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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3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WHERE IS THE FRIEND'S HOUSE?

감독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배우 : 모하마드 레자 네마자데, 아마드 아마드푸르

장르 : 드라마, 아동, 가족영화

상영시간 : 83분

제작년도 : 1987년

국가 : 이란



1. 대칭구조 : 학교-집-포쉬테마을-코케마을-포쉬테마을-집-학교(화면의 순서는 물론 구도까지도 정확히 일치한다..결벽?)
-그리고 시간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러한 대칭구조를 가로지른다.

2. 10번 찍었더니 빨래가 날아왔다(멋진표현?;;) : 주인공 아마드가 네마자데의 공책을 그에게 가져다 주겠노라고 할 때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는다. 10번을 집요하게 매달려도(직접세어봄;) 되돌아오는 건 젖은 옷가지뿐이다.

3. 2번 이상 주인공과 대거리를 하는 배우는 얼굴이 나온다 : <바람이..>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배우는 거의 없다.-있다해도 단역-

4. 아마드는 온 동네를 휩쓸며 몇몇에게 피해를 준다 : 병든 할머니를 문밖으로 불러내 놓고는 까먹고 다시 골목으로 뛰어나가고 느림보 할아버지에게는 숨이 차오는데도 걸음이 느리다고 자꾸만 재촉한다.
-액션영화에서 범인을 추격하며 주위를 초토화 시키는 천방지축 형사를 생각했다.

5. 전통적 가정교육과 현대적 학교교육의 대조 : 그의 할아버지가 그를 불러세워 교육시키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모순이 드러난다(이후 아마드가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는 잘못을 시인하듯 뻘쭘하게 앉아있다). 그러나 결말은 "아주 잘했다"하는 학교선생님의 단언으로 맺어진다.
-전통<현대

6. 나무대문과 쇠대문의 대조 : 40년동안 나무대문을 만들어 온 느림보할아버지는 그와 동행하고 이야기를 해주지만, 신소재인 쇠로 대문을 만드는 업자는 아마드의 기대를 저버릴 뿐만 아니라 그의 공책을 착취한다.
-전통>현대

7. 아마드는 느림보할아버지에게서 받은 꽃을 네마자데의 공책에 끼워넣는다 : 5.의 현대적 학교교육과 6.의 나무대문의 화해
-마지막 숙제검사 때 선생님은 네마자데 공책의 꽃이 스크랩된 페이지에 싸인을 하며 "아주 잘했다"라고 말한다.
-키아로스타미는 전통과 현대의 화해를 말하고 싶어한 것 같다.

8. 느림보할아버지와 아마드의 공통점 : 심하게 빵꾸난 양말을 신는다.
-둘이 닮았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 같다(40년을 두가지 일만 한 할아버지와 하루종일 네마자데만 찾아다니는 아마드는 닮았다).



*<바람이..>와의 대조

@ 위의 3번

@ 돌계단 골목과 경사진 흙길 골목 : 차곡차곡 쌓인 돌계단은 관계를, 다져진 흙알갱이들은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 같다.

@ 아마드의 달리기와 베흐저드의 달리기 : 아마드의 것은 순수의 표상이지만 베흐저드의 것은 문명을 향한 뜀박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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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지고프, <판타스틱 소녀백서>

 

판타스틱 소녀백서 Ghost World

감독 : 테리 지고프

배우 : 도라 버치, 브래드 렌프로, 스칼렛 조핸슨, 스티브 부세미, 일리아나 더글라스

장르 : 코미디, 드라마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11분

제작년도 : 2000년

개봉일 : 2002년 06월 21일

국가 : 미국



판타스틱 소녀백서도 번역 오용의 예인것 같네 영화에서 제목을 통해 부각하고 싶었던건 떠돌이들이 서로 부유해대는 현실인 것 같거든

일단 영화볼때의 '그'의 상황이 상상되서 놀랐던 후에는_ 이런 생각이 들었어

ghost world에서 ghost가 안되고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없어서 좀 뜳었어

 

베로니카 봐(요즘 나의 화두인_) 죽지 않으려고 죽지 않으려고

 

그니까 나는 내가 알고 있는것 내지는 경험해 본 것(행동이든 생각이든)에는 흥미가 적은거야

고스트 월드에서도 이니드가 아무말 안하고 떠나보고 싶다고 했을때, 부세미한테 해봤냐고 물어볼 때

"난 해봤어" 뇌까렸거든.

