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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를 안다는 것

자신을 안다는 것, 쉽지 않다.

난 이십대는 겉으로는 명랑소녀(--;;)였는데 속으로는 항시 바닥을 치며 살았다.

그러다 평생운세 뭐 그런데서 본 거 같은데 서른부터는 인생이 핀단 말에 필이 꽂혀서는 꼭 그럴꺼라 굳게 믿고 살았다. 근데 그게 주문이 되었는지 진짜 서른이 됐을때는 느무 행복했다. 마치 눈에 무슨 필터를 달고 있었는데 그걸 벗은 기분이었다.

 

그리고서는 다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다큐를 만들면서 나 처럼 재능없고

산만한 사람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집중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단 생각을 했다.

다큐를 좀 더 잘하고는 싶었지만 나의 허허실실한 성격으로는

걸작은 못만들겠다 싶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걸작이 아니어도 평생 다큐를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나의 성격은 허허실실, 덤벙덤벙, 소심, 여전히 남아 있는 우울,

나름 약간 명랑, 씩씩한척 하기 등 불안하고 단순하고 복잡하다.

 

그런데...

 

어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육아와 일을 둘이 잘 나눠서 둘 중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살자는 것이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의 예초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건 참 편리한 생각이었다.

육아는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하나 더 생기는 거였고 그 새로운 사람은 쉼없이 자라고 요구하고 변한다. 경험 없는 두 사람은 이 질적인 변화를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눈치챈다. 아마 내가 일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끝끝내 몰랐을 수도있다. 그저 하루 하루 땜빵하듯이 살았을거다. 최근까지도 난 그렇게 살았다. 일을 하다가도 아이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차면 그대도 집으로 달렸다. 그렇게 한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몰아치는 것, 그건 사람을 참 지치게 한다. 그 사이 사이 각자 일을 하는 것은 엄청난 정신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결국 어제 그 긴장감을 참지 못하고 둘다 터져버렸다.

그전까지 나름 조금씩 원칙들을 만들고 하나씩 하나씩 실험하고 있었는데

육아는 이전에 우리가 겪었던 시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고민과 실험을 요구했다. 

 

며칠 전부터 그걸 깨달기 시작했고 그 구조에 대해 토론하자고 했지만

역시 시간이 부족해서 이야기만 꺼내놓고 진하게 토론하지 못했다.

 

그러니 서로 속으로 각자 대안을 생각하며 행동하게 되고

막상 앞에 있는 사람은 그걸 알지 못하니 서운하고 그러니 더 힘들고

말걸기가 그랬나? '이해받기'가 '이해하기' 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비슷한 거 같다.

 

둘다 너무 힘들어 폭발했는데

그 순간 난 맥이 풀렸다.

아침시간을 확보하길 원하는 같이 사는 사람과

아침시간에 잠을 자야 하루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나는

끊임 없이 서로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번제를 쓰기도 하고 나는 아침시간에 깨어있으려고 일찍 자보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내가 6시부터 9시까지는 미루를 보는 것으로 했다.

멍해진 정신으로 나머지 오전시간을 다 날리긴 하지만

그래도 같이 사는 사람의 새벽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다 폭발해버렸으니 결국 그 모든 방법이 별 소용이 없단 이야기가 되고

난 맥이 풀렸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방법이 없다니.

그리고 내가 일을 그만두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단 생각을 했다.

내가 괜시리 일 욕심을 내서 이렇게 모든 사람이 힘든 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일을 접는 방법이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라니.

난 실패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고 싶었다.

극단적인 말인데..

 

그때 기분이 딱그랬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하겠는가...그냥 죽는 수 밖에. 그리고 입밖에 냈다.

아마 이 말에 같이 사는 사람의 이성이 작용햇나 보다.

 

좀 진정하고 나니 살 방법을 생각하게됐다.

"나한테 일주일만 시간을 줘.

일주일만 일만할 시간을 줘."

 

그래서 얻은 시간이 밤 시간이다.

어제 난 전쟁을 치루고 2시에 작업실에 가 6시에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난 미루 목욕시키고 같이 사는 사람은 저녁을 차리고

같이 저녁을 먹고 미루 젖을 먹이고 그리고 재우고

다시 작업실로 왔다. 8시 조금 안된 시간.

 

그리고 2시간 반 일을 하고 10시 반 조금 넘어서 다시 집에 왔다.

같이 사는 사람은 그제서야 잠자리에 든다.

난 젖을 먹이고 11시부터 집을 치웠다.

쓸고 닦고 빨래를 해 널고

그리고 컴 앞에 앉으니 1시반.

구성안을 조금 더 들여다 보고 싶었다.

한시간 정도 구성안을 들여다 보니 몸이 자야한다고 아우성을 친다.

3시에 가까운 시간.

 

같이 사는 사람이 깨운다.

핸드폰을 켜니 6시 10분.

또 하루가 시작이다.

 

그래도 내게 일주일이 생겼다.

일주일 동안 내 체력이 얼마나 견뎌줄지 모르지만

그리고 오늘은 같이 사는 사람이 교육을 가 이미 하루를 날렸지만

그래도 일주일이 생겼다.

 

그리고 날 알게 됐다.

 

밤에도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나니

난 마치 파워 나간 로봇이 다시 충전되서 불이 들어오는 것 마냥

쒸잉하고 살아났다. 행동지침이 생긴거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행동지침에 맞춰 사는 사람.

난 그냥 허허실실한 사람인데..참.

 

여튼 그런 나의 모습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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