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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창훈이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창훈이

 

괜찮다. 그런대로 버틸 만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힘을 다해 노려하지 않아도 견딜 만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배를 깔고 엎드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발부터 바닥 저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섭고 두려웠다. 그냥 몸을 혼란스러운 머릿속과 함께 늪으로 던져 버리고 싶어졌다.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물을 잔뜩 머금은 솜뭉치처럼 뚝뚝 아래로 떨어져 갔다. 이마의 주름을 만들어 눈꺼풀을 당겨 보아도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가 돼 버렸다.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야 할 것 같은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잠이 깜박 들은 것 같다. 꿈속에서 피곤했다. 머리는 뭔가 계속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아무것도 날 건드리지 않는다면 한없이 떨어지다가 바닥을 두드려야 물기를 털고 올라올 수 잇을 것 같았다.

 

경찰서에서 온 전화

 

“김창훈이라고 아십니까? 어떤 관계죠?”

“초등학교 때 만난 선생님인데요. 안 지는 6년 정도 됐고요.”

“그럼 혹시 연락되는 가족이 있으신가요?”

“아버지 연락처는 모르고, 형은 지금 함께 사는 친구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요. 누구신데요?”

“경찰입니다. 여기 중계동인데 오시는 데 얼마나 걸리시나요?”

“한 시간 좀 넘게 걸리는데요. 무슨 일인가요?”

그 한 통의 전화부터 시작됐다. 여느 때처럼 그 녀석이 사고를 쳤으리라 여겼다. 얼른 경찰서로 가서 창훈이 녀석 한 대 때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고 치지 않기로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경찰에게 연락이나 오게 하고...... 그런데 경찰 목소리가 뭔가 이상했다.

“안 좋은 일입니다. 투신했어요. 한 시간이면 너무 오래 걸리네요. 주민번호나 주소 이런 거 아세요?”

“찾아봐야 해요. 얼른 찾아서 연락드릴게요. 그런데......죽었나요?”

“모릅니다. 빨리 연락 주세요.”

몸은 움직이는데 생각은 멈춰 있었다. 무엇을 찾는 데 한참이나 걸리던 내가 무의식적으로 창훈이 주소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참 만에 경찰이 전화를 받았다. 빠르게 주소와 주민번호를 불러 주고 다시 한번 죽었는지를 물었다.

“김창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경찰서 형사 6팀에 가서 물어보세요.”

“혹시 왼쪽 팔에 어깨부터 팔목까지 문신이 있나요?”

경찰이 다른 경찰에게 문신이 있는지 확인시키는 소리가 들렸고, 피가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지만 있는 것 같다고 하는 소리도 들렸다. 전화를 끊었다. 병원에는 갔는지,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였다. 확실한 것은 피 칠을 한 창훈이를 확인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머리의 회전이 멈췄다. 이를 닦다가 오늘의 날씨를 찾아보다가 시계를 보다가 작은방 책꽃이의 책 이름 보다가...... 계속 몸은 움직였다. 허공을 걷는 느낌이었다. 다리는 무거웠다가 거벼웠다가 했다. 자동차에 올라타서도 그 느낌은 계속됐다. 가속 페달을 밟는 발의 감각이 무더져 앞뒤 차와의 간격을 제대로 맞출 수 없었다.

가을이었다. 햇볕이 좋았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산은 어느덧 단풍이 들어 있었다. 아니 어제도 단풍은 들어 있었다. 퇴근하면서 아이들과 단풍놀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새삼 지금 단풍을 처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이상한 감정들은 그냥 흘려보냈다. 긴 터널 입구에 들어간 기억이 없는데 빠져나오고 있었다. 터널 밖에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었는데 속도계를 보았더니 140이 넘어가고 있었다. 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너무 빨리 왔다. 외곽순환도로를 빠져나와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창훈이 생각이 났다.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창훈이의 죽음

 

경찰서에는 고개 숙인 창훈이의 아버지가 앉아 있고, 앞에서 경찰이 컴퓨터로 사건 경위를 만들고 있었다.

“...... 고(故) 김창훈은 2008년 11월 12일 아침 10시 소주를 한 병 마시고, 911동 15층에 올라가 ‘은희야, 사랑한다’라고 소리를 지른 후 투신했습니다. 14층 아주머니가 혼을 내 주려고 나왔는데 고 김창훈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맞은편 아파트 1층에서 이 소리를 듣고 나온 주민도 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고 김창훈이 평소에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까?”