영화를 볼때 자세가 삐딱해져서 참.. 만든사람한테는 미안하지_

완전 삐딱, 아예 누워버리자면

이건 자위야

개인의 지극히 순수한 쾌감이나 관계에 있어서 은밀한, 숭고하기까지한 그런 자위가 아니라 가끔 가십꺼리 정도로만 보는 테레비 예능프로 같은거야

뭐 그런 자위도 의미가 없진 않지_ 아으 자위를 분류할 필요까진 없을거야? 자위는 어쩌면 종류가 있는게 아니라 상황이 있는거겠지

이니드는 Ghost world로 돌아오거나 자살하거나.

돌아온다는 의미는 고스트 월드라는 체계는 현실 그 자체니까 삶을 산다는 거겠지

중요한게 죽느냐 사느냐라면 굳이 셰익스피어 입을 틀어막진 않겠어

근데 그 고민도 결국은 살아있는 사람의 고민이라는게 문제야

살아야 한다고? 어떻게? 대체 왜?

그걸 말하는게 수많은 이른바 3류영화고 B급영화고 조폭코메디고 귀여니류 영화고 진부한 휴머니즘이고 독립영화고 학생영화고 학원물이고 누아르고 환타지 들이 다루는 주제 아니겠어?

이 영화가 뜳은 이유는 이니드를 그냥 내버려두기 때문이야 그건 자유롭게 하는게 아니야 몇대 때려줘야해 욕이라도 해줘야해 대체 왜 아무것도 상실하는게 없냐고 자기 자신은 상실의 결정체면서 아무것도 드러나질 않아 그냥 감추고 자기가 다 떠안아

절-대 귀엽지도 대견하지도 불쌍하지도 않다 대체 어린 그뿐이야 어른이 되지는 마 나도 원하는바 아니야 아니, 차라리 어른이 되서 여집합의 예를 보여주던가- 부세미처럼 봐줄만한 어른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린듯이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피하지 말란말야_

 

나쁜년 이니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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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 <지나가는 마음>

Ozu Yasujiro

 

지나가는 마음 Passing Fancy

감독 : 오즈 야스지로

배우 :

장르 : 코미디, 드라마, 가족영화

상영시간 : 100분

제작년도 : 1933년

국가 : 일본



▒ 일본의 남성상은.. 가려웠다.

 땡땡과 응응의 의리와 음훼를 사이에 둔 비극은 중요하지 않다. 더구나 비극이 아니다. 주인공인 응응은 슬플때도 늘 쾌활하고 소박하다. 그의 아들도 마찬가지. 속깊고 어리숙한 듯한 이들의 공통점은 실없이 웃으며 자꾸만 벅벅 긁는 것.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cynics won't get in our way" 하는 starsailor의 가사처럼 그들의 생활에는 어색함이나 우울함이 끼어들 새가 없다. 그들에겐 단지 진지함이 녹아있는 가벼운 대화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긁적임은 주위를 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 그렇게 어떤 상황에서도 수월하게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가난뱅이의 로망이라고 해야할까, 그들의 삶은 적어도 관계에서는 자유로와 보였다.

 

▒ 돈이 내린 재앙앞에서도 잃지 않는 가벼움.

 응응은 아들과 가난때문에 싸우고 다음날 미안한 마음에 마음껏 써보라고 50원을 준다. 결국 아들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날로 탈이 난다. 역시 가난때문이었다. 아들의 상황은 안좋아져 병원에 입원해야하게 되었다. 가난한 형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응응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농담과 일상적인 말들로 상황을 메꿀 뿐이다. 땡땡이 자기 몸을 담보로 돈을 빌려 응응의 아들은 건강을 회복하고, 땡땡은 홋카이도로 돈을 갚기 위해 떠나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응응은 땡땡에게 달려가 막 떠나려는 그를 때려눕히고 자기가 떠날 준비를 한다. 언제오냐는 아들의 말에 "바보새끼, 시간 아깝게 쓸데없는 소리한다"하고 만류하는 사람들에게도 "술김에 가는거예요"라며 즐겁게 떠난다. 배안에서, 그는 생각을 바꾼다. 사람들과 이리저리 농담을 주고 받다가 아들이 했던 개그들을 하면서 생각이 바뀐다.(아! 얼마나 멋진가!) 그리고는 주섬주섬 옷을 벗더니 훌쩍 배에서 뛰어내린다. 이제 물위에 둥둥떠서 역시 실실 웃으면서 자신의 부적에 뽀뽀한다. 헤엄쳐 뭍을 향한다.

