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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렇게 연락을 했던 것이 거의 1년만입니다. 정말 심해도 너무 심했습니다. 하기야 이런 식으로 연락을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연락하고 만나기도 하지만, 질감이 다르지요.
편지를 쓰지 못하는 이유로 사는 게 바빠서 라고 얘기합니다. 솔직히 사는 게 바쁘긴 바쁩니다. 더욱이나 ‘이보다 빠를 순 없다’면서 초고속을 자랑으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우리 삶 자체가 정신 없는 초고속 삶이기 때문입니다. 연말에 한 해를 돌아보면 “정말 이렇게 빨리 한 해가 지나가 버리다니”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한지가 바로 어제 같은데 이제는 화창한 봄날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는 게 바빠서 편지를 쓰지 못하는 것은 반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편지 한 통 쓸 수 없을 정도로 바쁜 것은 아닙니다. 편지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바쁜 일정 속에서 잠시 여유가 생기면 아무 생각 없이 늘어져 잠만 자거나, 감각적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하는 것이 일반적인 휴식 방법입니다. 어쩌다 주말에라도 일정이 없어 쉬게 되면 늘어져 잠을 자고 비디오와 TV에 매달리는 게 보통이고, 그렇지 않으면 퍼질러 술을 마시거나, 컴퓨터 오락을 하거나, 포르노 사이트를 돌아다니는 게 언제부터인가 휴식방법이 되어버렸습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생기면 우리 동지들에게 이렇게 편지도 쓰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보고, 버스를 타고 인근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영화를 보고가 쇼핑을 하기도 하면서 휴식을 취했었는데 최근 들어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게 편지를 1년씩이나 쓰지 못한 이유입니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삶의 흐름에 쓸려가기 시작하였음을 이렇게 확인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가끔 하면서도 점점 그런 생활에 젖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 스스로 여유가 없어짐을 느낍니다. 역으로 일에 대한 집중도는 높아지지만 삶에 대한 자기 반성과 성찰은 없어집니다. 객관적으로 30대 중반이 되면 사회적으로도 많은 일들이 주어지는 시기이기에 이 나이에 갖게 되는 객관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이는 결코 이후의 총체적 자기 삶의 흐름을 잡아가는데 있어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런 초반부터 너무 재미없는 내용으로 흘러버렸습니다. 좀 장황한 감이 있지만, 초반에 써놓은 글의 결론은 앞으로 편지를 자주 쓰겠다는 것입니다. ^.^
이렇게 1년 만에 편지를 쓸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전 화이트데이 때 여성 동지들에게 보낸 메일과 반전 서명에 동참하자는 메일에 대해 반가운 연락들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막내 동생은 너무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질책을 하고, 어떤 유부녀는 화사한 답장을 보내 오기도 하고, 또 어떤 동지는 자신의 정신 없는 생활과 고민을 잠깐 적어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질감의 이 짧은 글들이 서로의 관계를 다시 확인하게 하고,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서 조만간 편지를 써야겠다는 욕구를 불태우게 했습니다.