내 귓가에 ‘고 김창훈’이라는 경찰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려왔다. 혹시나 했지만, ‘고 김창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니 준비 되지 않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창훈이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고, 얼마 전까지 아버지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었다고 대답했다. 등 뒤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내가 나서서 창훈이는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고, 아버지가 잘 곳도 없이 거리를 떠도고 있는 아들에게 관심라라도 있었는지 따지고 싶었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여자랑 동거하며 가끔 올라와 용돈이나 조금 주고, 재혼한 엄마는 가끔 찾아와 술주정이나 하고, 형이 보증금을 빼서 오토바이를 사 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월세 집에서 쫓겨나 잘 곳이 없고, 후배네 집 창문을 모두 부숴 갚을 돈 80만 원이 필요했고, 교통사고 났는데 재활 치료도 안 하고 있었고, 창훈이와 사귀는 것을 심하게 반대하는 여자 친구 아버지가 있었고, 그동안에 일어났던 그런 사실들을 정말 알고나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때 아버지가 몸을 일으켜 나를 바라봤다. 6년 전 아이들을 야구 방망이, 당구 큐대 등으로 때리던 서슬 퍼런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저분한 옷,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돼 버린 아버지를 보고 가슴이 따끔거렸다.

“선생님, 창훈이가 죽었다네요.”

그 말을 하며 다시 울기 시작하는 아버지를 보며 또 눈물이 흘렀다.

돈이 없어서 삼일장도 못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화장하기로 했다.

화장터에도 운구차가 아니라 병원 구급차를 타고 가야 했다.

 

창훈이와 만난 시간들

 

창훈이를 만났던 시간들이 거꾸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기 이틀 전에 창훈이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볼 수 있느냐고 했는데 안 된다고 했다. 왜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했을까. 다음 주에 만나서 맛있는 것 사 주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던 것만 기억난다.

 

일주일 전에 만났다. 무작정 고기를 먹자고 했다. 창훈이는 내가 먹는 것만 보고 거의 먹지 않았다.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꼭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바쁜 일 때문에 창훈이를 약속 장소까지 태워다 주고 바쁘게 집에 갔다.

 

한 달 전에도 만났다. 열아홉 살에 너무나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고 했다. 지금까지 막살아 왔지만 이제는 제대로 살겠다고 했다. 그래서 직장도 찾고 있다고 말이다. 좋아 보였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때까지 만났던 여자들과는 달리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나이도 네 살 많다고 했다. 정말 축하한다고 했다.

 

1년 전에는 치킨 집에서 배달하다가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연락이 왔다. 담배 연기 가득한 개인 병원의 병실에서 만난 창훈이는 아저씨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싹싹하고 귀엽다고 말이다. 병원에서 나가면 취직도 시켜 준다고 했다고 자랑했다. 자신은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정말 그 사람이 소년원까지 다녀온 창훈이를 취직시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한 기억이 났다.

 

2년 전쯤에는 내 미니홈피에 이런 글을 남겼다.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안 죽는다.

세상이 무너져도 절대 안 싸운다.

세상이 무너져도 절대 나쁜 짓 안 한다.

세상이 무너져도 절대 게을러지지 않는다.

세상이 무너져도 애들이랑 놀지 않는다.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일만 잘하자.

내가 만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난 살 집 있어 비록 작지만

고시원 하나 구했어

안에서 있는 동안 번 돈으로 고시원 잡고

지금 일하고 있으니까 미래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괜찮으니까 지금부터 돈 벌면서

잘 살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선생~

 

3년 전, 소년원에서 학교로 편지를 보내 왔다. 소년원에서 검정고시 준비도 하고 있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다. 편지는 창훈이가 소년원에 있는 동안 계속 주고받았는데 창훈이가 다시 학교에 다녔으면 한다고 썼던 것 같다. 학교에 잘 다닐 수 있을지 자신도 없는데 말이다.

5년 전에 창훈이는 소년원에 갈 것을 걱정했다. 집을 가출한 창훈이에게 쉴 곳이 없으면 쉼터나 기숙형 대안학교라도 가자고 설득했다.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상담을 가서 아버지의 구타와 방임을 확인받아 바로 입소를 시켰다. 자유롭지 못한 곳이라 탈출을 했다. 자신을 그곳에 넣은 나를 찾아서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센터 입소가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6년 전 초등학교 6학년인 창훈이를 처음 만났다. 정말 어이가 없는 아이였다. 등교 시간에 학교에 온 적은 한 번도 없고, 수업 중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 밖으로 나갔다. 지나가는 아무 아이에게나 돈을 내놓으라고 했고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선생님이 때려도 안 되고, 상담을 잘한다는 선생님이 이야기를 해 봐도 소용없었다.

