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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3/18

오늘의 사건사고

 어제 미디액트에 정회원교육받으러 가는 길, 예기치 않게 또 '의도적 명상'을 했다. 의도적 명상이란 어릴 적 언제부터인가 해온 행동인데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않고 시간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 장난은 나의 의지와 사고를 넘나들며 당시의 시간을 최대한 체험하게 한다. 내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고 눈동자의 주변부로 사물을 관찰한다 그 시점까지 관찰하고 그런 방식으로 생각과 기억을 관찰할 수도 있다.

 아마도 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갈망과 왜곡을 관찰하다가 튀어나온 생각인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게 관건이군'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난 날 사랑할 수 없게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 그러는 동안 당연하게도 나의 생활 속에서 사랑이 메말라갔다. 나 자신도 하루가 다르게 황폐해졌다. 관계에 집착하지만 집착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른사람에게는 무관심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으며 당당함이나 자부심같은 자기애는 배반이라고 생각했다(누구에게의 배반인지도 모르는). 나 자신을 사랑하려 하기는 커녕 검열하고 비판하며 늘 한탄했다. 의지가 부족했고 그런 내 모습은 배반하기 싫어서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한심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바뀐 상황이 날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고 핑계를 댔다. 나를 사랑하는 것들을 증오하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합리화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도피한 것이다. 도피는 무엇도 가질 수 없었다. 놀라운 상실감 속에서 놀라운 패배감으로 놀랍게도 무감각했다. 사회과학적으로 보자면 1년의 수순이 끝나고 새롭게 삶의 한 시대가 시작한듯 보인다. 다시한번 놀라운 것은 이제 내 감각들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사랑하기로 한지 1일, 프로파간다로 글을 쓰며 나에게 다짐한다. 이제 사랑하며 살자고.

 요컨데, 나를 사랑하면 황폐함은 회복된다.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현실에서 도피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옳지 못한 곳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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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The Wind Will Carry Us (Le Vent Nous Emportera)

감독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배우 : 베흐저드 도우러니

장르 : 드라마

등급 :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 114분

제작년도 : 1999년

개봉일 : 2002년 11월 22일

국가 : 이란, 프랑스



*언덕을 넘어서 밀밭 길을 오토바이에 먼지 날리듯이 가는 나그네

 

출구나와서 종로 3가까지

 바흐저드와 의사의 대화가 압권이었다. 의사할아버지는 몇 마디 말로써 다소 지루했던 시간 반의 영상들을 정리시켜 버렸다. 그것은 바흐저드에게도 마찬가지로 그 2주간의 기억들을 하나의 깨달음으로 묶어주었을 것이다. 바흐저드는 그렇게 자신의 다리뼈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그래서 나도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점퍼자꾸를 열었다. 나에게 겨울 바람이 차지 않았던 것처럼 그에게도 딸기는 쓰지 않았겠지..

 그래도 그는 돌아간다. 목표했던 것을 가지고 다시 답답한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도 이 미어터지는 사람들 속으로 돌아온다. 다만, 그나 나나 어깨에 힘 좀 빼는 법을 알아가지고 돌아온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인 것 같다.

 

종로 3가 플랫폼에서

 종로 3가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러 가는 중에 저만치서 열차문 열리는 것을 보았다. 나를 포함한 내 주위 사람들은 일제히 튀어 나갔다. 하지만 내 열어 재낀 점퍼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스멀스멀 겨들어와 말했다. 그게 아니라고. 그대로 뗘갔더라면 탔을 수도 있었겠다. 광화문 올 때 보았던 그 아저씨처럼 온 몸을 문에 끼워 타고말 수도 있었겠다. 그래서... 난 지금 '바람에게' 감사하고 있다.