한 두 달 동안을 정신 없이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을 벌이다가 지난 목요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한 하청노동자가 월차를 쓰려다가 관리자에게 폭행을 당한 후 병원에서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짤리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아산에 갔다가 상황을 확인하고 어제 울산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울산에 와서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나서 비디오를 두 개 빌리고 캔 맥주를 사들고 집에 가서 비디오를 보다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나서는 못다 본 비디오를 보다 보니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일을 해야 했기에 사무실로 오는 길에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한숨만 나와서 일을 하는 것은 포기하고 이렇게 동지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국화꽃 향기’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가 원래 멜로영화와 에로영화를 즐겨보는 취향이라서 오래간만에 편안한 멜로영화를 한 편 보려고 선택한 영화였는데, 처음에는 그런데로 감상적인 분위기 젖을 수 있었는데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너무 의도적으로 눈물을 짜내려는 것 때문에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저렇게 의도적으로 눈물을 짜내려 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충분히 눈물나게 하는 일들로 넘쳐나고 있는데...”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만 해도 ‘국화꽃 향기’보다 더 눈물나게 하는 상황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해고와 구속 속에서 10년을 넘게 흔들리지 않고 투쟁해왔던 현대중공업 해고자들을 어느 날 갑자기 어용노조가 정리해 버리면서 100일이 넘도록 농성투쟁을 벌이고 있는가 하면, 손해배상과 가압류에 시달리던 두산중공업의 50대 노동자는 자기 몸에 불을 붙임으로서 그 숨막히는 현실에 저항해야 했습니다. 10년 넘게 주야 맞교대를 하면서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심각할 정도로 몸이 망가져서 근골격계 직업병 판정들을 받고 있는가 하면, 아산의 하청노동자는 월차를 쓰겠다는 이유만으로 폭행과 식칼테러를 당해야 했습니다. 현대미포조선에서 16년에서 26년 동안을 일해왔던 하청노동자들은 졸지에 길거리로 내몰려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국화꽃 향기’보다 몇 배는 더 눈물겨운 노동자들의 얘기는 영화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흥행도 되지 않습니다. 그저 두산중공업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처럼 분신을 하거나 식칼테러를 당해야 겨우 언론의 조명을 잠시 받을 뿐입니다.

이렇게 숨막히는 현실보다 더 숨막히게 하는 것은 그렇게도 숨막히는 현실에 맞서 제대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대중공업 해고자들의 투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전망이 점점 어두워지고, 두산중공업 투쟁은 제대로 된 파업투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적당히 정리되어 버렸습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투쟁은 기만적인 노사합동 프로그램 속에서 신음하고 있고, 아산공장의 투쟁은 투쟁을 두려워하는 지도부로 인해 질식당하고 있고,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아직도 그들만의 투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숨막히는 현실보다 더 숨막히게 하는 타성에서 투쟁은 당사자들만이 처절할 뿐 전혀 확산되지도 않고, 전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속에서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하면서 어떻게 투쟁을 확산해보려고 해보지만 현실의 벽을 새삼스럽게 확인만 하게 되면 너무 힘듭니다.

초반에 투쟁을 준비하거나, 우연적 계기로 인해 투쟁이 발생했을 때는 정말 즐겁습니다. 그래서 저는 꿈속에서도 투쟁을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투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 몸은 힘들어도 투쟁하는 대중의 힘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다가 투쟁이 한계에 부딪히고 그를 돌파하기 위한 방법이 보이지 않으면 오기로 버텨냅니다. 얼마나 오기로 버텨내는가 하는 게 내공이라고 합니다. 저는 요즘 그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너무 숨이 막혀서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그래도 자기최면으로 이겨내려고 계속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투쟁에 나서면 끝장을 보아라
투쟁을 입으로 하지 마라
이 목숨 다 마쳐 싸우지 않고서
이제는 끝났다 말을 말라

힘들 때면 주위 사람들과 술 한 잔 하면서 푸념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러지 않습니다. 힘들 때면 저보다 더 힘든 조건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투쟁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그 힘을 느끼게 됩니다. 억압적 현실에서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오기와 어떻게든 요구를 쟁취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합니다. 물론 그래도 당장은 전망이 제래도 보이지 않아 힘든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게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힘들게 투쟁하면서 조금씩 나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게 이 땅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이겠지요.

오래간만에 쓰는 편지가 많이 무겁습니다. 그래도 동지들과 함께 이렇게라도 푸념을 늘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 저에게 달콤한 휴식입니다.
동지들이 살아가는 삶들도 모두 정신 없고 힘겨움의 연속일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함께 희망을 만들어 갑시다. 그게 살아가는 의미여야 한다고 저는 아직도 생각합니다. 올해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 편지를 자주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편지를 쓸 때는 좀더 활기 있고 편한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요즘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이 화창한 봄 날씨를 즐기면서 나들이 갈 여유는 없더라도 잠시 화창한 봄 하늘을 보면서 봄의 기운을 마음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런지요.

2003년 3월 23일
울산에서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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