 

 <지나가는 마음>이라니, 집시의 자유로움이라 해야하나, 때묻지 않은 소박한 행복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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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소더버그, <트래픽>

 

트래픽 Traffic

감독 : 스티븐 소더버그

배우 : 데니스 퀘이드, 돈 치들, 루이스 구즈만, 마이클 더글라스, 베니시오 델 토로

장르 : 액션, 드라마

등급 : 18세 이상

상영시간 : 147분

제작년도 : 2000년

개봉일 : 2001년 03월 10일

국가 : 독일, 미국




 지방유지이자 유력인사인 사업가의 아내 땡땡,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대법원장 응응, 멕시코의 카리스마 형사 음훼 이렇게 세사람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멕시코와 미국간의 마약밀매를 매개로 셋의 이야기는 흡사 옛 테마게임을 보는듯 살짜쿵 접점들이 생기며 진행된다.

 먼저, 땡땡은 호화롭게 잘살다가 마약밀매 혐의로 남편이 잡혀간다. 그러자 억울해하며 증인을 살해하면서까지 남편을 빼낸다. 여유롭게 살던 땡땡은 남편이 사회에 의해 심판 받을 위기에 처하자 남편의 사업에 손을 대 그녀의 가족을 회복시킨다(임산부인 땡떙을 보고 <요람을 흔드는 손>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반대로 응응은 딸이 마약에 중독되면서 위기에 처한다. 도리어 가족 안에서 마약과 전쟁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갈등속에서 그는 대통령직속 마약단속 기관 수장자리를 "가족과 싸워야 하는데 그걸 과연 할 수 있을까"하고 내놓는다. 형사 음훼는 마약밀매를 독점하려는 상관을 미국측에 고발한다. 그의 동료가 미국에 정보를 주려하는데(돈때문에) 상관이 먼저 알고 죽인다. 여기에 음훼는 부조리함을 느끼고 신변의 위협을 감수하며 미국 마약국에 정보를 준다. 그리고 동료의 아내를 찾아가 "그는 가치있는 일을 하다가 죽은 거야"라고 위로한다.

 이 세 이야기에는 모두 가족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땡땡은 남편을 되찾고 응응의 딸은 중독자 모임에서 응응이 참석한 가운데 치료됐음을 이야기한다. 음훼는 동료와의 의리를 지킨다(그의 가족을 돌본다). 그러나 거시적으로는 땡땡의 집에 형사가 다시 도청장치를 설치했고, 응응의 딸은 너무 비약적으로 치료되었다 자임함으로써 의심스럽고(그 영악한 아이가!), 배신으로 인해 음훼의 신변은 극도로 위험하다.

 영화는 'drug traffic'으로 사회적 'traffic jam'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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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느 브레야, <팻걸>

 

팻걸 Fat Girl

감독 : 카트린느 브레야

배우 : 아나이스 르부, 록산느 메스키다, 아시네 카지안

장르 : 드라마

등급 : 18세 이상

상영시간 : 93분

제작년도 : 2001년

개봉일 : 2004년 08월 20일

국가 : 프랑스

공식홈페이지 : www.cinecube.net/cine/fat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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쉔케 보어트만, <베른의 기적>

 

베른의 기적 The Miracle of Bern

감독 : 쉔케 보어트만

배우 : 루이스 클람로스, 피터 로마이어, 사스카 고펠, 조안나 가스도프, 미르코 랑

장르 : 드라마, 가족영화

등급 :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 118분

제작년도 : 2003년

개봉일 : 2004년 09월 10일

국가 : 독일

공식홈페이지 : www.miracle2004.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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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건사고

 어제 미디액트에 정회원교육받으러 가는 길, 예기치 않게 또 '의도적 명상'을 했다. 의도적 명상이란 어릴 적 언제부터인가 해온 행동인데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않고 시간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 장난은 나의 의지와 사고를 넘나들며 당시의 시간을 최대한 체험하게 한다. 내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고 눈동자의 주변부로 사물을 관찰한다 그 시점까지 관찰하고 그런 방식으로 생각과 기억을 관찰할 수도 있다.

