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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교정: 사회주의 생산양식 (6)」 『총명한 유물론』 제2집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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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유화
자본주의의 발전은 대규모 기계공업, 기계화된 운송 체계, 은행 등 사회주의화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을 마련하였다.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이행기 초기에 대규모 자본주의 생산의 국유화를 수행한다.
사회주의 국유화는 프롤레타리아가 착취 계급의 재산을 혁명적으로 몰수하고 그것을 국가와 사회주의적 재산─전체 인민의 재산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유화는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 즉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사적-자본주의적 전유 방식 사이의 모순을 제거한다. 사회주의 국유화의 결과로 산업에서의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성격과 일치하게 되었으며, 이는 생산력의 발전 여지를 제공한다.
우선 사회주의 국유화는 주요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를 철폐하고 이로써 부르주아의 경제적 지배를 철폐한다; 두 번째로, 경제의 핵심 부문인 국민경제의 감제고지(Commanding heights)를 노동 대중에게 이전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경제적 기반을 제공한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는 사회주의 생산관계의 기초이다.
국민경제의 선도 부문인 대규모 공업의 국유화는 사회주의 건설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지닌다. 동시에 은행, 철도, 상선, 통신, 대규모 국내 무역 및 모든 대외 무역 기업이 국유화된다. 은행이 국유화됨에 따라 부르주아는 경제적 지배의 주요 수단 중 하나를 잃게 되고,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그것을 혁명적으로 재편함으로써, 사회주의 건설에 활용되는 중앙집중적이고 광범위한 경제 기구를 획득한다. 대외 무역의 국유화는 자본주의 세계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나라에 필수적이다.
시대에 뒤진 대지주 체제에서 잔존하는 농노제를 폐지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대지주의 재산과 가축, 도구를 즉시 몰수한다. 몰수된 토지의 대부분은 일하는 농민에게 분배되고, 작은 부분은 대규모 국영 농업 기업으로 조직된다.
토지의 국유화(Nationalisation of the land), 즉 토지의 사적 소유권을 폐지하고 토지를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소유로 전환하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가장 중요한 조치 중 하나이다. 모든 토지 국유화의 수행에 관한 문제는 각국의 구체적인 조건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당국에 의해 결정된다. 농민의 토지 사적 소유 전통이 서구보다 약한 러시아에서는 소비에트 정부가 농민 대중의 요구에 따라 혁명 초기에 토지 전체를 국유화하였으므로 절대지대는 사라졌다. 역사상 처음으로 소비에트의 농민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조치에 의하여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토지를 획득하게 되었다. 소농의 사적 소유가 오랫동안 존재해 왔고, 그에 따라 농민의 사적 소유 전통이 더 강한 나라에서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쟁취했을 때라도 혁명 초기에는 토지 전체를 국유화하지 않는다.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대지주로부터 몰수된 토지의 일부만이 국유화되어 국가 기금으로 조성되며, 몰수된 토지의 대부분은 농민의 사유재산이 된다. 토지 전체를 국유화할 문제는 사회주의적 농업개조과정에서 실천적으로 해결된다.
위대한 10월 사회주의 혁명의 첫 달에 부르주아 국가 기구가 붕괴된 후 생산수단과 여타 부가 국유화되었으며, 지주들과 대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이 무상 몰수되었다.
토지에 관한 법령은 1917년 10월 26일(11월 8일)에 공포되었다. 지주, 부르주아, 황실, 교회 및 수도권에 속한 토지는 무상으로 몰수되고 분배되었다. 토지에 대한 개인소유권은 영원히 폐지되었다. 토지 전체와 광산, 삼림, 강가는 모두 국가 소유(전 인민의 소유)로 되었으며, 토지의 매매는 금지되었다. 농민은 혁명 전에 처분했던 토지 외에 4억 에이커가 넘는 새로운 토지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토지 소유자에 대한 임대료와 연간 총 7억 루블(약 7,500만 파운드) 이상의 토지 매매 비용이 면제되었다. 토지 국유화는 지주 계급 폐지의 기초가 되었고, 그것은 농노제의 잔재를 완전히 근절함을 뜻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혁명은 마침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완수하였다. 토지 국유화는 토지가 국유화되었지만 국유화된 토지는 계속하여 사적으로 사용되었으므로 아직 그 자체로는 농촌에서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창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토지 국유화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경제적 조건을 개선하였다. 이는 훗날 농민운동이 사회주의 발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열어주었다.
자본주의 사업체의 전반적 국유화를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서, 그리고 그들의 활동을 어느 정도 규제하기 위해 소비에트 정부는 노동자 통제(workers' control), 즉 생산, 무역 그리고 금융과 관련한 노동자 조직체의 감독을 도입하였다. 1917년 12월 은행은 국유화되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차르 정부와 임시정부가 외국 자본가와 현지 자본가로부터 얻은 모든 채무를 무효화하였다. 대외 무역은 국가 독점의 영역으로 선언되었고, 개개 민간업자의 손에서 이루어졌던 수입과 수출은 국가 기관의 업무로 이전되었다. 소비에트 정부가 도입한 대외 무역의 독점(monopoly of foreign trade)은 나라를 노예화하고 식민지로 만들고자 하는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는 견고한 방벽이었다. 철도와 통신 수단, 상선 및 대형 하천 선단들은 전 인민의 재산이 되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계속하여 증가하는 규모로서의 무상 몰수를 통해 산업 사업체를 국유화하였다. 모든 산업 부문의 대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은 1918년 6월에 공포되었다.
대규모 산업, 은행 운송 및 대외 무역의 국유화는 소비에트 정부가 부르주아의 경제적 힘을 약화시키고 국민경제에서 핵심 지위를 차지했음을 뜻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국유화된 사업체를 통하여 사회주의적 관계들로 교체되었다. 사회적 재산으로서 생산수단은 더이상 자본이 아니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철폐되었다. 새로운 사회주의적 노동 규율이 도입되었고 노동자 사이에서 사회주의적 경쟁이 발생하였다. 일인 경영과 노동 대중의 창조적 활동을 결합한 사회주의 생산관리원칙이 점차 확립되었다.
부르주아의 저항과 부르주아 경영인들의 파괴 및 방해 공작을 극복하고, 무질서한 소부르주아 영향력에 맞서 단호한 투쟁을 벌이면서 소비에트 정부는 공공 회계 체계와 생산과 유통에 대한 감독을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5년 9월 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