덮고 났더니 12시가 넘어 있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들어간다고 했고, 고맙다는 얘기를 두 분이 번갈아가면서 하셨다.

순간 홍어가 떠올랐다.

두 분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집으로 달려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홍어 한쪽 지느러미를 꺼내서 종이에 싸고 나왔다.

주말에 자식들 불러서 같이 드시라고 드렸다.

아주머니는 미안해서인지 받으려 하지 않았지만 내가 계속 손을 내밀자 아저씨가 받으셨다.

거듭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두 분은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가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했는데도 손에서 소똥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홍어 몇 점과 함께 점심을 먹었더니 아주 맛있었다.

밥을 먹고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역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편한 마음으로 낮잠을 즐겼다.



2009년 6월 13일 토요일


아침부터 몸이 매우 가뿐해서 집안 청소를 깨끗이 했다.

마당에 나 있는 잡초도 뽑고, 창고도 정리했다.

그리 크지 않은 집이지만 이곳저곳 청소하고 정리하고 하다보니까 은근히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몇 시간 대청소를 하고 났더니 몸과 마음이 아주 개운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 자전거를 타고 돼지고기를 사러갔다.

오늘은 제대로 된 삼합으로 홍어를 먹어보고 싶었다.

역시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지만 더 이상 휴대폰을 들려다보지는 않았다.

집을 나서면서 옆에 있는 밭을 봤더니 어제 쌓아놓은 거름더미가 보였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맡으면서 자전거를 천천히 달렸다.

자연스럽게 노래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돼지고기 한 근을 사고 집으로 들어서려는데 앞집 할머니가 문밖 나무그늘에 앉아계셨다.

나이는 아흔 정도 되어 보일 정도로 많이 늙으신 할머니는 혼자 살고 계신다.

가끔 보일 때마다 인사를 드리기는 하지만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는지 알아보시기도 하고 몰라보시기도 한다.

오늘은 인사를 드렸더니 알아보셨다.

부엌에 가서 돼지고기를 삶고 있으려니까 늙어서 힘없는 몸을 이끌고 멍하니 앉아 계신 할머니 모습이 눈에 밟혔다.

다시 밖으로 나가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아직 식사 안하셨죠?”

“아직 밥 먹을 시간이 아닌데...”

“제가 돼지고기랑 홍어를 준비했는데 같이 드실래요.”

“아직 밥 먹을 시간이 아닌데...”

“저 혼자 먹기 심심해서 그래요. 할머니 홍어 먹으세요?”

“홍어? 바닷고기?”

“예. 드실 수 있으려나요. 아니면 돼지고기 드세요.”

“아직 밥 먹을 시간이 아닌데...”


할머니 손을 잡고 마당으로 안내했다.

한쪽 나무그늘에 깔개를 깔고, 나무가시 사이에 가리개를 묶어서 시원한 자리를 마련했다.

할머니에게 음료수 한 잔을 드리고, 상을 준비했다.

홍어를 내어서 썰고, 김치를 썰고, 삶은 돼지고기도 썰었다.

며칠 전에 사온 상추가 약간 시들기는 했지만 물에 씻었고, 마늘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사온 쌈장에 다진 마늘과 파로 양념도 했다.

홍어 삼합을 큰 쟁반에 담고 마당으로 나갔더니 할머니는 멍하니 나무를 보면서 앉아계셨다.

막걸리 한 잔 하시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셔서 막걸리와 컵을 들고 나왔다.

막걸리를 따라 드리고 상추에 홍어와 돼지고기와 김치를 얹어서 하나를 드렸다.

할머니는 천천히 씹어서 드시고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아주 맛있다고 했다.


할머니와 홍어 삼합에 막걸리를 함께 마시면서 할머니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사시는 집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80여 년을 살아온 집이라고 했다.

결혼하시고도 집에서 살았는데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고는 할뿐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결혼해서 나가 살다가 이혼하고 자식들과 함께 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들 키우고, 아들은 이일 저일 하면서 살아가다가 아들이 마흔 네 살에 죽었다고 했다.

아들 장래 치르고 밭에서 일을 하면서 세 명의 손자를 키웠고, 이제 다 결혼해서 나가 산다고 했다.

손자들이 어릴 때 모질 게 키워서 할머니를 싫어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잘 찾아오지도 않는단다.


할머니는 맛있다고 하면서도 홍어는 두 점을 드셨을 뿐이고, 돼지고기를 주로 드셨다.

나는 돼지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홍어를 김치에 싸서 먹었다.


할머니 얘기를 듣다보니 길어진 해도 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졸기 시작하셔서 집으로 바래다 드렸다.

곳곳에 시멘트로 덧댄 자국이 많은 낡은 스레트집이었다.

할머니 방에 들어갔더니 늙은이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작은 방은 깔끔했다.

이불을 깔아드리고 할머니를 자리에 눕혔더니 이내 낮은 콧소리를 내셨다.

꾸줄꾸줄한 얼굴이 참 편안해 보였다.

마당으로 돌아와서 남아있던 홍어에 막걸리를 먹었다.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을 다시 더 살아서 할머니 나이만큼 됐을 때

가난과 외로움은 어디쯤 머물러 있을까?



2009년 6월 14일 일요일


역시 화창한 날이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집을 나섰더니 할머니가 집 앞 나무그늘에 그대로의 모습으로 앉아계셨다.

“잘 주무셨어요?”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무슨 일로 우리 집에 오셨습니까?”하며 묻는다.

다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는 할머니를 지나 걸어갔다.


조금 나와서 옆 밭을 보았더니 두 분 내외가 밭에 농약을 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뒤에서 농약 호수를 잡고 있었고, 아저씨는 앞쪽에서 농약을 뿌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두 분은 고개만 숙일 뿐 역시나 말이 없었다.

홍어를 잘 먹었다는 인사치레조차 없어서 약간 서운했지만 조용히 바닷가로 향했다.


바다가 너무 맑아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저안에 들어가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할 것 같다.


오늘도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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