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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이행기의 경제, 계급 구조 그리고 노농동맹

경제학 교정: 사회주의 생산양식 (7) 총명한 유물론 2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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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기의 경제, 계급 구조

그리고 노농동맹

 

대규모 공업, 운수, 은행 등을 국유화한 결과로 사회주의 경제 형태경제적 영역으로서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행기에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기초로 한 사회주의 구조와 함께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사적 소유를 기초로 한 형태경제 유형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즉, 이행기 경제는 혼합적 성격을 가진다.

 

레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소비에트 연방에는 이행기에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경제 형태가 존재했다:

 

(ⅰ) 가부장적 농민 경제;

 

(ⅱ) 소상품 생산;

 

(ⅲ) 사적 자본주의 경제;

 

(ⅳ) 국가자본주의;

 

(ⅴ) 사회주의 경제.

 

가부장적 농민 경제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자신의 노동에 기초하고 있으며, 소규모의 거의 완전한 자연 경제였고 생산물의 압도적 부분이 자체 소비를 위하여 생산되었다.

 

소상품 생산은 자기 노동에 기반을 두었고, 시장과 다소 연결되었다. 이는 주로 중농 경제로서, 시중에 유통되는 곡물 대부분을 생산하였고 임노동을 사용하지 않고서 수공예품을 생산하였다.

 

사적 자본주의 경제는 사장 많은 착취계급인 부농(kulak)과 (주로 중소 규모의) 국유화되지 않은 공업 기업의 소유주, 그리고 상인들에 의해 대표되었다. 자본주의 기업은 임노동을 사용하였고, 이 영역에서 노동력은 상품이었으며, 착취가 존재했고,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전유하였다.

 

국가자본주의는 주로 소비에트 정부가 외국 자본가에게 제공한 이권의 형태와 자본가들에게 약간의 국유 기업을 임대하는 형태를 띠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국가자본주의는 부르주아적 지배 아래에서 존재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권력으로써 엄격하게 통제되는 경제 형태이며, 소부르주아의 무질서한 경향들과의 투쟁 및 사회주의 건설에 활용된다. 국가자본주의는 소비에트 연방의 경제에서 아주 미미한 부분만을 차지하였다.

 

사회주의 경제는 첫째로, 공장·제분소·운송·은행·국영 농장(sovkhoz)·무역 및 소비에트 국가에 속하는 기타 사업체로 구성되었다. 둘째로, 소비자·공급·신용 및 생산자 협동조합과 이것들의 가장 높은 형태인 집단농장(kolkhoz)이 포함되었다. 사회주의 경제의 기초는 대규모 기계 산업이었다. 이행기의 초기부터 사회주의 경제는 이러한 경제 형태 중 가장 진보된 형태로서, 국가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경제의 사회주의 영역에서 노동력은 더이상 상품이 아니며, 노동에서 임노동의 성격은 소멸하고, 노동은 노동자 자신과 사회 전체를 위한 노동으로 된다. 잉여가치는 사라졌으며, 국유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작업의 계획화로의 전환은 일차적으로는 특정 산업에서, 그리고 그 후 국가 부문 전체로, 완만하게 달성되었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가 확립되면서 국가기관의 생산물은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게 아니라 국가, 즉 전체 노동 대중에게 귀속되기 시작했다.

 

이 다섯 가지 경제 형태가 모두 존재하는 것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모든 나라에 있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레닌이 가르쳤듯이, 그리고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현재 입증된 바와 같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에서 모든 나라에는 사회주의, 소상품 생산, 자본주의 영역과 같은 주요 사회경제 형태가 존재한다. 이러한 형태 각각에 상응하여 [이행기 경제에는] 노동계급, 소부르주아(특히 농민), 부르주아가 존재한다. 계급 관계에서 경제, 그리고 그에 따른 과도적 경제 정책의 주요 특징은 모든 나라에 공통적이다. 이는 각 나라의 구체적인 경제적 형태의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제한다.

 

이행기에서 계급적 지위는 자본주의에서 계급적 지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본주의에서 피압박계급이었던 노동계급은 정권을 장악하여 모든 노동 대중과 함께, 국가에 의해 사회화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지배계급으로 된다. 노동계급의 물질적 조건은 꾸준히 개선되고 그들의 문화적 수준이 향상된다.

 

농민, 즉 빈농과 중농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받으며 지주제의 멍에로부터 해방되고 부농의 착취로부터 보호받으며 전면적인 경제적 및 문화적 지원을 받는다. 10월 혁명과 소비에트 정부의 지원 결과로 빈농과 중농은 혁명 전 4천만 톤에 비해 1926-7년에 이미 약 6천5백만 톤의 곡물을 생산하였다.