 아마도 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갈망과 왜곡을 관찰하다가 튀어나온 생각인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게 관건이군'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난 날 사랑할 수 없게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 그러는 동안 당연하게도 나의 생활 속에서 사랑이 메말라갔다. 나 자신도 하루가 다르게 황폐해졌다. 관계에 집착하지만 집착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른사람에게는 무관심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으며 당당함이나 자부심같은 자기애는 배반이라고 생각했다(누구에게의 배반인지도 모르는). 나 자신을 사랑하려 하기는 커녕 검열하고 비판하며 늘 한탄했다. 의지가 부족했고 그런 내 모습은 배반하기 싫어서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한심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바뀐 상황이 날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고 핑계를 댔다. 나를 사랑하는 것들을 증오하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합리화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도피한 것이다. 도피는 무엇도 가질 수 없었다. 놀라운 상실감 속에서 놀라운 패배감으로 놀랍게도 무감각했다. 사회과학적으로 보자면 1년의 수순이 끝나고 새롭게 삶의 한 시대가 시작한듯 보인다. 다시한번 놀라운 것은 이제 내 감각들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사랑하기로 한지 1일, 프로파간다로 글을 쓰며 나에게 다짐한다. 이제 사랑하며 살자고.

 요컨데, 나를 사랑하면 황폐함은 회복된다.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현실에서 도피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옳지 못한 곳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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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The Wind Will Carry Us (Le Vent Nous Emportera)

감독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배우 : 베흐저드 도우러니

장르 : 드라마

등급 :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 114분

제작년도 : 1999년

개봉일 : 2002년 11월 22일

국가 : 이란, 프랑스



*언덕을 넘어서 밀밭 길을 오토바이에 먼지 날리듯이 가는 나그네

 

출구나와서 종로 3가까지

 바흐저드와 의사의 대화가 압권이었다. 의사할아버지는 몇 마디 말로써 다소 지루했던 시간 반의 영상들을 정리시켜 버렸다. 그것은 바흐저드에게도 마찬가지로 그 2주간의 기억들을 하나의 깨달음으로 묶어주었을 것이다. 바흐저드는 그렇게 자신의 다리뼈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그래서 나도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점퍼자꾸를 열었다. 나에게 겨울 바람이 차지 않았던 것처럼 그에게도 딸기는 쓰지 않았겠지..

 그래도 그는 돌아간다. 목표했던 것을 가지고 다시 답답한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도 이 미어터지는 사람들 속으로 돌아온다. 다만, 그나 나나 어깨에 힘 좀 빼는 법을 알아가지고 돌아온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인 것 같다.

 

종로 3가 플랫폼에서

 종로 3가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러 가는 중에 저만치서 열차문 열리는 것을 보았다. 나를 포함한 내 주위 사람들은 일제히 튀어 나갔다. 하지만 내 열어 재낀 점퍼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스멀스멀 겨들어와 말했다. 그게 아니라고. 그대로 뗘갔더라면 탔을 수도 있었겠다. 광화문 올 때 보았던 그 아저씨처럼 온 몸을 문에 끼워 타고말 수도 있었겠다. 그래서... 난 지금 '바람에게' 감사하고 있다.

 

창동행 열차를 타고 -소리에 대하여

 영화음악이 압권이었다(농담반 진담반). 크레딧에 커다랗게 감독맹키로 음악: 누구누구 하고 올라올 땐 웃었었다. 영화에 음악이라고 쓰인 곳은 단 두 곳, 바흐저드가 유세프를 구하려고 마을로 가던 씬과 바흐저드의 던진 다리뼈가 물을 타고 유유히 흐르던 마지막 씬 뿐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음악하는 분이 왔다. '언덕만들기'... 재산보고까지 하는 그의 마음이 어쩌면 그 영화와 닮았을지 모르겠다. 그가 부른 곡은 "행복의 나라로" 라고 했다. 그가 부르는 노래와 우리의 핸드폰 벨소리가 다름을 느낀다. 하지만 아직 노래의 여운이 이어지는 것은 벨소리를 좇아 사는 우리에게 어떤 행복의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일까?

 

석계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다가

 열차 안에서 이동하는 중에 그 아저씨(언덕만들기)랑 두번이나 마주쳤다. 목젖까지 '힘내세요'란 소리가 겨올라오는데 결국은 뱉아내지 못했다. 아저씨의 용기와 그것에 화이팅 한마디의 용기도 내지 못하는 날 비교하면서 으윽.. 창피해졌다. 영화 속 사람들은 주저함 없이 툭툭 잘도 뱉아냈었다(툴툴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것은 아마도 자연과 쫌 더 가까운 곳 -시어다래에서 살았기 때문이지.. 했다. 그리고.. 내가 만나야 할 자연은 그것을 창조하고 직접 그것이 되시는 그 분이라고 생각했다.    후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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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모듬평] <천체망원경>, <우리 기차타러 간다>, <선물>, <귀향>

천체망원경천체망원경

 

가장 난해했다. 천체망원경을 둘러싸고 다양한 인물들이 나타나는데, 대신 처음과 끝에 나오는 삐에로가 어느정도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 소년, 청년, 아저씨로 이어지는 층위는 흡사 소년의 성장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난대없이 흑백화면이 등장하거나 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도 확실하진 않다. 여러모로 아리송한 영화였다.