 

창동행 열차를 타고 -소리에 대하여

 영화음악이 압권이었다(농담반 진담반). 크레딧에 커다랗게 감독맹키로 음악: 누구누구 하고 올라올 땐 웃었었다. 영화에 음악이라고 쓰인 곳은 단 두 곳, 바흐저드가 유세프를 구하려고 마을로 가던 씬과 바흐저드의 던진 다리뼈가 물을 타고 유유히 흐르던 마지막 씬 뿐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음악하는 분이 왔다. '언덕만들기'... 재산보고까지 하는 그의 마음이 어쩌면 그 영화와 닮았을지 모르겠다. 그가 부른 곡은 "행복의 나라로" 라고 했다. 그가 부르는 노래와 우리의 핸드폰 벨소리가 다름을 느낀다. 하지만 아직 노래의 여운이 이어지는 것은 벨소리를 좇아 사는 우리에게 어떤 행복의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일까?

 

석계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다가

 열차 안에서 이동하는 중에 그 아저씨(언덕만들기)랑 두번이나 마주쳤다. 목젖까지 '힘내세요'란 소리가 겨올라오는데 결국은 뱉아내지 못했다. 아저씨의 용기와 그것에 화이팅 한마디의 용기도 내지 못하는 날 비교하면서 으윽.. 창피해졌다. 영화 속 사람들은 주저함 없이 툭툭 잘도 뱉아냈었다(툴툴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것은 아마도 자연과 쫌 더 가까운 곳 -시어다래에서 살았기 때문이지.. 했다. 그리고.. 내가 만나야 할 자연은 그것을 창조하고 직접 그것이 되시는 그 분이라고 생각했다.    후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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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모듬평] <천체망원경>, <우리 기차타러 간다>, <선물>, <귀향>

천체망원경천체망원경

 

가장 난해했다. 천체망원경을 둘러싸고 다양한 인물들이 나타나는데, 대신 처음과 끝에 나오는 삐에로가 어느정도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 소년, 청년, 아저씨로 이어지는 층위는 흡사 소년의 성장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난대없이 흑백화면이 등장하거나 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도 확실하진 않다. 여러모로 아리송한 영화였다.

 

 

 

우리 기차타러 간다

 

 감독: 김경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재학

 

 <시나리오평>

 김경화는 동화 작가출신 답게 단편에 맞는 깔끔한 시나리오를 보여 주었다. 하나의 집중된 주제와 이미지, 장면들이 영화 전체를 한 눈에 들어오게 하였다. 포트폴리오에서도 동화적 이미지와 맑음이 어우러진 작품을 보여 주어 우리에게 신뢰를 주었다. 또 짧은 필모그라피 속에 드러나는 자폐아에 대한 일관된 탐구의 자세는 단순한 객기가 아닌 진지한 주제의식으로 정성껏 영화를 완성하리라는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우리 영화계에 꼭 필요한 부분의 하나가 바로 아동, 청소년, 혹은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라면, 김경화는 앞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 판단되었다. 사실 이러한 기대는 수상을 결정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밝힌다. 반면 포트폴리오에 비해 공모전에 제출된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영화적 모티브가 부족해서 드라마적 구성을 다지고 영화적 모티브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바라건대 당선 후에라도 한 번 더 숙고하여 시나리오를 다듬었으면 좋겠다.(B@SE2001 심사평 중에서...)

 

상훈이는 지하철역 이름을 외운다. 누나는 그런 동생이 직접 가보고 싶어할 거라 생각하지만 상훈이는 거부한다. 다만 다시 지하철역을 외울 뿐이다.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받기만 하는 상훈이의 자폐적 태도는 극복해야할 과제로 나타나고 그것은 누나의 도움으로 이뤄진다. 누나는 동생의 '악당'을 정의의 눈빛과 우산파워로 몰아내고 상훈이와 함께 차가 쌩쌩달리는 터널을 지난다. 그리고 극복했음을 암시하는 업그레이드된 외우기... 이상을 가지고 산다는 것과 그런 그를 다른 존재가 구원한다는 점에서 다소 기독교적인 영화였던 것 같다.