 

농민의 소상품 생산은 불가피하게 자본주의적 요소를 낳는다. 즉 빈농과 부농으로의 농민 계급 분화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행기에서 농민 분화 과정은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성격을 띤다. 자본주의에서는 빈농과 부농의 수가 증가하는 반면 중농을 감소한다. 즉, 그들 총량이 빈궁해지면서 빈농과 프롤레타리아 대열이 늘어난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농민 대중이 사회주의의 길을 걷기 전 이행기에는 중농의 수와 비율이 혁명 전 시기에 비해 증가했지만, 빈농의 수와 비율은 감소했고 일부는 중농의 수준에 들어섰다. 동시에 부농의 수와 비율은 혁명 전 시기에 비해 상당히 감소했으며, 이행기의 일부 연도에 발생한 부농의 성장은 자본주의에서보다 상당히 적었다. 중농은 농업의 중심 역량이 되었다.

 

10월 혁명 이후 1918년에 벌써 농민 중에서 중농이 우세를 차지하게 되었다. 농민들은 지주의 토지, 가축 그리고 농기구 일부를 무상으로 받았다. 1918년 부농에 대한 부분적 수탈이 진행되었다. 그들에게서 5천만 헥타르의 토지가 몰수되어 빈농과 중농에게 분배되었다. 1928-9년에는 총 농가 중 빈농이 35%, 중농이 60%, 부농이 4-5%였다.

 

소비에트 정부는 이행기 동안 레닌의 공식, 즉 중농과 굳건한 동맹, 빈농에의 의존, 부농에 대한 불굴의 투쟁에 입각해 농민을 대하였다. 레닌은 노동계급이 농민을 지도할 때 모든 농민의 두 가지 측면, 즉 일하는 자(toiler)로서의 측면과 사적 소유자의 측면을 항상 구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중농은 본질적으로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일하는 자로서 그는 프롤레타리아에게 이끌리지만, 소(小)소유자로서는 부르주아에게 이끌린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도 다 같이 중농 대중을 자기편으로 전취하려 한다. 이에 있어 노동계급은 일하는 자로서의 농민의 근본적 이해관계에 의거하며, 부르주아는 농민의 사적 소유자적 이해관계를 이용하려 한다. 이행기에 특히 농민은 아직도 사적 소유와 소상품 생산에 자기 생존의 기초를 두고 있는 동안은 노동계급과 농촌의 직접 생산자 간 약간의 비적대적 모순, 예컨대 가격 문제와 세금의 규모 문제들에서 모순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와 농촌의 직접 생산자의 이해관계는 근본적인 영역에서는 합치한다. 이 두 계급 모두 착취의 종식과 사회주의의 승리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여기에 우호적인 두 계급, 즉 노동계급과 농민의 확고한 동맹의 본질이 있다.

 

노동계급의 지도적 역할 아래에서의 노농동맹의 원칙은 사회주의 건설의 기초를 이룬다. 이는 러시아 공산당(б) 제12차 당대회 결정에 다음과 같이 지적되어 있다: “혁명의 전 결과를 규정하는 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임무는 최대의 주의와 사려를 가지고 노농동맹을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1

 

노동계급과 농민 사이의 공고한 동맹은 도시와 농촌, 공업과 농업 사이의 적확한 경제적 관계의 설정, 농업 경제의 성장과 그 사회주의적 개조에 필수적이다. 자본주의적 경제 형태의 청산과 사회주의의 승리는 오직 노농동맹을 기초로 하여 보장될 수 있다.

 

이행기의 기본 계급은 노동계급과 농민이다.

 

부르주아는 정권과 주요 생산수단을 상실하였으므로 이미 사회의 기본 계급의 하나로는 될 수 없다. 대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몰수당한 후에도 일부 (공업과 상업 분야의) 도시 부르주아와 또한 농촌 부르주아인 부농이 얼마 동안 남아 있게 된다. 이행기의 몇 해 동안은 부르주아는 상당한 역량을 유지한다. 이는 소상품 경제에서 자본주의적 요소가 자연 발생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과 모든 경제 부문이 일거에 자본주의 경제를 사회주의 경제로 교체될 수 없다는 것으로써 해명된다. 부르주아는 지배력을 상실한 후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화폐적 및 물질적 자원을 보존하며 상당 부분의 구 전문가들과의 연계를 유지한다. [이 시기 사회주의 나라에서 자본주의를 복구하려는 시도를 감행함에서] 부르주아는 국제 자본의 지원에 의지한다.

 

이행기 경제의 기본 모순은, 발생은 하였으나 초기에는 아직 약한, 그러나 전망이 있는 사회주의, 그리고 전복은 되었으나 초기에는 아직 강하고 소상품 경제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과거를 대표하는 자본주의 간 모순이다. 이행기 경제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누가 누구를 이길 것인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 투쟁이 전개된다. 노동계급과 농촌 생산 대중을 일방으로 하고 부르주아를 타방으로 하는 양자 간 적대적,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한다. 과도기에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처음에는 자본주의 요소를 제한하고 구축(驅逐)하는 정책을, 다음에는 자본주의적 경제 형태를 완전히 청산하는 정책을 실시한다. 이행기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항거하는 부르주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와 노동 대중의 첨예한 계급투쟁은 합법칙적이다.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5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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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 C.P.S.U. in Resolutions and Decisions of its Congresses, Conferences and Central Committee Meetings, Vol. 1, 7th Russian edition, Moscow, 1923, 682-3.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