 

 

 

우리 기차타러 간다

 

 감독: 김경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재학

 

 <시나리오평>

 김경화는 동화 작가출신 답게 단편에 맞는 깔끔한 시나리오를 보여 주었다. 하나의 집중된 주제와 이미지, 장면들이 영화 전체를 한 눈에 들어오게 하였다. 포트폴리오에서도 동화적 이미지와 맑음이 어우러진 작품을 보여 주어 우리에게 신뢰를 주었다. 또 짧은 필모그라피 속에 드러나는 자폐아에 대한 일관된 탐구의 자세는 단순한 객기가 아닌 진지한 주제의식으로 정성껏 영화를 완성하리라는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우리 영화계에 꼭 필요한 부분의 하나가 바로 아동, 청소년, 혹은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라면, 김경화는 앞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 판단되었다. 사실 이러한 기대는 수상을 결정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밝힌다. 반면 포트폴리오에 비해 공모전에 제출된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영화적 모티브가 부족해서 드라마적 구성을 다지고 영화적 모티브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바라건대 당선 후에라도 한 번 더 숙고하여 시나리오를 다듬었으면 좋겠다.(B@SE2001 심사평 중에서...)

 

상훈이는 지하철역 이름을 외운다. 누나는 그런 동생이 직접 가보고 싶어할 거라 생각하지만 상훈이는 거부한다. 다만 다시 지하철역을 외울 뿐이다.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받기만 하는 상훈이의 자폐적 태도는 극복해야할 과제로 나타나고 그것은 누나의 도움으로 이뤄진다. 누나는 동생의 '악당'을 정의의 눈빛과 우산파워로 몰아내고 상훈이와 함께 차가 쌩쌩달리는 터널을 지난다. 그리고 극복했음을 암시하는 업그레이드된 외우기... 이상을 가지고 산다는 것과 그런 그를 다른 존재가 구원한다는 점에서 다소 기독교적인 영화였던 것 같다.

 

 

 

선물

 

 감독: 안효진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4학년 재학
 .실연파티(Beta 단편 13min) 연출
 .꺼져(16mm 단편 10min) 연출
 .낙지, 부적, 그림자 죽이기(16mm 단편 15min) 연출

 <작품평>
 제목이 전해준 의미로 자살한 형이 넘겨준 카메라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점차 진행이 되며 해결사로 일을 하며 자신의 신학을 완성 시켜가는 신학교 학생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필자의 마음에 흡족했던 것은 비디오 카메라에 담긴 내용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간단하게 비디오 내용을 보여주면 많은 부분 설명이 가능한데, 그 유혹을 이기고 끝까지 극의 구성으로 영화를 마금했던 연출자의 뒷심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덕분에 배려된 관객은 마음껏 선물의 의미와 의미있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감독의 참견을 받지 않고 마음껏 생각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강두필(한동대학교 언론정보문화 학부)의 작품평 중에서....)

 

죽음을 고민하는 두사람이 만났다. 형의 죽음을 생각하는 동생과 사후세계를 고민해야하는 신학생의 만남이 그것이다(특별히 그는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것 같다). 형이 자살하면서 남겨준 캠코더는 형과 그의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카메라를 달고 돌아다니는 주인공은 흡사 고민거리를 매달고 사는 느낌을 준다. 한편 신학생은 신학교 입학을 위해 돈을 모은다. 빚쟁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과 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매우 이중적이다. 나는 상상해 보았다. 주인공이 자신과 비슷한 입장의 신학생을 만나면서 그에게서 종교적 희망이 전이된다(신학생에게는 주인공에게 없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설득력을 더한다). 목사님의 따뜻한 대사는 비로소 주인공을 품어준다. 그의 정신에는 희망이 피어오르고 그 이미지는 파란 하늘아래 자신에게 카메라를 전해주는 형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지금까지 고민거리를 상징했던 카메라가 목표, 희망을 상징하게 됨으로써 어떤 반전의 쾌감을 느끼게도 한다. 사족을 달자면 감독의 안정적인 연출이 돋보인 영화였다.