 

 

 

선물

 

 감독: 안효진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4학년 재학
 .실연파티(Beta 단편 13min) 연출
 .꺼져(16mm 단편 10min) 연출
 .낙지, 부적, 그림자 죽이기(16mm 단편 15min) 연출

 <작품평>
 제목이 전해준 의미로 자살한 형이 넘겨준 카메라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점차 진행이 되며 해결사로 일을 하며 자신의 신학을 완성 시켜가는 신학교 학생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필자의 마음에 흡족했던 것은 비디오 카메라에 담긴 내용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간단하게 비디오 내용을 보여주면 많은 부분 설명이 가능한데, 그 유혹을 이기고 끝까지 극의 구성으로 영화를 마금했던 연출자의 뒷심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덕분에 배려된 관객은 마음껏 선물의 의미와 의미있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감독의 참견을 받지 않고 마음껏 생각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강두필(한동대학교 언론정보문화 학부)의 작품평 중에서....)

 

죽음을 고민하는 두사람이 만났다. 형의 죽음을 생각하는 동생과 사후세계를 고민해야하는 신학생의 만남이 그것이다(특별히 그는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것 같다). 형이 자살하면서 남겨준 캠코더는 형과 그의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카메라를 달고 돌아다니는 주인공은 흡사 고민거리를 매달고 사는 느낌을 준다. 한편 신학생은 신학교 입학을 위해 돈을 모은다. 빚쟁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과 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매우 이중적이다. 나는 상상해 보았다. 주인공이 자신과 비슷한 입장의 신학생을 만나면서 그에게서 종교적 희망이 전이된다(신학생에게는 주인공에게 없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설득력을 더한다). 목사님의 따뜻한 대사는 비로소 주인공을 품어준다. 그의 정신에는 희망이 피어오르고 그 이미지는 파란 하늘아래 자신에게 카메라를 전해주는 형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지금까지 고민거리를 상징했던 카메라가 목표, 희망을 상징하게 됨으로써 어떤 반전의 쾌감을 느끼게도 한다. 사족을 달자면 감독의 안정적인 연출이 돋보인 영화였다.

 

 

 

귀향

 

 감독: 김현주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할렐루야(35mm 장편 95min 신승수 감독) 조연출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35mm 장편 121min
  전수일 감독 -스위스 프뤼브루 영화제 대상 수상) 조연출
 .빵가게 습격(16mm 단편 11min) 시나리오/연출
 .운하(16mm 단편 18min 1회 전주영화제 단편부문
  공식 초청작) 시나리오/연출

 <작품평>
 줄거리 보다는 작품평이 좋을 것 같다. 수몰지구가 되어버린 고향, 그 어두운 물 속의 고향을 찾아가려고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려는 한 노인... 매우 참신한 발상이지만 주제나 분위기에 있어서 왠지 무겁고 어두운 영화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러나 영화로서 완성된 김현주의 < 귀향 >은 예상외로(?) 밝고 따뜻한 감성이 지배하는 영화다. 화면 가득 황량한 겨울 풍경이 가득하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인 것이다. (봉준호(영화감독)의 작품평 중에서...)

 

황량한 저수지변으로 할아버지가 뜀뛰기를 하고 있다. 아마 고향생각으로 가득차서 어서 스킨스쿠버하기만을 바라고 있겠지. 그 이상한 할아버지는 해병몇기에다 어릴적 연애편지도 받아본 굉장한 사람임이 밝혀지면서 처음엔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와 영화속 사람들은 비로소 안정을 가지고 그의 귀향길을 지켜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하신다. 장기적으로 스쿠버다이빙 강습과 목사님과의 친분쌓기를 진행하는 등- 애절함이 묻어나는 달리기는 때론 그 어정어정하게 뛰는 우스꽝스러움때문에 또는 고향을 그리는 소박함때문에 나의 눈가에 주름지운다. 그리움, 느리지만 간절하게 할아버지는 물속으로 들어가신다. 나는 보았다. 고요히 물결치는 수면 아래로, 은은히 비치는 햇살의 옷자락 속으로 파아란 할아버지의 고향마을이 나타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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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로스, <플레전트빌>

 

플레전트빌 Plesantville
감독 : 게리 로스

배우 : 리즈 위더스푼, 윌리암 H. 메이시, 제프 다니엘스, 조안 앨런, 토비 매과이어

장르 : 코미디, 드라마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23분

제작년도 : 1998년

국가 : 미국



요즘 나에게 쳐들어오고 있는 외화들 수준이 좀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아이엠샘이나 플레젼트빌같은 영화들이 바로 그런 영화들이다. 암튼 꽤 질좋은 헐리우드산 영화가 늘어나고 있다.