그때 난 창훈이가 웃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창훈이에게 장난도 치고 말도 걸어 봤다.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됐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러 온 미술 치료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창훈이와 친구 한 명에게 미술 치료를 받게 해 줬다. 미술 치료 선생님은 창훈이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며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녕, 창훈아

 

구급차가 사이렌 소리를 끄더니 멈춰 섰다. 화장터에 도착했다. 창훈이 친구들이 이미 와 있었다. 화장터에 온 아이들은 검은색만 맞춰 입고 왔지 다들 복장 불량이었다. 반짝이 검은 스타킹을 신은 아이, 소매 없고 배꼽이 보이는 망사로 된 윗도리를 입은 아이, 검은색 체육복을 입은 아이, 마스카라를 칠했는데 너무 울어서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화장터에 왔다. 울다가 웃다가 장난치다가 심각했다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그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도 먹지 못하고 왔을 텐데......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였다. 그러다 화장이 예정 시간보다 빨리 끝난다는 소식을 들어서 급하게 올라왔다. 화장도 빨리 끝날 만큼 창훈이가 그렇게 작았던가...... 창훈이는 흰 상자에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보며 아이 몇몇이 또 울기 시작했다 상자를 두 손으로 받아든 창훈이 형이 내게 왔다.

“아직도 따뜻해요. 우리 창훈이 아직도 이렇게 따뚯한데......”

그렇게 창훈이는 갔다.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 처음으로 책 한 권 권해 보지 못한 아이였다. 그 오랜 시간 만나면서 그냥 살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친구들을 참 좋아했던 창훈이는 지금쯤은 하늘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하나하나 안타까운 친구들 옆에 남아 눈물을 훔치고 있을까?

 

집에 돌아왔더니 휴대전화에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누구보다 속상하고 힘드실 텐데 싹 보내고 오세요. 오늘까지만 힘들어하시구용. ♥ 선생님이 제일 걱정된다. 진짜 쌤이 어떻게 했는데...... 그 미운 오빠 보내고 선생님 조금만 우시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

찬물에 얼굴을 담근 듯, 번쩍 정신이 들었다. 기운을 차려야 한다. 아직 만나야 할 아이들이 너무 많다.

 

 

to. 존경하는 고정원 선생님께!

 

안녕? 그 동아 잘지내고 있었어?

한동안 내 소식 못 들었지? 갑자기 편지와서 놀랬지? ㅋㅋ

나 지금 천안 교도소야.. 또 사고쳤지 모..

그냥 여기서 생활하는데 갑자기 선생님 생각이 나러라구~

그래서 이렇게 편지한다~ㅋㅋ

우리 고정원 쌤 잘지내고 있나? 안 본지 꽤 됐는데 말야?

나 안 보고싶어? ㅋㅋ 나 같은 개구쟁이는 흔치 않아서 수비게 잊혀지지 않을텐데? ㅋㅋㅋ

나는 쌤이 왜 이렇게 안 잊혀지는지 모르겠다? ㅋㅋ

샘이 나 한테 잘해줘서 그런가? ㅋㅋ

내가 쌤 집 주소도 모르고 해서 실례되는거 알면서도 학교로 보낸다~ ㅋㅋ 아직도 중원에서 근무하는거야? 오래하네~ ㅋㅋ

그리고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쌤 귀여운 딸은 잘지내? 싸이가서 사진 보니까 완전 귀엽더만!! ㅋㅋ

이름 알아었는데 까먹었다.. 미안.. ㅋㅋ 내가 원래 머리가 안 좋잖아~ ㅋㅋ 이해해주길~ ㅋㅋ

나 언제 나가는지 모르지? 나 이번에도 11월 26일 날 나가~ ㅋㅋ

잘하면 그전에 나갈수도 있어~ ㅋㅋ

언제 한번 시간나면 편지나 한통 써주라~ ㅋㅋ

직접 쓰기 귀찮으면 인터넷 서신도 있으니까 인터넷 서니 쓰던가~ ㅋㅋ

너무 명령조 인가? ㅋㅋ 기분 나빳다면 미안~ ㅋㅋ

여하튼 몸 건강히 잘지내고 나가면 한번 연락할게~ ㅋㅋ

그때까지 잘지내~ 그럼 안~뇽~!

 

2007. 5. 21일

 

p.s. 내가 글 재주가 없어 이렇게 밖에 못 쓴 점 이해해주길 바래~☆ ㅋㅋ

 

- 『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고정원 씀, 리더스가이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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