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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세요? (1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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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문님이 세월호 3주기 추모집회에 다녀온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세월호는 올라왔고 박근혜는 구속됐지만 죽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지요.
그래서 이번 3주기가 더 애잔하게 다가오나봅니다.


지난 방송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세월호의 아픔은 제게 짜증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준석 선장의 얼굴이 제 얼굴과 오버랩되며 복잡한 마음을 안겨줬습니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라는 책을 읽으며 그런 심리상태가 치유되지 못한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이해하게 되니까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여러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세월호에 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한 장 한 장 읽어가다가
요즘에는 그냥 무거운 우울감을 느끼며 읽고 있습니다.
어둡고 깊은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 느낌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무거운 손과 발
울고 울고 또 울고, 그리고 다시 발버둥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은 그렇게 고통스럽습니다.
그 고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기는 하지만
제 상처도 함께 극복되어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용산참사로 죽어간 철거민들과 유가족이 떠오르던군요.
세월호보다 앞서 그 길을 걸어갔었고 이제는 살짝 잊혀지기 시작한 그분들은
세월호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날 이후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핸드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우리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따뜻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꺼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 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 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 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적다)

 


* 유예은은 4.16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입니다. 10월 15일, 이명수, 정혜선 선생님이 계신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에서 예은이 부모님과 자매들, 그리고 친구들이 모여 아이의 열일곱번째 생일 모임을 했습니다. 그날은 쌍둥이 언니 하은이의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생일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예은이를 대신하여 진은영 시인이 예은이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루시드 폴의 ‘아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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