내 생각에 플레젼트 빌은 그 중에서도 괜찮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흑백에의 추억 비스무리한 아련함과, 말많고 탈많은 현대사회에의 긍정적인 시선과, 혁명-열정에의 두근거림이 특히 돋보였다. 부드러운 흑백톤의 플레젼트빌 -도시민이라면 누구나 꿈꿔 봤음직한, 즐거움과 기쁨만이 가득한 세계이다. 단란한 가족이 있고 단순한 배움과 일이 있다. 서로에 대해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교제한다. 인종차별도 없고(모두들 무색인이니까) 야한농담도 없고 범죄도 없고 싸움도 없다. 미움조차 존재하지 않는, 모두가 행복한 곳이 플레젼트 빌이니까. 그들은 이제 변화한다. 그 변화의 바람은 자유, 사랑, 갈등, 파괴의 이름으로 순식간에 마을을 휩쓴다.
변화의 기수인 버드(토비 맥과이어 분)가 혁명을 주도할 때 나도 덩달아 느끼는 그 기분, 사람들이 하나둘 색을 갖기 시작하고 비로소 마을이 온통 총천연색으로 물들 때의 그 뿌듯함이란,,, 요즘 어느 매체든 앞다투어 시대를 비판하고 나선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나에겐 세상에 만족하고 감사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은연중에 가져왔던 낙원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을 찍어내게해줌과 더불어 나의 환경에 다시 용기낼 수 있게 해준 감독에게 감사드린다.

얄팍한 상술보다 아기자기한 깨달음이 있는 영화가 더 좋다......

헐리우드, 두고볼꺼야..

P.S: 얘 토비야, 어떻하면 너처럼 말할 수 있는 거니, 어떻하면 그렇게 새된 발음을 할 수 있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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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즈 루어만, <물랑 루즈>

 

물랑 루즈 Moulin Rouge
감독 : 바즈 루어만

배우 : 니콜 키드먼, 이완 맥그리거, 존 레귀자모, 짐 브로드벤트, 카일리 미노그

장르 : 드라마, 뮤지컬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26분

제작년도 : 2001년

개봉일 : 2001년 10월 26일

국가 : 미국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엉덩이를 긁적이며 영화를 보고있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영화에 집중하면 어디론가 손을 쑤셔넣는게 습관이 되어서일 것이다. <물랑루즈>는 나를 집중시키는 영화였다. 음악으로 먼저 접한 것도 그렇지만 속도감있는 편집과 화려한 화면들 또한 끊임없이 나를 영화에 붙잡아두는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영화여, 변화무쌍하여라!

보헤미안 혁명이라는 배경설정의 영향인지 그들의 정신없는 사랑이야기였다는 기억이다. 애써 그 문화혁명에서 주제를 찾으려 혁명의 기치라는 기본정신을 줄줄 외웠더니 결국 인상깊었다는 건 정신을 쏙 빼놓도록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의 모습뿐이다ㅜㅜ(애써 외웠던- Truth, Beauty, Freedom, Love)

영화는 창부와 작가의 사랑답지 않게 화려한 면이 많다. 고색창연한 의상과 실내장식, 네온싸인의 색감으로 인해 자칫 어둡고 처량할 수 있었던 영화가 명랑하게 때로는 세련되게 빚어졌다.
그것은 어쩌면 '거리영화'라는 장르 자체의 장점, 수더분함으로 빚어졌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실제 연극을 수십여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이러한 장면들은 배우들의 대사와 노래로 넘쳐난다. 다소 과장된 표정과 몸짓들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랄 수 있겠으나, 그로인해 조성되는 밝은 분위기도 결코 부인할 수는 없다.
음악을 들어보자, <느낌표>가 끝나고 흘러나오던 그 노래가 캉캉춤 추자는 뜻이었다니!, 좋다고 친구한테 뺏어들었던 '참마참마'가 "다이아몬드가 좋아"라는 내용이라구!? 모든 물랑루즈클럽의 멜로디는 명랑하다. 게다가 클래식, 팝, 오페라, 인도음악을 넘나드는 영화인 다름에야..
반면 두 주인공의 감정묘사에 있어서 영화는 느린재생을 누른 것 같은 프레임을 길게 나열하는데, 빠른 템포에서 그렇게 느려지는 것이 워낙 순식간인지라 그 장면은 특히 두드러져 쉽게 각인된다. 마치 멈춰버린 것같은 주인공들의 이런 상황에 비하면 조연들의, 혹은 주인공이 섞인 그들의 움직임은 가히 속도의 경지에 이른다 하겠다.
도날드덕이 발광(勃狂)하면서 수다를 떤다고 하면 비슷한 느낌일까...

