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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의 마지막 기회라굽쇼?

죄 사함의 마지막 기회라굽쇼?
-온라인 음원 전송권을 중심으로

글쓴이 : 끝실이  

성경의 <요한 계시록>은,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휴거(携擧, rapture)’ 이후의 무시무시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나는 교회 안 다니는데!”라며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진실한 기도 한 번이면 승천할 수 있다고 하더라.

1992년 10월 28일 이후, 우리 사회에서 휴거는 이제 거의 ‘뻥’이 되었는데, 지금 인터넷에서 휴거 바람이 불고 있다. 2006년 12월 28일 공표되고, 지난 6월 29일부터 현실이 된 전문개정 저작권법, ‘우상호 계시록’ 때문이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의 마지막 기회라며, 6월 29일 전후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엄청난 ‘자진 삭제’ 바람이 일어났다. 게시판에, 블로그에, 미니홈피에 올라간, 악마의 바코드와 같은 ‘온라인 불법 전송’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다.

죄 사함의 마지막 기회를 앞두고 그간 경험한 ‘해적질(piracy)’의 역사를 돌이켜 본다.

#1. 1999년 여름, WWW

WWW(World Wide Web)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때 느꼈던 환희가 아직도 기억난다. 인터넷은 나에게 순간이동 능력을 주었다. 외국 사이트에 접속해도 국제전화요금을 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얼마나 기뻐했던가? 좋아하는 만화의 이미지, 음악, 글들을 찾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었던 것들인데, 마우스 클릭 몇 번만으로 보고 싶었던 것을 보고 듣고 싶었던 것을 들었다. 모니터 앞에서 기뻐 날뛰며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던 적이 몇 번이던가….

누구에게나, 심지어 저작권자에게도 인터넷의 첫인상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2. 2000년 여름, 소리바다

너바나(Nirvana)의 앨범을 들으면서 ‘음악이 이렇게나 좋은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친구가 알려준 ‘소리바다’.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마치 옛 시골 장터처럼 음악을 교환하고 있었다. 음악으로 가득 찬, 그 시끌벅적한 공간 속에 내가 속한 밴드의 공연 음악을 올려놓기도 했었다. 그것들을 다운받는 아이디(ID)를 보면서 왠지 흐뭇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에서 음악은 ‘소비되는 재화’가 아니라, ‘향유되는 문화’였다.

문화는 언제부터 재화가 되었을까?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복사기기의 확대보급으로 인한 저작권 침해로부터 저작권을 보호하고, 저작권 이용관계를 개선함으로써 국내외 저작권 환경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1)하기 위한 저작권법 일부 개정안이 2000년 1월 국회를 통과하여, 그 해 7월부터 시행되었다. ‘저작자에게 전송권 부여’가 개정안의 골자였다. 전송권이란, ‘일반공중이 개별적으로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수신하거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저작물을 무선 또는 유선통신에 의하여 송신하거나 이용에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파일 형태의 저작물을 등록․송신․다운로드 하는 행위가 이에 속한다.2)

그리고 2001년 한국음반산업협회가 드디어 ‘소리바다’의 양일환·양정환 형제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사람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공유를 위해 만들어진 인터넷에서 공유를 막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질문 등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2002년 7월 법원은 소리바다 서비스에 대한 금지 가처분 결정이 내렸고, 소리바다 서버 3대의 사용이 중지됐다. 당시 판결을 내린 판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당했다. 판결 후, 한 달 만에 소리바다는 개인 컴퓨터들의 직접 연결을 통한 전송 서비스인 ‘소리바다 2’를 내놓았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음악을 주고받는 것은 분명 불법이었지만, 아직까진 향유될 수 있는 문화였다.

#3. 2003년 여름, 포털

2003년은 저작권법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될 ‘뻔’ 했다. 그 해는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나는 해였다. 그러나 2003년 1월 15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 등에 대한 저작권자의 독점적 권한을 향후 20년 동안 추가적으로 보장해주는 ‘소니보노법(Sonny Bono Copyright Term Act)’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1998년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이 법에 의해 미키 마우스는 ‘생명연장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2023년까지 살게 되었다. 1928년생인 미키 마우스는 원래대로라면, 1984년에 전 세계의 공공자산이 돼야 했다. 미키 마우스의 생명 연장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저승에 있는 월트 디즈니가 혹여 배 고플까봐?

소리바다를 중심으로 한 저작권 논쟁은 ‘향유하는 사람들’의 승리로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낭만적 저자(romantic author)’라는 새로운 등장인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TV에 작곡가들이 나와 너도나도 “배고프면 음악을 만들 수 없다.”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피땀 어린 노동의 성과물인 음악을 허락 없이 주고받는 행위는 ‘해적질’이라고 명명했다. 그때부터 ‘정보공유’라는 말이 사라지고 ‘불법공유’라는 말이 사용된 듯하다.

도둑질을 막기 위해서는 감시자가 필요했고, 그 역할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들이 떠맡게 되었다. 2003년 7월부터 시행된 저작권법 개정안은 저작물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기술적 보호조치’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기술적 보호조치를 무력화하는 등의 ‘저작권 침해사실을 알고 즉시 복제․전송을 중단시킨 경우에는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하도록 하는 면책요건을 규정하였다. 네티즌들의 소통과 공유 문화가 키워낸, 그리하여 한 달 순 방문자수가 3천만 명이 넘는 포털들은 그때부터 네티즌들에 대한 감시자 역할에 나섰다.