 

 

 

귀향

 

 감독: 김현주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할렐루야(35mm 장편 95min 신승수 감독) 조연출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35mm 장편 121min
  전수일 감독 -스위스 프뤼브루 영화제 대상 수상) 조연출
 .빵가게 습격(16mm 단편 11min) 시나리오/연출
 .운하(16mm 단편 18min 1회 전주영화제 단편부문
  공식 초청작) 시나리오/연출

 <작품평>
 줄거리 보다는 작품평이 좋을 것 같다. 수몰지구가 되어버린 고향, 그 어두운 물 속의 고향을 찾아가려고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려는 한 노인... 매우 참신한 발상이지만 주제나 분위기에 있어서 왠지 무겁고 어두운 영화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러나 영화로서 완성된 김현주의 < 귀향 >은 예상외로(?) 밝고 따뜻한 감성이 지배하는 영화다. 화면 가득 황량한 겨울 풍경이 가득하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인 것이다. (봉준호(영화감독)의 작품평 중에서...)

 

황량한 저수지변으로 할아버지가 뜀뛰기를 하고 있다. 아마 고향생각으로 가득차서 어서 스킨스쿠버하기만을 바라고 있겠지. 그 이상한 할아버지는 해병몇기에다 어릴적 연애편지도 받아본 굉장한 사람임이 밝혀지면서 처음엔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와 영화속 사람들은 비로소 안정을 가지고 그의 귀향길을 지켜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하신다. 장기적으로 스쿠버다이빙 강습과 목사님과의 친분쌓기를 진행하는 등- 애절함이 묻어나는 달리기는 때론 그 어정어정하게 뛰는 우스꽝스러움때문에 또는 고향을 그리는 소박함때문에 나의 눈가에 주름지운다. 그리움, 느리지만 간절하게 할아버지는 물속으로 들어가신다. 나는 보았다. 고요히 물결치는 수면 아래로, 은은히 비치는 햇살의 옷자락 속으로 파아란 할아버지의 고향마을이 나타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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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로스, <플레전트빌>

 

플레전트빌 Plesantville
감독 : 게리 로스

배우 : 리즈 위더스푼, 윌리암 H. 메이시, 제프 다니엘스, 조안 앨런, 토비 매과이어

장르 : 코미디, 드라마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23분

제작년도 : 1998년

국가 : 미국



요즘 나에게 쳐들어오고 있는 외화들 수준이 좀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아이엠샘이나 플레젼트빌같은 영화들이 바로 그런 영화들이다. 암튼 꽤 질좋은 헐리우드산 영화가 늘어나고 있다.

내 생각에 플레젼트 빌은 그 중에서도 괜찮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흑백에의 추억 비스무리한 아련함과, 말많고 탈많은 현대사회에의 긍정적인 시선과, 혁명-열정에의 두근거림이 특히 돋보였다. 부드러운 흑백톤의 플레젼트빌 -도시민이라면 누구나 꿈꿔 봤음직한, 즐거움과 기쁨만이 가득한 세계이다. 단란한 가족이 있고 단순한 배움과 일이 있다. 서로에 대해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교제한다. 인종차별도 없고(모두들 무색인이니까) 야한농담도 없고 범죄도 없고 싸움도 없다. 미움조차 존재하지 않는, 모두가 행복한 곳이 플레젼트 빌이니까. 그들은 이제 변화한다. 그 변화의 바람은 자유, 사랑, 갈등, 파괴의 이름으로 순식간에 마을을 휩쓴다.
변화의 기수인 버드(토비 맥과이어 분)가 혁명을 주도할 때 나도 덩달아 느끼는 그 기분, 사람들이 하나둘 색을 갖기 시작하고 비로소 마을이 온통 총천연색으로 물들 때의 그 뿌듯함이란,,, 요즘 어느 매체든 앞다투어 시대를 비판하고 나선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나에겐 세상에 만족하고 감사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은연중에 가져왔던 낙원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을 찍어내게해줌과 더불어 나의 환경에 다시 용기낼 수 있게 해준 감독에게 감사드린다.

얄팍한 상술보다 아기자기한 깨달음이 있는 영화가 더 좋다......

헐리우드, 두고볼꺼야..

P.S: 얘 토비야, 어떻하면 너처럼 말할 수 있는 거니, 어떻하면 그렇게 새된 발음을 할 수 있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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