물랑루즈클럽 자체의 묘사에 있어 거시적으로 보자면 멜로디는 물론이요 편집속도까지 감독의 손놀림이 여간 팽팽하지 않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카메라들과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배우들.. 나로 하여금 피곤을 느끼게 할 정도로 루어만감독은 눈앞에 이미지들을 터뜨려댄다. 후유증이랄까, 아직도 머릿속이 핑핑돈다... 더불어 여자들의 깔깔거리는 소리도 울려온다.

이로 미루어볼 때,,,
단지 사랑얘기 하나가지고 쓸데없이, 엄청 강하게 어필하는 영화라는 의견.. 으흑......

PS: 이걸보고 나서 본인과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는 당신이라면 <어둠속의 댄서>(땐서킴을 연상하지는 말자)를 보자. 캉캉춤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오려면 그런 영화가 약이다 싶다. 장르도 비슷하고하니.

담엔 <춤추는 무뚜>를 봐야겠다..흐음, 건 어짤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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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 <윈드토커>

 

윈드토커 Windtalkers
감독 : 오우삼

배우 : 니콜라스 케이지, 아담 비치, 크리스찬 슬레이터, 피터 스토메어, 마크 러팔로

장르 : 드라마, 전쟁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35분

제작년도 : 2001년

개봉일 : 2002년 08월 15일

국가 : 미국

공식홈페이지 : www.mgm.com/windtalkers



MI:2의 화려한 입성 후라 이번 작품이 부담되기도 할 텐데, 존우는 굳이 고집을 부린다.
,,,니하오 오우삼!



또 전쟁영화야?.. 지가 고르고서도 투덜댄다...
어지간히 액션좀 보자..라고 자평하고 있다.



위워솔져스랑 막판 쎌렉션을 두고 경합을 벌였드랬다.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건 전쟁에 뿌라스된 휴머니티였다. 지난 트리플엑쑤~가 쌩액션갤러리였던 만큼 이번엔 뭔가 다른 액션이 필요했다. 어설픈 영웅을 내세우기 보다 과감히 한번 대화를 시도하는 액션을 기대했다. 액션과 대화한다니, 좀 어패가 있긴 하지만...
여하간, 그렇게 나는 윈드토커를 달랑거리며 집에 들어왔다. 전반부 씬은 그 액션의 질에서 다소 실망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트리플엑쑤~를 본 후여서 그랬던 것 같다. 암튼 전개 부분의 허접액션은 그래도 차차 녹록함이 스며들어 후에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왠만큼 괜찮은 영상'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샛길로 빠지는...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 주제이다. -얼마만의 주제의식있는 영화였던가... 반갑기까지하게 만드는 헐리우드시대의 오늘이다.
설마, 이런식으로 열페이지를 넘기자는 건 아니겠지?-_-



,,이제 진짜루 본론이다..