이 여세를 몰아 2004년 11월 한국음원제작자협회(이하 음제협)는 소리바다를 상대로 서비스중단 가처분 소송을 낸다. 2년 전과 다르게 배고픈 저작자들에게 더 이상 민폐 끼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이에 소리바다는 음제협에 정액제(월 3,000원)를 통한 유료화 방안을 제시했으나 거절당했다.

#4. 2005년 겨울, 블로그

2005년 1월, 또 한 차례 개정된 저작권법이 발효되었다.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에게도 전송권 부여하는 것이 개정 목적이었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상업적이든, 비상업적이든 음악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자(한국음악저작권협회)뿐만 아니라, 연주자(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 제작자(한국음원제작자협회)에게 모두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를테면, 팬클럽에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올리기 위해 기획사의 허락을 받았다 해도, 다른 2곳의 협회에 허가를 다시 얻어야 한다. 삼중의 포위망이 만들어진 것이다.

문화관광부는 전담반을 만들어서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음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광대역화된 망을 따라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파일 전송이 문제가 되면서, 길거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각종 ‘~파라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음악을 주고받던 네티즌들은 이제 서로에 대한 감시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작곡가나 가수들이 아닌, 같은 인터넷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두려워서 게시판과 블로그에서 올린 음악들을 내렸다. 이후로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에서 배경음악을 듣기가 어려워졌다.

WWW는 이제 정말 ‘따따따’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터넷은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세계가 되었다. 2005년까지 미국을 필두로, 호주, 한국, 일본, 대만, 스페인, 러시아 등에서 수많은 P2P사이트들이 사실상 폐쇄 판결을 받았다. 17개국에서 약 20,000건의 저작권 관련 소송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1월, ‘벅스뮤직’의 대표가 저작권법 위반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06년 4월 소리바다는 음제협에 불법음원 사용에 대한 보상금으로 총 85억 원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그때 즈음, 뉴스에서는 음반주(株)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는 보도가 넘쳐났다. 그리고 한 방송사의 쇼 프로그램에서 가수인지 개그맨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연예인이 음악CD 굽는 것이 취미라면서 동료들과 낄낄대는 것을 보았다.

#5. 2007년 여름, WWW

1986년 이후 20년 만의 전문개정 저작권법이 지난 6월 29일부터 발효되었다. 저작권법이 개정될 때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게시물의 자진 삭제 바람이 불었는데, 이번에는 그 강도가 꽤 세다.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지난해 12월부터 ‘죄를 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너도나도 게시물들을 내리고, 올려서는 안 되는 애니메이션 리스트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비친고죄 적용 범위’의 확대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의 고소 의사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불법 전송물에 대해 직접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이 추가되면서, 저작권자가 공유할 의사로 배포한 저작물의 이용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이 임의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관광부는 이에 대해 “권리자가 비록 ‘공유’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저작물이 영리․상습적으로 침해되는 경우까지 정보 공유를 원하고 있을지는 의문입니다.”3)라면서 ‘독심술’을 설파하고 다닌다. 인터넷이 권리자들의 신흥시장이 된 것은 옛말이고, 이제는 아예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검열공간이 돼버렸으니, 네티즌들이 게시물들을 안 내리고 배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마우스 클릭은 예전처럼 쉽게 쉽게 창들을 열어주지 않는다. 경고 혹은 유료를 알리는 메시지부터 뜬다. 길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은 이제 인터넷에서 듣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모니터 앞에서 자료를 찾으며 기뻐 날뛰기보다는 찾다가 짜증내는 일들이 잦아졌다. 1999년에는 환희에 찼던 이 공간이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공공의 창의에 의해 만들어진 인터넷이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사기업에 사실상 장악됐습니다. 엄청난 선물이지요. 어떻게 이런 공공재가 사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결정이 암암리에 이뤄졌음은 물론입니다. 사기업은 권력을 다원화하고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도구로 인터넷이 사용되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 노엄 촘스키, <[새천년 대담] 촘스키 : 富-권력독점 방지가 21세기 숙제>, 동아일보, 2000. 1. 4.4)  


#6. 언젠가, 캐리비안

1967년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저자의 죽음’을 선언한 지 40년이 되었다. 바르트는 작가는 작품의 기원이며, 작품 의미의 근원이자 그 소유자라는 종래의 인식을 비판하면서 저자의 글쓰기란 선행적일 뿐이지 최초의 것은 아닌 행위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저자란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존재이며, 때문에 그/녀가 쓰는 텍스트 역시 다른 텍스트들을 인용 참고한 ‘혼성모방’이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말하는 ‘저자에서 해방된 글쓰기’, ‘혼성모방’은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오늘 일상에서 접하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인 WWW에서 실현되고 있다.5) 링크와 트랙백, 댓글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미지, 음악들이 인터넷의 등장 이래 폭발하듯 쏟아지는 저작물들을 구성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펌질’이란 말은 얼마나 무용한 울림인가?

하지만, 이 하이퍼텍스트의 세계에서 낭만적 저자들이 강시처럼 튀어나와 “나만의(My Own) 것!”을 외치면서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강시들을 잡지 않고, 네티즌들에게 해적질을 그만두라고 한다. 이참에 개과천선하겠다는 이들도 있지만, 캐리비안을 떠도는 ‘잭 스패로우’처럼 끝까지 해적으로 남은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규제와 감시의 틀에 가두지 않는 그들, ‘낭만적 해적’이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 자유롭게 떠도는 세상이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 'ACT ON' 7호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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