나는 펄스널 띵낑그라운드인 앤딩크래딧에서 오우삼(인터네쇼날네임: 존우)감독은 우리 동양의 최전선 보루야!라고 외쳤었다. 영화는 내내 조화를 그린다. 조 앤더슨과 벤 야지, 넬슨과 일본인 여자아이..-전장에 울려퍼지는 피리와 하모니까의 협주는 특히 인상깊다- 주인공의 감정선은 교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동등한 입장의 우정으로 흘러간다. 어느 미제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동양을 표현한 영화는 많았지만, 그 호기심만을 자극했을 뿐 이렇게 전면에 그들 자신에게 들이댄 '공평한'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존우가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때쯤에 필리핀을 간 적이 있었다. 한국인을 빼곤 순 필리핀인들만 보다 어떻게 미국인을 만나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얼마다 가슴이 뛰고 떨렸는지.. 부끄럽게도 단지 백인이었기 때문에였다. (지금까지 한맺히는 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영화가 소중한 것은 단지 백인들의 사고방식에게만은 아니리라. 거기 익숙해져 온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소중한 대안영화 구실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난 솔직히 말해 지난날의 억울함을 여기서 대리만족한 셈이다.



입아픈 얘기지만 반대로 단순한 감독의 무지는 민족차별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타마호리씨의 눈썹치켜올려/어깨으쓱모션을 떠올렸다.
그 뒷쪽에 존우가 여유있게 웃으며 팔짱을 끼고 서있다. 가소롭다는듯이...



@.-_- :타자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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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코헨, <트리플 X>

 

트리플 X XXX
감독 : 롭 코헨

배우 : 빈 디젤, 사무엘 L. 잭슨, 아시아 아르젠토, 마튼 소카스, 조 뷰카로

장르 : 액션, 드라마, 스릴러

등급 : 12세 이상

상영시간 : 123분

제작년도 : 2002년

개봉일 : 2002년 10월 03일

국가 : 미국

공식홈페이지 : www.sonypictures.com/movies/triplex



스노우보드씬 때문에 익스트림과 약간의 혼동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만큼의 값어치는 있는 영화였다.
무어 번쩍하는 깨달음이 있는 영화가 아님에는 확실하다. 다만, 007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트리플 엑스> 만의 무엇을 살렸다는 점은 비슷한 스릴, 그만그만한 액션에 절었던 나에게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관객을 쥐고 흔들 감독의 손아귀는 처음부터 끝까지 털끝만큼도(과장일까..) 보여지지 않는다. 주인공만 믿어주면 그가 알아서 믿음대로 자알 해나가니 이만치 속편한 영화가 없다. 어쩌면, 단순히 그렇게 끝났다면 '라이터 외판원' 뺨치는 졸작이 될 뻔 했겠다(안봤지만..).
음.. (다행히도) 롭 코헨(-코헨형제와는 무관한듯..) 감독은 액션 쪽에 전폭적인 승부수를 띄웠다. 무시무시한 스턴트,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폭발, 심장을 울려대는 걸죽한 빈 디젤의 목소리까지.. 어느하나 액션이 아닌 것이 없다할 정도였다. 나는 정말이지 코헨씨의 알찬 연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정성이 묻어나는 액션들이란,,

......
나중엔 막 안쓰러워질려구 그랬다...

영화는 온통 현대적인 이미지들로 넘쳐난다. 스노우보드, 메탈음악, 타이트한 의상들, 네버다이의 자동차가 부활한 듯한 첨단 시스템장구들이 특히 인상깊다. 그런데 그렇게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자꾸 지난 격렬했던 뉴에이지 음악과 오버랩되는 것은 그것에 열광하는 내성에 대한 경고인가.. 앤딩 크레딧을 띄울 때 느꼈던 그 느낌은 아직도 웅웅거리며 귓가를 맴돈다.. 주인공의 것으로 추정되는 심장이 보이고 곧 펄떡거리는 그것의 속으로 들어가 자동차 기관을 확인한다. 불꽃같은 혈관과 일렁이는 푸른 스파크들까지, 왠지 숭배해야 될 것 같은 이미지들이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거느리고 대뇌를 건드린다. 어쩌란 말이냐, 홈페이지에 가서 스크린 세이버라도 설치해 주랴?
-액션영화는... 볼땐 좋은데 보고나서 기분이 나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특히, 스릴이 없으면-_-)

피에쑤: 그래도 신나고 통쾌한 영화가 필요한 사람에겐 적극 추천하고 싶다. -표현력이 부족해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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